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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연숙 시인 - 2006년 등단.
흰책읽기 외 2편
- 우아한 관계
어둠은 달착지근하게 늑골쯤에 고여 있다 폐부 아래 낭자한 바람의 호흡을 짚어간다 골목을 읽기도 전에 흘깃 넘어가는 페이지, 입을 열면 얼음이 쏟아진다 여백으로 꽉 찬 허공을 건너뛰며 새겨놓은 글씨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히에로글리프, 언제부턴가 고양이는 가르릉대는 별의 무덤을 펼치고 있다 천둥번개생선뼈목이천리나되는긴짐승거북의말들먼지로쓰인얼굴이 해독되지 않는다 문맹이란 죽어버린 별의 페이지가 너무 무거워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것, 숨을 멈추면 폐기된 글자의 기원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숟가락에 펄떡거리는 심장을 얹었던 마추픽추, 입김과 날개로 뎁히고 식혔던 로제타의 늑골에 등을 단다 나의 캄캄한 묵독을 위해 고양잉들이 불빛 주위로 모여든다 누군가의 가슴에 밑줄을 긋는다 제 몸을 태우는 유성에서 수없이 태어난 골목들이 저마다 깊숙한 곳에 비석을 세우다 사라진다
서른 세 개의 부리를 가진 새
- 우아한 관계
구름 한 장을 타자기에 넣고 키보드를 두드리자 당신은 자욱한 안개의 세기로부터 탈옥하기 시작한다 내가 검은 새의 말로 말라가는 나와 헤어지는 일, 손가락에서 번져간 허구의 플롯으로 새는 자신을 깨우는 비밀을 알고 있다 하늘을 풀며 날아가는 위기의 전반부는 틀에 박힌 지문을 던져 놓는다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각성 상태의 거울이 노크하듯 두드리며 애무하는 키보드 A,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문자마다 별 볼일 없는 구름의 일대기가 닿아 있다 당신을 인용하다 거들먹거리며 활짝 피어난 문장들을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다 구름을 아주 잘 알게 되자 새는 그것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새가 아니어도 되는 그렇고 그런 기호가 되었다
다만 나는 타자기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가끔 비상을 꿈꾸지 않는 싱싱한 문장을 꺼내들 뿐이다
정거장
통신이 두절되자 그는 두근벌떡 일어선다
무한 어둠 속에서 호흡이 얽혀 두 우주정거장이 부딪쳤을 때
우연은 중력이 없는 저편에서도 불꽃에 닿는 법
수정될 수 없는 궤도를 지닌 것들은,
단 한 번 별빛이 될 운명을 허락한다
제 몸을 던져 수 천의 날카로운 빛조각이 되어 버린 별의 정거장
흉기가 되어도 버릴 수 없었던 궤도
구두 뒤축은 바깥쪽부터 닳아서
급기야 지구 안의 길들을 둥글게 말아온다
벤치 위로 떨어지는 푸른 나뭇잎
지구의 중력 밖에서 보내오는 통신의 주파수에 맞춰 헐떡인다
닫힌 눈꺼풀 안에서 부서진 우주선,
그는 시간을 놓아버린 막차를 탄다
뜯어진 좌석의 스펀지에서 날아오르는 먼지 하나가
그가 쏘아올린 우주정거장의 전부였다
폭음도 없이 온 몸이 불타오르며 추락하는 별똥이
지구 바깥으로 걸어 나간 제 심장의 파편이었다고
2. 오늘 시인 - 2006년 등단.
아마島에선 사다리가 필요해 외 2편
혹市와 어쩌面, 그러里에 입만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귀 없는 대통령을 버리고 아마도라는 섬으로 떠나던 날 대통령은 긴 앞니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휘파람은 지나가는 바람을 모조리 잡아 아마도에 가둬버렸고 배고픈 바람은 좁은 아마島에서 서서 자는 사람들의 목을 하루에 한 뼘씩 늘려 놓았다 사람들은 팔보다 더 길어진 목을 휘청거리며 섬에 송곳니를 함부로 뱉기 시작했다 누워 자던 지난 날들을 그리워했다 그래야 할 때를 잘 아는 귀 없는 대통령이 아마道를 향해 두 앞니를 사다리처럼 흔들어대자 사람들은 아마島에 주저주저한 나무들로 배를 만들어 혹市와 어쩌面 그러里로 다시, 향했다
그래島에 사는 사람들이 사다리 위에 목을 받치고 서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아직島에 사는 사람들은 잘린 밑둥을 세며 아마島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듣고 있다
할렘광장의 래퍼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 담벼락에 붙어있는 무료함이 16비트 박자를 입은 비보이*들에 의해 비틀려지는 오후 다섯 시 어둠이 사람들의 이마에 고여 있는 빛을 핥는 사이 구석진 자리 신발 한 짝, 동전을 주워 먹으며 뉴욕 할렘가로 돌아갈 차비를 모으고 있다 낮잠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함부로 아랫도리를 누설해도 좋은 곳이라고 바람이 일러 주었을 때 질펀한 송곳니의 통증쯤은 잊을 수 있었다 몇 개의 손가락과 바꾼 동전들은 광장 귀퉁이에서 가끔 발가락으로 피어났다 발가락들은 그의 몸 아무데나 들러붙어서 더 많은 동전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뉴욕 할렘가의 리듬을 잃어버린 그가, 몸을 비튼다
영악한 신발은 비행기 표 대신 주저없이 소주를 날렸고 그는, 반쯤 내려진 바지와 얼기설기 뭉쳐진 머리로 비틀거리며 대학로 할렘광장의 랩을 날린다
힙합 바지가 따로 있나 헤이~요!
레게머리가 뭐 별건가 헤이~요!
어둠마저 빠져나가고 있는 광장
자유로운 신발은 잠을 신지 않는다
* 비보이 - 브레이크를 추는 소년.
