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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식으로 내리 퍼붓던 장마로 온 나라가 허우적거리며 정신을 빼놓더니 다시금 전력을 바꿔 푹푹 쪄대는 살인적인 무더위로 위협을 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한증막인 양 답답하게 조여오는 열기는 살인적이었다. 조금만 몸을 놀려도 구슬땀이 얼굴과 겨드랑이에 차 오른다. 아침부터 맥이 빠지려고 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치켜 올린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포즈로 누워 아직 밤중이다.
열대야로 늦잠을 자고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새벽녘에야 선선한 틈을 타 단잠에 빠지는 것이다.
막내만 뒤척거리는 것이 곧 깰 모양이다.
작은 방엔 사람은 없고 빈 이부자리가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다.
언제 부터인가 남편은 작은 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혼자 잔다.
부부관계가 소원한 것도 아니고 섹스리스 부부는 더욱이 아니지만 아직 아이들만 자게 할 수 없어 같이 자게 되다 보니 자연히 남편은 외따로 자게 되어 버렸다.
내가 홀아비냐고 애들 끼리 자게 놔두라고, 다 큰 애들 끼고 자는 것도 엄연히 병이라고 큰 소리 치면서 제일 큰 문제를 지적하더니 이젠 그 잔소리도 제풀에 지친 모양이다.
간신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찬 물 한잔 달랑 들이키고 나가는 남편의 피로한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인스턴트 죽이라도 몇 숟가락 뜨게 하지 못하고 나가게 한 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남편이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추어 놓으면 먼저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누룽지나 스프, 죽 같은 걸죽한 것들을 먹든 안 먹든 밥 상 위에 차려 놓고 했는데 요 며칠 사이 흐리멍덩해지고 말았다.
게으름과 나태가 만들어 낸 무관심을 아이들 핑계로 포장했다면?
이러면 안되는데, 아침이라도 먹고 나가야지 일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지 하고 간밤에 생각은 하고 있다가 이른 아침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면 남편이 끈 사이 그녀는 마음과 달리 무거운 몸은 일어나지도 못한 채 죽은 듯 누워있고 만다.
선풍기를 돌릴까 하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고 세탁기 안을 살핀다.
여름이라 하루만 지나도 세탁조 안에 빨래가 쌓인다.
이틀을 넘겨 빨래를 하다보면 꽉 찬 세탁조 안처럼 답답증이 찾아 오는 터라 물세니, 전기세가 부담스럽지만 기어코 세탁기를 돌려 놓는다.
우선 아침 밥보다 세탁기를 먼저 돌려 놓는 것이 개운할 것 같아 전원 버튼을 누르고 세제 뚜껑을 연다.
빌어먹을! 아침부터 재수없게. 큰 바퀴다.
세제 스푼으로 건드려 보니 꿈틀, 아직 살아 있다. 지구가 종말하더라도 살아남는다는 질긴 번신력과 생명력을 소유한 바퀴벌레라고 했던가.
배가 고파 세제라도 먹을려고 기어 들어 왔다가 변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는 이것들의 식욕은 끈적끈적할 것이다.
곧 임종을 앞둔 시체를 보고 감상에 빠진 듯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스푼으로 건져 내어 욕실 바닥에 떨어 뜨린다.
세제 가루가 바퀴에 붙어 허옇게 깔려 있다.
슬리퍼로 꽉 누르니 톡, 하는 경쾌한 단음과 함께 바퀴는 죽었다.
사람도 죽을 때 저런 발랄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영면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른다.
아직 아침 밥 불도 올려 놓지 않았는데.갑자기 다급해진다.
이 놈의 바퀴 때문에 화장실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생각하자 아침부터 불쾌지수가 높아지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리면 그만이지만 죽은 바퀴는 휴지에 말린 채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끈길긴 놈. 죽은 바퀴한테 쓴 소리를 한다.
휴지를 풀어 죽은 벌레를 휴지통에 넣고 세탁기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어제 씻어 냉장고에 넣어 둔 쌀을 밥솥에 붓고 가스레인지 불을 최대한 높인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밥이라도 해 놓아야지 그 다음 일이 그나마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이 한여름, 그것도 옥수수 찜통 같은 열기를 견디며 세 아이와 집 안에 갇혀 지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끝도 이 펼쳐진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을 횡단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작년에 새로 들인 에어컨이 작은 방 위에 있고 선풍기도 두대나 있지만 개도 안 걸린다는 한여름 감기에 포박 당한 큰 아이 때문에 마음 놓고 시원한 바람 한번 맞아 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까 지지난 주 일요일 오후 늦게 바로 옆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축구 공을 가지고 나가더니 한 시간 후에 나타난 큰 아이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들어 섰다.
엄마, 나 힘들어. 함께 간 두 동생들을 벌겋게 상기되고 땀투성이 얼굴에 팔팔한 모습인데 반해 혼자 어깨가 축 쳐져 흐느적거리며 들어오는 꼴이란.
한 시간 내내 지 혼자 축구공을 굴리다 온 놈처럼 안쓰러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거야 하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게 화근이었을까.
다음 날도 큰아이는 밤새 뒤척인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겨우 아침 상에 버티고 앉아 있더니 숟가락으로 뜬 밥을 조금씩 떼어 먹는 폼이 영 아니올시다인 게 엄마, 나 더 누워 있을래 한다.
먹던 밥이나 다 먹고 누워 있으라 하고 밥에 물을 말아 준다.
물에 만 맨 밥을 반찬도 없이 꾸역꾸역 먹어 대는 꼴이울컥 화가 치밀어 꿀밥을 되게 한대 박는다.
" 야, 이놈아! 물을 말아 줬으면 김치라도 갖다 먹어야지.니 젖가락 없어?"
큰 아이는 금방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 오르더니 밥 상 위로 눈물을 떨군다.
도대체 반찬도 먹지 않고 맨 밥만 먹는 놈은 세상에 처음 본다.
타고난 식욕 부진 탓일 텐데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
삐질삐질 짜는 모습을 보니 더욱 울화가 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걸핏하면 눈물을 보이는 놈이라니.
