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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 유마경 강의 1
-유마경의 특색, 목차-
오늘부터는 유마경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불교의 그 경전 가운데 우리가 자주 읽히는 경전, 또 많이 소개된 경전은 그 많은 경전 가운데 우리가 다 읽진 못한다 하더라도 자주 소개된 것, 많이 읽히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그런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평생을 두고 불자로서 살아가고 있고 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가족이 되어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또 알게 모르게 그 어떤 부처님의 힘을 우리가 받아서, 사람들 따라서 정말 죽을 고비도 넘기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삶의 큰 도움을 받는 그런 예도 있고, 사람들 따라서 다종다양하겠습니다마는, 우리가 불자로서 무얼 가지고 과연 불자라고 할 것인가, 뭐 그것도 한 두 마디로써 우리가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은, 그래도 부처님을 믿는다면 부처님을 잘 아는 것, 부처님의 정신, 부처님의 마음이 어디 있다고 하는 것, 이걸 우리가 일차적으로 부처님의 제자 또는 불교를 믿는 사람의 어떤 척도를 그걸로 세우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볼 수가 있는 거죠.
누굴 안다하면은, 그 사람을 얼마만치 아느냐, 언제적부터 아느냐, 이걸 가지고 우리가 그 사람하고 잘 아느냐, 좀 덜 아느냐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처님에 대한 것도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진정한 정신, 또 부처님이 평소에 우리들에게 무어라고 했는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아느냐 하는 걸 가지고 어떤 불자의 무게라고 할까, 척도라고 할까, 이런 것을 가름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우리가 해 볼 수가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또 그렇고, 우리가 불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한 양상으로써도 그렇고, 부처님 경전을 공부하고, 부처님 말씀을 우리가 배운다고 하는 것은, 생활화가 돼야 될 것 같아요. 생활, 뭐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큰 마음 내가지고 아주 대개 큰일이나 하는 것 같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건 큰일이 아니고 불자라면 그냥 보통 생활, 생활화가 돼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우린 어디 가서 법문 좀 듣고 공부 좀 한다 하면 대단히 큰일로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 큰 일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큰 일일수도 있죠, 그러나 불자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그것이 불자 된 도리가 아닌 걸로 그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그런 뜻에서 이제 불교공부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생활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될 것 같아요.
그동안은, 여러가지 선문을 그동안 했습니다.
임제록 하고, 영가 증도가를 하고, 신심명 이렇게 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선사상(禪思想)을 나타내고, 선사상이라고 하면은 불교의 어떤 그 정신을 굽은 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아주 지름길로, 바로 정곡을 찔러서 나타내는 그런 것이 바로 선사상이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단정을 할 때, 참 어떻게 보면은, 상식을 뛰어넘는 그런 말씀도 있었고, 어떻게 보면 격외, 격 밖의 그런 이야기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또, 정말 선사님들의 시원시원하고, 짧은 말 속에 굉장히 함축된 내용이 많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열심히 보았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경전을 가지고 부처님의 말씀도 듣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말씀도 듣고, 부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여러가지 생각들, 이런 것들도 우리가 경을 통해서 읽어가는 그런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경(經)이, 경전공부라고 하는 것은 이건 수행으로써, 하나의 수행입니다. 우리가 그 수행이라고 하면은, 기도라든지, 참선이라든지, 이런 것을 떠올릴 수가 있는데, 경전공부 그 자체도 하나의 수행으로 그래 되어 있어요. 옛날 부처님 당시라든지 또 그 이후의 불자들은 독송하는 걸 부처님 말씀을 외우는 것으로써 굉장히 수행을 삼았습니다. 지금도 물론 염불이라든지, 주력이라든지, 이런 것은 외우는 일이 많이 포함되어 있죠. 경전도 보면 수지, 독송, 서사, 또는 위인연설, 외운다든지, 읽는다든지, 쓴다든지, 또는 남에게 그 뜻을 일러준다든지 하는 그런 내용들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그런 일이 그대로 경을 통한 하나의 수행이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걸 하나의 수행으로 우리가 생각을 하고, 따라서 하나의 불교적인 지식을 또 여기서 얻을 수 있다,하는 것도 그것도 또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좋은 소득이라면 소득일 수 있겠죠. 그러나 지식을 얻는 것 보다는 하나의 수행으로, 또 그 수행이 불자들로서는 당연한 생활로, 이렇게 생각하는 게 첫째, 사실은 그 의미입니다. 우리 경전 공부의 첫째 의미는 그거고, 그다음에 거기서 어떤 지식을 얻는다든지, 또 불교에 대한 몰랐던 것을 아는 거라든지, 부처님의 어떤 역사, 또는 뭐 제자들의 여러가지 어떤 활동, 이런 것들도 곁들여서 아는 것은, 사실은 제 2차적인 그런 하나의 소득이라고,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겠죠.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이 유마경은, 그 위치를 두고 이야기를 한다면은, 불교의 많은 경전 가운데서 결집된 시기도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결집이 됐고, 그러다 보니 불교가 상당히 발전할 대로 발전한, 대승불교 운동이 한참 활발하게 벌어진 그런 시기의 경전이다, 어떻게 보면은 이 대승불교 운동의 혁명서적인, 혁명적인 그런 그 어떤 선언서 같은 그런 역할을 또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강경이라든지 법화경, 화엄경 같은 것도 소승을 억제를 하고, 대승을 선양하는 그런 내용이 굉장히 많죠, 말하자면 그 말은 무슨 소린고 하니, 바람직한 불교를 세상에 전파한다는 뜻입니다.
