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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기념 백두대간종주기
(1999.5.2.~2000.4.25.)
아버님과 지리산종주중 연하천산장에서 일박후...(디카가 없던시기에 사진을 스켄)
내 나이팔십
돌아 보면 이제는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나이는 되었겠지. “정말 산과 같은 것이 내 인생 이였다.”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구구절절히 내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늦게 나마 10여 년 전부터 타온 산. 마지막 내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팔순 기념으로 백두대간종주의 남한 구간을 종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여러 가지 자료도 준비 하고 특히 셋째 지곤이가 사준 조선일보사 발행 백두대간종주산행을 몇번씩 읽고, 또 읽고 구간별 지도는 찢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장비등을 준비 하였다. 이제 지리산을 첫 출발 하여 대간종주의 첫발을 내딛는다.
제1구간
1999/5/2 백두대간 제1구간 첫 시작점인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하여 아침8:50중산리매표소 도착. 등정을 시작했다. 법계사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열번, 아니 스무번도 넘게 이 코스를 타지만 역시 힘드는 코스다. 더디어 천왕봉. 천왕봉을 거처 장터목 산장에서 중식을 해결 한후 세석산장으로 향한다. 세석산장에서 대간종주 첫밤을 쉬었다. 잠이 않온다. 60후반 부터 시작한 등산. 그간 수없이 오른 지리산 대원사-고기리 86Km구간. 지리산 종주도 이번이 4번짼가? 하지만 이번은 대간종주 첫구간. 백두대간 종주의 시작 첫날밤이다. 육칠십일이 소요되는 대간종주의 첫밤. 세석산장이다. 내나이,단독종주,체력,이것,저것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잠이 오질 않는다. 잠 못 이룬 밤을 지새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5/3 아침 일찍 산행시작 오늘 목적지 노고단을 마음속으로 바라보며 평상시와 같이 산행을 하니 오후6시경 별탈 없이 노고단산장 도착. 이틀째 여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히 먹고 “대간종주도 별거 아니다. 십여년 해온 등산, 즐겨서 해온 등산, 좋아 하는산, 좋아서 가는 산! 손짖 하는 대간, 그 대간품에 안겨서 차분이 걸으면 그것이 대간종주 아닌가? 어제도,그제도 대간과 더불어 지내지 않았는가?”하고 마음 먹으니.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첫째 날과 달리 잠이 쉽게 들었다.
5/4 산행 삼일 째 되는 날. 아침7:30 노고단산장을 나섰다. 마음도 몸도 가볍다. 전에는 늘 노고단산장에서 성삼재로 갔던 길은 도로를 따라 갔었으나 대간종주 길은 마루금(마루터기)을 충실히 따라가야 하므로 코재-종석대로 올라 성삼재로 왔다. 이로서 제1구간 종주가 무사히 끝났다.
제2구간
5/4 제2구간에 들어 섰다. 지난날 여러번 밟았던 코스다. 고리봉-묘봉치-만복대를 거처 12시 넘어 정령치에 다았다. 한숨 쉬고 큰고리봉으로 올라 세걸산을 바라보고 90도 꺾어 고기리 고촌마을 급경사의 하산 길을 단숨에 달려 내려 갔다. 730지방도 주촌리 주촌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로써 이번 백두대간 첫구간 제1구간 종주산행을 2박3일을 마치기로 했다.
5/11 제2차 산행길에 나섰다. 배낭 짐이 무겁다. 일차 때는 2박3일 예정으로 산행. 다행히 지리산은 산장이 많아 산장을 이용 하기로 하고 침낭만 준비하고 2박3일 먹을 것 등 최소한으로 준비해 배낭무게가 9Kg~10Kg 전후 였는데 이번에는 1인용 천막(3Kg)과 3,4일분 최소한의 식량등을 준비하다 보니 배낭 무게가 15Kg(물없이)나 된다. 무겁다고 느껴지나 걸머지고 집을 나선 것이다. 운봉서 택시이용 주촌정류장에 9:40분 도착. 10시 산행시작 수정봉, 여원재에 도착하니 13시경.
