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3/137일차> 2012년 2월 25일(토) 트리칼라-->아테네, 맑음, 메테오라 탐방
숙소인 알소스 게스트하우스에서 빵과 치즈, 버터와 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한 다음, 짐을 숙소에 맡겨 놓고 메테오라 탐방에 나섰다. 택시(10유로에 예약을 하고 택시를 탔지만, 미터기가 11유로를 가리켜 결국 11유로를 지불)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아테네행 버스(1인당 29유로, 4인 합계 116유로, 17만4000원)를 예약한 다음, 절벽 위의 수도원 가운데 가장 큰 메테오라로 향했다. 택시에서 바라본 풍경은 기가 막혔다. 기암절벽이 쭉쭉 솟아 있는 것이 환상적이었고, 절벽 꼭대기에 바위를 깎고 벽돌을 쌓아 만든 수도원들이 신비로웠다.
메테오라 수도원에서 내려다본 트리칼라 마을 모습.
우리는 산길을 걸어 메테오라 수도원들을 돌았다. 환상과 신비의 나라로 온 듯했다. 먼저 가장 큰 메갈로 메테오로(Megalo Meteoro 또는 그레이트 메테오라(Great Meteora))로 들어갔다. 메갈로 메테오로는 14세기 중엽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이 지역 수도원의 ‘원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규모가 가장 크며 ‘공중의 수도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메테오라’라는 말도 이 수도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도원에는 박물관이 조성돼 수도원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세워지고, 가장 큰 수도원인 그레이트 메테오라.
메테오라 수도원에 올라가니 수도원 아래 마을인 트리칼라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흰 눈이 쌓인 고산준령을 배경으로 분지가 형성돼 있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자리잡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저쪽 깎아지른 바위 꼭대기에 라사노우 수녀원(Roussanou Nunnery)와 발람 수도원(Valaam Monastry) 등이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런 높은 바위산 꼭대기에다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경탄할만한 자연과 인간의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속세의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더욱 더 순수한 신심으로 돌아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중세 수도사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저걸 직접 지은 사람들은 수도사들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농노들이었을 테지만, 참으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수도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입구. 들어가는 입구부터 포스(?)가 느껴집니다.
수도원들에는 각각 자그마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1821년의 그리스 독립전쟁과 1900년대 초반과 중반 1차 및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좀 의아했다. 수도원의 건립과 수도사들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중세 수도사들의 생활이라든가, 이와 관련한 역사라면 더욱 흥미를 끌 것 같았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박물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절벽 위를 걷는 트레킹은 최고의 재미와 흥미를 선사했다. 좀 처지고 활력을 잃었던 몸에 오히려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 동안 터키를 여행하면서 제대로 트레킹다운 트레킹을 하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걸으니 힘이 나는 듯했다. 기분전환이었다.
<절벽 위의 아찔한 수도원들>
천천히 산길을 2시간 정도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습니다.
메테오라 수도원 도보순례에 성공한 '하루 한걸음' 가족 여행단.
우리가 묵은 절벽 아래의 알소스 게스트하우스.
오후 1시15분께 숙소로 내려와 짐을 찾아서 칼람파카(Kalampaka)의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파이와 빵으로 점심 식사를 한 다음 오후 2시15분이 되자 트리칼라(Trikala)로 가는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주변을 좀 구경하다 금방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3시간 넘게 찬 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의 수도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차를 탔으니 졸음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이내 잠에 골아 떨어졌다.
오후 3시 트리칼라에 도착할 때가 돼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트리칼라 버스 정류장 역시 지방의 작은 정류장답게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우리는 정류장의 슈퍼에서 물도 사고, 나는 터미널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하면서 차를 기다렸다. 차는 예정대로 3시30분 출발했다.
칼람파카 버스 터미널에서 바라본 마을 도로와 까마득한 절벽. 무척 아름답죠?
트리칼라에서 아테네로 오는 길은 중부의 산악지역을 통과하는 멋진 길이었다. 도로는 산 등성이에 나 있어 일대를 굽어볼 수 있었다. 큰 산들 사이로 넓은 분지와 들판이 형성돼, 그리스가 예로부터 농업으로 번성했음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스의 국토가 남한 크기와 비슷하지만, 인구가 1100만명에 불과해 살기에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약 2시간에 걸쳐 중부의 산악지역을 돈 다음, 동부의 고속도로를 따라 아테네로 향했다.
어둠이 깔린 저녁 8시가 돼서 아테네에 도착했다. 우리는 터미널에서 한참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모나스트라키(Monastraki)역으로 와 예약해 놓은 피보스(Fivos) 호텔에 들어왔다. 아테네 터미널에 도착해 지하철까지 버스로 3~4 정류장이 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약간 힘들긴 했지만, 창희가 다운로드받아 놓은 아이폰의 GPS가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해 크게 헷갈리지 않고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아테네 거리도 테살로니키와 마찬가지로 금융위기의 영향 때문인지 활력이 떨어진 듯했다. 젊은이들이 껄렁거리며 길거리를 다니고, 도시 곳곳에 스프레이로 한 낙서가 널려 있어 약간 불량기가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피보스 호텔에서 스파게티로 저녁식사를 한 다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는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시설은 일반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 수준이었지만,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우리가 묵은 방은 4인실 도미토리였는데, 한 사람당 1박 가격이 9유로(1만3500원), 4인이 36유로(5만4000원)로 아주 저렴했다. 특히 스파게티 하나가 2.5~3.5유로, 커피나 차 한잔이 0.5유로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 가격으로 유럽을 여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터키 이스탄불을 떠나 테살로니키와 메테오라를 거쳐 여행을 하면서 여행의 활력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