대승을 선양한다는 말은, 그동안 바람직하지 못했던 어떤 그 폐단들을, 말하자면 억제를 하고, 아주 바람직한, 그야말로 부처님의 정신에 맞는 그런 불교를 선양한다, 그런 뜻이예요. 무슨 뭐, 어떤 단체를 배척하고, 어떤 새로운 단체를 지지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승불교 운동의 본래 의미는 그래요, 부처님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는데 그 뜻이 있어요. 그래서 대승경전이야 말로 진짜 부처님의 마음에 우러난 내용이다, 부처님의 참정신이 그대로 잘 소개되어 있는 그런 경전이다, 그래서 대승 경전이 성립한 이후로는 다른 경전이 맥을 못춥니다. 빛을 볼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그래서 그 후로는 아 이것이야말로 진짜 부처님의 올바른 정신이다, 해서 그 후로는 한번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대로, 아무리 선이 발달하고 또 밀교가 발달했다 하더라도 북쪽으로는 밀교가 발달하고 이쪽으로는 선이 발달했는데, 그런 발달을 겪으면서도,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도, 대승불교는 꾸준히 어떤 중심되는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유마경의 특색, 또 주된 정신이 뭔가 하면은 주된 사상은 여기서『大指(대지)에 融眞俗(융진속)하고 現不二(현불이)라』 그랬어요. 진제와 속제를 융합한다, 그랬습니다. 진제라면 여기서는 어떤 진리의 입장이고, 속제라면 비진리의 입장, 그렇게 볼 수가 있고, 또 하나는 진은 출가의 입장을 말할 수가 있다면은, 속은 세속의 입장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진을 세속의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속을 그 당시로써는 사실은 어떤 도식화 되고, 고형화 돼 버리고, 어떤 격식화 돼 버린 그런 그, 소승들의 고집, 어떤 집착, 편견, 이것을, 오히려 세속적인, 그런 그 소견이죠, 그래서 그것을, 출가집단을 오히려 속이다, 라고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열리고 툭 트인 그런 정신을 가진 불자들, 그걸 오히려 진제의 그런 입장으로 볼 수가 있어요.
그러나 어떤 입장이 됐든지 간에 그 두 입장을 융화시키고, 융합하는 그런 내용이 말하자면 유마경의 특색이고, 또 그러면서 그 둘이 결국은 둘이 아니다, 하나로 귀결되는, 본질적으로 하나고, 결국 결론적으로 하나다, 라고 하는 데로 돌아가는, 그런 내용이 유마경 속에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불이법문(不二法門), 둘이 아닌 이치를 잘 나타내는 법문으로써 이 유마경은 아주 유명하죠.
불이라고 하는 말, 뭐 사찰에 들어가면 불이문이 있잖습니까 불이문(不二門) 둘이 아닌 문이다, 그것도 이 유마경에서 나온거예요. 불교에서 불이라는 말 잘쓰거든요.
어떤 내가 아는 거사님은 목재 제재소를 차렸는데 제재소 이름이 불이제재소라 불이, 불이목잰가 그래요, 그래 티셔츠에다 그걸 떠억 새겨가지고 내한테 들고 왔어, 선전 좀 하라고, 입고 선전 하라고, 불이라고 하는 말이 참 좋거든요.