아기였을 때는 우는 법을 모르고 태어난 아기처럼 늘 방글방글 웃기만 해서 장난삼아 일부러 울려도 보곤 했는데 열 살이 넘어서 부터는 한마디 해도 눈물 먼저 내보이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인 것이다.
이럴때 쓰는 말이 나이는 거꾸로 먹나 일것이다.
하도 울지 않아 일부러 꼬집혀서 울게 하던 그때가 그리울 지경이다 이놈아!
" 동생들 앞에서 제일 큰 형이 되 가지고 안 창피하니? 울긴 왜 우는데?"
" 내가 언제 울었어."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랑 코를 훔치면서도 기어이 말대꾸는 하는 저 고집 덩어리.
부시시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한 아이들은 아침 밥상 앞에 앉아서도 숟가락을 들지 않고 있다.
일어나자 마자 무슨 밥맛이 있을까마는 달랑 네 개 놓인 반찬도 그나마 어제랑 비스무리 한 까닭이다.
요즘 부쩍 먹는 것에 신경을 쓰는 작은 놈은 으례 끼니 때가 되면 슬그머니 옆구리를 찔러가며
오늘 무슨 맛있는 거 있냐고 물어 온다. 반찬 투정이 날이 갈수록 빙산을 이루고 있다.
" 엄마, 밥 먹고 형아랑 한의원 갔다 올테니까 그 때 까지만 놀고 있어라. 엄마 오면 공부하고."
" 형아 병원 또 가?"
둘째는 나와 지 형을 번갈아 보며 물어 온다. 벌써 이주째다.
목감기로 기침만 하더니 장까지 약해졌는지 하루에 네 다섯번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머리 아프네, 배가 아프네 등을 달고 사니 까타스런 병자 역활을 단단히 하고 있다.
처음 기침을 할때는 막내 놈처럼 며칠 약 먹으면 낫겠거니 하고 동네 의원을 두번 정도 갔다가 별 호전을 보이지 않아 버스길에 올라 큰 병원까지 가 진찰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특별히 폐 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단순한 감기 약을 오일분 지어 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으례 잘 처방해 주셨겠지 하고 한시름 덜어 놓았다 싶어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사일 분의 약을 식후 삼십분씩 먹어도 차도는 커녕 점점 거칠어지는 큰 아이의 기침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저러다 목에서 피가 솟구쳐 터져 나올까 할 정도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뱉어내는 기침 소리에 내가 먼저 쓰러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조성 되었다.
약을 먹어도 후딱 낫지 못하고 되려 악화되가는 큰 아이 한테 몹쓸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래도 내 자식인데 하다가도 또 얼마 안가 한 여름에 감기 걸려 누구 죽는꼴 보려 하냐고 악다구니까지 쳐대는 꼴을 보고 남편은 혀를 끌끌 차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며칠 전 새벽 한시경 또다시 터져 쉴새 없이 나오는 큰 아이의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철철 흘러 나왔다.
저러다 죽겠지 싶은 생각이 밀물처럼 달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택시를 잡아 타고서라도 응급실에 가서 사진도 찍어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눈물과 콧물을 닦고 큰 아이한테 옷을 입으라 하니 그때서야 나몰라라 하던 남편은 의자에서 무거워진 엉덩이를 겨우 때더니 자기가 갔다 오는게 빠르다며 슬리퍼를 꿰차고 나간다.
우리집 애들은 왜 꼭 주말 밤에만 응급실을 가는지, 원!
주말 새벽 아이 때문에 응급실 행을 경험한 적이 몇 번은 더 있던터라 남편은 이제는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출근을 앞둔 사람답게 몰려드는 피로는 어쩔수 없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야간 응급실에서 두 시간 후에 돌아 온 두 부자는 하품을 찢어져라 했다. 두 눈에 눈물이 비져 나왔다.
다행히 폐렴은 아니라고 했지만 목에 가래가 많아 기침때문에 폐 사진이 지저분하다고만 했다.
낙서처럼 지저분한 폐라니.
호흡기 치료도 받았다는 큰 아이는 잠깐 잘 자는 듯 싶더니 또다시 기침을 쏟아 냈다.
" 한의원에서 지어주는 약 먹더도 안 나으면 그 땐 니가 알아서 낫는지 말든지 해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협박조로 하는 내가 생모인지 계모인지 분간이 안 갔지만 이주 동안이나 이 병원 저병원 찾아 다니면서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것을 보고 막말이 나오고 말았다.
큰 아이는 양산 조차 버거워 하는 표정으로 힘겹게 따라 올 뿐이다.
이주 동안 양약에 한약에 게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반나절을 누워 있다가 질식하 듯 조여 오는 한 낮의 태양 아래 무슨 기력이 있을까 싶어 에구, 불쌍한 놈 하고 잠깐 연민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도 기침이 별로 낫지 않는다며 근심 가득한 어조로 신세 한탄 하듯 말을 하자 한의사는 이번엔 좀 센 걸로 드려 볼게요, 했다.
약이 세면 큰 아이의 허약한 목에 끈질기게 달라 붙어 은신하고 있는 가래 줄기들이 술술 풀려 나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말이 진심이기를 간절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치 사막을 걷고 있는 양 현실감이 떨어진다.
돌아올때까지 놀고 있으라고 한 작은 놈은 의기양양 에어컨을 켜 놓고 있다.
창문이고 현관문이고 죄다 열어 놓고 지 혼자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의자 밑에 앉아 리모콘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자 속이 확 뒤집어 진다.
" 이 미련한 놈아! 에커컨을 켰으면 문이랑 창문을 닫고 켜 놔야지. 전기세 니가 낼 거야?"
돈 얘기 할때면 그렇게 잘 나가는 말대꾸도 못하고 마는 작은 놈은 입만 삐죽삐죽 한다.
그래도 지 형 처럼 무슨 말만 해도 울지 않는 것이 기특하다.
돈이래봤자 삼천원에 동전 몇 개만 달랑 있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고스란히 엄마의 지청구를 듣는 것이 더위에 벌겋게 상기된 엄마가 진짜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음이다.
건조대에 다 돌려진 빨래들을 널어 계단 위로 올라간다.