제3구간
5/11 짐이 무겁다. 내 나이에 날은 덥고, 짐은 무겁고, 땀을 많이 흘려 체력이 떨어지니 여원재에서 점심을 먹는데 입맛이 땡기지 않는다. 억지로 좀 먹고 고남산으로 올라 매요마을경유 사치재에 닿으니 16:30 체력이 뚝 떨어 진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고 억지로 입에다 무얼 좀 쓸어 넣어 씹었다. 다시 일어나 좀 더 가다 쉬자. 하고 일어서니 물준비 생각이 난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려면... 그래서 여기 사치마을에서 물을 받았다. 약3L(3Kg)이다. 가뜩이나 떨어진 체력에 짐은 3Kg이나 더 늘었다. 짐 총량18Kg을 지고 일어서니 정말로 무겁다. 1발짝씩 걸어 나갔다. 입을 악물고 산행 하였다. 그래도 10여년 계속 산을 찾아 즐기던 산행을 한 탓에 어려운 조건 에서도 두어시간 산행. 18:30경 새맥이재 근방에서 쉬기로 하고 천막을 쳤다. 라면을 끓였으나 입에서 안땡긴다. 먹는둥 마는둥 쓰러져 버렸다. 몸이 파김치다.
5/12 아침에 깨니 꼼짝하기 싫다. 그래도 억지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아침은 좀 가다 먹기로 하고 출발 6:30. 8시 넘어 라면을 끓였다. 먹으려니 안 넘어 간다. 자꾸 토하려 한다. 구역질이 난다. 절반도 못 먹었다. 지도를 펴 놓고 생각 했다. 산행을 중지 할 도리 밖에 없다. 그래서 좀더 나아가 복성이재 에서 하산 하기로 하고 억지로 길을 재촉 10:30 복성이재 도착. 인월로 나와 부산으로 돌아 왔다
집에서 다시 계획을 세웠다. 짐을 줄여 가벼운 몸으로 산행을 하자. 구간종주이니 한번 나가면 한 구간씩 끝내자. 구간이 짧으면 당일, 길면 1박2일. 산에서 1박 하되 비박을 한다. 이렇게 정하고 계산 해보니 천막도 필요 없고 식량도 1박2일 정도 최소한으로 준비하면 배낭무게가 8,9Kg 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계획 아래 준비를 하니 배낭 무게가 8.5Kg. 이를 걸머지고
5/16 다시 종주길 복성이재를 향해 집을 나섰다. 10시 복성이재 도착. 산행시작. 봉화산을 향해 오른다. 몸이 가볍다. 봉화산의 철쭉이 일품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래봉 철쭉과 싸울만 하다. 내가 운이 좋다. 때 맞추어 여길 지나다니… 길을 재촉해 중재를 향해 달린다.
제4구간
5/16 등산로도 좋고 선주자 들이 달아놓은 안내리본도 뚜렷해서 무난히 중재착. 3구간 끝내고 해가 높아 다시 전진 백운산서 비박했다.
5/17 다음날 아침 백운산 6시발 육십령을 향해 달린다. 대간종주 산행인구가 많아져 등산로가 뚜렷하고 좋다. 안내리본도 많이 달려있어 잘 인도 해준다. 이정도의 등산로 라면 야간등산도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육십령 도착. 4구간이 무사히 끝나 부산행 차에 올랐다.
제5구간
5/20 산행길에 나섰다. 9:35 육십령 도착. 산행시작 할미봉에 오른다. 겨울산행에는 조심을 요하는 산. 서봉애 올라 남덕유를 바라본다. 여러 번 남덕유에서 서봉을 바라 보았는데 이번엔 반대로 서봉에서 남덕유를 바라 본다. 월성치. 이 등산로는 영각사 남덕유-북덕유(향적봉)에 세번 올랐고 이번이 네번째. 낫이 익다. 삿갓골재 산장을 새로 짓고 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언제 이 산장을 이용할 기회가 있을런지…”하고 생각하며 걸으니 벌써 동엽령에 도착했다. 5구간이 끝났다 저녁 6시반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몸과 마음이 가볍다. 어둡지 않다. 더 걷고 싶다
제6구간
어둠이 깔린 후 백암봉 도착. 그곳 에서 비박을 했다.