안녕히 주무세요
1
간장게장 파는 홈쇼핑 채널 보던 할머니
눈은 풍년인데 이놈의 입은 흉년이네
2
또
홈쇼핑에서 간장게장을 팔아요 할머니도 안계신데 그럴 순 없는 거죠 고쟁이가 내민 왕사탕을 깨물면 방마다 노랗게 터지는 꽃게 알, 채널을 돌릴 때마다 뾰족한 집게발이 툭툭 떨어져요 눈꺼풀을 물어요 코끝에 매달려요 리모컨 찾기 놀이를 끝낸 소파를 홈쇼핑으로 데려다주면 게딱지에 비빈 흰 머리카락을 삼킬 수 있을까요 차곡차곡 잠든 저고리에 코를 묻는 밤마다 할머니를 놓친 지팡이가, 방안 가득 몸에 감긴 길을 풀어놨어요
3
간장게장도 없이 생쌀을 한입 가득 물고 잠드신 울, 할머어엄마아
3. 김봉식 시인 - 2007년 등단.
돌은 울지 않는다 외 2편
돌은 상처를 밀어 올리지 않는다
부서지거나 깨어지면 그 뿐,
그러나 돌 속에는 많은 눈물이 감추어져 있다
돌을 깨물어 보면 안다
옛집 허물 때 보았다
아버지 등판 닮은
구들장
忌日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를 접는 날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애인 집 앞을 서성대다
마음을 접는 날
받지 못한 생계, 독촉을 위해
미수금 내역을 접는 날
오늘은,
아버지가 세상에 풀어 놓았던 관절을 접은 날
顯考學生府君神位 앞에 공손히
내 몸을 접는 날
白石
쓸쓸히
포장마차에 앉아
닭발을 씹는다
오도독, 오도독 흰돌을 씹는다
아버지 고향도
평안북도 정주......
4. 문길 시인 - 2007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서시 등단.
나쁜 남자 외 2편
- 고양이님 푹 주무세요
먹을 음식과 물은 대청마루 밑에 있습니다
빈집에 고양이와 나
빈집이라 하니 하늘 문이 닫혀 내 시를 팔랑개비 쳐버렸다 죽어라, 오늘 너에 눈이 완전히 뚫어져 3천 년 전 화전민의 발길을 따라 그 끝을 따라나서면 억년을 휘몰아온 바람이 공기차단 지대를 넘어서지 않는, 그것도 순리의 길이라는 사유를 모르면
고양이에 대하여 내 시는 죽고 나는 계피나무에 기대어 공기에 밀려난 사람처럼 난 헛배가 불러온다, 툭툭 경직되며 내 뇌리를 굴리고 때리며 굵게 깨어지는 소리는
분명 나무 부러지는 소리는 아니었다, 고양이털 문양에서 땅, 물, 불, 바람에 좀도둑이 붙었을까 갸릉갸릉 고양이 숨소리에 그 털 문양이 벌렁 거린다 털마다 색을 이상야릇하게 묻혀 여기까지 걸어온 고양이
비틀거리다가 정지된 나, 고양이와 합류된 사물들의 연결고리
낮잠 자는 고양이 옆으로 다시 온다 고양이털 문양 방식에 왜 탄생의 자유로운 문양이 이루어져 있을까, 고양이털 색깔에 원초적인 것을 해독을 하려는 남자
좁은 쪽으로 내려서지 마라 길은 좁다 네 마음의 축소는 벼랑에 흔들리는 길이다 벼랑에 떨어져도 좋으냐! 지금 죽어도 고양이털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상상이란 지구 밖으로 모가지를 길게 쭉 빼다가 달이 발바닥에 빛을 비쳐올 때까지 응시의 가시거리를 완전히 놓아버릴 때, 그 무구한 경계는 글자들의 무덤 위로 일어서는 거다
세상을 바로 보지 못했나?
나쁜 남자
백장가든 아래서
찌르르, 여름매미의 울음 탄식처럼 들려
신의 제단에 불을 확, 지르고 싶었네
스스로 죽음의 상여가를 부르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자고나면 나의 창문에 - 당신, 누구요?
대답을 할 수 없네
나는 걸어 다니는 인간 유물인지
4천년을 흐른 성 교접의 씨물인지
형체 있는 육체의 뼛가루를 이 헐렁한 지상에 투입 되고나서야
마지막 그 노린내 풀어지고 나서야
피의 비린내 결재 되고나서야
육체는 풀어져야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 인간 사후를 후렴하는 아미타 절 밑에서 개고기 뼈 옆에서 이 여름 끝 죽어갈 여름 매미가 왕왕 울어대는 핵우산 같은 정자나무 아래서 빙글빙글 도는 나의 물음표 찾기는
혓바닥 밑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구나, 입 옆으로 떨어지는 매미의 분비물 이로운 균 해로운 균들의 전쟁터 내 몸, 자꾸 매미가 울면 탄생과 죽음의 재단 앞에서
난, 신의 밀서를 빼어낼 사내가 되고 싶어진다
불타는 개고기 위로
산만 동시성을 이루고 있구나
장판수
오토바이 음주운전으로 장판수가 죽었다
상여는 숲으로 먹혀들어 갔고
지리산은 사람하나를 또 먹는다
사람을 먹고 꽃을 피워 올리거나 안개를 자주 토해내는 산은
有無의 편지를 곱게 읽어주는 것이어서
시체를 받아들이는 흙이 곱다
이쪽 동네에서는 소금장수가 바다를 자꾸 사라고 외친다
장판수가 지난 날 먹었든 소금수분이 바다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고요한 길 구불텅구불텅 돌아가는 소금 길 맑다
소금장수가 동네를 돌아, 돌아 장판수 집에서
휴우, - 바다는 참 무거워요, 하고 밥을 얻어먹는다
소금양념이 어우러진 바다는 젖어 있다
주인을 떠나보낸 옷들을 태우자 문명의 냄새는 바다처럼 짜다
떠난 자와 떠날 자가 끈이 풀어진 상가 마당가
죽음의 비밀들은 풀어진 상태다
물 건너 송장 후보들이 쯔 쯔 단음을 내뱉고 뒤돌아간 뒤
소금장수는 무거운 바다를 차에 싣고 떠났고
장판수가 주는 마지막 알코올에
동네 사람들은 소금양념 안주를 먹으면서 취했지만 조용했다
술이 오토바이 바퀴를 흔들리게 해, 장판수를 지워버린 날 이후
- 잘 가라, 장 판 수
이별 음들은 안개처럼 떠돌아다녔다
5. 추종욱 - 2007년 등단.
