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성경도 아카데미 BIBLIST ACADEMY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매튜 헨리 스크랩 매튜 헨리 주석 빌립보서 1장
한산 추천 0 조회 225 11.06.08 22: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매튜 헨리 주석 전집(전 21권),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7

 

소개의 글

 

매튜 헨리 주석은 전설적이다. 이것은 주석의 고전이요, 경건의 고전이다. 이것은 단순히 필요할 때 참고하기 위한 주석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 하는 경건서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타 주석과 구별되는 큰 특징이다. 매튜 헨리 주석은 설교자를 위한 책일 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영적 성장과 큐티를 위해서 대단히 유용한 책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주석을 사용해 왔으며, 시간의 시험을 이기고 오늘날에도 우뚝 서 있다. 이미 300년(1704년 첫 출간)이 지났으나, 주석학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영적이고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이 책의 통찰력과 교훈들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던 찰스 스펄전은 모든 주석 중에서 매튜 헨리 주석을 첫째로 손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튜 헨리는 가장 경건하고 명쾌하며, 건전하고 분별력있고, 시사적이고 진지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신뢰할 만하다. 은유와 유비가 번득이며, 예화와 묵상이 아주 풍부하다. 모든 목사는 최소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정독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신학교를 졸업한 후 열두달 안에 매튜 헨리 주석 전체를 독파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만약 당신이 방금 읽은 구절을 강해한다면, 회중들은 당신의 설교의 신선함과 사상의 깊이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매튜 헨리가 얼마나 보물인지 말하게 될 것이다.”

 

조지 휫필드는 이 주석을 네 번이나 정독하고 항상 위대한 매튜 헨리를 극찬했으며, 로버트 홀, 윌리엄 쿠퍼(찬송가 작사자)등도 이 주석을 정독하고 그들의 설교와 찬송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도 이 주석에서 나온 것이 있다. 경구와 뛰어난 구절들은 영어권 국민들에게 격언이 되었다.

 

그동안 영어 원문이 난해하여, 매튜 헨리의 원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여 한국독자들에게 사장되어 온 감이 없지 않다. 이제 이 새 번역본은 매튜 헨리의 원 의도를 정교하게 재현하게 될 것이다. 본 주석에서는 개역개정판 성경을 사용하였다.

 

 

 

 

 

 

 

 

 

 

빌립보서 (전집 20권) 941-1012

 

서론

 

빌립보는 마게도냐 서부지역의 중심도시였다. 행 16:12에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라고 나온다. 그곳의 지명은 마케도니아(그리스)의 유명한 왕이었던 필립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그곳을 개조하여 아름답게 만든 왕이었다. 그곳은 훗날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빌립보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이 서신으로 말미암아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 서신은 바울이 주후 62년에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쓴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였다. 바울은 그가 친히 세운 이 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교회를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각별히 보살폈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우리를 보내셨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더 큰 선을 행하도록 항상 힘쓰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도는 그들을 복음으로써 낳은 자녀로 생각했다.

 

1 사도는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도록 특별한 방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보다 앞서 가심을 보았다.

 

2 빌립보에서 그는 혹독한 고난을 받았다. 그는 매질을 당하고, 차꼬에 깨워졌다(행16:24). 우리는 원수들이 아무리 학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3 빌립보 교회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루디아와 간수 그리고 그 외 몇 사람이 거기서 개종했을 뿐이다. 사도는 실망하지 않았다. 비록 처음에는 좋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좋아질 수 있고, 마지막은 크게 번창할 수도 있다. 우리는 미약한 시작으로 절대 실망해서는 안 된다.

 

4 교회는 점차 부흥했으며 특별히 형제들이 바울에게 각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현재의 일들에 관해 열매를 거두었고, 영적인 것으로 보답을 받았다.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 준 선물을 받았음을 인정했다(4:18). 이렇게 그와 주고 받은 것은 이 교회 외에 다른 교회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25). 그는 그들에게 선지자의 상급 곧 사도의 상급을 제시하고, 그것이 세상의 금은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제 1 장

 

개요

 

사도는 헌사와 축도로 이 편지를 시작한다(1,2절).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한다(3-6절).

그들의 영적 행복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고(9-11절),

자신의 고난에 대한 그들의 비난을 방지하려는 조심성을 보여주고(12-20절),

죽으나 사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는 자신의 각오에 대해 밝힌다(21-20절).

마지막으로 엄격함과 견고함을 요청하는 두 가지 권면으로 이 장을 끝맺는다(27-30절).