5/21 6시 기상 몸이 가뿐하다. 80이 넘은 내가 어제 육십령발 동엽령까지 5구간을 주파하고 덤으로 백암봉까지… 밤에 푹 자고 아침 일찍 기상하니 몸은 가뿐하고 기분이 그저 그만이다. 젊은이들이 거짓말 이라 하겠지. 하고 생각 한다. 라면을 끓여 먹고 7시 출발 목표지 덕산재로. 덕유평전 초지를 넘어 저멀리 향적봉 깃대에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바라보며 지봉,대봉,대간연봉을 가벼운 발걸음으로(또 다시 적노니 다른 사람들은 80이 넘은 노인이 그럴수가? 하겠지만 10여년을 같이 자주 산행을 한 셋째 아들 지곤이는 잘알리라.)달린다. 빼재,자동차,사람, 이틀 되였으나 오랫 만에 보는것 갔다. 다시 능선 대간을 타고 삼봉산 표석을 보며 암봉을 휘돌아 내리막을 달려 내리니 소사고개. 차,사람,집 보며 다시 대간을 달려 삼도봉,대덕산 약간의 내리막. 덕산재에 도착하니 저녁6시. 이번 산행 1박2일 에는 5,6구간 2구간을 끝냈다. 덕산재애서 뻐스애 올라타니 감개무량. 제일 고마운 것이 나의 체력이다. 10시간 이상 산행을 할수 있는 체력,지구력등 이 모던 것을 신께 감사 드린다.
제7구간
5/26 덕산재에 도착하니 8:30 바로 산행에 올라 부항령. 여기도 턴널이 뚫려 가목서 부항령 경유 무풍으로 삼도봉 지나 별일 없이 화루봉-우두령 착. 오후6시 7구간 마치고 차편을 만나 김천으로 해서 부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종주중 노고단에서...
제8구간
5/29 우두령착. 9시 바로 산행에 들어가 황학산. 이산은 1년전에 직지사도 볼겸 등정 했던산이다. 8구간 우두령-추풍령 구간도 내맘 먹기에 따라 당일 주파도 가능하나 좀 느긋하게 산행을 했다. 가성산에서 일찌감치 쉬기로 하고 비박.
6/30 아침 7시 산행시작 11시전에 추풍령도착 8구간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 왔다.
제9구간
6/3 추풍령-큰재 9구간은 거리도 짧고 동내 뒷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배낭도 않메고 약간의 점심만 준비하고 10시 추풍령 당마루 새마을에서 출발 아무일 없이 용문산-국수봉을 돌아 17시 9구간 끝지점 큰재에 도착 산행 마치고 옥산을 거쳐 귀부.
제10구간
6/9 10구간 산행차 지을 출발 9일 9시20분 큰재도착. 산행에 올랐다. 이구간은 조선일보 발행 백두대간 종주산행 가이드에 설명 했듯이 높은산이 5,6백미터, 대체로 3,4백미터다. 대간주변이 대체로 민가와 농지로 되여 있어 자칫하면 종주 대간길을 잃기 쉬우니 주의를 하라고 나와 있다. 나도 지도와 더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행. 등산로, 안내리본, 가이드지도를 잘 이용 큰 착오 없이 산행을 계속하여 개머리재에서 비박을 했다.
6/10 14시 화령재에 도착. 10구간을 끝냈다.
제11구간
6/14,15 양일간에 11구간종주 늘재에서 무사히 마치고 하산. 귀가길에 올랐다.
제12구간
6/21,22 양일간에 걸친 12구간 구간종주 은치재에서 무사히 마치고 하산. 연풍으로 귀가길을 재촉
제13구간
8/10,11 양일간에 걸쳐 이화령서 구간종주 마치고 문경으로 하산.