클릭, 트래블로그 외 2편
나는 모니터 속에 있다
지도를 펼쳐들고 대륙을 걷는 대신 새벽에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감싸 쥐고
지구의 모든 땅들을 클릭한다
클릭할 때마다 길들이
나를 이끌고 대륙이 열린다
업데이트된 카테고리에 머물고
나는 2700번 째 로마 방문객이 된다
로마의 골목길을 따라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을 때
달콤한 젤라토를 입에 물고
오드리 햅번을 만나지만
로마는 휴일이어서
청춘이, 눈물이, 지친 희망이, 생각들이
새 게시물로 빠르게 전송되고
검색한 지도사이트에
업데이트된 나를 따라간다
링크한 주소 한 구석에 팝업창이 뜬다
무심코 클릭하면
순식간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프리카의 오래된 정글에 연결되고,
정글의 세찬 바람소리 휘감겨온다
희망 없는 꿈에 벗어나려고
사자가 되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절망의 의식을 물어뜯거나
크르릉 거리는 사나운 울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지도를 클릭해 나간다
떡볶이를 생각함
옆집 영자씨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날,
옆구리 터진 김밥과 퍼져 떡진 만두였다
사랑에 속고 돈에 속아 떡볶이처럼 피 흘리며 거리로 향했다
거리의 불빛들이 비상깜박이를 켜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 사람들은 혀를 찼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우아하게 몸을 던진 결말로
얼큰하게 막을 내렸다
영자씨 세상이 매울수록
푸념은 떡볶이처럼 붉게 발설한다
노을지는 포장마차에서 사람들 떡볶이를 먹고
설왕설래 매운 혀를 손부채질 한다
떡볶이 한 접시가 오열하는 영자씨의
매운 맛으로 오래 갔다
무덤덤한 사람들은 사소한 그녀의 뒷이야기를
알 수 없으므로 미완의 운명
영자씨를 보낸다
서울, 한 개의 달에 엽서가 뜬다
엽서에 너의 이름을 쓰고 있어
호흡하는 자음과 모음들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한 내 안부들이 헉헉대며
한참이나 지나버린 死語까지 끌어와
먼 주소로 보내려고 해
너의 이름과 주소를
막 적어 놓았을 때
일 초에 한번 씩
별을 토해내는 사소한 저녁이야
돌아보면 별자리들이 만발이라
엽서의 모든 여백에 담았어
너의 이름과 주소는 성운으로 빛나겠지
술렁거리는 밤하늘처럼
긴 서술과 서술어를 다 풀어놓을 거야
너의 이름을 적은 자리가
고개 내맨 해바라기 꽃밭 같아
엽서의 사각을 이탈하지 않는 활자들이
평생 늙지 않는 안부로 꿈틀거려
창밖에서 바람이 모여 들었어
우왕좌왕하는 활자들이
어순과 문법에 막 매달렸어
세상에 오래도록 남을 문장으로
내가 너를 덮고 있어서야
내가 나를 읽을 때까지 목소리를 감추고
너의 이름과 주소를 생각해
6. 천향미 시인 - 2007년 등단
크로키 기법으로 외 2편
1.
독수리 문신을 한 사내가 날아오를 듯 해변을 핥고 있다 껌을 씹으며 어깨를 치켜세워 관음의 속도로 바다를 드로잉 하고 있다 눈꺼풀을 놓쳤는지 어깨의 균형이 무너진다 예민한 손끝이 떨리며 투시원근법으로 캔버스에 눈알을 박는다 사내의 눈썰미는 추상에 치우쳐서 사람들은 포르노그라피라고 비아냥거린다 사내가 휘파람을 불며 감각의 승부수를 띄운다 우아한 해안선을 더듬는 눈빛에 탄력이 붙는다 섬세한 웃음을 흘리는 동안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이 햇살을 즐기며 사내를 묘사하고 있다 두터운 음영이 드리워진 날개를 털어내자 사내가 비틀거린다 흔들리는 수평을 버티느라 모래밭에 발목을 심는다
2.
기념촬영이 끝나자 너는 멋진 여행을 당부한다 그리고 퇴화된 내 눈꺼풀 속으로 잠을 밀어 넣는다 낯선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어둠을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불빛을 솎아내어 소리에 집중하는 동안 울음과 웃음이 분류된다 하릴없이 지나친 발자국은 분류되지 않고 꿈결을 밟는다 나는 잠들지 않돌고 숫자를 센다 하나 둘, 매뉴얼을 익히며 모호한 불안을 다독인다 천장에 매달린 무영등이 모빌처럼 흔들린다 날카로운 앵커의 목소리가 오후 2시를 두드리며 내 흐린 의식을 흔든다 마취가 풀리면서 거울 속의 내가 표절된다
롤러코스터
우리의 십이월은 햇살이 두텁다 추위의 볼륨을 높이자 방음벽을 뚫고 겨울 숲이 전송된다 우리는 눈송이를 밟으며 달빛을 다진다 너무 많은 웃음을 소모한다 우발적 키스를 남발하는 입술이 떨린다 귓볼에 매달리는 목소리는 익숙해질수록 낯설다 비명이 쏟아지는 입술에 지퍼를 채운다 나선형의 궤도를 돌아나오는 시뮬레이션게임 탈골된 어깨에서 뼈마디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실핏줄을 갈아 끼우고 날개를 입힌다 가장 낮은 폐허를 견딘 지상의 입들이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어둠을 지탱하던 별들이 이유없이 흔들린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풍문이 배달된다 접경을 지나자 호명되지 못한 낯선 풍경들이 길을 막아선다 엑스자가 그려진 팻말의 경계를 넘어서자 분류되지 않은 계절이 즐비하다 우리는 낙차를 즐기며 공중회전을 계속한다
매듭
입술을 풀고 느슨해진 혀를 묶는다 제멋대로 굴러다니던 말의 조각들 쓸러내며 목에 얽힌 실타래를 삼킨다 소화되지 못한 길이 불심검문에 걸리고 수만 갈래 길들이 소용돌이치며 역류한다 고장난 센서등이 폭포로 쏟아진다 불빛을 숨긴 창문은 안과 밖의 명암이 선명하여 어둠에 버무린 목소리에서 거품이 부글거린다 밍크비누로 얼룩을 채취한다 그늘이 자라 곰팡이꽃을 피운다 나는 빛바랜 길들을 일렬로 끌어내어 매듭을 푼다 플러그를 연결하자 방전된 세상이 흔들린다
7. 이수미 시인 - 2008년 등단.
