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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2월 2일 염화실 방송 법회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신심명을 가지고 2006년 방송 강의를 시작해서 이틀째인데, 어제 말씀드렸듯이 부득이 내일, 토, 일은 휴강하고 다음주부터 5일 하구요. 휴강 하는 대신에 부산에 계신 분은 오셔도 좋습니다. 여여선당에서 오전 10시에 강의가 있구요, 6시에 청림회(교사 불자회) 문수원에서 법화경 강의를 하는데, 오실 수 있는 분들은 많이 동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지도무난, 유혐간택으로 시작했었죠. 그런데 이야기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신심명을 쓰신 삼조 승찬 대사 이야기를 하고 신심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 두 구절을 말씀 드리면, 지도무난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유혐간택唯嫌揀擇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지극한 도란 무엇인가? 아주 난해한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우리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상태를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하고, 그렇게 저는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지극한 도, 아니면 도, 불법, 지혜, 법이라고 해도 좋지만 현학적인 표현이 되겠고,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삶입니다. 사람이 사는 길인데 그 길이 여하한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삶이란 그런 뜻이죠.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고, 대 자유, 완전한 평화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멋있고 근사한 삶을 지극한 도라고 정의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 일상생활에 와 닿을 수 있고,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있어야 눈여겨 볼 수 있고 마음을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지극한 도라고 해서 저 멀리 우리와 상관없는 것으로, 말한 사람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모르게 무책임하게 말할 수 없는거죠. 지극한 도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삶 이상적인 삶, 지극한 행복과 평화와 자유가 있는 그런 삶, 가장 멋진 삶이다. 우리가 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딘가 따로 있을 듯이 여겨지는 그런 멋진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가장 이상적이고 멋지고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삶, 지극한 도는 결국은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란 거죠. 다만 내 마음에 맞는 것, 필요한 것,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해서 선택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것이라고 해서 가려내어 버리거나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쌀과 겨의 관계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밥을 해 먹는 입장에선 쌀이 절대적으로 우세하죠. 쌀을 얻기 위해서 벼도 심고 겨도 있게 되고, 그렇죠. 하지만 벼의 뿌리나 잎이나 껍질, 겨, 그런 것들이 그것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동등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밥을 해먹기 위해서 쌀을 취하지만 겨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겨가 없으면 쌀이 존재 할 수가 없죠. 어떤 의미에선 쌀과 겨가 동등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쌀과 겨를 뒤섞어서 밥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쌀이 쌀이 되도록 한 겨, 줄기, 잎이라든지 그 모든 것을 동등한 가치로 이해하라는 것이죠. 그것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유혐간택입니다. 그것이 간택을 부정하는 이유죠. 간택을 싫어한다고 해서 쌀과 겨를 뒤섞어서 밥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물과 일에 있어 중도적인 안목으로 이해하고 그런 중도적인 입장에서 삶을 처리 해 갈 때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고 멋진 삶이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분은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승찬 대사는 세속인으로서의 생활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없죠. 