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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 목 | 먼산이 다가오면 | ||
참가대회 | 2007 춘천마라톤 | ||
작 성 자 | 문인수 (moonis444@naver.com) | ||
카테고리 | 풀코스 |
나는 아침 저녁으로 달린다. 그 때마다 아련히 다가오는 게 있다. 새벽녘에는 운무에 가리고, 해질 무렵에는 이내에 둘러싸인 먼 산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오로라같은 광채 속에 살짝살짝 드러내는 산봉우리, 그 봉우리를 보노라면 금방이라도 그곳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먼 산은 꿈과 동경의 대상이다. 나는 실제 마라톤에서도 먼 산을 보면 그것이 결승선이라고 생각한다. 먼 산이 동경인 것은 그곳에 동화가 있고, 안식이 있고,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운무에 가린 산봉우리를 보라. 거기엔 금방 손에 잡힐 듯한 기대가 있지 않은가? 이내에 휩싸인 먼 산을 보라. 첩첩이 얽힌 봉우리 틈새로 아련한 희망들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 같지 않은가? 나는 그 환상같은 기대와 희망을 쫓아 달린다. 허나 먼 산은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만 달아나고 멀어진다. 쫓고쫓는 먼 산과의 경주, 나는 그 경주를 늘 즐긴다. 내가 먼 산과의 경주를 즐기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 기대와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첩첩한 산세와 산맥의 줄기가 끝없이 이어질 때, 내 달리기도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 젊음의 세포가 내 몸 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다는 믿음, 내 마라톤 단상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는 믿음, 먼 산과의 경주는 그런 믿음을 한껏 부풀린다. 먼 산과의 경주가 부풀리는 믿음은 또 있다. 베일에 감춰진 기대와 희망의 실체를 보고싶은 충동의 진정성,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동경, 이런 것들이 먼 산과의 경주가 부풀리는 또 다른 기대다. 기대는 삶의 원천이다. 마라톤을 할 때 먼 산이 가까워지면 그 기대도 가까워짐을 느낀다. 운무나 이내의 광휘 속에 떠있는 산봉우리를 보면 그 가벼움 속으로 자꾸만 달려가고픈 생각이 든다. 그것도 먼 산과의 경주가 부풀리는 또 하나의 충동이다. 10월 28일 새벽 6시, 어스름이 걷힌다. 여단이 다가온다. 나는 마라톤을 위해 춘천으로 가고 있다. 먼 산이 어렴풋이 다가왔다간 사라지고, 사라졌다간 또다시 다가온다. 춘천으로 가는 찻길은 내 달음질보다 빠른가 보다. 차창에 스치는 사물이 뒤로 빠지는 속도가 빠른 것을 보면, 그 빠름이 수많은 먼 산을 내 뒤로 밀어낸다. 밀어내도, 밀러내도 계속 다가오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내가 달릴 춘천마라톤의 결승선들이 아닌가. 내가 마라톤을 한지는 꽤나 됐다. 그 동안 20회가 넘는 풀코스 마라톤과 100km울트라 마라톤을 달렸다. 서울에서도 달렸고, 지방에서도 달렸고, 보스턴에서도 달렸다. 허나 춘천마라톤은 처음이다. 이순을 넘겨 이순인 61회 춘천마라톤과의 만남이다. 일부러 그리 계획한 건 아니지만 모양새가 그리 됐다. 바쁘다는 핑계와 가고오는 길의 체증을 구실삼아 미뤄온 것 뿐인데도 묘한 감흥이 이는 건 그만큼 춘천마라톤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컷던 게 아닐까. 춘천의 아침은 밝았다. 가을의 중심에 놓인 춘천은 온통 단풍세상이다. 먼 산, 가까운 산을 막론하고 거리의 가로수도 온통 단풍일색이다. 오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일부러 시간을 축내며 단풍놀이가 한창인데 나는 마라톤과 단풍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이 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으랴. 오전 10시,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2만여 건각들이 오색단풍속으로 질주한다. 삼악산을 휘감던 운무가 아침햇살에 춤을 춘다. 산봉우리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울긋불긋, 여기저기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언뜻 보기에 마치 한밤의 횃불 같다. 아니 천상에 걸린 불화 같다. 싸~한 바람이 지나간다. 의암호의 호수바람이다. 바람이 아니면 단풍의 열정을 누가 식히랴. 단풍은 주로에도 널려있다. 길 양쪽에 늘어선 은행잎들이 노란 배추나비처럼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그 나비들은 내 머리위에도 내려앉고, 딱딱한 아스팔트 길에도 떨어진다. 