우린 전부 나눠져 가지고, 둘이 돼 가지고, 너는 너고, 나는 나고, 그래 가지고 서로 고집하고, 또 서로 편견을 갖고 있고, 편견을 가지고 있으니까 상대는 그르고, 나는 옳고, 이래서 싸우게 되고, 그래서 문제가 야기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불행이 거기서 싹 트게 되고, 그래 급기야는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그, 참 어려운 상황에 까지 인간관계를 몰고 가는 그런 그 현상들이 있는데, 본질적으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발견해야 되고, 또 결국 우리는 둘이 아니다 라고 하는,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적대시할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그 속에서 깨달아야 된다, 그랬을 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평화를 한껏 누릴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이 유마경의 대지(大指)다, 큰 뜻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대승불교 경전이다 보니까 주된 사상은 여기는 역시 공사상(空思想)과 보살사상(菩薩思想)을 들 수가 있습니다. 안목은 공사상에다가 두고, 실천은 말하자면 보살 정신에다 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살 사상이 나오려면요, 우리가 생각하듯이 내 껀 내 것이고, 영원히 내 것이고, 네 것은 영원히 너의 것이고, 있는 것은 영원히 있고, 없는 것은 영원히 없고, 분명히 있고, 분명히 없고, 요런 그 흑백논리, 그런 그 편견, 이걸 가지고는 보살사상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보살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자식 보듯이 남의 자식도 같이 봐야 되고, 내 어른, 내 부모 위하듯이, 다른 이의 부모도 똑같이 위할 줄 아는 그 마음이 보살정신인데, 내 자식만 자식이고 남의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 이렇게 돼 버리면 그건 보살 정신이 될 수가 없죠, 근데 그 조금만 우리가 벽을 허물어뜨리면 그것도 가능해요. 가끔 보면은 전혀 불교하고 관계없는 불교라면 불(佛)자도 모르는 사람도, 신문에 가끔 보면 그런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많이 보잖습니까 또.
그런 마음이 한 번씩은 나요. 이번에 성덕 바우만인가 그 사람도 보니까 그런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요. 왜 그럴 수 있느냐, 부처 불(佛)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불교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본래로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어요,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정신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라고 하는 그런 정신이 본래로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게 부처의 씨앗 아니겠습니까, 그게 불성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가끔 나도 모르게 그런 게 나온다구요, 어떤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런 정신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 아이가 개울에 빠져갖고 허우적거리면요, 그 아이가 누구 집 아이인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식을 둔 사람은
누구나 헤엄칠 줄 알고 모르고 관계없이 뛰어듭니다. 그 순간 뛰어들게 돼 있어요, 누구나 그런 상황을 보면요, 아무리 평소에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어린아이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무조건 뛰어들게 되어 있다고요, 앞 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되어 있는 게 그게 인간의 본래 마음이야, 본래 그런 정신을 우리들 마음에 가지고 있다고요, 근데 그 계기만 되면 그게 탁 불거져 나와. 불거져 나오게 돼 있다고요, 그러기 때문에 보살 정신이라고 하는, 보살행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은, 한꺼플만 살짝 벗기고 나면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기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있잖습니까, 자기도 모르게. 신문에 보도되고, 티비에 보도된 것 보고서 그냥 울컥하는 마음이 나오는 거예요, 숨어있던, 나도 모르게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보살 정신이 확 발휘되듯이, 지나가다가 개울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냥 그런 보살 정신이, 본래로 우리의 그 선한 그 마음이 그냥 뛰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공(空)을 바탕으로 한, 그건 벌써 너니 나니 하는 분별이 없어요, 너니 나니 하는 분별이 없는 게 그게 공사상(空思想)이야 사실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둘로 보지 않는 것, 나의 어른과 남의 어른을 둘로 보지 않는 것,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둘로 보지 않는 것, 그건 이미 너와 나의 어떤 그 틀이 무너졌다, 공했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그 형식은 이미 텅비었다 하는 거예요, 그런 경계선은 이미 무너지고 텅비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공이 바탕이 돼야, 공의 어떤 그 안목, 그걸 지혜라고 그러죠, 반야라고 그러는데, 그런 반야 지혜가 바탕이 되면 보살 정신, 보살행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특색이 물론 그렇지만, 특히 유마경에서는 보살행을 아주 중요시 여겨요. 중요시 여기고, 여기는 대승불교의 그런 그 혁명서, 또는 대승불교 운동서라고도 할 수 있을 그런 정도의 경전이기 때문에 보살을 훨씬 우위에 둡니다. 출가한 사람들을 크게 여기서는 취급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사정없이 무시하게 되고, 재가보살, 그야말로 유마거사라고 하는 이가 최고의 우위에 있는 그런 그 입장이 됩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운동이란 대중불교운동이거든요. 대중불교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출가한 집단만을 존중시 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 평민들, 일반 불자들, 일반 사람들을 모두 다 존중시하고, 중요시 여기는, 다시 말해서 전 대중을 전 인류를 말하자면 존중시하는 그런 그 운동이 바로 대중불교 운동, 내지 대승불교운동입니다. 대승적이라고 할 때는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두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흔히 그런 말을 신문에서 보잖아요, 대승적으로, 그건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럼 대중이 다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뜻하고 있다고요.
그럼 불교가 대승불교라고 하면은 대중불교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대중 불교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집단, 어떤 특수한 무리들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그 불교가 진짜 좋은 불교다, 그게 소위 대승불교의 참정신이예요.