문둥병에 걸려서 여기저기 천대 받으며 밥 한술 얻어먹으며 겨우 연명하며 살다가 혜가 스님을 만나서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그런 분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생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깊고 아픈 이해와 느낌과 경험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사람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높이 그리고 가슴깊이 느끼고 알고 살아왔던 그런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에 이상적인 삶은 건강한 육체라고 해서 그것만이 최상이 아니고 병든 육체라고 해서 그것이 버릴 것이 아니란 거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똑같이 동등한 가치가 있는 삶이다, 이런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심명에 애착을 갖는 것은, 이분의 삶을 늘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처절한 삶이 묻어있어서 글자 한자 한자를 대충 설명하고 넘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을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분의 고뇌와 아픔이 진하게 녹아있는 그런 느낌이 있어 이야기가 중언부언되고 그렇게 되겟습니다 만은 이 신심명을 이야기 할 동안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분이 전달하고자 했던 깊은 인생의 의미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백 번 천 번 이야기하고 들어도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간택
이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죠. 친구를 보더라도 내 마음에 들면 선택을 하고 내 맘에 들지 않고 내 말에 꼬투리를 달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고 그렇죠. 그게 보통 사람의 마음입니다.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도 가려서 사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벌레가 먹었다거나 흠집이 있으면 가려내죠. 눈에 안보이면 몰라도 어쨌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선택을 합니다. 이것이 어느 일에든지 다 우리 생활 속에 어쩔 수 없이 배어 있는 일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그것이 지나치다보니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깊어지면 더욱 더 우리 인생이 갖고 있는 가치와 보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첫마디가 이상적이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인생이란 게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 너무 간택하는 생활 속에 젖어 있어 우리 인생이 크게 마음에 내키지 않도록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밑에 단막증애但 莫 憎 愛 하면 통연명백洞 然 明 白이라 했습니다. 다만 증애만 하지 않으면, 싫어할 증, 애착한다, 좋아할 애자입니다. 우리가 현상을 그 가치대로 보아주지 못하고 내 어떤 틀은 가지고 봅니다. 내 잣대, 내 틀, 경험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상황들이 뭔가 나의 기준과 잣대와 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이런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틀을 가지고 다 맞춥니다. 거의 본능적으로 척척 맞춥니다. 잣대를 들고 다니면서 재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들으면 바로바로 평가하고 이것이 다 내 기준, 내 잣대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밝히는데 몇 초도 안 걸려요. 인간이 취사선택하는 게 발달해 있는지 본능적으로 누구나 그래요. 그래서 결국 증과 애,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처음에는 작지만 나중에는 커져서 극과 극을 치닫게 되죠. 거기서 지옥과 극락이 갈라지죠. 증애심이 따라다니죠. 마음에 드는 것은 애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싫어하죠. 특히 한국 사회에 그런 게 심하죠. 보수다, 진보다, 정치 경제 여러 분야에서 그것이 너무 심합니다. 간택이 심하고 간택이 결국 증애심을 불러오고, 증애심이 너무 심해서 결국 귀에 담을 수 없는 그런 비난과 음모와 그런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처님과의 값진 인연을 맺고 살면서 이런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인생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던 승찬 스님의 삶이 묻어있고, 그 스님의 도, 그 스님의 정신이 한 글자 한 글자에 묻어 있는 이런 것을 생각하고 사유하고, 제가 설명이 얼마나 원만하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듣고 판단하고 사유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을 깊이 곱씹고 사유를 해야 합니다. 그 래야 깊이 마음에 와 닿고 이해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통연명백 洞 然 明 白 이 통자를 동자인데 무슨 동, 무슨 동 할 때 동자인데 여기서는 통연 洞 然 , 환하다, 빛이 뚜렷하게 밝다는 형용사가 되죠. 환하게 명백明 白하다 이런 말이죠. 무엇이,? 지극한 도가, 가장 멋진 삶이 증애심만 없으면 환하게 드러나 버린다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증애憎愛 심이 있어 정말 이상적인 삶이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거죠. 온갖 것이 마음에 걸려있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일처리 다하고 집에 와서도 회사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찌꺼기같이 우리 8식에 다 남아있지 않습니까?
아라빈님 그 글자를 좀 크게 해서 보여주세요. 글자를 보며 강의를 하니까 좋네요.
그런 것들이 하루를 살아오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오늘 뿐 아니라 어제, 과거, 몇십 년 전에 있었던 것까지 떠올려서 공연히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러게 되는데 그러한 것들로 인해 우리의 이상적인 삶, 행복과 평화가 있는, 지극한 삶이 명백해지지 못한다. 그것만 없으면 통연하게 명백하다. 이렇게 이야기되죠.
