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일본열도기행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나오시마(直島)에서 만날 수 있다. 나오시마는 일본 시코쿠 카가와(香川) 세토내해에 떠있는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멋진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나오시마는 사람의 때가 아직 덜 묻어있어 한산하고 조용하다.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이 섬에 조용한 움직이고 일고 있다. 섬 자체를 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이른바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빛은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건축은 인간이 자연을 느끼도록 하는 매체’라는 건축철학을 가지고 있는 안도 타다오가 총연출을 맡았다. 일본 전통 건축 특유의 다다미를 연상시키는 격자 나눔의 사각형이 유리와 콘크리트로 반복된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건물의 외피로 사용하는 것을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는데, 그는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건축의 누드작가’로 불린다.
특히 나오시마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지중미술관’은 산을 파고 그 속에 미술관을 만들어 건축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당연히 지상은 없고 지하 3층의 상식을 뒤집은 건축물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10분 남짓 뒷동산을 올라야 미술관이 나타난다. 뒷산 주위를 정원처럼 잘 가꾸어 놓아서 산책하는 맛도 그만이다. 지상에서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의 윤곽뿐이다. 삼각형, 원, 정사각형 등 기하학 구성을 모티브로 한 공간에 빛이 구석구석 들어왔다. 전시공간의 천장을 뚫어 하늘 자체가 마치 액자 같은데 자연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신선한 감동을 준다. 자연이 미술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중미술관’은 인상파 화가 모네의 ‘연꽃’시리즈가 백미다. 세계에서도 몇 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최대의 작품들이다. 안도 타다오와 인상파 화가 모네의 빛에 대한 생각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느낌이다. 가히 빛의 연출자다. 아쉽게도 사진촬영을 통제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지중미술관’과 더불어 ‘베넷세 하우스’에서도 안도타다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리조트형 초미니 고급 호텔은 나오시마의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전면을 유리로 설계해서 부드러우면서도 투명한 상황을 연출했다. 베넷세 미술관은 대부분 현대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전시된 사진속의 수평선과 세토내해의 수평선을 맞추어 볼 수 있는 등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 작품도 눈길을 끈다.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의 결합 매무새가 멀리서 보아도 ‘안도 타다오 스타일’임을 알아볼 수 있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에 프로젝트’는 나오시마 혼무라지구에 있는 옛 주택을 개조하거나 집의 공간을 그대로 이용해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곳은 극락사, 하치만신사 등이 있어서 나오시마의 역사적, 문화적인 중심지다. 작품 중에서는‘미나미테라’가 흥미롭다. 제임스 트루엘의 작품 ‘Backside of the Moon’에 맞춰 신사를 새롭게 설계한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다. 이 곳에서는 어둠을 체험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빛이 완전히 차단된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다. 그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얼마나 지났을까 놀랍게도 영화의 화면처럼 희미하게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공포심은 눈녹듯 사라지고… 천천히 일어나서 더듬더듬 화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점점 뚜렷하게 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다.
안도 타다오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처럼 빛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씻어내기도 하지만, 물도 그의 건축에 담고 있는 중요한 자연의 요소이다. 홋카이도의 평원에 위치한 ‘물의 교회’는 개울에서 물을 끌어들여 인공호수를 만들었고, 독일의 ‘랑겐 파운데이션 미술관’은 얕은 연못을 깔아 마치 미술관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숨 쉬는 미술관인 것이다. 결국 건축을 생활의 한 영역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오시마의 쪽빛 바다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섬 주위를 걷다보니 일렁이는 파도와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문득 자연과 어우러진 안도 타다오의 프로젝트가 완성된 나오시마를 상상해 본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만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