그래서 여기 보면 어떤 그 출가한 사람들은 아주 무시를 당하고, 그건 이제 그 당시 너무 출가한 사람들이 권위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우정 이런 이야기를, 그런 것을 드러내는 거죠. 무시하려고 해서가 아니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대중이 살아나는 거죠. 특수 집단을 무시함으로 해서 전 대중을 살리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반 보살이 말하자면 빛을 보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유마경이요.
그런 것이 하나의 특색이고, 또 경전이 대개 보면은 부처님이 설하시고 보살이 어떤 대화자가 된다든지 또는 부처님의 제자, 성문 제자들, 십대 제자들, 이런 이들이 주로 부처님의 대화 상대가 되어가지고 경전이 성립하는 반면에, 여기에는 유마거사라고 하는 이가, 물론 부처님이 계시지만은, 유마거사라고 하는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게 특색이예요. 다른 경전에는 그런 경전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거사가 가끔 나오죠, 뭐 파사히 왕 같은 왕도 나오구요, 또 미란다경 같은 경우는 미란다 왕과 나선비구, 나선비구경이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나선비구와 그 두 분의 대화가 또 말하자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렇긴 합니다마는, 여기서는 거사분이 쭉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그것하고 또 보살이,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소위 보살이죠, 재가 부인인데, 부인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경전이 그 유명한 뭐죠 승만, 승만분경, 그 경 이름이 승만부인경이라, 그것은 대승권에는 승만부인경도 굉장히 인기가 있고, 그보다 더, 몇 배 더 인기 있는 것이 이 유마경입니다.
왜냐 이거는 이제 대중적인 그런 그 입장을 대변하고, 재가 신도의 입장을 대변하고, 또 거사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기 저 남방불교 같은 데서는 상상을 못하죠. 그러나 이 대중불교, 대승불교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마경도 해석을 옛날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했어요. 번역본도, 말하자면 인도말에서 중국말로 번역한 것도 여섯 가지, 또는 일곱 가지씩 그렇게 됐어요. 우리 나라에서 번역한 것도 몇 가지가 물론 있습니다. 강의도 가끔 있는데 크게 유마경 강의는 그 흔치 않아요.
그러나 나도 이제 유마경을 그전에 한 번 보고는 참 감명 깊게 읽었어요. 굉장히 감동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유마경을 언젠가 한 번 야무지게 공부를 해야 되겠다 했는데, 이번이 기회가 마침 돼서 하게 됩니다.
유마경에 대한 주변 이야기는 이쯤하고, 또 부족한 것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유마경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특색들을 간간이 말씀을 드리도록 그래 하겠습니다.
우선 경의 제목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라 그렇게 했죠.
우리가 유마경, 유마경 그렇게 편의상 부르는데 물론 유마경이라고도 해요. 그러나 이것은 구마라습이라고 하는, 삼장법사 구마라습이라고 하는 분이, 아주 경전을 가장 많이 번역했고 인도말을 중국 한문으로 번역한 분입니다, 가장 많이 번역했고, 또 이분 번역한 것이 제일 중국 사람들 정서에 이쪽 사람들 정서에 잘 맞게 됐다라고 해서 이 분의 번역을 제일로 쳐요, 물론 다른 사람이 유마경 번역한 것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화엄경도 또 딴 사람이 번역한 것도 있고,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 아, 화엄경은 실차난타죠. 또 예를 들어서 금강경 같은 것도 그렇고, 다른 경전도 딴 사람이 번역한 것도 있고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도 많이 있는데, 구마라습 번역을 제일로 쳐요.
왜 그런고 하니 구마라습이라고 하는 이는 구자국 사람인데, 저기 지금 중국의 아주 서쪽이죠. 지금 티베트에서 더 그쪽, 지금 인도하고 국경에 싸움도 가끔 일어나고 있는 그 나라 부근인데, 옛날의 북인도 쯤 됐죠. 거기 사람인데 이분이 워낙 뛰어나가지고요, 이 구마라습이라고 하는 이를 중국에 모셔오기 위해서 구견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내가지고 전쟁까지 일으켰습니다 전쟁.