남의 집에 살면서 일층도 아닌 반지하에 산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늘 속이 거북하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탓에 빨래를 바싹 말리려면 앞집 담벼락 밑이 제격이다.
집집마다 꼭꼭 닫혀진 창문이 쩡하고 깨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눈이 부시고 현기증이 인다. 낮이고 밤이고 쉴세 없이 윙윙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매미의 울음 소리를 잡아 먹고 있다.
온 도시가 오로지 에어컨만이 더위에 맞설 수 있는 방어책 인 듯 자기 안에 품고 있는 듯 하다.
집집마다 사람들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다만 내다 말린 이불이며 빨래만이 부글부글 지져 대는 폭염 속에서 바싹바싹 타고 있을 뿐이다.
저 쪽에서 노인 하나가 어깨를 늘어 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 오고 있다.
반바지에 양말을 올려 신으니 맨살이 가리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윗 도리는 입지 않고 누런 메리야스 차림이다.
밑이 달아빠진 슬리퍼를 질질 끌으며 놀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노인의 굽은 등이 평일 구경꾼 없는 공원의 낙타처럼 무료하고 쓸쓸해 보인다.
" 더운데 별일 없나 하고 해 본거야."
친정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큰 아이가 감기에 걸려 이주째 낫지 않아 오늘도 한의원에 갔다 온 이야기 먼저 속풀이 하듯 터뜨리고 만다.
다시금 옛날 친정 엄마의 큰 딸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찰나 스치고 지나간다.
" 걔가 기관지가 허해서 그런가 보다. 보리차를 끓여서 그냥 밖에 놓고 먹여라 따뜻하게. 그리고 밥 지으면 거기서 나오는 김 들이마시게 하고. 나도 얼마 전에 감기 걸려 병원 갔더니 의사가 그러더라."
" 에구, 말도 마. 도라지에 생강에 하나에 이천 오백원이나 하나 배까지 해서 끓여 마시게 해도 그대로야. 또 파뿌리랑 콩나물을 엿물 넣고 달여 마시게 했는데도 낫지 않으니, 내가 다 미치겠어. "
원래 한 여름 감기는 걸리기도 힘들지만 걸리게 되면 낫기도 힘들다며 한숨만 푹푹 내쉬는 큰 딸을 위로한다.
" 잘 챙겨 먹어라.니가 건강해야 애들도 돌보고 하는거야. 니 몸 아파봐라, 남편, 자식 다 소용없다."
딸 걱정 하는 소리일 텐데도 내 귀에는 일그러진 당신의 인생한테 쏘아 붙이는 말같다고 느껴진다,
그래, 파편으로 깨져 나간 인생의 조각 조각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살아가야하는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는 친정엄마 곁엔 지금 남편도 부재 중이고 효도는 커녕 잘 나가는 자식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하고 살고 있다. 오십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친정 엄마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마음 편히 살아 본 적인 있었을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애잔하게만 들린다.
" 엄마가 지금 내 걱정하게 생겼어. 지난 번 장마때 전화해야지 했는데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지. 엄마나밥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해."
사는 게 여유롭지 못하니 결혼 십년 동안 자식된 도리로서 그 흔한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한 게 죄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너 한테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말 뿐이다.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어버이 날인데 그냥 빈 손으로 때우냐고 눈에 뻘겋게 핏대 세우고 달려드는 시어머니가 비눗방울처럼 떠올랐다.
수화기를 내려 놓으니 두 무릎도 저절로 축 꺼져 버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늘 이런 식이다. 왜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나면 기분 나쁜 무력감이 구렁이처럼 온몸을 친친 휘돌아 감아 버리는 고약한 기분에 빠져 들고 만다.
그만 맥이 탁 풀려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 깊은 상실감으로 내 얼굴은 음지식물처럼 표정을 잃곤 한다.
아이들은 어둑한 방에 철퍼덕 앉아 있는 엄마를 기웃기웃 하며 지들끼리 뭐라 떠든다.
엄마가 방에서 나오는 기척을 듣고 아이들은 눈치를 본다.
밖으로 나와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계단 아래 반지하에 살면서 부터 들이게 된 버릇이 된 하늘 우러러 보기.
하얗게 드리운 하늘 위로 잔 먼지 같은 것들이 쉴새없이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로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바삐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잠자리떼다. 비가 올려나? 잠자리 떼가 하늘을 덮으면 소나기가 내린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흐리멍덩하다.
그러고 보니 하늘빛도 깨끗하지만은 않다.
오분쯤 다시 나와 보니 수많은 잠자리 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두 세마리만이 시야에 들어오다 그것마저 감촉같이 사라진다.
빨랫줄과 건조대에 널어둔 이불과 옷가지를 거둘까 하다가 그냥 들어와 책을 든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빌려다 보는 소설책이 그나마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한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영양제인 셈이다.
뚝,뚝 뭔가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시동 걸린 자동차 엔진 소리로 돌변한다.
소나기다.
정신 없이 맨발로 나가 이불과 옷가지들을 안으로 옮겨 놓으니 부엌 바닥은 금방 작은 봉분이 생긴다.
" 엄마, 비와?"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 난다.
뿌리까지 물기를 빼앗긴 식물한테 물을 주자 되살아 나는 초록 이파리들 같다.
" 소나기구나."
" 비 오니까 좋지, 형아?"
아이들한테 잠자리 떼가 날면 소나기가 내린다며 아까 있었던 일을 말 해주자 아이들은 신기한 표정이다.
한차례 시원스레 퍼붓던 소나기로 풀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던 더위가 좀 가신다.
벌써 그쳤나 싶었는데 잠시후엔 우뢰까지 동반해서 제법 많은 양의 빗줄기를 한껏 토해 놓고 먹장구름은 슬금슬금 물러난다.
아까 비 온 모양이네, 하는 옆집 사는 남자의 목소리가 생경스럽다.
퇴근 하고 집에 들어서는 모습인데 오던 중 소나기를 만나지 못했단 말인가?
소나기가 흔적이 남아 있는 동안이나마 선선하게 저역 바람이 불어준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빗방울이 지워질때까지 남아 있다가 같이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겠지.
