하동(河東) 그리고 섬진강
지난 유월 열하룻날 이른 아침, 날씨 맑음, 푹 잠. 아내는 뭘 그리 준비하는지 감고 말리고 바르고 한참 야단이다. 오늘도 제법 서둘러서 집을 나섰음에도 어김없이 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하동행 여섯시 반 첫차는 떠나고 그 다음 차에 올랐다.
늘 일상에 갇혀 살다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몰라 때때로 슬퍼져 이참에도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로 한 것이고 오늘 가는 곳은 하동이다. 하동은 웅대한 지리산 자락에 뜨락같이 자리한 평야와 그 지리산이 빚어낸 맑은 물이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울엄니 같은 섬진강의 풍요로움이 너무도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몇 차례 보낸 적이 있다.
버스는 일곱 시가 지나서야 터미널을 떠나고 우리는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는 진주를 지나 진교를 들러 하동?남해인터체인지로 접어든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진한 추억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정든 들녘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어느덧 섬진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부산-목포 간 경전선 철로 굴다리를 지나자 이내 곧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다다른다. 부산을 출발한지 두 시간 이십분 남짓 걸려 아홉시 반쯤에 도착한 게다.
옛날 어릴 적 5일장 장터국밥이 생각났음이라, 아참식사는 하동시장 안에서 하기로 했다. 50대 후반쯤의 얼굴이 곱고 첫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의 해물된장찌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리고 그 아주머니 특유의 걸죽한 토속 사투리는 어느 지방 말인지 나도(나주), 아내(진해)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해 온종일 얘깃거리 소재가 되었다.
장터 길가마다 청매실을 팔고 사는 모습을 뒤로하고서 자전거 대여하는 곳을 이곳저곳 알아보았지만 옛날에는 대여했는데 요즘은 안한다고 하여 여러 차례 설득해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 그러면 걸으면 되지 뭘, 걷다가 곤하면 쉬면되지, 암!’ 자전거로 섬진강을 휘이 돌아보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걷기로 하였는데 햇볕이 너무 따갑고 바람마저 한점 없구나. 여자인 아내를 생각하여 코스를 바꾸자고 하였으나 그냥 걷자고 한다. 추억만들기 고생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동 읍내 섬진강가에 있는 하동송림은 오래된 소나무 군락지에 불과할 뿐 소문만큼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턱없이 비싼 입장료만큼이라도 편의시설을 갖추고 관광객으로 하여금 머물고 싶게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다. 다만 그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어 온 소나무만이 방문객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무심히 바라만 본다.
송림에서의 씁쓸한 기억을 안고 하동읍에서 광양시로 섬진강을 건너는 섬진교 위를 걷는다. 새로 난 섬진교는 지금은 통행이 금지된 옛 다리 남쪽에 있으며 섬진교 남쪽으로는 일제시대 때 건설했을 경전선 철교가 가로 놓여 있어 1930년대 농민문학의 배경을 보는 것 같아 한동안 가슴 뭉클한 감회에 휩싸인다.
섬진교를 건너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하늘 햇볕과 땅 열기가 온몸을 데워 숨이 막힐 지경이라 잠시 쉬어감이 어떠하랴. 섬진강 구례 쪽 강변길은 한 시간에 두어 차례 마을버스만이 다닐 정도로 그야말로 한적한 곳이다. 버스를 타고 잠시 달리노라니 드라마 「허준」덕에 더 유명해진 <매실농원>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매실보다 진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섬진강 양쪽 산기슭에 핀 밤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버스가 닿는 곳은 대여섯 가구 정도의 작은 촌락이 전부였고 종점은 강 건너편에 화개장터가 바라다 보이는 유유자적한 곳이었다. 오랜 기간 가뭄으로 강물이 몹시 말랐는데도 지리산 골짝이 깊어서인지 그래도 강물은 끊임없이 줄기차게 흐르고 사람들은 고동을 잡고 은어를 낚으며 세상 아랑곳없다는 듯 즐겁기만 하다.
