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이 살았으면 ┃여천무비(如天無比) 풀어씀┃
1. 열 가지 보현행원 (1)
爾時(이시)에 普賢菩薩摩詞薩(보현보살마사살)이 稱歎如來勝功德已(칭탄여래승공덕이)하시고
告諸菩薩(고제보살)과 及善財言(급선재언)하사대 善男子(선남자)야 如來功德(여래공덕)은
假使十方一切諸佛(가사시방일체제불)이 經不可說不可說(경불가설불가설)
佛刹極微塵數劫(불찰극미진수겁)토록 相續演說(상속연설)하야도 不可窮盡(불가궁진)이니라
若欲成就(약욕성취) 此功德門(차공덕문)인댄 應修十種廣大行願(응수십종광대행원)이니라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령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들이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겁동안 계속하여 설명할지라도 끝까지 다하지는 못할 것이니라.
만일 그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크나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이 단락은 이 경전의 서론에 해당한다.
“그때”란 길고 긴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을 설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하여 마친 때다.
앞의 화엄경 본문에서 설명한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아주 적은 일부분만 소개한다.
“한량없는 세월동안 수행하시면서 때로는 보살의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삶도 사시었네.”
“혹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불도를 이룬지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지나간 것을
보기도 하였으며, 혹은 지금 막 보살이 되어 시방의 모든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사시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네.”
“혹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수행을 하시는 것도 보았고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 등등의 바라밀을 모두 다 중생들의 마음을
수순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도 보았네.”
“설혹 세계의 먼지 숫자만큼이나 많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을 다 헤아려서 알고,
또 저 큰 바다의 물을 다 마실 수 있고, 드넓은 저 허공 끝을 다 알고,
심지어 바람마저 손으로 얽어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그 공덕은 다 설명할 수가 없네.”
“만약 어떤 이가 이러한 공덕을 듣고 환희심을 내고 즐거워하면 위에서 찬탄한
모든 공덕을 다 얻을 수 있으리니 이 공덕에 대해서 결코 의심하지 말라.”
이렇게 끝을 맺었다.
부처님이 무엇이며 누구이기에 이와 같이 상상을 할 수 없게 하는가.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생각이 멈춰버리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다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나요, 독자요, 부모요, 형제자매요, 우리들의 이웃이요,
저 길거리에 많고 많은 저 모든 사람들이다.
그들의 진정한 능력과 모습이다.
모두들 다 가지고 있는 내용들이며 하고 있는 일들이다.
사람 사람들의 삶의 내용들을 밝은 눈으로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환하게 비춰보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내용과 꼭 같다.
아니다. 사람 사람들의 삶의 내용들을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 사람들의 순간순간의 이 삶보다 불가사의하고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것이
또 어디에 있는가.
사람 사람들의 이 삶을 떠나서 다시 어디에 누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이 있는가.
누구라도 달리 존재하는 부처님이 있다면 곧 바로 지적해 보라.
우리 다 같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 넓고 깊은 속들을 경에서 말한 대로
“가령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들이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겁동안 계속하여
설명할지라도 끝까지 다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한 그대로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양무제가 초청하여
자신이 그동안 이룩한 온갖 불사를 자랑하고 나서 자신의 이 많은 불사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물었을 때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하였다.
양무제는 그 큰 나라의 천자로서 국력을 기우려 가야산 해인사 보다 더 큰 사찰을
수백 개도 더 건립하였으며, 석가탑 다보탑보다도 더 크고 아름다운 탑도
아마 수천 개는 더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수십만의 스님들을 양성하여 교육하였다.
스스로 가사를 입고 조정에서 국사를 집어치우고 문무백관들을 모아놓고
경전을 강설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대단한 천자였다.
인도의 아쇼카왕이나 신라의 법흥왕에 못지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불사며 그렇게 사는 삶이 이상적인 불교적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과 불교적 인생이란 자신의 내면에 이미 완전무결하게 지니고 있는
그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신통과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에 눈을 뜨고
그 가치와 무게를 드러낼 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달마대사에게 당신이 이뤄놓은 그 많은 불사를 일언지하에 부정당하고 말았다.
설사 달마대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진실한 불교에 어지간한 안목만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시킬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당시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며 가위 나라를 뒤집는 반정음모며 불교혁명이었다.
반정음모나 혁명은 성공하지 못하면 사약이 내려지는 것은 정해진 길이다.
그러므로 달마대사도 사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더라도 진정한 불교는 밖에서 무엇을 찾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내면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보물에 눈을 뜨고 그것을 활용하는 일이다.
사람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한한 보물의 공덕을 화엄경에서는
위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대로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크나큰 행원을 닦아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공덕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공덕이지만 그것을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표현하며 사는 방법이다.
그러한 방법을 보살행이라 한다.
보살행에는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우수하고 대표적이라 할 만한 열 가지를
이 보현행원품에서 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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