평소보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아래 시장에 있는 마트에 갔다.
애들 우유는 어젯밤에 바닥이 났고, 계란 한판과 두부, 햄도 사야했다. 그리고 닭 한마리까지.
요 사이 큰 아이 병원 다니느라 하루 세번 약 먹이다 보니 심신이 피로해져 먹는 거에 신경을 놓고 살았다.
남편은 뭔 반찬이 어제, 오늘 똑같다고 반찬 투정을 했다.
" 휴가는 다녀 오셨어요?"
사천 오백원짜리 닭 한마리를 도리탕으로 해 달라고 주문하고 닭집 여주인한테 물어보니 대답이 똑같다.
못 갔어요. 짧은 단발 머리를 더위 탓인지 꽁지 머리로 묶은 그녀가 절래절래 고개를 흔든다.우린 여름 휴가 같은 거 갈 형편이 못 된다우, 하는 표정이 얼굴에 쓰여 있다.그 대답은 재작년과 작년에 내가 물었던 질문에 똑같은 답변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반바지와 티도 작년 이맘때 입었겠지.
허름한 원형의 도마 위에 털이 벗겨진 닭을 능숙하게 도막내 가는 그녀의 몸짓 속에 체념의 빛이 띤다. 꼭 폭염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고하세요라는 말대신 많이 파세요, 하고 눈인사를 건네고 마트로 향했다.
한여름엔 닭이 보양식이라고들 하니 동네 사람들이 그집 닭을 많이 사서 먹어 이번달 안에 조촐한 휴가를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싱싱한 오징어도 두마리도 산다. 그동안 스쳐 지나왔던 오징어와는 달리 피부가 탱탱하고 껍질에 윤기가 반지르르한게 쫄깃한 미각을 자극해 온다.
그동안 빈곤한 밥상을 차렸으니 오늘은 날이 좀 덥더라도 먹을 만한걸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저녁 상을 보기 전에 아이들은 차례로 씻기니 얼굴에 구슬땀이 돋아나 눈이 아플 지경이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땀이 날때마다 쓱쓱 얼굴을 문지르면서 오징어 부추전을 몇 개 부쳐 놓고 고추장 양념장을 만들어 닭갈비도 준비해 논다.
사실 남편이 썰렁한 반찬 타령을 해 대는 것은 딱히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있다면 자신의 치아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때운 오른쪽 어금니 한 개가 언제 부터인지 밥 먹을 때나 주전부리 할때 심심찮게 아파오더니 그 때운 곳이 빠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밥을 먹다가 밥 풀 하나가 그 곳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그 밥풀때기 한 개가 사람을 실신할 수도 있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밥이고 뭐고 잽싸게 나와 한적한 곳에 숨어 버렸다고.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치과에 가 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했지만 회사 일이 바쁘네 어쩌내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는 도저히 그 치통이 주는 고통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는 지 제발로 치과 예약을 하고 일차 치료를 받고 왔었다.
아무래도 돈이 들것 같다면서 자기가 아는 한차장 이라는 사람은 이 하나 때우는데 삼백오십만원의 견적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 그러길래 진작에 치과 좀 가 보라면 할때 갔었으면 돈 걱정도 덜하고 수월했을 거 아냐. 사람이 꼭 큰 일 터지기 직전 까지 꾸물거리길 좋아하는 줄 몰라, 미련스럽게. 보인만 손해지."
위로 한답시고 한다는 말이 염장 지르는 말만 늘어 놓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이번 한번이면 몰라도 이젠 아예 몸에 깊숙히 밴 습관으로 자리갑아 가고 있음에 혀 차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언젠가 뒷 목덜미가 간지럽고 따갑다고 해서 집에 있는 연고제를 갔다 열심히 양껏 눌러 짜 일주일을 발라도 호전은 커녕 점점 상처 부위만 커졌을 때야 가까스로 피부과를 다녀 왔다.
그리곤 그곳에서 처방해 준 연고를 몇 번 발랐더니 만 하루만에 마술처럼 깨끗히 상처가 나은 것이었다.
진작에 해 치우면 속도 편하고 근심도 덜 할 것을 꼭 막판까지 끌이고 있다가 위험 수위까지 찰랑찰랑 거리는 댐이 가둔 물처럼 떠안고 있는 꼴에 진저리가 난 터였기에 위로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꼽게 꼬여 나오고 만 것은 순전히 상대방의 바보스러운 안위 때문이었다.
이가 아프다고 펜잘 같은 두통 약만 삼키더니 더이상 참기 어려웠는지 본인 스스로 치과행에 나선 것을 보면 무던한 성격을 떠나 성격 이상자에 근접하리라.
하여튼 간에 몸을 억누르는 피로와 쫀득쫀득 하게 달라 붙는 더위 속에서도 부침개를 두르고 닭갈비를 완성해서 상을 차려 놓았다.
아이들은 오래 간만에 맡아 보는 냄새에 이끌려 나오더니 좋아라 한다.
닭 한마리와 오징어 한 마리가 얼마나 한다고 그동안 못 해줬을까 싶은 생각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밥은 못 삼킬 지언정 소주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는지 밖에 내 논 소주병을 들고 와 앉았다.
아이들은 열 손가락에 양념을 묻혀 가며 맛있게 먹는데 반해 남편 혼자 걸죽한 국물만 떠서 먹는 폼이 여간 불쌍한 폼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는 안중에도 없고 코를 박고 닭만 건져내 먹느라 정신이 없다.
아빠 이가 아픈 것을 지네들이 안다 한들 뭐라 위로의 말을 해 주겠는가.
일부러 질척하게 한 밥도 반숟가락씩 떠서 한쪽으로 몰아서 천천히 먹는 남편에게 숭늉 한 그릇 만들어 내 주었다.
그러자 남편은 반 가량 남은 밥을 옆으로 밀고 숭늉에 숟가락을 갔다 댄다.
남은 밥이라도 말아 먹으라고 해도 낮에 더위를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부르다면서 농담인지 스스로를 위안하는지 고개를 가로 젖는다.
" 라면 있나?"
" 밥 먹지 무슨 라면을 찾고 그래. 없는데."