깊숙이 박혀 나를 울었던 외 2편
숟가락 끝 생선가시가 박혔다
바늘 들고 살 속 헤집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손가락은 번번이 제 살 곪기며
이물질 밀어내려 애썼으나 이미 깊어져버린
고통을 밀어내기엔 늘 뒷심이 부족했다
처음부터 틈을 보이지 말았어야 했어
넌 스스로 내 안으로 들어와 갇혀버렸지만
먼 바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물살의 기억 지우지 못해
끝없이 탈출을 시도했지, 번번이 신경 건드렸어
헤집을수록 깊어지는 건 상처뿐, 어쩌면
네 발목을 잡는 건 함께 하는 동안 길들여진
네 몸에 대한 나의 기억이었는지도 몰라
그저 품고 살고 싶었을 뿐인데,
오늘 또 성가시게 칭얼대는 신경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다시 바늘을 든다
삼 년 동안 심장 깊숙이 박혀 나를 울었던
너를,
그러나 나는 끝내 캐내지 못하고
칼데라湖*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오던 풍문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아버지와 형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안에 쌓인 잠을 자고 불안에 쌓인 밥을 먹으며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거친 말들을 던졌다
기폭제는 계절을 떠돌던 건조한 바람이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들끓던 분노의 화기가
바람과 정면으로 부딪히며 발화돼
정수리를 뚫고 뿜어져 올랐다
막혔던 숨골이 열리고 두개골 중앙으로
커다란 분화구가 형성되었다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침묵으로 삼켰던 울음들이
함몰된 정수리 내벽을 타고 분화구로 흘러들었다
내 몸속 칼데라호 그곳에
뢴트겐미터기에도 잡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괴물 석식하고 있다
괴물은 예고없이 출몰했다
한바탕 뇌수를 휘젓는 용트림이 시작되면
카페인을 덩어리째 삼키고서야 겨우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괴물 사냥꾼이 건네준 진단서에 의하면
'칼데라호 바닥에 어마어마한 괴물 잠들어 있음, 곧 호수 폭발이 예고 됨'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대, 지금부터 나를 고위험성 인물로 분류하라
* 칼데라호 -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
까치집
시의 집을 만들려고
없는 재주 쥐어짜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한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시인들이 갓 지은 집 들여다 본다
거미집, 물 집, 바람의 집, 거푸집 등속
비슷한 구조와 디자인들 즐비하다
좀처럼 집은 만들어지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집 밖을 나와 서성이는데
때마침 저녁 노을 속으로 날아가던 까치
툭, 한 마디 던진다
"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는 거지요"
8. 이광찬 시인 - 2009년 등단.
소리의 유령 외 2편
1
윗집 여자는 매일 아침 수문을 연다. 눈 뜨자마자, 습관처럼 일어나 제 몸을 열고 오줌을 눈다. 밤새 묽어진 몽환의 찌끼들을 몸 밖으로 버리고 여자가 몸 안에 갇혀 있던 물길을 툭하고 튼다. 똘똘똘, PVC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천장을 타고 내려와 저 지하 수천 미터 아래로 방류되는 소리, 소리들.
2
내 귓가에는 비명처럼 한 생을 살다 간, 소리의 유령들이 살고 있다. 모두 한결같이 주인에게 버려진 것들 뿐인, 그 소리들은 때로 아주 멀고도 가깝게 들려오곤 한다. 소리에게도 처소가 있을까. 더는 쓸모없어진 몸뚱이에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은 건지 빈 깡통 하나 길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 요란하다. 버려진 것들은 결코 침묵하는 법이 없다. 버려진 순간, 발목이 잘려 허공을 붕붕 날아다니는 소리의 영혼들은 지금쯤 어느 깊은 산중을 두서없이 헤매고 다닐는지 모른다. 개중에는 바닷가 파도에 떠밀려온 소라껍질을 제 집인 양 드나드는 정신 나간 넋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대문을 쾅쾅 여닫거나 옆집 유리창을 깨고도 시치미 뚝 떼면 그만인 소리들이 오늘도 밤고양이처럼 덜컹거리는 창문 밖을 어슬렁거린다.
3
종일 떠드는 목소리가 하수구로 흘러가는 물처럼 와서 고이는 반지하 셋방. 밀린 방세를 받으러 왔다가 몇 마디 쓴 욕설로 사라진 주인댁 여자는 언제쯤 저 요란한 水門을 닥칠 수 있을까? 먼지처럼 흩어진 소음들이 밤새 무덤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귓속이 간지럽다.
프로아나*
하품하는 정육점 여인의 입 속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권태의 편육들, 삶과 죽음의 근수를 정확히 재는 저울이 있다면 저 영혼의 무게는 과연 몇 g이나 될까?
여전히 비대한 당신, 당신이 나를 거부한다.
* 프로아나(pro-ana) - 거식증을 동경하는 사람들.
구멍의 계통수
수 세기 동안 밤은 어둠을 낭비했다. 바다는 파도를 낭비하고, 시계는 틈틈이 시간을 낭비했다. 낭비하고 낭비하고, 분비하고 분비하고, 내 불알 밑은 점점 부실한 정자들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오늘 나는 20년 넘게 부어온 적금을 깼다. 한 여자를 위해. 그러므로 마이너스 통장 잔고에 구멍을 내는 0은 부실한 정자가 건실한 난자를 만나는, 원스톱 대출경로인 셈이다.
달거리는 이제 더 이상 여자만 누리는 사치가 아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나는 가까운 정자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한다. 종족본능은 애당초 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고 적부터 우리는 로또 같은 확률로 도박을 했는지 모른다. 모는 구멍과 부실은 여자와 한 통속이다. 不姙은 어느 낭비벽이 심한 구멍의 비참한 末路이다.