 

1-2절

 

1 이 서신의 발신자- 바울과 디모데

바울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겸손을 표현하고, 디모데의 영예를 높여주기 위해 그를 자신과 같은 위치에 포함시킨다. 나이가 많고 강하고 저명한 사람들은 연소하고 약하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 명예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가장 위대한 사도 그리고 가장 저명한 사역자들의 최고의 영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데 있음을 유념하자, 그들은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다.

 

2 이 서신의 수신자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그는 사역자들보다 교회를 먼저 언급하고 있다. 사역자들은 교회를 위한 사람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그들을 위해 곧 그들의 위엄과 지배와 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회를 위해 곧 교회의 덕과 유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1:24).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일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교회의 종이 된 사람들이다.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성도란 하나님을 위해 따로 세움 받거나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시적 신앙고백이나 실제적 거룩함을 통해 성별된 자들이다. 땅에서 실제로 성도가 아닌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서도 성도가 아니게 될 것이다. 모든 성도 속에는 가장 비천한 사람들, 받은 은사가 거의 없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된다. 모든 면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해서는 안 된다(약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로 인정 받는 자들이고 그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성도들일지라도 죄인으로 나타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다.

2) 사역자들 곧 교회 직분자들-감독들과 집사들(1절).

감독은 장로를 말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그 직무다. 집사는 가난한 자들의 관리자로서, 하나님의 집의 외적 업무들을 처리했다. 곧 교회 건물의 장소와 시설의 관리, 사역자들의 부양,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을 임무로 했다. 사도는 단지 자신이 감독과 집사로 부르는 두 직분만을 인정했다. 감독과 장로의 두 직분은 서로 다른 구별된 직분과 사역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성격과 호칭, 동일한 자격, 동일한 직무, 동일한 영예와 존경 등을 함축하고 있다.

 

3) 축도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서신에 공통적인, 아니 거의 단어까지 일치하는 축도로서, 우리는 여기서, 비록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형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구약의 유일한 형식 기도는 제사장의 축도다(민6:23-26):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신약에서도 변함없는 축도의 한 형식이 있는데, 간구되는 선은 영적 선 곧 은혜와 평강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호의와 선하신 뜻을 말하고, 평강은 그 은혜의 모든 복된 열매와 결과를 의미한다. 이것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하자.

1 은혜 없이는 평강도 없다. 내적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식할 때 온다.

2 은혜와 평강은 오직 모든 축복의 원천이자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1:17).

3 하나님 우리 아버지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은 무조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온다.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는 모든 영적 복들을 교회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그 모든 지체들에게 그것들을 적절하게 나누어주시는 분이다.

 

3-6절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

1 바울은 그들을 기억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그들을 자주 생각하는 것 만큼 자주 그들에 관해 말했고, 들려오는 그들에 관한 소식을 즐겁게 들었다. 멀리 있는 친구의 행복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2 사도는 기쁨으로 그들을 기억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자신의 영예, 자신의 위로, 자신의 영광으로 간주했다. 자신이 고난 당한 그곳을 언급할 때마다 즐거워했다.

 

3 사도는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기억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4절). 친구들을 가장 좋게 기억하는 것은 은혜의 보좌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로해 달라고 기도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자유롭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4 사도는 그들과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다.

우리는 즐거워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위로받는 일에 대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거룩한 즐거움이 감사하는 찬양의 심장이자 영혼이라면, 감사하는 찬양은 거룩한 즐거움의 입술이자 언어다.

 

5 기도할 때처럼 감사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3절).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와 위로, 은사와 유익에 대해, 우리가 그것들을 받은 것처럼 감사해야 하고, 그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서 받은 위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5절). 아무리 미천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가장 위대한 사도들과 똑같이 복음에 참여한다. 그들은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벧후1:1). 진심으로 복음을 받고, 수용하는 사람들은 첫날부터 그것에 참여하게 된다. 복음의 모든 약속과 특권들에 참여하게 된다.

2 그는 그들에 대해 가졌던 확신 때문에 감사한다(6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이란 일반적으로 그들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세상 속에 기독교를 심으신 분이 세상 끝날까지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되고, 신비의 몸이 완성될 때까지 교회를 소유하실 것이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지고, 음부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16:18). 그러나 교회는 특수한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따라서 어디에 세워지든 간에, 그것은 은혜의 사역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은혜의 활동은 착한 일 곧 복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착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착한 일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들고, 우리를 하나님의 즐거움에 합당한 존재로 만든다. 그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을 가져오기 때문에 당연히 착한 일이라고 불릴 수 있다.