" 속이 느글느글 한게 라면 국물로 풀어 줘야 하는 데, 이따 밤에 먹고 자야지."
남편은 술을 만땅으로 먹고 온 다음 날 오전까지 내리 누워 있다가 점심은 꼭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나가는 버릇이 있는데 이 때문에 마음 놓고 먹지 못해 속이 허한 것 까지도 별 영양가도 없는 라면 국물에 의지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아홉시 뉴스가 거의 끝나가고 일기예보가 나왔다.
어제가 처서이고 오늘이 말복이었지만 다음주 까지 변함없이 삼십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며 여자 기상 케스터는 깜찍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최고조에 이른 무더위도 담주면 슬슬 꼬리를 감추겠지.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산과 바다로 화면은 넘쳐 났고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모두는 더워도 즐겁고 신난다는 표정이었다.
애들 여름 방학 이후 줄곧 방콕만 하고 있는 처지가 한심스럽다.
큰 아이 감기 걸려 이주 동안 정신을 쏙 뺀 채 병원만 들락거리다 보니 벌써 팔월 중순경이 아닌가!
남편은 휴가고 휴가비도 일체 없을 거라면서 그나마 간신히 붙들고 있던 끄나풀마저 냉정하게 잘라 버린다.
하긴 치과에 들어갈 돈이 어디 한 두푼일까. 남편은 치료비 좀 보태주라는 대신 올 여름은 휴가 생략으로 밀고 나갈 모양이다.
그렇다고 씩씩거리며 뭐라 따지고 들 기력도 다 떨어진 상태다.
오직 바람이 있다면 큰 아이 감기 달아나고 가까운 관악산에 도시락 싸들고 나가 계곡 물에 발이나 담글수만 있다면 하는 소박한 생각뿐이었다.
그것마저 못한다면 방학 맞은 애들은 둘째치고 한달 남짓하는 긴 시간 동안 집구석에서 애들 데리고 푹푹 찌는 더위에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모콘을 손에 줜채 남편은 테레비전 화면에눈을 박고 있다.
뭘 그리 열심히 보나 했더니 가슴성형의혹을 불러 일으킨 한 여자 연예인이 인터뷰를 당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가까인지 사실대로 툭 까놓고 진실을 말해 보라는 기자의 말에 여자는 아리송하면서도 관능적으로 웃으며 자신의 가슴은 진짜라고 똑부러지게 응수를 했다.
요즘 여자 연예인들은 성형에 대한 사실을 떳떳하게 공개하고 다는다는데 모두가 다 그런 모양은 아닌 모양이다.
화면이 바꿔 예의 가슴성형을 하지 않았다는 여자는 여러 다양한 포즈로 가슴을 도드라지게 포즈를 취했다. 남편은 입이 약간 헤벌레 한 상태로 그녀가 보여주는 에스라인을 열심히 시청하더니 내가 온걸 의식했는지 나의 빈약한 가슴을 올려다 보더니 어쩌구 저쩌구 한다.
들으나 마나 마누라 가슴이 작다는 불평일 터.
돈만 줘어 주면 당장이라도 뻥튀기 하고 온다고 응수를 하지만 기정사실인 작은 가슴에 있어선 매번 기분이 나빠진다.
왜 여자는 가슴이 꼭 커야 한단 말인가?
하긴 여자인 나 스스로도 빵빵하고 탄력있는 가슴을 가진 여자들과 마주칠 경우 한번 더 보게 되고 자연히 내 가슴과 비교하면서 부질없는 질투와 부러움까지 생기는 걸 보면 남자들이야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 열시 반까지 걷다 올게."
남편은 치과가 다녀온 날은 평소보다 더욱 과묵해져 말도 거의 하지 않거니와 지금 처럼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면바지와 손수건 한 장을 기계적으로 다리고 있다.
저녁을 먹고 여덟 시 뉴스를 잠깐 보는가 싶더니 더워 어쩌구 하면서 아예 드러누워 버리더니 가까스로 일어난 것이다.
오래 간만에 밤공기를 맡으니 그나마 낮보다 훨씬 상쾌하고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도 좋았다.
큰 아이 아픈 이후로 뜸 하다가 걷는 것이 한 보름만인가.
자연히 더덕더덕 살붙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낑낑거리는 애를 놔두고 걸을 기분은 나지 않았다.
출산 한지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그때 붙어나고 축 늘어진 뱃살을 없애기란 정말이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밤에 걷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스트레칭을 해주고 일어나면 뱃살이 좀 들어간나 싶지만 먹을 것만 좀 들어가면 이스트처럼 금방 부풀어 배 앞에서는 어쩔도리가 없었다.
살을 빼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는 운동과 소식인데 달랑 두 개 뿐인 그것을 병행하는 게 어려웠다.
고등학교 담벼락을 타고 내려가니 집 앞 골목에서 맞은 바람 보다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훑어 주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커져 있었고 왱왱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부스고 있었다.
갓 돌을 지난 듯한 여자 아이가 아빠 손을 놓고 저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자 아빠와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있던 엄마는 그쪽이 아니에요, 하면서 동시에 경어를 썼다.
여자아이가 아랑곳 않고 어둑한 골목 길로 가려하자 두 젊은 부부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아빠는 다시 아이를 팔에 안았고 엄마는 유모자를 밀며 가던 길을 갔다.
보통 삼, 사십 걷는데 동네 서너 바퀴와 맞먹는다.
겨울에도 그 정도 걸으면 아주 춥지 않는 이상 얼굴에 땀이 맺히는데 무더운 날에는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와 등짝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두 번째를 도는 사이 저 만치 부녀가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엄마는 안 보이고 아빠와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자 집에서 선풍기 한대에 푹푹 찌는 더위를 감수한 채 잠을 자려고 애를 쓰는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 아빠? 오늘 엄마는 안 온대?"
" 아니, 좀 있다 온대."
" 엉, 좀 있다 온대?"
아빠의 밋밋한 대답이 영 시원찮았는지 다시 물음표가 되어 말을 받는 여자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요 며칠 사이 집에는 엄마가 부재중이었나 보다.