전쟁까지 일으켜서 이분을 모셔왔어요, 그만치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 이분에게 딸린 이야기들은 많아요. 그래 와가지고는 전쟁통에 여의치 못해가지고, 한 십 년간 거의 갇혀 있다시피, 그렇게 중국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어를 아주 그야말로 중국 사람보다 더 중국어를 잘하는, 한문을 잘하는 그런 대학자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인도말에 능통하죠, 중국에 와서 한 십여년 있었으니까 그만치 능통하죠. 그래서 이제 세월이 좀 평정되어가지고 본격적으로 경전을 번역하게 되는데, 국가에서 천재들을 한 천 명을 뽑아가지고 그 뒷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윤문하는 사람, 말을 번역하는 사람, 중의하는 사람, 온갖 뒤에 팀들이 국가에서 말하자면 역경원을 차리고, 역경원장으로 말하자면 구마라습을 모시고, 그렇게 해가지고 경전을 본격적으로 번역을 해가지고 경전 번역이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 보면은 파트가 많아요. 여러 파트가 있어가지고, 그래 왕이 말이죠 늘 정사를 보고 나서는 늘 거기 역장에 출근을 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매일 거의 안 빠지고 그 역장에 한 번 와서 번역하는 모양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국가에서 그 정도로 해준다면 포교하고 뭐 하는 데 참, 수월하고 편리하겠죠. 옛날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분은 하도 뛰어나 가지고 저런 사람은 혼자 그냥 둬서 안된다, 어떻게 하더라도 씨를 받아야 된다, 해가지고, 국가에서 무슨 뭐 부인이 아홉 명이나 국가에서 뽑아가지고 뒀어요. 그런 정도였습니다. 혹은 삼거법사라 해가지고 이야기가, 딸린 이야기가 워낙 많아요. 정말 불교사에서 뛰어난 분입니다. 그분이 아주 위대한 문장으로 이렇게 한문으로 번역으로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문권에서 우리가 살았기 때문에 한문 경전을 그래도 우리가 좀 공부를 해야 그래도 공부한 것 같고 이걸 우리글로 번역해 놓은 것들도 있지만은 그걸 가지고 공부하면 별로 하는 맛이 없어요, 공부하는 맛이, 그리고 뜻이 제대로 전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토를 달고 이렇게 해서 한문본을 교재를 이것도 이제 컴퓨터로, 아주 요즘 기계가 좋으니까 잘 만들어서 공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제 유마거사가 말하자면은 구체적인 이름이 유마힐이라, 유마힐. 유마힐이라는 이 거사가 불교에서 워낙 뛰어난 분이고, 인도하면 유마힐이고, 중국에 하면은 방거사고 우리나라에는 부설거사이고 신라에 와서는 부설거사고 시대에 따라서 거사들이 그당시 도인들 못지 않는 그런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어요. 중국의 왕유라고 시불(詩佛)이라고 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삼대 시인을 꼽거든요, 시선(詩仙)하면은 누구죠? 이태백을 꼽고 그 담에 시선, 시선이 이제 이태백이고, 시불이라 하면 왕유를 꼽는거라, 그래 이 사람이 유마거사를 존경한 나머지 왕마힐이라 마힐, 유마힐이라고 하는 그 마자와 힐자를 따가지고 마힐이라, 자기호를 마힐이라고, 왕마힐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또 누구도 이 호를 딴 유명한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분이 설한 바 경이다, 이 말이요, 소설(所說)하면.
유마힐이 설한 경이다.
그냥 그렇게 돼 있어요. 유마힐이 설한 경이다.
이 경이 저 뒤에 가면은 “이 경의 이름을 뭐라 하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 물어요. 그러니까 “『유마힐소설경』이라고 하라” 부처님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사의해탈법문』이라고 하라” 두 가지를 일러줬어요.
『부사의해탈법문』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이다, 그러니까 해탈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불가사의 하거든요. 우리 지금 상식으로는 요량이 잘 안되는 경지라구요. 그러니까 이 유마경을 통해서 불가사의한 그런 해탈의 경지, 대자유, 대해탈의 그런 경지를 누릴 수 있는 가르침이 이 속에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마힐소설경』,또는『부사의해탈법문』이라고 그렇게 너희들이 받들어라, 그런 이름으로 받들어 가지라” 라고 이렇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저 뒤에 가면 나옵니다.
그러면 경전 이름만 보고 아, 유마힐 거사가 설한 경이구나 간단히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설한 바가 무어냐, 그 말속에 소설(所說)이라고 하는 말속에 다 있지만은 그 설한 바는 말하자면 이 경이 되겠죠, 이 경이 본문이 된다고요, 그렇다고 유마힐이 다 설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유마힐이 중심이 되어서 이제 설해진다는 거죠.
불국품(佛國品)이라 그랬어요. 처음에, 이게 보면은 불국품, 목차를 일단 좀 보겠습니다. 목차를 보고 전체를 한 번 가늠을 한 번 해보죠. 전체 구도가 어떻게 됐는가를 한번 조금 보겠습니다. 목차를 보면 그걸 알 수가 있어요.
