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다이빙의 유일한 경쟁적 측면은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수중 수영과 수중 다이빙은 수영만큼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진주조개를 잡는 잠수부들과 해면을 따는 잠수부들이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왔다. 스킨 다이빙의 장비는 얼굴 마스크, 보호안경, 짧은 호흡관(입과 연결시켜서 물 위로 내보냄), 오리발뿐이다. 차가운 물 속에서는 웨트슈트, 드라이슈트 또는 웨트슈트 위에 드라이슈트를 입는 특수복을 착용할 수도 있다. 스킨 다이빙은 1920, 1930년대에 지중해와 미국의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대중화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미국의 잠수부 가이 질패트릭의 역할이 컸는데, 그가 쓴 〈완벽한 잠수부 The Compleat Goggler〉(1938)는 이 운동이 활발히 행해지는 데 자극제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해군 엔지니어 장교이자 잠수부인 자크 쿠스토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대에는 보호안경, 오리발, 스노클(물 속에서의 작업을 가능하게 한 독일제 수중 호흡장치에서 나온 말로 산소관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음), 얼굴 마스크가 기본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세기부터 잠수기구를 제작해왔지만, 스쿠버 다이빙이나 아콸렁 다이빙은 1943년에 쿠스토와 프랑스의 엔지니어인 에밀 가냥이 최초로 완전자동 압축공기 아콸렁을 개발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또한 쿠스토는 수중 카메라와 수중 촬영술을 발달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프레데리크 뒤마와 함께 쓴 〈고요한 세계 Le Monde du silence〉(1952)와 그밖의 저서, 텔레비전, 영화 등을 통해 이 스포츠를 대중화시켰다. 1943년 이후에는 각종 장비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동호인 모임이 계속 생겨났다. 프랑스·이탈리아·영국·캐나다·미국 등지에서는 전국 수중 다이빙 협회가 결성되었고, 쿠스토는 1959년에 15개국(나중에 50개국 이상으로 늘었음)의 기구를 모아 세계수중연맹(Confédération Mondiale des Activités Subaquatique/CMAS)을 창설했다.
원시시대의 잠수부들이 식량으로 잡았던 물고기와 장신구로 쓰기 위해 채취했던 산호는 여전히 현대의 스킨 다이버와 스쿠버 다이버들이 찾는 대상이다. 식용 물고기 사냥에는 1930년대에 고안된 고성능 수중총이 사용되며, 오락적·과학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특수 수중 카메라가 널리 쓰인다. 그밖에도 스쿠버 다이빙은 해양학, 물고기 등의 해양 유기체에 대한 연구, 수질오염 연구에서 과학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배를 조사하고 인양하는 작업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는데, 이런 작업을 할 때 전에는 배 위에 연결된 산소줄이 달린 헬멧을 썼으나 지금은 대개 다른 첨단장비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