엄마의 부재로 거리로 나온 부녀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두 손을 뒤로 깍지를 끼였기 때문에 여자 아이는 마른 두 팔을 덜렁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한 집안의 맏딸인데도 불구하고 친아버지와의 살뜰했던 기억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서너살 때까지는 그나마 부녀지간의 정이 있기는 했겠지만, 그것도 옛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한해서일 뿐이다.
그 이후로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났는데 그것이 이유는 아니었다.
친아버지가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은 세째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었다.
자연히 나와 둘째 여동생은 찬밥 처지가 되어 데면데면한 사이로 벌어졌는데 둘째 동생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밑에 동생들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천연스러운 붙임성이 있어 결과적으론 제일 큰 딸인 나만 외톨이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시장에 가서 사천 오백원 짜리 닭한마리를 사고 마트에 들려 섬유 유연제와 고추장 하나를 사들고 얼마쯤 걸으니 숨이 헉헉 막힐 정도로 대낮에 한증막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무더운 팔월이라 시들시들해지는 채소 값도 껑충이고 아오리는 내 주먹만한개 한개 오백원 꼴이다.
시장통 몇몇 가게는 아예 묻을 닫고 열지 않는 곳들도 있다.
'책 읽기 좋은 날'이라는 도서 대여점 유리문 엔 여름방학 특집 만화책 한개당 이백원, 단 성인 만화는 제외라고 유성팬 글씨가 적혀 있지만 더운 날 책 빌리러 오는 아이들은 드문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내부는 썰렁하다 못해 적막해 보이기까지 한다. 주인조차 어디 틀여 박혀 낮잠이라도 자는 지 보이지도 않는다.
집에 오자마자 현관문을 닫고 아이들한테 에어컨을 키라고 명령을 한다.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다음 시원하다 못해 쌀쌀맞기 까지한 인공 바람을 맞고 나니 그제서야 살 것 같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조금 못 되어 있다.
지금쯤 남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점심은 물을 말아 대충 먹고 집에 데려 온 적이 있는 개와 무료하고 더운 시간을 버티고 있을런지...
온 가족이 한번 다녀 온 적이 있는 남편의 직장은 구리의 한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올 사월 부터 임시직으로 일해 오다가 한달 전에 정규직으로 들어 앉아 있는 그가 하는 일이란 택배 기사들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담당하는 것으로 기사가 빠지는 날은 그가 떔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양복 바지를 입은 채 동, 홋수를 찾아가며 택배를 돌려야 하는 궂은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말하자면 잡무가 많은 곳이었다. 처음엔 힘들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 나보다 어린 놈한테 무시를 당하는 게 괴롭다 푸념을 일삼더니 몇 군데 면접을 보고 나서는 군말없이 여태껏 잘 다니고 있다.아니, 그런대로 무난히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
간이식 건물인데다 지붕이 따로 없고 슬레이트로 덮어 놓았다며 하루에 세 차례씩 호수를 들고 올라가 뿌린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지, 안그럼 그 안에서 타 죽는다, 고 한 남편은 집에 오면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패잔병 꼴이 되어 저녁을 먹는둥 마는 둥 하곤 담배 한대 피곤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 테레비 리모콘을 쥐고 나서야 겨우 안정지대로 들어 온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나이 마흔에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못쓸 짓을 당하고 지금은 에어컨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호수로 물을 퍼부어야만 앉아 숨을 쉴 수 있는 열악한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
택배 기사들이 빠져 나간 용광로 같은 텅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전화를 걸거나 받거나 혹은 밖을 서성거리거나 개한테 물을 떠다 주는 남편을 떠올리자 곧바로 에어컨을 꺼버렸다.
아침 여섯시 반에 알람을 해 놓고 일곱시 무렵 나가는 남편인데 아침밥을 커녕 물 한잔도 어쩌다 겨우 주는 내가 한심스럽고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우울하게 했다.
그러면서 임시적에서 정규직으로 되면서 오른 월급에서 이십만원도 더 뭇 주냐고 악다구니를 써 가며 돈타령을 했었다.
남편은 내가 이해하게끔 조목조목 따져 가며 실명을 했지만 매달 들어가는 담배값, 술값은 얼마냐며 나한테 쓰는 돈은 한달에 겨우 사천 원도 안 된다고 고래고래 목청을 돋궜다.
폐경기가 닥치면 생리대 값도 사라지니 생각을 하니 더욱 분통이 터지고 약이 오를려고 했다.
낮에 남편의 대한 연민을 갖고 퇴근하고 오면 오늘만이라도 잔소리 안하고 잘 좀 봐줘야지 다짐하건만 막상 얼굴을 보면 내가 뭘 어쨌다구 하는 뻔뻔스러움이먼저 튕겨져 나오고 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흐지부지 숟가락을 내려 놓고 겨우 냉커피 한잔으로 나의 다짐은 굳게 닫히고 만다.
어제와 오늘 날이 지글지글 볶아 대는 것처럼 덥기는 똑같은데 하늘이 흐끄무레한게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이다.
짧고 굵게 쭉쭉 퍼부어 준다면 단비가 될 것이다.
비가 내릴려나, 내리겠지 반신반의 하고 기다리는 데 왠걸, 다시 먹장구름 사이로 찡짱한 해가 약을 올리긋이 비죽이 조소를 보내며 모습을 나타낸다.
걸레 빤 물을 현관문 앞에다 쫙 흩뿌리고 들어와 얼음 띄운 냉커피를 마셔댔다.
한동안 끊었던 것이 커피인데 날이 더우니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데 바로 이 시원한 냉커피다.
한여름에 냉커피 같은 시원한 이미지오 업그로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든지 그런 나를 보고 있거나 순간 지나치더라도 아, 저 여자 정말 보기만 해도 시원한 걸 하는 찬타를 듣고 싶어진다.
이 무슨 망상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겨우 바른 썬크림은 더워에 녹아 흐물흐물한 얼굴에 걷기 운동이랍시고 한동안 중단했더니 금세 도로묵이 되고 만 몸은 복부가 제일 꼴사나와보였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들이라면 거의 비슷한 훌렁한 티에 구깃한 반바지 차림으로 배를 가린 그 때가 덕지덕지 낀 전대처럼 내 배를 점령한 지방 덩어리들만 보더라도 아무리 더위를 핑계 삼더라도 본인조차 피식,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우쿵이라는 태풍의 위력으로 어제부터 강풍이 몰아친다.