제14구간
8/18 김천서 아침발 6시 점촌행 기차에서 부터 비가 오기 시작 한다. 점촌 경유 문경에 8시 도착하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8:50 이화령행 뻐스에 승차를 했다. 그런데 이차가 각서리를 지나 요과원서 내려 놓는다. 퍼 붓는 비를 맞으며 이하령 까지 30분소요 걸어 올랐다. 우중 산행 강행 조령샘을 지나 조령산서 하산을 망설이다가 조령제3관문 까지 강행하기로 했다. 3관문 까지는 약3Km 산세가 사나와 안전장비등 갖추지 않은 분은 산행을 산가 주시기 바란다는 안내문이 빗속에 보인다. 신선암위 암석지대(위험지대) 조심,조심 날등 타며 무사히 통과 오후3시 좀지나 3관문에 도착했다. 세삼 백두대간종주 안내지도(조선일보 발행)가 상세히 적혀 있다고 느낀다. 대간종주 시작하기 전에 읽어 보고 지도도 오려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든다. 비도 소강상태덕에 소조령으로 하산 문경,점촌 경유 귀가. 14구간 마패봉-하늘재 후일로...
9/2 조령3관문 8:30분도착. 산행시작 마패봉-북암문,동암문에서 평천재까지 지름길이용해 탄항산으로 와서 하늘재 13시도착. 14구간 끝냄
15구간
9/2 오후2시10분 하늘재에서 산행시작 983.3봉에서 비박.
9/3 하늘재-벌재구간 수월한 구간이 아니다. 산의 능선이란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지만 기복이 심하면 하루12시간 가량 타다 보면 오후에는 그래도 내리막,평지는 그런대로 지만 오르막은 딱 질색 다리가 천근, 만근 억지로,억지로 늙은이가 정신력으로 벌째까지 몸을 끌고,밀고 하여 도착 했다. 18:35 신 단양발 17시 점촌행 차는 지나간 시간이다. 갈 길이 막막하다. 나 자신 몸은 파김치가 되고 꼼짝 하기 싫어도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양팔을 크게 벌이고 길복판에 서서 편승(히치하이커)을 애원하여 다행이 점촌 가는 차를 편승 무사히 귀가했다.
제16구간
9/9 점촌서 신단양행 7:10분 차가 없어 졌단다. 8시 전후 하여 벌재 도착예정 이였으나 차질이 생겼다. 이러케, 저러케 하여 벌재에 9:10분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 하였다. 계획은 묘적령에 15시에서 늦어도 16시 전후 도착예정 이였으나 18시에 도착했다. 나 나름대로 부지런히 걸었으나 많이 늦었다. 그래서 야간산행을 하였다. 다행이 야간산행준비는 해가지고 왔었다. 정말 부지런히 걸었다. 이를 악물고 여러 가지 고통을 참으며 달려 죽령에 밤10시 조금 넘어 무사히 도착 16구간 당일 주파하고 풍기로 하산했다. 신께 감사 드린다.
제17구간
9/15 죽령을 거쳐 고치령에 무사히 도착 당일로 17구간 끝냄.
제18구간
9/16 고치령에서 갈곳산, 선달산,박달령을 거쳐 도래기재로 해서 18구간 끝내고 서벽으로 하산 부산으로 귀가
제19구간
9/28부산발 22시 춘양에 도착해서 여관에서 숙박한 후 다음날(9/29) 새벽4시 좀 지나 춘양발 7:40 금정행 버스에 승차 도래기재 도착
9/29 8:10 산행시작 산행도 순조로웠다. 신선봉 정상은 표석,표목 대신 경주손씨 묘가 차지하고 있다. 깃대배기봉 못미쳐 차돌배기 표목 2군대 깃대기봉-부소봉 구간 일몰이 가까와 오면서 기력도 떨어지고 하니 지루하고 기다려 지는 “태백산 큰표석아 어서 내 앞에 와다오.”하고 빌면서 간다. 오늘 계획인 화방재 까지는 약2시간 가량 야간산행 예정 이였는데 천제단에서 만난 노부부가 계속 야간산행을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노부부 따라 망경사로 내려가 1박을 하였다.
9/30 다시 만경사에서 화방재에 도착하니 오전 8:10분 19구간종주를 끝내고 20구간을 향해 8:30분에 수리봉을 향해 출발 했다.