산허리를 돌아드니 가끔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하는 구례-하동 간 나루터가 보인다. 나루지기 사공은 지금 막 여남은 손님을 태우고 수 십 년 전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태어날 적부터 당신의 일이었던 마냥 오늘도 무심히 화개나루를 지킨다. 다만 예전에는 노를 저어 건너던 것을 양 강기슭에 매단 동아줄을 쉬엄쉬엄 당기면서 건너는 모양으로 달라졌고, 예전에는 화개장터에 물물교환 하러 가는 구례사람들이 주로 손님이었겠으나 지금은 농사꾼의 교통편 또는 관광객이 여흥삼아 타보는 그저 그런 곳으로 변했다는 점이 다르다.
또다시 강 따라 계속되는 길을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나브로 걷는다. 한낮이라 배낭을 멘 겉옷까지 젖어들고 오랜 시간 맡은 밤꽃 내음이 비위를 몹시 거슬리게 한다. 지나가는 경찰 순찰차를 염치 불구하고 세워 타고서 창문을 여니 그 시원함이야 이를 데가 없다. 한참을 달려 구례군 간전면 인근 들판에 내리니 이제 갓 심은 모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댄다.
들길따라 간전교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볼에 스치는 산들바람이 이내 곧 소낙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차라리 비에 흠뻑 젖고 싶은 생각이 사정없이 온몸을 휘감는다. 한낮 들길 뙤약볕은 대지를 달구고 나그네는 더위에 겨워하면서도 주변 풍경에 사로잡혀 터벅터벅 길을 걷는데, 길 뒤쪽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우리들 옆으로 다가서더니 어디가시냐며 태워드릴 테니 타라고 한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깊게 패인 주름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는 할아버지 농군의 따스한 정에 닳아빠진 도시인의 가슴은 절로 숙연해진다. 우리는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사양한 후 걸음마 걸음을 재촉하여 이제 간전교 위를 지나고 있다. 오늘 일정의 중간지점이다. 하동쪽에서 섬진교를 건너 광양, 구례를 지나 간전교를 건너 하동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으니 그런 셈이다.
다리를 건너 나무그늘 평상에 앉아 수박 한 조각에 잠시 더위를 잊고 쉰다. 지나가던 승합차가 방향이 같으면 태워주겠다고 하여 차에 올랐다. 농촌 인심에 또다시 감사하면서도 이래저래 오늘은 무전여행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얼굴을 빼꼼하게 쳐다보니 아내 또한 웃음으로 동감임을 끄덕인다. 이제는 오른쪽 편으로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편에 구례쪽 강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빨치산의 은거 활동지로 유명한 피아골 연곡사 입구 삼거리에 내렸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등장인물인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죽산댁, 들몰댁..> 등과 분단현실의 비애와 민중들의 곤궁한 삶의 장면이 스쳐간다.아이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와서 재첩을 잡고 미역을 감고 소낙비를 함께 즐겨 맞으며 놀던 얘기를 하면서 메기 매운탕에 소주 한잔 곁들여 허기를 채운다.
오후 2시. 2킬로 남짓되는 화개장터까지는 걷다가 강가 그늘에 앉아 쉬다가 하면서 해도해도 끝이 없는 아내와의 얘기는 계속되고 어느새 화개장터에 이른다. 조영남의 노래제목으로 더 유명한 「화개장터」, 장터는 없고 남은 것은 ○○모텔처럼 낮잠 자는 곳(?)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피라미 매운탕, 찻집 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다. 장터 아래 쌍계사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족탁을 하니 얼얼한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화개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박경리의「토지」무대인 평사리를 지나면서 또 한번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 그리고 땅에 빌붙어 살아가는 이들의 질곡이 떠오른다. 오늘 아내와 손 맞잡고 돌아본 섬진강의 초여름, 아내 또한 그리 느꼈으면 좋겠다. 좋았다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도보 여행이었다고, 언젠가 꼭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3시반 화개출발 6시반 부산도착)
2000년 초여름 도보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