2) 이 착한 일은 어디서 시작되든 간에,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우리 자신이 그것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본질상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엡2:1,골2:13)

3) 은혜의 활동은 현세에서는 시작만 있다. 그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4) 만일 착한 일을 시작하신 동일한 하나님이 그것을 완수하고 끝내는 일을 맡지 아니하신다면 그것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의 일을 종결하고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하거나 굳게 믿어야 한다.

6) 은혜의 활동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곧 그분이 다시 나타나는 날까지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10).

 

7-8절

 

사도는 여기서 자신이 그들에 대해 가졌던 열렬한 사랑과 그들의 영적 행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그는 자신의 영혼처럼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은 그의 마음 가까이에 있었다.

1 그는 왜 그들을 마음 속에 두었는가: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7절). 너희는 수고와 고난에 있어서 나와 함께 한 자들이다. 그들은 사도에 대한 연민과 염려와 그를 도울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의 고통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다. 사도는 그들이 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있어서 자기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했다. 함께 고난 받는 자들은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과 믿음에 관한 동일한 선한 이유로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말미암아 서로 절실하게 사랑해야 한다. 사역자들에 대한 가장 진실한 존경의 표시는 그들이 전하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2 그것에 대한 증거: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7). 사도가 그들을 마음에 둔 이유는 그들에 관해 좋은 평가와 좋은 소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그 진실성을 하나님께 의지함(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그는 그들 무리 곧 그들 모두를 차별없이 사모했다. 강한 애착과 특별한 선의를 가지고 사모했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모했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보배로운 영혼들에 대해 갖고 있었고, 또 보여 주었던 애절한 관심으로 그들을 사모했다.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큰 희생을 기꺼이 치르신 것은 그들에 대한 이 연민 때문이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이런 사랑과 연민을 베푸신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증명을 사도는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 진실성은 마음의 내적 상태에 관한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증인이 되신다.

 

9-11절

 

이 단락은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담고 있다.

1 그들이 사랑하는 백성들이 되고, 그들 가운데 선한 마음이 충만하도록: 너희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9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복음의 완성이다. 그 은혜가 점점 더 풍성해져야 한다. 아무리 최고 수준이 이르더라도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2 그들이 지식과 총명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즉 그는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채워지도록 기도했다. 지식과 정확한 판단력이 없는 강력한 열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때때로 유익보다는 해가 더 크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지식에 따르지 아니함으로 폭력과 광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롬10:2,요16:2).

3 그들이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10절). 이 말은 지극히 선한 것을 시험에 부쳐 다른 것들과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진리와 법은 지극히 선한 것이다.

4 그들이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진실하여(10). 진실함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때 가져야 할 복음의 완성으로서, 우리의 모든 은혜의 영광이다.

5 그들이 허물없는 사람들이 되도록, 즉 그는 그들이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기도했다.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행23:1),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도록(행24:16) 간구했다. 우리는 끝까지 허물 없는 삶을 계속 추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날에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분은 교회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엡5:27) 나타나게 하시고, 신자들을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것이다(유1:24).

6 그들이 열매 맺는 유용한 사람들이 되도록(11):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의의 열매는 우리의 거룩함의 증거이자 결과다. 열매들로 가득하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맺어지는 의의 열매가 실제로 우리에게 가득하게 하고, 온전히 우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 열매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곧 그분의 능력과 은혜로 맺어진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분은 참 감람나무의 뿌리가 되시고, 나무는 그 뿌리로부터 풍성한 양식을 얻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하고(딤후2:1),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고(엡3:16), 그 열매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 하나님은 범사에 영광을 받으시고(벧전4:11),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고전10:31).

 

12-20절

 

자신이 당한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는 사도의 태도를 접한다. 그는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1 사도는 자신을 옥에 가두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획책한 복음의 철천지 원수들에게 고난을 받았다.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 사도의 감금과 같은 참으로 악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은 희한한 섭리의 작용이 아닐 수 없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2:9).

1 그것은 복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었다(13절).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 황제, 대신들, 집정관들이 내가 악을 행해서가 아니라 선한 양심에 따라 정직한 사람으로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울의 고난은 궁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만약 다른 방법이었다면 그들은 결코 복음에 관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궁정으로부터 다른 모든 곳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궁정의 의견은 모든 국민들의 의견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

2 그것은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크게 힘을 얻었다.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17:8-9). 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14절). 그들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을 결코 단념하지 않고 도리어 더 담대해졌다. 그들은 바울의 동반자로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바울이 고난받는 중에 받았던 위로 곧 그가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게 된 특별한 위안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잊지 말자. 복음 전도자들을 좌절시키기 위한 원수들의 의도가 오히려 그들의 용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들은 최악의 경우를 보았다. 그러기에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데 하등의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의 신뢰는 그들에게 용기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용기는 두려움의 대상을 극복하게 하였다.