경의 구성: 서분, 정종분, 유통분
서분(서론): 1품 불국품부터 4품 보살품까지
정종분(본론): 5품 문수사리문질품부터 12품 견아촉불품중간까지
유통분(결론): 12품 견아촉불품 후반부터 14품 촉누품 끝까지
목차
1. 佛國品 (불국품)
2. 方便品 (방편품)
3. 弟子品 (제자품)
4. 菩薩品 (보살품)
5. 文殊師利問疾品(문수보리문질품)
6. 不思議品(불사의품)
7. 觀衆生品(관중생품)
8. 佛道品(불도품)
9. 入不二法門品(입불이법문품)
10. 香積佛品(향적불품)
11. 菩薩行品(보살행품)
12. 見阿?佛品(견아촉불품)
13. 法供養品(법공양품)
14. 囑累品(촉루품)
불국품부터 쭉 방편품으로, 제자품, 보살품 해가지고 14품이 이렇게 유마경의 품입니다. 이 품(品)이라 하는 것은 요즘 책으로 말하면 장(章)이라고 하는 말하고 같습니다. 제1장, 제2장 글장 장(章)자 있죠, 그러면 14개의 장으로 구성됐고 매 장마다 또 이런 저런 내용이 그 속에는 갖춰져 있겠죠. 그걸 또 세분하면은, 그 안에서 여러가지 단락으로 나눠질 수가 있습니다. 이걸 이제 삼분(三分)으로 나누거든요. 삼분.
삼분으로 나눌 때는 으레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 이렇게 나눕니다. 그래 3분 14품 그래요, 유마경 이야기 할 때 으레 공식적으로 일컫는 말이 3분 14품이라 그래 합니다.
삼분은 이제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인데 삼분이 불국품에서부터 제4보살품까지가 서분에 해당 됩니다. 佛國品(불국품), 方便品(방편품) 弟子品(제자품) 菩薩品(보살품)까지가 서분, 줄을 딱 그어요 그렇게, 요렇게 4품까지 그어요, 4품까지 그어가지고 ‘서분’ 이렇게 써 놓는 거예요.
그다음에 제5부터 저 밑에 見阿?佛品(견아촉불품) 제12견아촉불품 있죠, 그것이 말하자면은 정종분, 정종분에 해당 되는 거예요.
그 견아촉불품 중간부터, 견아촉불품 전체가 아니고, 견아촉불품 중간부터 法供養品(법공양품) 囑累品(촉루품)까지 해가지고 요게 이제 유통분이 되는 거라.
유통분이라고 하는 것은 경전 결론인데, 결론이라고 하는 것은 이 법을 많이 유통시켜라, 펼쳐라, 전하도록 하라, 그래서 법륜을 많이 굴리고, 법을 많이 전하도록 하라, 라고 하는 이게 결국은 부처님의 법 결론이라.
결론은 다른 게 아니라고요, 결국은 이것이 여러 사람에게 많이 퍼져야 결국은 거기서 우리가 그 중에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고, 못 얻는 사람도 있고, 혹은 또 인연이 맺어져 가지고, 다음 기회에 또 깨닫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촉루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법공양이라는 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말하자면 소개하고, 이바지하고, 펼치는 일이고, 촉루(囑累)라는 것도 부촉한다는 뜻이예요. 누(累)는 오래 가도록 하는 말이고 촉(囑)은 부촉한다, 부탁한다 이 말이예요, 오래 가도록 이것을 당부한다 하는 촉자입니다. 당부한다.
그래서 이 법이 부처님 법이 오래가도록 당부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여러분도 여기서 이제 배우면, 다음에 가르쳐야 되요. 집에 가서 식구들 앉혀놓고 가르치든지 어떻게 하더라도 자꾸 가르쳐야 돼. 이게 그 당부가 이 속에 들어 있다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기 내려온 거예요. 삼천년 동안 내려온 이유가 누가 가르치지 않았으면 이게 안내려온 거예요.
책으로도 만들고, 강의로도 하고, 테이프로도 하고, 그래 가지고 자꾸 가르쳐야 이렇게 면면히 이어지지 안가르치면 내려와지겠어요? 안내려와진다고요.
그렇게 이제 3분 14품이 이렇게 이제 구성이 되었습니다.
그래 보면 삼분에는 서분이 있는데 서분에는 통서가 있고 별서가 있고 또 그다음에 정종분에 와서도 (방장해?)가 있고 (암남해?)가 있고 여러가지 그런 세분된 내용들이 있습니다마는 그건 이제 공부하면서 살펴보기로 하고, 불국품은 이제 서품에 해당이 되죠.
그 저 판화요, 변상도, 유마경 변상도도 이번에 특별히 목판에 걸 이렇게 이제 구해가지고 넣었습니다.
처음에 유마거사가 있고 그다음에 보면은 유마경 변상도1 해가지고 저기 걱정 많은 영감님 한분이 앉아 있고 밑에는 보면은 스님들하고 보살들이 대문 앞에 이렇게 와있죠, 병든 유마거사를 문병하러 온 보살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죠. 유마거사가 병이 난다고요. 병이 나는데 이제 말하자면은 문병 하려고 하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일종의 아주 희곡 같아요. 문학적으로도 아주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희곡서라고 그렇게 불립니다.
