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산에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까지”
김재복
정년퇴임 후 심심치 않던 차에 어느 아웃도어에서 주관하는 “명산100”에 등록하여 지난 2014년 3월 4일에 경북 김천의 황악산을 시작으로 100명산에 도전하였다. 100명산을 도별로 정리하여 먼저 가까운 서울과 경기도에서의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고 장거리산행은 차량 나눔 카페를 이용하였다. 거의 매주 새벽부터 또는 무박으로 밤늦게까지 다니는 나의 모습을 본 아내는 산행에 많은 후원을 해주었고 나의 동료와 직장후배들도 많은 격려를 보내주었다. 그에 힘입어 2014년 12월 27일 덕유산을 100번째로 완등 하였다. 나에게는 100명산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도전과 만남이었고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힘이면서 활력소가 되었다. 그 후 북한산 둘레길, 서울둘레길. 산림청 선정 명산 등을 완주하고 백두대간을 남진 중에 있다.
산객이라면 누구나 동경하고 가보고 싶어 하는 히말라야, 2016년 4월 8일 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도전하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네팔 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네팔 중앙에 솟아있는 안나푸르나(8,091m)는 아름답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봉(美峰)이며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이다. 안나푸르나 산군(山群)은 네팔에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생활력이 강한 고산족(구릉족)은 자자손손 온 산에 빽빽하게 계단식 밭을 일구어 안나푸르나에게 “풍요의 여신”이라는 아름다운 호칭을 안겨 주었다.
안나푸르나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카라는 네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전 세계 트레커들의 집결지이다.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포카라를 향해 가는 하늘에서 본 구름 위의 히말라야 산맥의 산군(山群)들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트레킹한 코스는 포카라에서 자동차로 40분 이동하여 카데에서 시작해 톨카(1,700m)란드록(1,565m)<1박>지누단다(1,780m)촘롱(2,170m)시누와(2,340m)<2박째>뱀부(2,310m)도반(2,600m)히말라야(2,920m)데우랄리(3,230m)<3박째)마차푸차레 베이스 켐프(M·B·C)(3,700m)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A・B・C)(4,130m)<4박째>-시누와(하산)<5박째>-포카라(하산)<6박째>여정이다.(트레킹 기간 6일간 : 2016.04.09.~14.)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A·B·C)까지 구간에 따라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일명 롤러 코스터 구간)을 반복하여 걸어서 나흘이 걸렸다.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은 모노 트레일(Mono Trail), 즉 외길이다. 출발 지점은 서너 군데 되지만 이틀 정도 걸어 해발 2,000m 지역에 당도하면 길은 하나로 합쳐진다. 하루 평균 8시간정도를 천천히 걷기 때문에 난이도는 무난한 편이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눈 덮인 히말라야가 펼쳐질 것 같지만 주위 풍경은 의외로 단조롭다. 데우랄리까지는 우리나라와 같은 산속을 내내 걸어야 한다. 가끔 얼굴을 내미는 마차푸차레 만이 여기가 히말라야임을 알려 준다. 트레일이 통과하는 마을마다 6~10개짜리 로지(Lodge:숙소)가 있으며 네팔 음식을 비롯해 한국 음식과 양식을 판다. 카데에서 꼬박 4일을 걸어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4,130m) 로지에 도착했다. 해발 3,500~6,000m 지역에 설치된 베이스 켐프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종점이자 히말라야 정상정복의 시작점이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최고의 도전점인 셈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 로지 위로 케른(티베트 불교의 돌탑)이 수십 개 있었다. 안나푸르나에 잠든 영혼을 기리는 추모탑이다. 그중 고(故) 박영석대장과 함께 실종된 신동민, 강기석 대원(2011년, 10월 18일 실종)의 추모탑에 헌화하고 추모탑 옆에 앉아 한참이나 잠들어 있는 빙하를 바라봤다.
안나푸르나 로지는 짙은 안개에 갇혀 있었다. 안개로 인해 기압이 뚝 떨어져 고산증세로 약간의 어지럼증 증세가 나타났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 새벽 5시 청록색의 하늘아래 웅장한 안나푸르나 남벽이 황금색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나푸르나 남봉은 주봉에 비해 높이는 낮아도 산세는 위용이 넘친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주봉이 여성적이라면 남봉은 ‘남자의 봉우리’ 라고도 한다.
안나푸르나 로지는 천혜의 전망대다. 북쪽으로 안나푸르나를 비롯해 시계방향으로 싱구출리(6,501m), 타르푸출리(6,695m), 간다르바출리(6,248m), 마차푸차레(6,997m), 히운출리(6,434m),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이 어께를 맞대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어제까지 겪은 트레킹의 고단함과 앞날에 대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서 하산하는 길은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하산 중에 비와 우박을 만났다. 히말라야 날씨는 변화무쌍하지만 일정한 특징이 있다. 오전에는 대기가 안정적이어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다가 오후가 되면 한바탕씩 비나 우박, 눈을 뿌린다.
히말라야 트레커들에게는 3,000m이상에서는 세수도 하지 말고 머리도 감지 말라는 원칙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체온이 떨어지고 고산증세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물티슈만을 사용했다.
환상적인 히말라야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천천히…, (비스타리…, 비스타리…) 걷는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내가 바라본 하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고래 등처럼 꿈틀거린 위용을 과시하던 안나푸르나 남봉은 아마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거대함을 느끼면서 산을 오르는 행위나 인생을 살아가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세삼 생각하게 하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파이팅!!!
“나마스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