나는 수북한 은행잎을 밟으며 달린다. 아니다. 은행잎이 깔아놓은 가을을 밟으며,가을이 횃불처럼 저 먼 산에 끌리어 마음이 바빠진다. 낙엽으로 떨어진 은행잎은 고별의 몸짓으로 노랗게 화장을 하고 있다. 나풀거리는 생명의 조각들이 황홀했던 여름의 추억들을 반추한다. 낙엽을 밟고 있으면 때론 쓸쓸하고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다.생명의 소중함이나 젊음의 화려함도 환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낙엽은 그래서 인생의 한계를 새삼스럽게 깨우쳐주는 게 아닐까. 허나 결코 낙엽은 고독하지 않다. 결코 낙엽은 죽지 않는다. 발밑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구르는 소리, 그 소리들은 새로눈 생명을 부르는 희망의 소리가 아닌가. 오색의 빛깔로 온 산을 물들이는 것은 지금보다 더 큰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100살까지 마라톤,' 이런 케치프레이즈를 등에 짊어진 노인이 내 옆에서 달린다. 얼굴 주름이 계곡처럼 파이고, 백발에 검버섯이 주렁주렁 달렸다. 어찌보면 땅위에 구르는 낙엽처럼 조락의 길을 걷는 노인이 아닌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100살까지 마라톤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그 노인의 얼굴에서 조락의 희생을 딛고 탄생할 환희의 생명을 보는 듯 하다.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시는지요?" "100 빼기 20 이오." 나는 깜짝 놀랐다. 100살보다 더 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노인의 언어가 늙은이의 삶의 욕심으로 비쳐지지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늙음이라는 이유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고귀함과 인생을 한껏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이제 막 솔개 마을을 지나 '봅 봄'의 작가 김유정의 문인비를 지나고 있다. 멀리 드름산 줄기를 타고 단풍이 줄달음친다. 내 마라톤보다 빠름인가. 그 산줄기가 잡힐 듯 말 듯 늘 같은 간격으로 나를 유지한다. 감추어진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는 속셈인 양 간격을 좁혀주지 않는다. 나는 달리면서 주로의 다른 주자를 훔쳐보는 버릇이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특별한 복장을 보면 우선 눈길이 간다. '수아의 생명을 위하여' 이번엔 이런 바램의 상징을 아로새긴 셔츠를 입고 달리는 부부를 만났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폐암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딸의 생명을 간구하는 달음질이다. 딸의 고통을 함께 하고 싶어서 고해의 길을 달린다는 그 부부의 변명도 전혀 사치처럼 느껴지지않았다. 딸이 암과의 투쟁에서 이겨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일어서리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라라. 마라톤은 비록 고행의 길이긴 하지만 먼 산이 주는 꿈과 동경의 이미지 만큼이나 기대와 희망이 서린다. 17km지점 금산리를 지나면서 호반의 도시다운 춘천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물과 산과 단풍, 마라톤의 벗으로는 최고의 벗들이다. 최고의 가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기회, 마라톤이 아니면 이런 스릴있는 감상이 가능이나 할까. 울뚝불뚝 솟은 봉우리와 봉우리들, 생동하는 기운이 온통 거기 뭉쳐서 약동하고 있지 않은가. 사소한 인간의 번민과 고통따위는 한 입으로 불어재낄 태세로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잡힐듯 말듯 먼 산과의 경주, 누가 먼저 결승선을 밟을 것인가. 나는 마지막 스퍼트를 하고 있다. 공지천 유원지를 돌아 결승선을 향해 줄달음쳤다. 3시간 36분 29초, 42.195km를 내가 달려온 시간이다. 꿈과 동경의 결승선, 그것은 그 먼 산봉우리에 있었다. 먼 산이 갖는 숭고한 정적과 위대한 침묵 속에서 내 긴 달리기 여정은 막을 내렸다. 어디선가 날아든 단풍 한 잎이 중추의 양광에 고운 빛을 발산한다. |
첫댓글 마라톤온라인 11월의 당선작....... 보스톤 같이간 문인수 왕년의 kbs 기자출신이랍니다.
풀~~~인생의 축소판 가을의 전설 여정에서 땀 흘린 후 글도 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
아.....어쩐지.......서정적인 냄새가 풍기더니....역시....기자출신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