그 다음에 그 두 번째 보면은 유마거사가 문병 온 보살들을 위해가지고 사자좌를 만들어 앉게 하는 거예요. 의자를, 본래 방은 텅 비었었는데 갑자기 어떤 다른 지방에서 근사한 그런 그 안락의자를 근사하게 만들어 가지고, 모두 거기 앉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대목이 또 나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보면 유마거사가 화신보살들로 하여금 향적세계에서 공양을 받아오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대접하려고 향적세계에서, 향적단이라고 그래요. 벌써 향이 가득이 쌓여있다,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그 음식에서 나는 향기, 그런 뜻에서 향적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향적세계 음식이 제일 맛난다고 해서 그 향적세계의 공양을 받아와 가지고 대접을 하는 그런 내용이고.
그 다음에 유마거사가 불이법문을 설한 후 부처님을 예방하는 거죠. 자기가 법문 할만치 했습니다. 하고는 부처님에게 와서는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유마거사하고 그 오백 동자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여러 동자들이 또 이렇게 유마거사를 에워싸고 있는 그런 모습들 뭐 이런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유마경을 가능하게 된 변은 뭐 각자 읽어보십시오.
一品. 불국품(佛國品)
첫째 불국품이, 그런 그 삼분 가운데 제일 첫 품이고 십사품중에 제일 첫 품으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벌써 근사하죠 품 이름이.
불국이라, 부처의 국토라, 부처의 세계다 이말이죠,
부처의 나라, 부처님 나라다 이거예요.
이미 우리는 불국품 할 때, 부처님 나라에 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기분을 느껴야 되죠. 불국품 참 좋잖아요. 불국(佛國)이라, 부처님 나라다. 이 부처님 나라라고 하는 것, 우리가 불국토 또는 불국 정토, 또는 서방정토 이런 여러가지 표현들을 잘 쓰는데, 결국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목표가 이 땅의 불국토 건설이라 뭐 서방정토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은, 어느 다른 장소로 우리가 이사를 가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든지 뭐 인공위성을 타고 이사를 가서, 어떤 아름다운 세계, 우리가 그리는 그런 세계를 누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는 근본적으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그 어떤 세계를 누리자, 정토, 극락정토를 누리자 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 취지입니다. 그건 하여튼 꼭 그렇게 알아야 되요.
절대 이사가서 좋은 데 사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 이사, 좋은데 서방정토에 가서 되돌아오는 사람도 많이 봤죠, 역이민, 역이민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는 가는 사람도 많지도 않지만은 갔다가 다 되돌아오는 거예요, 거의 되돌아오는 거예요. 그거 보십시오. 정토가 어디 장소에 있는 게 아니라니까, 뻔히 보여주잖아요. 그렇게 보여주잖아요, 절대 장소에 있는 게 아니예요. 뭐 아파트 평수 넓은 데 있는 것도 아니고, 평수가 있는 것도 아녜요. 그러니까 그런 것하고 관계 없이 우리가 불국토를 누린다고 하면은, 즉 극락정토를 누린다고 하면은 얼마나 바람직하고 좋겠습니까.
불국토에서는, 삼종 불국토를 흔히 이야기 하는데, 삼적광토라 해가지고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장소, 그걸 이제 적광토라, 대적광토, 또는 상적광토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건 진리 그 자체를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 본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자리가 즉 상적광토이거든요. 항상 고요하면서 죽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그 어떤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적광이라.
그 다음에 또 보신불이 있는 곳은 칠보장엄토라 해가지고 어떤 닦은 공덕에 의해서, 누리는 정토를 그런 불국토를 칠보장엄토라 그래요. 그건 예를 들어서 쉬운 비유를 하자면 돈이 많은 사람은 좀 큰 아파트에 산다, 없는 사람은 조금 좁은 데 산다, 그거 이제 자기가 돈을 번 만치 누리는 거죠. 고것을 가지고 보토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예요, 그런 데 산다고 꼭 행복한 게 아니거든요. 큰 아파트에서 정말 외롭고 서글프고 해가지고 자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지지고 볶고 맨날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그거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누릴 어떤, 닦은 과보만을 가지고 정토라고 해서는 안되는 데, 그러나 또 그것은 그것 대로,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또 자기의 어떤 과보 따라서 어떤 국토가 변할 수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보는 게 칠보장엄토다, 장엄, 자기의 어떤 수행의 과보 따라서 장엄되는 국토다,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게 범성동거토인데요.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사는 세계, 바로 우리가 사는 이 국토 사바세계예요, 우리의 현실이라구요. 여기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성인, 범부할 것 없이 공자도 살고, 도척이도 사는 거예요, 선생도 살고 제자도 살고, 별별 상반된 종류의 사람들이 다 사는데 이것이 범성동거토라.