제20구간
9/30 화방재,수리봉,함백산, 비단봉을 거쳐 피재에 도착하니 18:30분 1박2일 만에 19,20구간종주를 무사히 끝냈다
제21구간
10/6 피재 도착하여 큰재에 18:10분에 도착 하여 비박
10/7 큰재,댓재 도착 08:30분 21구간 끝내고 22구간인 두타산으로 출발함.
제22구간
10/7 9:00 댓재출발 이기령에 도착하여 비박을 했다.
10/8 6:00이기령에서 출발하여 백봉령에 도착 하니 10:45분 2박3일에 21,22구간종주 무사히 끝내고 부산으로 출발
제23구간
10/13 부산역발 17:45 승차 대구-제천-동해 도착
10/14 4:04. 그렇지 않고 부산역 발22시 영주-동해선을 타면 6:46도착 동해발 5:50 임계행 버스를 승차하지 못함. 그래서 전자편을 선택 하였다. 동해발 5:50 임계행 버스에 승차하여 백봉령에 도착하니 7시 7:10분 산행시작하였다. 산행시작 부터 안개가 끼기 시작하여 9시경 부터는 안개비로 바뀐다. 이23구간은 등산로가 종주가이드에도 설명 되어있지만 실제로 잡목,넝쿨,산죽으로 엉켜 있는데 거기에다가 비까지 오니 등산로가 잡목,산죽 높이와 같은 깊은 개울이라. 과장된 표현 이지만 이등산로를 헤치고 지나 가려니 온몸이 물속을 지나가는 상태다. 당해본 사람은 느꼈으리라. 나도 80평생 동안 몇번 않겪은 일이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코스였다. 그래도 23구간을 무사히 마치고 강릉으로 해서 부산으로 향했다.
제24구간
10/21 23구간 산행시 비로 인해 혼이나 삽당령에 도착하니 심기가 좋지 않다. 그날 이후 집에서 몸살감기가 들어 늙은 몸이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집에서 할멈이 산행을 미루라고 한사코 말리는 것을 고집을 또 부리고 떠나 왔다. 걱정하는 할멈을 위해서 라도 죽지 않으면 살기로 산행을 마치고 하산 해야지. 오늘 일기는 쾌청. 산행에 적합하다. 몸도 그렇고 서둘지 않고 닭목재까지 별일 없이 도착 닭목재서 자려다 썩 좋은 조건도 없어 지도상에 목장을 보고 산행을 계속하여 목장에 들어서니 목장을 찾아 들어가도 별 무엇 이 없겠다는 생각에 낙엽도 많고 아늑한 곳도 있어 비박을 하였다.
10/22 07:10 아침부터 산행도 순조로워 정오에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횡계로 내려가 원주를 경유 부산으로 향했다.
제25구간
11/5 대관령-진고개구간. 이번 산행계획은 1박2일로 첫날 대관령에서 출발하여 진고개산장에서 1박할 예정 이였으나 진고개 도착하니 웬걸 진고개 산장은 폐쇄 되어 있다. 문,창문등 모두 못질하여 폐쇄 해놨다. 생각 끝에 계획을 수정하여 진부로 내려가 원주를 경유해 부산으로 향하면서 이번 산행을끝냈다. 진고개-구룡령 26구간은 후일로 미루고 나머지 몇 구간은 1구간 당일,당일로 끝낼 예정이다.
제26구간
11/10 강릉발 5:50분 진부도착6:50 택시를 이용하여 진부-진고개산장에 도착 했다. 배낭도 않메고 가벼운 몸으로 부지런이 산행을 서둘렀다. 구룡령 도착 18시다 어둡기 직전에 약수산서 구룡령 내리막을 무사히 내려 왔다. 그곳에서 비박을 했다.
제27구간
11/11 11월10일밤 구룡령에서 비박을 하면서 밤에 날이 하도 추워 밤새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몸이 좋지 않아 고생을 했다.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단목령으로 출발했다. 억지로 종주를 하는 도중에 도저히 몸이 견딜 수 없는 상태라 중간에 탈출을 결심했다.(매번 겪는 일이지만 순간,순간 판단을 잘 하여야 한다.) 탈출지로 조침령으로 결정후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이끌고 조침령도착 서림으로 탈출하산을 했다. 부산으로 출발.