어둠이 낭비하고 있는 구멍 속에는, 권총이 난사한 총알 자국이 여러 개 박혀 있다. 죽음을 낭비한 자들의 삶 속에도 이런 문양이 새겨져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여명은, 밤이 어둠을 몽땅 탕진했을 때 받는 개평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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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의 신예 시인 8인 : 역동성의 기류들
- C. G. 카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 그의 삶은 필연적으로 갈등으로 가득하다. 한편에는 행복, 만족, 생활안정에 대한 정당한 요구들이, 다른 한편에는 모든 개인적 소원들을 땅에 던져버리는 무자비하고 창조적인 열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도 많은 예술가들의 개인적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비극적이기도 한 것이다."
# 박연숙 시인 - 언어 모험의 폭발성
어둠은 달착지근하게 늑골쯤에 고여 있다 폐부 아래 낭자한 바람의 호흡을 짚어간다 골목을 읽기도 전에 흘깃 넘어가는 페이지, 입을 열면 얼음이 쏟아진다 여백으로 꽉 찬 허공을 건너뛰며 새겨놓은 글씨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히에로글리프, 언제부턴가 고양이는 가르릉대는 별의 무덤을 펼치고 있다 천둥번개생선뼈목이천리나되는긴짐승거북의말들먼지로쓰인얼굴이 해독되지 않는다 문맹이란 죽어버린 별의 페이지가 너무 무거워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것, 숨을 멈추면 폐기된 글자의 기원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숟가락에 펄떡거리는 심장을 얹었던 마추픽추, 입김과 날개로 뎁히고 식혔던 로제타의 늑골에 등을 단다 나의 캄캄한 묵독을 위해 고양잉들이 불빛 주위로 모여든다 누군가의 가슴에 밑줄을 긋는다 제 몸을 태우는 유성에서 수없이 태어난 골목들이 저마다 깊숙한 곳에 비석을 세우다 사라진다
- [흰책읽기] 전문
박연숙 시인은 언어의 사용이 모험적이다. 모험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흰책읽기]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언어모험은 [서른 세 개의 부리를 가진 새]에서 그 구체적 실체를 확연히 한다. [흰책읽기]는 제목에서부터 이어지는 의도된 방향의 관념으로 등치시키려는 시도가 드러난다. 우리에게 [흰책읽기]의 주체적 의미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우리는 '읽기'와 '흰책'이라는 행위와 사물을 "흰책읽기"라는 관념의 이미지로 치환하는 시인의 상상력을 음미한다. 시인은 "우아한 관계"란 부제를 붙여서 "흰책읽기"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어둠은 달착지근하게 늑골쯤에 고여"있음을 인지하는 능력을 돋보이게 한다.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투시력은 "폐부 아래 낭자한 바람의 호흡을 짚어간다 골목을 읽기도 전에 흘깃 넘어가는 페이지", "여백으로 꽉 찬 허공을 건너뛰며 새겨놓은 글씨"에서부터 종결부의 "누군가의 가슴에 밑줄을 긋는다", "골목들이 저마다 깊숙한 곳에 비석을 세우다 사라진다"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세계를 끌고 들어가는 상상력이 즐비하다.
[서른 세 개의 부리를 가진 새] 에서 시인은 모험의 닻이 구체화된 세계를 보여준다. "구름 한 장을 타자기에 넣고 키보드를 두드리자"라는 시문은 자연과 문명이 환상적으로 시인의 책상 위에서 만남을 보여준다. 그러한 시인의 이미지는 힘 있는 주제를 만나면 심각한 폭발력을 지닐 것 같다.
# 오늘 시인 - 투명한 알레고리와 상징력
혹市와 어쩌面, 그러里에 입만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귀 없는 대통령을 버리고 아마도라는 섬으로 떠나던 날 대통령은 긴 앞니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휘파람은 지나가는 바람을 모조리 잡아 아마도에 가둬버렸고 배고픈 바람은 좁은 아마島에서 서서 자는 사람들의 목을 하루에 한 뼘씩 늘려 놓았다 사람들은 팔보다 더 길어진 목을 휘청거리며 섬에 송곳니를 함부로 뱉기 시작했다 누워 자던 지난 날들을 그리워했다 그래야 할 때를 잘 아는 귀 없는 대통령이 아마道를 향해 두 앞니를 사다리처럼 흔들어대자 사람들은 아마島에 주저주저한 나무들로 배를 만들어 혹市와 어쩌面 그러里로 다시, 향했다
그래島에 사는 사람들이 사다리 위에 목을 받치고 서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아직島에 사는 사람들은 잘린 밑둥을 세며 아마島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듣고 있다
- [아마島에선 사다리가 필요해] 전문
오늘 시인의 '알레고리'는 명료하다. 우리는 시인의 언어식의 구사를 말한다. 명료함은 행복감을 준다. 시문체의 구성은 하나의 디자인이다. 완전한 곡선과 균형을 이룬 연결들은 내부구조의 미학을 현시한다. [아마島에선 사다리가 필요해]는 알레고리 시편이다. 하지만 오늘 시인의 알레고리는 원관념이 오로라와 같은 파장을 내고 있어 어느 정도 상징화 되어 있다. 그러나, 각 시문의 제시는 매우 명료하고 깔끔하게 재단된 문장들로 구성되어 완전한 형식미를 보여준다. 오늘 시인은 형식미가 주제적 의미 이상으로 돋보인다. 시문이지만 산문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산문적 명료성은 시문의 명제로서 다른 의미를 지시한다. 우리 시단에서 이만한 시문을 작성하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자신감에 찬 시문의 이면에는 상징을 의미하는 반사광이 빛난다. 알레고리만을 고려한 문장은 아니다. 개성적인 시문이다. 시문을 이렇게 투명한 자세로 쓸 수 있다니, 놀랍다! 이러한 시문들로 구성된 한 권의 시집은 깔끔히 편집처리된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줄 것이다. [할렘광장의 래퍼]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상미학을 받아들인 깨끗한 형식미가 개성적으로 돋보인다.