신심명이 여러 구절이긴 하지만 이 네 구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죠. 옛날에 왕이 훌륭한 큰스님에게 이 신심명의 깊은 뜻을 좀 주해를 써 달라고 하니까, 이 네 구절을 큼직하게 쓰고 나머지는 작게 주각형식으로 달아서 써놓은 그런 역사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전제고, 그 다음에 다른 시각에서 풀고, 우리들 마음에 흘러가는 온갖 감정들, 우리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일들을 자꾸 하나하나 들먹여가면서 이 틀에 맞춰 해소시켜가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심명의 글의 됨됨이죠.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 오직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환하게 명백한 것이다. 이 원칙에서 호리毫釐 호毫는 터럭 호, 이釐자는 다스릴 리인데 저울눈에 있는 아주 작은 명칭이 있어요. 호가 있고, 이가 있는데 아주 분량이 적은 것을 호리라고 하는데, 털끝만큼이라도 차별이 있다면 하늘과 땅처럼 멀어지리라, 천지현격이라 그랬죠. 지극한 도, 이상적인 삶 행복과 평화와 자유가 가득한 그런 삶은 증애심만 없으면 통연히 명백한데, 바로 그 증애심이 없어야하고, 간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원칙에서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난다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궁극에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그런 뜻이죠
현격懸隔은 매달릴 현, 격隔 사이가 뜬다. 썩 동떨어졌다 멀다. 차이가 크다, 그런 뜻이죠. 하늘과 땅처럼 사이가 벌어진다. 우리가 많다고 할 때 우리가 ‘천지다’라고 하는데 가득하다 그런 뜻이죠. 사실은 그 원칙이 처음엔 조금 어긋나서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나중에는 하늘과 땅처럼 멀어지고 만다는 그런 뜻입니다. 참 이게 정말 승찬 스님같이 그렇게 사시다가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당신의 깨달음의 세계를 유명한 선시의 형식을 빌어서 표현했는데 보통 삶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와 닿는가는 의문이기도 하고 그러기에 우리가 공부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죠.
설사 이 스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 수준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가르침이 백% 내 살림살이가 안 되더라도 자꾸 사유하고 함으로써, 나에게 가깝게 내 삶에 교훈으로 해석이 되고 하다보면 승찬 스님의 수준에도 한걸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열릴 수도 있죠. 도인이나 할 소리고 부처님이 할 소리다 하고 미루어 버릴 일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증애심 이게 없어야하는데, 그게 없기가 쉽습니까? 저는 이것을 보다가,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게 너무너무 어려운 것인데 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보통사람으로 증애심 없기가 쉽지 않지요. 그 입장에서 보면 이치가 있고 일리가 있고 쌀은 쌀대로, 겨는 겨대로, 감나무에 예를 들면 나뭇잎은 잎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감은 감대로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감잎을 갖다가 감으로, 줄기를 갖다가 감처럼 사용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나 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 이해가 그야말로 털끝만치도 의혹 없이 철저히 이해되어져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대방의 가치를 조금도 남김없이 철저히 이해되고 그렇게 우리가 인정해주면 그것으로도 상당히 차별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것을 이제 우리가 사는데 이런 저런, 옆집과 다른 사람과 도반, 친구와 비교하는 습관들이 상당히 많이 익어져 있는데 그런 습관을 버릴 수 있고, 나는 나의 삶, 그는 그의 삶대로 가치 있는 삶이 있고 서로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는 그런 방향으로 이해해도 좋죠. 이 신심명을 그렇게라도 이해하면서 접근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다음 구절 慾得現前, 莫存順逆하라 현전現前, 앞에 환히 나타난다. 무엇이? 지극한 도, 이상적인 삶, 평화와 자유와 행복이 가득한 삶. 인생의 바람직한 길이 앞에 환히 나타남을 얻고자 하거든, 현재 나타남을 얻고자 하거든, 즉 현전함을 얻고자 한다면 순과 역을 두지 말라. 내 마음에 맞는 것을 순順, 거슬리는 것을 역逆이라고 하죠. 공부할 때도 역순경계라고 하는데, 역경계는 어지간히 불교 공부한 사람이면 이겨내기 쉬워도, 순경계는 이겨내기가 어렵다고 하죠. 예를 들어 나에게 이로운 것, 내 귀에 달콤한 것, 내 생각에 잘 맞는 것은 오히려 끄달리기가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나를 음해한다든지 욕한다든지, 안 맞는다든지, 그런 것은 수행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 이겨내요. 그런데 그런 수행을 하려고 하는 , 생각이 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역경계를 이겨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나에게 거슬리는 것을 이겨내기가 훨씬 어렵죠. 그러나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역경계는 잘 이겨내지만, 내 마음에 맞는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내 기준에 맞는 것, 이런 것을 이겨내기가 어렵죠. 그것도 큰 유혹이 되죠.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막존순역莫存順逆 순과 역을 마음에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지극한 도가 현전한다. 내 앞에 나타난다. 바람직한 인생이 나타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란 게 하루 내내 늘 순과 역이고, 증과 애고, 간택이고 늘 그렇죠. 그 치닥꺼리 속에서 하루가 가고한 달, 일 년, 일생 인생이 갑니다 늘 간택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그것 쫓아다니고 내 마음에 든다 안든다 든다 안든다, 결국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지 안습니까?