11/17 8:00 다시 조침령에서 출발하여 단목령에 도착하니 13:20분 27구간종주 끝내고 28구간인 한계령으로 출발
제28구간
11/17 13:50 단목령 출발 점봉산에 도착 16:50분 겨울산 해가 짧아 더 산행을 하지 못하고 무리하지 않고 일찌감치 비박을 했다.
11/18 09:00 날도 춥고 몸도 어실어실 하고해 늦게 출발 했다. 점봉산에서 1167.6봉을 거쳐 한계령에 도착 13:30분 서둘러 강릉으로 하산해 부산으로 출발 했다. 부산으로 오는 차안에서 생각 했다. 돌이켜 보메 올해 정말 긴 대간종주산행을 했다. 안타깝지만 미시령-진부령 코스만 남았다. 이제 한겨울 이다. 늙은이가 겨울 산행을 한다는게 무리 일 것 같다. 물론 아이젠이랑 겨울 산행 준비물은 있지만 무리하지 말자고 결정하고 1999년 종주산행은 11/17일 부로 접고 2000년 봄 날이 풀리면 마지막 코스인 미시령-진부령코스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10/27 셋째 지곤이가 가을 단풍철 산행으로 설악산을 가보고 싶다 하여 나의 대간산행 제26,27구간을 뒤로 미루고 제28구간중 설악구간으로 지곤이와 같이 동행 하였다. 계획을 한계령-대청봉-공룡능선-마등령-황철봉-미시령 까지로 잡고 10/27 11시 한계령에 도착하여 산행시작 산행은 순조로 왔다. 한계령서 서북릉 갈림길 까지 경사가 약간 급했고 이번에야 처음으로 일부나마 서북능선을 탔다. 설악 단풍은 오색서 한계령 정상 까지 차안 에서 구경해 전망이 참 좋았다. 점봉산쪽 단풍도 말로 표현 불가능하다. 그저 한마디로 1품이다. 토,일요일이 아닌 데도 한계령 차도가 촬영 인파로 크게 붐볏다. 남녀 인파가 엄청나다. 금년 설악산 단풍관광은 한계령 차도에 차안에서 했다. 정말 일품 이였다. 27일 날은 한계령서 시작 중청산장 까지 무사히 산행을 끝냈고 17시 중청산장에 도착하니 예약을 해놓아서 투숙이 수월했다. 편히 잠을 잔 후
10/28 아침 6시 산행을 시작해 대청봉을 거쳐 대간주능을 타고 희운각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리고 공룡능선을 향해 산행에 올랐다. 공룡능선도 별 사고 없이 13시에 마등령에 도착 끝냈다. 28구간 끝내고 29구간의 시작이다.
제29구간
10/28 희운각-마등령 구간에서 기아자동차 산악회원 대간종주팀을 만났다. 인원은 30명가량. 마등령-미시령 통재구간을 주파키 위해 산행시작 17시경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입고서 산행을 계속해 17:30경 저항령 도착해 천막을 치고 1박을 했다. 강우와 바람 관계로 저녁도 못해 먹고 잤다.
10/29 아침라면을 끓여 먹고 8:30 출발 여러 곳의 위험한 너덜지대 무사히 통과 11:30분 미시령 도착 산행을 끝내고 속초로 와서 부산을 향했다.
2000/4/25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은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겨울로 접어 들기에 2000년 봄으로 미루기로 해서 날이 풀린 4월25일로 결정. 산행을 시작 08:00 미시령 에서 출발하여 17:00에 진부령까지 별일 없이 무사히 끝냈다.
등산은 마치 인생과도 같으리라.
오르면 내려 오고, 내려 오면 올라 가는 것이 산이 아니 던가? 인생도 같으리라. 대간종주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느끼게 하였다. 이제까지 살아온 날과 대간종주의 전 구간을 오르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말 하리라. 해냈다고! 내 나이 80에 팔순 기념으로 하기 시작한 단독대간종주. 남들은 그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지. 늙은게 주책 이라고...