날은 뜨거운데 바람이 하루종일 거세게 분다.
폭염 속의 강풍인지 강풍 속의 폭염인지 헷갈리는 날씨이다.
날씨만 헷갈리는게 아니라 하루 하루 사는 것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왜 사는가? 라는 다소 철학적인 기분이 들게 만드는 날씨가 나쁘지 만은 않다.
무더위가 물러 가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해놓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위함인가?
여름 다음엔 가을이 올테지만 과연 가을이 찾아 올까 의심스럽다.
시월 중순인데도 후덥지근하다가 곧바로 추워지면서 눈이 내리는 기상이변이 늘어나는 것을 보더라도 과연 가을이 제 길을 잘 찾아 올까 걱정스럽다.
육십년 후엔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봄, 가을이 사라진다고 한다.
네 계절 중 두 계절이 사라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단조로운 계절에 사는 단순한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문명은 현란하게 발전하지만 인간은 퇴보해서 단순한 지능으로 살아 간다면..?
마늘, 마늘 싸요
따글따글한 음성 마늘 넛단, 네 다발에 만원
마늘, 마늘 싸요
따글따글한 음성 마늘 넛단, 네 다발에 만원
마늘 장수가 트럭에서 내보내는 녹음기를 들으니 당장 뛰어 나가 마늘 구경도 하고 사고 싶은데 봉투에 남아 있는 돈이란곤 겨우 만원짜리 세 장 뿐이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남편 월급 날은 은 지난 주 금요일인데 월요일인 오늘도 입금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들 머리가 굵어질수록 넓기만 보이던 밥상은 좁아 터질려고 한다.
집 구조상 온 식구가 밥상을 끼고 둘러 앉으면 더이상 누구 한사람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고 만다.
일곱시가 조금 넘은 저녁 무렵에 퇴근한 남편은 밥 먹는 모양이 영 시원찮다.
반찬이 별루라서 그런가 물어 보았더니 아니라고 한다. 더위 먹어서 그런가 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 젓는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월급도 아직 못 받은 것을 보면.
" 한 삼개월 정도는 월금의 칠십 프로 밖에 줄 수 없다네. 아님 오십 프로 정도.."
남편 입에서 예상하고 있던 말이 떨어지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맥이 탁 풀려 버린다.
놀란 토끼 눈으로 말없이 쳐다보자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택배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리 사정이 안 좋기로 월급을 깍다니...
갑자기 속에서 열이 확확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억누른다.
제대로 월금도 받지 못하고 저녁 상에 앉은 남편의 짧은 머리카락은 흰색이 더 올라와 있다.
" 도대체 얼마나 나쁘길래 직원 월급에서 깐대? 그것도 삼개월씩이나?"
" 한달 수입이 사천 육백인데 스무명 기사들 월금 주고 고정적으로 나가는 세금 빼고 나면 매달 적자야.
일하는 기사들 보면 대개 백 오십에서 백 칠십 받아 간다. 일요일까지 뛰어야 겨우 이백 채울 수 있고.
백오십 받아 자기 용돈 하고 차 기름값하고 남는 걸로 집에 가져다 주는데 그걸로 어떻게 사는지들 모르겠다."
자기 코가 석자임에도 택배 기사들 관리하는 일이 주업무다 보니 직업 정신으로 돌아가 본인보다 남 사는 것이 더 걱정스럽나보다.
" 삼개월 후면 회사 존폐가 결정될 것 같아."
남편은 무슨 중대한 보고를 내뱉 듯 나지막히 목소리를 깔아 낸다.
밥을 먹는둥 마는 둥 소주 잔만 들이키는 모습이 무척 낙심한 표정이다.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사십대 남자 앞에 입이 다물어지고 만다.
하긴 지난 달에야 입사한지 오개월만에 정식 직원이 됐다면서 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모양이다라고 내심 좋아했는데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번개치고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도 속상하다고 밖에서 연락두절하고 만취해서 새벽 두세시에 들어 온것보다는 훨씬 양호한 남편의 태도가 영 심상치 않다.
분화구에서 폭발을 참아 내고 있는 마그마 냄새가 느껴진다.
오늘은 같이 하소연하면서 술마시자고 꼬드길 사람이 한명도 없는 불운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 아무리 명색이 택배 회사인데 경기가 좀 안 좋다고 금방 문 닫는 데가 어딨냐. 차차 나아지겠지."
위로랍시고 부러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보니 남편은 더욱 침울한 표정이다.
꾸역꾸역 밥 한그릇을 대충 비우더니 담배 갑을 반바지 주머니에 넣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큰 놈은 엄마 아빠 대화 소리를 다 듣고도 아무 말이 없다. 다른 때 같으면 중간 중간에 끼여 들어 이것 저것 물어 보느라 밥은 그대로고 혼나기 일쑤인데도 분위기 파악을 하는 지 맨 밥만 먹고 있다.
" 반찬 좀 갓다 먹어라. 밥 먹는게 참 건조하다. 그러니까 몸에 살이 안 붙고 버석버석하지."
괜히 큰 아이한테 면박을 주고 나니 밥맛이 싹 가시고 만다.
설거지를 마무리 할 즘 고개를 푹 꺽어 가지고 들어 온 남편은 방에 들어가 거의 자동적으로 텔레비전을
키고 늘 똑같은 모습이 멍하다.
뭔가가 빠져 나간 듯한 맹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오늘뿐이 아니었다.
체질적으로 더위에 약해 낮동안 진을 빼서 그러겠지 싶었는데 세상을 안일하게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남편은 언제 부터인가 외벌이에 대해 신세 한탄을 종종 하면서 누구네는 맞벌이를 하는데 마누라가 돈을 더 잘 번다느니, 요즘 남자 혼자 벌어 사는 집이 어디 있냐느니, 둘이 같ㅊ이 벌어도 살기 함든 세상인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 세상은 끝났다는 둥 전업주부인 나를 코너로 몰아 붙이는 데 재미가 붙어 있었다.