# 김봉식 시인 - 절제된 언어의 견고함
돌은 진리와 진실을 상징한다. 진실 아래 고여 있는 눈물은 희생의 상징이다. 눈물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눈물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김봉식 시인은 문자를 견고하게 응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해 '희생'을 눈물로 돌 속에 봉인한다. 눈물이 숨겨인 "돌은 울지 않는다". 그러나 돌은 눈물로 일렁이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진실이 봉인된 돌은 또 한 번 깨뜨려진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그때서야 돌 속의 눈물을 볼 수 있다.
시인의 '돌'은 "상처를 밀어 올리지 않는다", "부서지거나 깨어지면 그뿐"이다. "그러나 돌 속에는 많은 눈물이 감추어져 있다", "돌을 깨물어보면 안다", 시인의 시편 [돌은 울지 않는다]는 매우 단단하다. 축약된 시어들의 사용이 눈물의 의미를 견고하게 함축한다. 우리들 시인은 '돌'과 같은 사람들이다. 시인들은 눈물을 키워 돌을 만든다. 돌보다 못한 시인의 행색과 행태는 집안과 사회의 안팎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시인이란 눈물을 돌처럼 삼키는 운명을 살아가야 한다. 시인들ㅇ은 빛나는 황금으로 넘쳐나는 사회의 외진 곳, 구석 모퉁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지내야 한다. 시인은 돌 속의 눈물임을 김봉식 시인은 예리한 눈으로써 제시해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기일]에서도 돌처럼 몸을 숨기는 시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를 접는 날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애인 집 앞을 서성대다
마음을 접는 날
받지 못한 생계, 독촉을 위해
미수금 내역을 접는 날
오늘은,
아버지가 세상에 풀어 놓았던 관절을 접은 날
顯考學生府君神位 앞에 공손히
내 몸을 접는 날
- [忌日] 전문
시인의 시편은 견고하게 등을 웅크려 눈물을 감춘다. 지난한 인생살이 속에서 시인은 몸을 접고 또 접어 아버지의 '기일'앞에 선다. 시인의 돌은 눈물로 뜨겁다. 하지만 발화하는 시도 어떻겠는가. 시인의 단단함은 몇 편의 시로써 충분히 보여주었다. 김봉식 시인 같은 이의 언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김봉식 시인에게 이제는 돌 속의 눈물을 햇빛 속에 활짝 열어 보여주길 주문한다.
# 문길 시인 - 에너지, 영감, 구체성의 가능성
강한 영감적 기운이 문길 시인의 몸속에는 회오리치고 있다. 주제를 현실계와 밀착시킨다면 문길 시인은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 같다. 시인은 좋은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좋은 정신을 표상할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시는 빛이나 사물의 뒤편에서 우울할 수 있다. 힘이 좋아야 하는 것은 성악이나 기악이나 시나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문길 시인은 에너지를 시예술에서 요구하는 '영감'과도 결부시키는 재능을 갖고 있다. [나쁜 남자]는 문길 시인이 잘 의식하고 있듯, "응시의 가시거리를 완전히 놓아버릴 때, 그 무구한 경계는 글자들의 무덤 위로 일어서는 거다", 사실, 그러하다. 그러나 역으로 "응시의 가시거리"를 너무 멀리 잡을 때 [나쁜 남자]는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시인의 영감적 에너지와 비유의 기술을 보다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문길 시인의 강한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나쁜 남자]에서이고, 영감적 재능을 느끼는 것은 [백작 가든 아래서]이다. 그리고 주목받을 가능성은, 삶과 보다 밀착된 시편 [장판수]에서이다. 그 세편의 장점들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문길 시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바람이다. 이런 얘기는 사실은 술좌석에서 해야 할 것이지만 모두가 바쁘고, 건강의 문제도 있고 해서 이렇게 지면을 빌린다.
오토바이 음주운전으로 장판수가 죽었다
상여는 숲으로 먹혀들어 갔고
지리산은 사람하나를 또 먹는다
사람을 먹고 꽃을 피워 올리거나 안개를 자주 토해내는 산은
有無의 편지를 곱게 읽어주는 것이어서
시체를 받아들이는 흙이 곱다
이쪽 동네에서는 소금장수가 바다를 자꾸 사라고 외친다
장판수가 지난 날 먹었든 소금수분이 바다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고요한 길 구불텅구불텅 돌아가는 소금 길 맑다
소금장수가 동네를 돌아, 돌아 장판수 집에서
휴우, - 바다는 참 무거워요, 하고 밥을 얻어먹는다
소금양념이 어우러진 바다는 젖어 있다
주인을 떠나보낸 옷들을 태우자 문명의 냄새는 바다처럼 짜다
떠난 자와 떠날 자가 끈이 풀어진 상가 마당가
죽음의 비밀들은 풀어진 상태다
물 건너 송장 후보들이 쯔 쯔 단음을 내뱉고 뒤돌아간 뒤
소금장수는 무거운 바다를 차에 싣고 떠났고
장판수가 주는 마지막 알코올에
동네 사람들은 소금양념 안주를 먹으면서 취했지만 조용했다
술이 오토바이 바퀴를 흔들리게 해, 장판수를 지워버린 날 이후
- 잘 가라, 장 판 수
이별 음들은 안개처럼 떠돌아다녔다
- [장판수] 전문
# 추종욱 시인 - 행복한 비유의 재능
엽서에 너의 이름을 쓰고 있어
호흡하는 자음과 모음들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한 내 안부들이 헉헉대며
한참이나 지나버린 死語까지 끌어와
먼 주소로 보내려고 해
너의 이름과 주소를
막 적어 놓았을 때
일 초에 한번 씩
별을 토해내는 사소한 저녁이야
돌아보면 별자리들이 만발이라
엽서의 모든 여백에 담았어
너의 이름과 주소는 성운으로 빛나겠지
술렁거리는 밤하늘처럼
긴 서술과 서술어를 다 풀어놓을 거야
너의 이름을 적은 자리가
고개 내맨 해바라기 꽃밭 같아
엽서의 사각을 이탈하지 않는 활자들이
평생 늙지 않는 안부로 꿈틀거려
창밖에서 바람이 모여 들었어
우왕좌왕하는 활자들이
어순과 문법에 막 매달렸어
세상에 오래도록 남을 문장으로
내가 너를 덮고 있어서야
내가 나를 읽을 때까지 목소리를 감추고
너의 이름과 주소를 생각해
- [서울, 한 개의 달에 엽서가 뜬다] 전문
시의 본질은 비유이다. 추종욱 시인은 비유에 능한 시인이다. 위 시문은 시인의 비유의 재능을 보여준다. "호흡하는 자음과 모음"은 시인이 사물의 관계를 관찰하는 사유의 힘을 함께 지녔음을 보여준다. [서울, 한 개의 달에 엽서가 뜬다] (이하 '[서울]') 시편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추종욱 시인의 비유는 [떡볶이를 생각함]에서는 우리 일상의 소시민을 대표하는 '영자씨'의 불행한 사연을 얘기한다. 평범한 우리 이웃 '영자씨'에 대한 추종욱 시인의 비유는 [클릭, 트래블로그]에서는 개별화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개인상으로 옮겨간다. 인간애에 바탕한 동일체의 의식에서 우리 사회는 자아 중심의 파편적 개별화로 진행되고 있다.