그럼 여기서 말하자면은, 불국토를 우리가 실현해야 되고, 즉 극락정토를 여기서 우리가 실현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불국토의 취지죠.
그래서 여기 유마경에서는 이 불국토라고 하는 것은 정토와 예토,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이 둘이 아니고, 또 범부와 성인이 따로 살지 않는, 함께 머물러 사는, 바로 이 사바세계에서의 불국토 실현을 여기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다. 불국토는 이상세계, 이상세계는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내일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바람직한 만족과 평화와 행복을 누려야 되요. 그러면은 어디에 있더라도, 착좌해 있어도 빙긋이 웃을 수 있고, 금으로 만든 어떤 옥좌위에서도 울 수가 있고 가슴을 칠 수가 있거든요. 그런 예들도 얼마든지 있잖습니까, 그러다 저 다리 밑에 거적대기 깔고 앉아가지고도 아주 기분 좋게 웃을 수가 있는 거예요.
결국은 우리 마음으로 부터 해결하지 아니하면은 어디 해결책이 없어요. 어떤 상황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를 평화롭게 한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혹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상황이요, 절대로 믿을 게 못돼요. 예를 들어서 꼭 같은 장소에 갔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불안해, 어떤 사람은 아주 편안해, 그래 가지고 가자니 오자니 시비 많이 해보죠, 여러분들, 똑 같은 가운데 다르잖아요, 느끼는 게 달라, 그러니까 그 상황가지고 어떻게 행복하다 불행하다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내 마음에서 해결을 해야 된다, 열쇠는 내 마음에 달렸어요.
불교는 참 이제. 우리가 실천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죠, 이 원리만은 너무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정말 틀림이 없는 그런 말씀만 하신 거죠. 부처님이 확연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워낙 확연히 깨달으신 분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원리만은 확실하죠.
첫댓글 이렇게 그림까지 곁들여 주셔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네요..곷물님 감사합니다. _()()()_
꽃물들다님의 노고로 앉아서 편히 공부하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은혜에 보답드리겠습니다..존경합니다. _()()()_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바람직한 만족과 평화와 행복을 누려야 됨을.... 감사드립니다... _()()()_
그대같은 훌륭한 도반이 있어 행복합니다. _()()()_
불교를 공부하는 목표가 이 땅의 불국토 건설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극락정토를 누리자 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 취지임을 잘 알아야..._()()()_
위 강의 방에서 공부를 마치면서 다음기회에 꼭 다시 한 번 듣기를 원했는데 꽃물들다님의 정성으로 다시 공부하게 됨을 감사히 생각합니다.._()_
꽃물님 덕분에 말로만 듣던 유마경 불이법문에 처음 들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꽃물보살님!!!!
감사 합니다._()()()_
꽃물들다님 감사합니다._()()()_
불이법문(不二法門), 둘이 아닌 이치를 잘 나타내는 법문...고맙습니다._()()()_
꽃물들다님께 찬탄합니다."大指에融眞俗하고現不二"에서6줄 아래 "성분"을 "소견"으로 유마경변상도 밑 佛國品에서 14줄아래 "학생들"에서 "하여튼"으로... 하여튼 감사합니다._()()()_
꽃물들다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변상도 그림까지.... 감사합니다 _()()()_
바람직한 만족과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바로 이순간, 이자리...불국토에서 유마경 불이법문을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신 꽃물님, 님의 노고와 정성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_()()()_
...결국 우리 마음으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깨어있고 행복할 수 있어야한다...._()()()_
우와~~~. 멋지다! _()_
不二法門_()()()_
정말 훌륭한 법문입니다. 임제스님의 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진리의 말씀과 같이 지금 이자리에서 바로 불국정토를 건설해야 겠습니다ㅏ
정성 가득한 불사 감사드립니다. 잘 모시고 갑니다._()()()_
꽃물들다님! 정말 근념하십니다..부처님의 가피가 항상하시길..._()_
감사합니다,,()_()_()_
_()()()_
()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공부할수있게 해 주셔서..._()()()_
열심히 공부합니다.()()().
무비스님 복소리가 귀에 들리는것 같아요 _()_ 꽃물들다님 감사드리며 행복한 날들만 되세요 ~~~꾸벅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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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을 한번 읽어보고 다시 한번 보니까 느낌이 달라요.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렵니다._()()()_
배운지가 까마득하게 잊혀가는 찰나 염화실이 있기에 큰 보배를 얻을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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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드립니다...()...
감사함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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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유마힐소설경 나무유마힐소설경 나무유마힐소설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