2 사도는 원수들만이 아니라 거짓 친구들로부터도 고난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진실함이 아니라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명예를 취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데 더욱 열심을 내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바울을 무시하고 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바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자극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복음에 대한 진실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그들은 그가 그 원수들의 온갖 폭력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복음을 지원하고 전파하도록 지명받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매임으로 복음이 매이지 않도록 더욱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교회에 대한 그의 섬김의 부족분을 대신 채웠다.

3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사도가 얼마나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 바울은 감금되어 있는 동안에도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전혀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대해 사도는 두 가지 면에서 기뻐했다.

1 그것이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그의 석방에 도움이 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을 이해하기도 한다.

2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1) 참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소원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되고, 그 이름이 위대하게 되고, 그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기를 진실로 바라는 자들은 그분이 자기들의 몸에서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롬12:1), 자기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린다(롬6:13). 3) 우리가 그리스도를 담대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껏 그리고 낙심하지 않고 섬긴다면, 그분께 큰 영광이 될 것이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온전히 담대하여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인들의 담대함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4)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신의 욕망과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그것을 그들의 장래의 기대와 소망으로 삼는다. 5) 그리스도가 자기 몸에서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살든지 죽든지 곧 세상에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21-26절

 

행복한 바울의 생사관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된다. 그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였고, 그래서 죽은 것도 유익했다.

1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의심할 수 없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 인생의 원리가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법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 삶의 원리요 법이요 목적이다.

2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모든 사람들은 죽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죽음은 그의 모든 약함과 비참을 종결시키고, 그의 위로의 완성과 소망의 성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의 온갖 악을 그에게서 제거하고, 그가 최고의 선을 소유하도록 이끈다.

 

1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22절). 사도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예와 유익을 높이는데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 일이 자신에게 참 잘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22). 두 선한 일 사이에 끼여 있었던 것은 행복한 고민이었다. 다윗은 세 가지 판단-칼, 기근 그리고 질병-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1 그는 죽기를 원했다. 믿음과 하나님이 능력을 보라. 그것은 죽음을 친근한 것으로 만들고, 비록 그것이 우리의 현존을 파괴하고 가장 큰 자연적 악에 속하는 것일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죽도록 이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1) 성도가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 자체나 죽음을 위한 죽음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2) 성도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는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2:43).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훨씬 더 좋은 일이라(23). ‘너무너무 좋다’ 또는 ‘엄청나게 낫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면, 영원히 죄와 유혹과 결별하고, 슬픔 및 죽음과도 작별할 것이다.

2. 사도의 결론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이었다(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 박해와 난관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머무는 쪽을 선택했다.

 

2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25). 1) 바울은 신적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 쪽으로 진행되리라고 크게 확신했다. 2) 교회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3) 사역자들은 무엇 때문에 계속 세상에 있어야 하는지 확인해 보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4)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기쁨을 증진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천국의 길에서 더 높이 나아가게 만든다. 5) 죄인들의 개종과 회심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덕을 세우고 그들의 영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변함 없는 사역을 필요로 한다.

 

3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26). 1) 사역자들이 교회와 계속 함께 하는 것은 교회와 그 유익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2) 우리의 모든 자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끝나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자랑이 되어야 한다.

 

27-30절

 

사도는 두 가지 권면을 하는 것으로 이 장을 끝맺는다.

1 사도는 그들에게 엄격한 생활을 강조한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 복음 진리를 믿고, 복음의 법에 복종하고, 복음의 약속들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부합하는 믿음, 거룩함, 위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27)을 나로 듣게 하라. 1) 복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싸우고, 천국을 차지하기 위해 거룩한 싸움을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2)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일치는 복음에 합당한 것이다: 함께 싸우라 곧 협력하라. 3) 굳게 서는 것은 복음에 합당하다: 한마음으로 (굳게) 서서 한 뜻으로. 어떤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굳게 서서 요동하지 말라.

 

2 사도는 그들에게 고난 속에서 용기와 지조를 갖도록 권면한다. 두려워하지 아니하는(28).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고 그 고백자를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파멸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올바르게 박해받는 것은 구원의 징조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 1) 그리스도를 믿는 것.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의 능력 또는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2)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 이것 역시 무척 가치 있는 선물이다. 그것은 큰 영예와 큰 유익이 있다. 특별한 보상이 따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딤후2:12).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30). 고난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거기에는 명분이 있고, 또 그 명분도 단순한 명분이 아니라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이 순교자를 만든다.

 

빌립보서.hwp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