맞벌이가 늘어가는 요즘 같은 추세에 자기만 뼈빠지게 일한다는 부당함과 다른 남자들과 비교해도 경제적인 면으로 밀려나고 일하는 아내를 두었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직장에서 짤린다 해도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버팀목으로써의 든든함까지 부러워 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전업주부의 노동량을 한달 월급으로 계산하면 이백만원이 웃도는 높은 액수가 나온다는 것을 본적이 있기도 하고 집에서 애 키운다고 살림한다고 해서 밖에서 돈버는 여자 못지 않게 열심히 살고 있는 데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묵묵히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월급을 통째로 받아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만 받아 쓰면서 애들 키우고 따로 학원 안 보내고 직접 공부 시키고 실림하고 남은 돈으로는 저축까지 하면서 아둥바둥 산다고 어느 정도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는데 이것 또한 세상물정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로 산 결과가 되고 말았다.
집에서 있는다고 하면 뭔가 부족하고 구태의연한 아줌마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한달에 삼십만원이라도 마트 갔은데서 벌어 와 봐라. 구청 같은 데서 쓰레기 분기수거만 하는 일을 해도 한달 백만원은 거뜬히 벌수 있다는 둥 노골적으로 집에만 처 박혀서 남편이 피같은 돈만 쪽쪽 축내지 말고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 돈을 벌어 오란다.
실질적으로 가계에 도움이 되라는 소리이다.
언젠가 남편이 툭 던진 이 한마디에 자존심이 너무 상해 금방 울음이 터지고 만 일도 있었다.
그깟 삼십만원 가지고 사람 구실 못하는 취급 당하고 애들 앞에서 엄마 자존심은 저것 밖에 안 된다는 식으로 깔아 뭉개는 남편이 미워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집에서 하루 24시간 하는 잡다한 노동의 대가가 겨우 삼십 만원도 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누명을 쓴 것처럼 억울하고 분하기 그지 없었다.
그 외에도 남편은 비슷한 일례로 사람을 당혹하게 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며 우리집에 수입원이 자기 혼자임을 탄식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알고 지내는 모든 여자들, 그러니까 그의 친구 와이프나 회사 동료 아내들을 말함이다.
모두 일을 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집에서 살림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그 수입으로 실림에 보태면서 살고 있는데 왜 너만 집안에서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 밖에 할 줄 모르냐고.
현실적으로 따져 내가 일하는 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 애 셋은 모두 학원이나 유치원으로 나돌게 해야 하는 제일 큰 낙관에 부딫히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 남편은 딱 한마디했다.
다른 여자들은 백 벌어서 그 중 반은 애들한테 쓴다고. 남편의 진심은 무엇일까?
돈을 벌어 몽땅 애들한테 써버려도 제발 어디 좀 나가서 밥 법이 좀 했으면 하는 것일까?
그래서 자신도 남들처럼 내 와이프는 월급을 한달에 얼마나 받고 보너스는 몇달에 한번 나오는데 이번 달엔 나보다 더 많이 받아서 기가 죽는다는 등의 허세를 부려보고 싶은 것일까?
어느 날 회사가 쫄딱 망하더라도 든든한 지렛대처럼 버틸 수 있는 돈 잘 버는 마누라를 옆에 두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남편은 이 모든 것들을 일하는 마누라를 통해 얻음으로해서 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마누라인 나게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데도 거부감이 먼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푹푹 지져대는 날씨에 남편까지 거들어 사람 속을 태우고 있다.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고 배려해준다면 이렇게 까지 사람을 궁색하게 만들고 초라하게 느끼게 하지는 않을 텐데, 서럽고 믿은 사람한테 뒷통수를 크게 한 반 맞은 얼떨떨한 기분이다.
최근 경제난 등으로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떨어져 사는 생계형 이산가족들이 늘고 있다는 글을 접하고 암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젊은층은 돈벌이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사업실패로 인한 빚 독촉에 온가족이 생이별하는 모습이 더 이상 드라마속의 장면만은 아니다.
돈이면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질지상주의 세태에 발맞추어 빈부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가고 늘 부족한 서민들만 애끓고 있는것이다.
나에게 가족해체라는 현실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무슨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멍해지고 만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도 나약한 아줌마로 전락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이를 앙다물어 본다.
남편의 입버릇처럼 제일 먼저 운전 면허증을 따야 하고 여성 개발 인력 센터나 구청, 동사무소 등을 찾아 다니며 내가 할수 있는 일거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 수없는 세상,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눈치를 봐야 하는 세태 속에 자꾸 오르라드는 내가 불쌍하고 한편으론 한심한 생각이 얼버무려져 급기야 두통에 시달리는 날들이다.
애들 한테서 좀 벗어나면 나 하고 싶은 거 찾아 하면서 여유라는 사치 좀 부려보면서 살까 싶었는데 이건 완전히 나만의 착각, 착각은 자유라는 말을 뼈져리게 느낄수 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신발장 문을 열어 보는 데 미색의 길다란 물체가 성큼 비어져 나오는 바람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세상에! 양파에서 싹이 터서 흰 고무줄처럼 늘어져 있는 것이었다.
진한 갈색으로 변한 양파를 만져 보니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몸체가 사그라 들고 만다.
켜켜히 쌓인 육질은 사라지고 영혼이 된 길쭉한 몇 가닥 싹만이 양파라는 존재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고린내 나는 신발장엔 생양파가 효과 있다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입수한 후 넣어 두었다가 안 보이길래 잊고 있었는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저 구석진 곳에서 날마다 조금씩 촉수를 뻗치고 있었다는 측은한 마음과 오씩한 기분이 한데 버무려진 양념처럼 코끝을 잡아 당겼다.
폭염 속 어둡고 악취나는 그 곳에서 자신의 생살을 조금씩 떼어내며 싹을 틔웠을 양파를 꺼내 드니 무게감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감각없는 풍선을 들고 있는 공허함만이 손안에 들어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한 양파를 들고 밖에 나가 흙만 담겨있는 빈 화분 위에 올려 주었다.
그 화분이 양파의 무덤이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