[클릭, 트래블로그] 시편은 주어진 우주계에서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채 프로그램 제작자에 의해서 제공된 가상의 우주에서 모험과 여행을 즐기고 희망과 좌절을 경험하고 배설하는 주체를 보여준다. 우리는 단일 운명체, 단일 공동체라는 사회적 의식에서 점차 개별화된 우주 속에서의 단독자인 모나드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모나드처럼 우리 사회의 주체들은 '신'과도 같은 그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운행하는 소우주가 되어가고 있다.
추종욱 시인의 시편은 [서울] => [떡볶이를 생각함] => [클릭, 트래블로그]의 순으로 시인의 자화상이 우리 사회의 변모상에 투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시인은 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되어지는 자가 아니라 환경에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변신을 보여주길 바래본다. [서울] 시편과 같은 비유의 재능이 사회에 대한 주체적 발화자로서 표상되어질 때 시인의 사회적 책무가 실현되리라 생각한다. 일전에 박상륭 작가는 많이 쓴느 것이 보디사트바行이라는 메모를 보내온 적이 있다. 보디사트바란 '이타적 완성을 구하는 자'이다. 시인은 결국은 이타적 보디사트바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밀폐된 자신의 창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시인에게 내일의 문운을 기원한다.
# 천향미 시인 - 천부적 이미지 조작술
천향미 시인은 현란한 이미지 조작술을 보여준다. 10여 년 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보드리야르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이미지의 폭력'에 관하여 매우 훌륭한 시적인 논고를 한 시간 여에 걸쳐 낭독했다. 화면에 제공되는 논고의 문장들은 한행 한행이 수사학적 시편들이었다. 사회를 맡은 모 대학의 교수가 보드리야르에게 이미지의 지배로부터 탈출하는 길을 묻자 보드리야르는 냉정한 어조로 "없다!"고 답하였다.
이미지란 우리 인식의 본질소이다. 인간의 사고는 다름아닌 '상징'이다. 상징은 감각적 이미지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다루는 시의 원리는 이미지의 조작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유'라고 한다. '비유'는 다름아닌 '사고' 그것이지만 사고의 내용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기호'가 그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미지 조작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2004년 데리다의 죽음 이후 포스트모던의 담론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단은 이미지 조작의 황금기에 이른 느낌이다. 과연 우리는 이미지 조작에서 무엇을 얻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당시 보드리야르가 어떤 생각에서 이미지의 폭력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없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그것은 본질적인 견해이다. 삶은 환영(마야)이다. 과학의 이론조차 허구적 이미지들의 구조물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감각적 사실과 부합한다는 것일 뿐이다. 우리 시인들의 '이미지' 역시 생각해보면 '환영'들의 구성체이다. 과학과 다른 점은 과학이 허구적 이미지에서 감각적 진실로 진행한다면, 시는 감각적 허구에서 존재적 실체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천향미 시인의 [크로키 기법으로] 외 두 편 역시 감각의 허구를 통해 존재론적 실체 또는 진실을 이야기 하려 한다. 그것이 '비틀거리는 사내의 발목' 같은 우리 시대의 인간상이든, "표절"되는 사회상이든 혹은 그 너머의 무엇이든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 시단의 많은 시인들이 이미지의 운무 속에서 이미지의 대리인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견해로는 천향미 시인 같은 이미지 조작에 능한 시인들이 앞 시대의 이미지 조작군의 시인들의 상속자가 되어 그들의 빚을 함께 짊어질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다. 신진은 선배와 스승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 천향미 시인은 이미지의 조작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향성이란 시와 삶에 대한 '가치'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깨달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가치'에 관한 관심은 시인의 '정신'에 관한 문제이다. 수사학은 시인의 재능이다. 그러나 재능은 정신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천향미 시인의 재능은 충분하다. 이제는 그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당분간은 시를 쓰지 말고, 생각의 화두를 잡고 시간을 갖는 것도 시를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 이수미 시인 - 기하학적 조형술의 구성력
시인은 자신을 타인으로 만들어가는 자이다. 시인은 자신을 말하지만 타인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이수미 시인은 조형력이 돋보인다. [까치집], [칼데라호],[깊숙이 박혀 나를 울었던]은 모두 빈틈없는 구성을 갖고 있다. 오래 원고를 묻어두고 퇴고를 거듭하였을 것이며 어떤 경우는 몇 번을 뒤집어서 다시 썼을 수도 있다. 지독한 집념의 소유자가 아니면 이런 빈틈없는 구성은 이루기 힘들다. 그런데 구성력은 여러 번 고쳐 쓰는 가운데 이룰 수도 있지만 이미 숙성된 소재의 시는 자동기술에 의해 즉시적으로 기술될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좋은 구성력을 보이는 시인은 행복하다.
이런 시인의 시편들의 경우 한편 한편으로는 시인의 능력이 간과될 수 있지만, 시편 전체를 통한 시집으로는 주목을 받을 수가 있다. 이것은 시인의 개별 시편들의 소재나 주제가 편차를 가짐으로써 시집을 통해 시인의 정신과 보편적 주체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람직한 것은 시집을 내기 전부터 발표되는 각 편의 시에서 시인의 세계와 정신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자신을 타인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시는 그 시대 사회의 꿈이자 '신화'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기 이전에 융이 한 말이기도 하다.