또 언제 이산들을 밟아 볼 수 있을까? 또 다시 대간종주를 할 기회가 있을까? 욕심 이겠지. 이모든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그 동안 나의 대간종주산행에 협조자인 할멈과 셋째 지곤이를 비롯해 자식들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자식 들에게 이제껏 아버지로서 제대로 해준 것은 없지만 내 인생 마지막 선물인 대간종주를 우리 가족에게 선물 한다고...
2000년 4월 25일
1919년생 5월 10일생 文世彬씀
2004년12월11일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세상의 끈을 놓으셨다. 워낙 체력과 정신력이 강하셨던 분이라 86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정 하셨던 분이다. 2년전 병원에 입원 하셨다가 판명된 전립선암!!! 당신께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하지만 늦게 다니신 산 때문에 고통을 이겨 내실 수 있었던 것 같다. 늦게 시작하신 산행이지만 꾸준히 다니셨고 웬만한 산은 혼자서도 참 많이 다니셨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는 물론이다. 팔순이 되면서부터 자식들에게 대간종주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우린 말렸다. 그 연세에 단독종주라니 무리시라고…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 하셨다. “이제 여한이 없다. 산을 타다 산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어떠 하냐고…” 하긴 우리 가족들은 어버님의 고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우린 준비를 도와 드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셋째 지곤이형이 협조를 많이 하셨다. 사소한 준비물 까지 챙겨 주시고, 산행정보도 알려 주시고… 그렇게 대간종주를 시작 하셨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막상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땐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난 참 나쁜 놈 이라 생각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보고 싶어진다.
특히 이 자료들을 정리 하다 보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욕심이 있다면 다시 한번만 더 같이 지리산 어느 자락 이라도 좋고 또 어떤 산 이라도 좋으니 산행을 같이 하고 싶다.
난 내년에 대간종주를 할 계획이다. 요즘 대간종주구간을 사전 답사를 하고 있는데 이상한 기분은 마치 옆에서 아버님이 같이 걸어주는 기분을 문뜩 느낀다.
아버님의 종주기를 정리 하다 보니 그 코스, 그 길을 내가 따라가는 기분이겠지만…
난 참 행복한 놈이라 생각 한다.
요즘 주위에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값비싼 유산을 물려 받은 것 같다. 남 못지 않은 체력과 특히 정신력(지구력)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엄청난 재물이다.
지난해 아버님이 돌아 가시기 한달 전쯤 일행8명이서 지리산 당일 종주를 마치며 난 마음속으로 아버님께 이런 정신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 드린 적이 있다. 그 때도 난 지리산당일종주기를 월간산지에 투고 하면서 이야기 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나 하지 않을려는 일을 내가 해냈다고…”
그렇게 아버님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겨놓고 이 세상의 끈을 놓으셨다. 멀리 있는 탓에 곁에서 임종은 지켜 보지 못했지만 어머님,큰누님,큰형님,셋째형이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정말 편안하게 끈을 놓으셨단다.
언제가 내가 아버님이 걸어 셨던 대간종주길의 발자취를 더듬어 완주 한 후 ‘아버님이 평소 좋아 하시던 커피 한잔과 콜라 한 병 사들고 아버님 산소에 찾아 가리라.’ 마음 먹고 이 종주기를 아버님 영전에 바친다.
2005년 10월 어느날
옮긴이:문신곤
왕십리님과 지리산종주중 천왕봉에서...
첫댓글 대장...아버님이 보고 싶네.. 산을 유달리 좋아 하셨는데...
팔순의 연세에 종주하실수 있는 분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정말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신 아버님이셨지.. 언제 같이 아버님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가보세..
글 잘 읽었네..친구야..
고마우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왜 아버지가 자꾸 보고싶은지... 항상 후회는 늦게 오는 법인가바.
살아계실때 효도 못한게 항상 맘이 아프네. 친구야...
정말 소중한 기록입니다
아드님에 대한 신뢰 ㅡㅡ
아버님에 대한 존경 ㅡㅡ
부럽습니다 ㅡ
감사 합니다. 이글을 적고 나서 그해 저도 백두대간을 했습니다. 감회가 새롭더군요. 시간 나는대로 대간종주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