삼조 승찬 대사께서 그런 경험을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 모진 병을 앓으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받아가면서 그래도 어디 가서 항의 한번 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의 업이려니, 자기의 죄려니 하는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속에 녹아내리겠습니까? 어떤 때는 죽고 싶은 생각도 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불같은 분노도 일어났을 것이고, 정말 서글프고 외롭고 한 그런 마음도 얼마든지 일어났을 그런 분이죠. 이분의 병고의 세월이란 것은 부처님의 6년 고행, 달마스님의 9년 면벽과 맞먹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견뎠기에 이 신심명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 의미 있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손해를 봤든지, 어떤 반대의 경우라 하더라도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병들었든, 사업에 손해를 봤든 아니면 다른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든지, 내 마음에 거슬리고 하는 이런 일들을 잘 수용해요. 거기서 전화위복의 길을 찾습니다. 헛것이 되면 참 원통하죠.
이분은 자신의 처지를 십분 아주 잘 깨달음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욕득현전인데 막존순역하라. 순과 역을 두지 마라. 정말 이상적인 삶은 조건이 있는 게 아니예요. 마음속으로부터 그것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순한 것, 거슬리는 것을 두지 말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이상적인 삶, 평화로운 삶 , 어떤 처지가 되었든 - 병이 위중하든, 늙었던, 자기 처지가 어떻든 간에 평화가 자유가 가득한 삶, 지극한 도가 나타난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새겨 드리겠습니다. 강원에서 이렇게 해요. 이렇게 새기면서 설명하고 설명 다 하고 다시 한번 새기면서 정리를 합니다. 글 새기는 것도 배워두시면 금강경, 보현행원품 등 쉬운 경전은 불자님들 스스로 새기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도 있고요.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며 오직 간택하는 것을 꺼릴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만 없으면 환하게 밝을 뿐이다. 호리라도 차이가 있으면 -이 원칙, 위에 말한 원칙에서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리라. 앞에 나타남을 얻고자 할진대, -지극한 도가 현전하기를 얻고자 할진댄 마음에 순하고 거슬리는 것을 두지 말라. 새기는 순서가 우리말처럼 앞에서 순서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크게 복잡하지 않으니 조금만 듣다보면 넉자 정도의 글은 새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 여기까지 공부했습니다.
(불기2550.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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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글 옮김-- 수연행// _()()()_ 2006/02/03 미륵골// 법문녹취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고강도의 수행이고 그 공덕 또한 무량합니다.그래서 인연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심명 법문 녹취 공덕 인연 지으실분들 손좀들어 보셔요. 2006/02/04 환성// 무비큰스님의 법예를 널리 찬탄 하옵니다. 서울은 너무 멀군요. 부산불자들은 선근을 더 많이 심었나 봅니다. ()()() |
법문 감사히 잘 새기겠습니다_()_
감사합니다.
지도무난 유염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호리유차 천지현격 욕득현전 막존순역 감사합니다 순경계 이겨내기,,, 순경계 이겨내기..... 순경계 이겨내기........ _()()()_
작년에 공부할때 그냥 듣기만 했는데 이젠 저절로 새겨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법체평안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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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유 평화가 가득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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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밉읍니다``
감사 합니다,

스님~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나에게 손해나는 일을 잘 수용하고 전화위복이 되는 길을 찾는다. 마음에 순하고 거슬리는것을 두지말라..[지도무난 유염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호리유차 천지현격 욕득현전 막존순역]..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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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道=信心= 행복 대자유 평화 = 가장 바람직한 삶 = 가장 이상적인 삶= 가장 멋있는 삶=佛法 = 道= 平等=中道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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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 () 건강하십시요.
싫어하고 애착하는 마음만 없으면 빛이 뚜렷하게 밝다. 고맙습니다._()()()_
但莫憎愛 (단막증애)하면 洞然明白(통연명백)하리라...다만 증애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환하게 드러나리라.(至道) 고맙습니다. 법체 강령하시옵소서.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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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었읍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 감사합니다.
진실로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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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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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
관세음보살 ()
늘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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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