집단적 무의식이 체험 속으로 밀고 들어오고 시대의식과 결합할 때는 언제나 그 시대 전체와 상관있는 창조 행위가 발생한다. 그러면 그 작품은 매우 깊은 의미에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는 메시지이다 - [융기본저작집], P170-171.
시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 무의식을 시편에서 토로하거나 자신의 일을 드러내는 '자기 전경화'는 피해야 한다. 이것은 시인의 시작 기술의 문제를 넘어서 시인의 정신과 자세,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언제나 가슴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시인은 사회에 대한 그 어떤 역할과 책무를 지닌 공인이다. 훌륭한 구성은 뛰어난 집중을 요구한다. 이수미 시인의 경우, 동 시대 사회의 그 어떤 특정한 분야나 층위의 삶의 문제를 시에 끌어들여보는 것이 시인의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한느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이광찬 시인 - 탁월한 '동일화'와 비가시계의 인식력
시의 본질은 '비유'이지만, 시의 원리는 '동일화'이다. 그런데, 이 '동일화'는 사고의 원리 그것이기도 하다. 이광찬 시인은 동일화 능력이 뛰어나다. 그것은 사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일화 즉, '비유'의 능력은 [구멍의 계통수]에서 현란하게 드러난다. 이 시편에서 이광찬 시인은 '낭비'의 주체를 여러 자연현상과 경제현상들과 연결하고 있다. 그 넘나듦의 자유로움과 보폭은 마치 축지술을 보여주는 듯 그 발걸음이 현란하다.
수 세기 동안 밤은 어둠을 낭비했다. 바다는 파도를 낭비하고, 시계는 틈틈이 시간을 낭비했다. (중략) 마이너스 통장 잔고에 구멍을 내는 0은 부실한 정자가 건실한 난자를 만나는, 원스톱 대출경로인 셈이다. // (중략) / 여명은, 밤이 어둠을 몽땅 탕진했을 때 받는 개평 같은 것이다.
- [구멍의 계통수] 부분.
이광찬의 '동일화'는 '버림받은' 존재들 또는 소외된 삶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오늘 나는 20년 넘게 부어온 적금을 깼다. 한 여자를 위해" ([구멍의 계통수]) 같은 시행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히 [소리의 유령] 에서는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내 귓가에는 비명처럼 한 생을 살다 간, 소리의 유령들이 살고 있다. 모두 한결같이 주인에게 버려진 것들뿐인, 그 소리들은 때로 아주 멀고도 가깝게 들려오곤 한다. 소리에게도 처소가 있을까. 더는 쓸모없어진 몸뚱이에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은 건지 빈 깡통 하나 길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 요란하다.
- [소리의 유령] 부분.
이광찬 시인에게서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비관찰 대상인 미시계의 현상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소리의 유령"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예사롭지가 않은데,
(전략) 버려진 것들은 결코 침묵하는 법이 없다. 버려진 순간, 발목이 잘려 허공을 붕붕 날아다니는 소리의 영혼들은 지금쯤 어느 깊은 산중을 두서없이 헤매고 다닐는지 모른다. 개중에는 바닷가 파도에 떠밀려온 소라껍질을 제 집인 양 드나드는 정신 나간 넋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대문을 쾅쾅 여닫거나 옆집 유리창을 깨고도 시치미 뚝 떼면 그만인 소리들이 오늘도 밤고양이처럼 덜컹거리는 창문 밖을 어슬렁거린다.
3.
종일 떠드는 목소리가 하수구로 흘러가는 물처럼 와서 고이는 반지하 셋방. (중략) 먼지처럼 흩어진 소음들이 밤새 무덤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귓속이 간지럽다.
- [소리의 유령] 부분.
이광찬 시인은 '소리' 현상으로 포착되는 비가시적 세계의 존재들을 천연덕스러울 만큼 가시계의 존재처럼 다루고 있다. 그러한 사유는 [프로아나]에서도 "삶과 죽음의 근수를 정확히 재는 저울이 있다면, 저 영혼의 무게는 과연 몇 g이나 될까?"라는 시문에서 볼 수 있다.
이광찬 시인의 시적 사고의 능력은 범상하지 않다. 사고의 능력은 본래가 통찰적이고 직관적이다. 그것이 영감적 기능으로 표출되는 게 일반적 시작 형태이다. 그런데 이광찬 시인은 자동기술적 영감에 시문을 맡기기 보다는 소재를 묵혀 두었다가 충분히 구상된 상태에서 쓰기도 하지만 [구멍의 계통수]에서는 비교적 즉시적 자동기술에 많이 의존한 듯도 하다. 아무튼 간에 그의 시적 사고의 능력은 돋보인다. 한 가지 향후의 시작에 있어서 보완적 주문을 원한다면, 시문이 자학적이고 자괴적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러한 표현들이 버려지고 소외된 대상들을 향한 시인의 시선과 미학적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시편의 '주제'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광찬 시인의 슬기로운 해결책을 기대해본다. 향후 우리는 훨씬 변모된 이광찬 시인의 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변의수 - [현대시학] 시 발표로 시단 활동. 시집 [먼 나라 추억의 도시]. 시, 소설, 미술평론집 [신이 부른 예술가들] 외.
첫댓글 종욱이 형, 봐염. 한 3시간 걸렸나봐. 이궁, 고개 아프고 손목 아프당. 별 거 아니라고 덤볐더만, 휴~ 꽤나 힘드넹. 암튼, 잘 봐염. 책이 언제 도착할 지 모르겠지만....우선 이걸로 대신.
광찬아 많은 글을 쓰느라 많이 힘들었지 올려줘서 고맙다
종욱씨 월욜 책 보내려고 했는데 눈이 넘 와서 출근 못했네... 목요일날 보낼게요..
우와~ 광찬씨 정성 대단하네요. 손목 좀 아팠겠어요.
에고,, 대단한 정성이다.. 수고했샤^^
아이고 광찬 이제사 수고 인사 복사가 아니라 손치기 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