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협회원작품읽기]를 시작하며
'시란 것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시도 시인도 양산 되고 있는데 정작 시는 읽히는 않는다.'라고들 말합니다. 이 난제를 풀어가려 노력 사람도 있어야 시가 살아남을 수 있겠지요.
지난 해 가입한 이래 우선 경주 문협 회원 개개인의 면면을 익히는 일과 그분들의 작품을 읽는 일을 틈틈이 계속해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게시판에 게재된 회원 작품을 한 독자로서 자유로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작업이 더러는 작가의 표현의도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그밖에 문법적 오독이나 불필요한 오해를 파생시킬 여지도 있을 듯합니다. 해서 되도록 ‘해독’에 주력하되 ‘평설’은 억제하려 합니다. 부족한 점은 관용하고 양해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제게는 이 작업이 문학 공부가 되고, 회원여러분들에게도 시 읽기나 퇴고에 도움이 되며, 나아가 경주문협 회원 여러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며, 회원들 사이에 [문학적 소통]이 든든하게 중심을 잡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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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협회원작품읽기1 - 미생(未生) / 권규미
[원작시]
미생(未生)
권규미
사월이었다 태양은 에레보스의 작은 풀밭이었다 때때로 나른한 풍우(風雨)를 저어 쌓아올린 제단마다 허방이었다 백발의 북두성과 붉은 입술 풍뎅이마저 소매를 당겨 얼굴을 가리던 어느 아침이었다 불각 중 인간체험을 하는 영적존재처럼 모든 말(言)은 사막의 모래알이던 전생으로 내달리고 만만파파의 적막들이 숟가락을 빼앗긴 저녁의 꽃처럼 물방울의 팔에 매달려 엄마, 엄마, 가슴을 치고 시간의 녹슨 튀밥냄비 불멸의 옥수수 한 알 삼키지 않았다 천진한 바다엔 출렁거리는 푸른 심장과 심장들의 타오르는 밤이 오고 삶이란 무지막지 낡은 한 잎의 벽화였다 화엄장엄의 사월, 지상의 계단마다 지하의 벼랑마다 고요히 등촉이 켜지는 축복의 계절, 누가 병속의 물을 쏟았을까 누가 그림속의 배를 밀었을까 누가 없는 탑의 불을 놓았을까 누가, 누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사이 낳지도 않은 아이 삼 년을 찾아 헤매는 석장승처럼 빈 수레만 돌고 도는 사이 해 지는 물가에 앉아 거북아 거북아 노래하는 사이…… 벽해상전의 수만 년 후쯤 옛날 옛날로 시작하는 꽃다운 동화 속에 감자를 캐고 콩을 심었으나 키가 자라지 않는 난쟁이처럼 여전히 낭자한 사월이었다
▲ 권규미 // demeter02@hanmail.net. 1958년 경주 출생. 2013년 <유심>등단,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대구불교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협 경주지부 회원.
*자료출처: 경주문협 / 웹진 광장이 선정한 2015올해의 좋은 시 100선에 든 권규미 시인의< 미생(未生)>외|시 및 시조 / 김광희 | 조회 128 |추천 0 |2015.02.0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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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읽기]
미생(未生)
권규미
사월이었다
태양은 작은 풀밭이었고
때때로 쌓아올린 제단마다 허방이었다
백발의 북두성과 붉은 입술 풍뎅이마저 소매를 당겨 얼굴을 가리던
어느 아침이었다
(사월,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그 무렵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는 공허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불각 중 인간체험을 하는 영적존재처럼
모든 말(言)은 사막의 모래알이던 전생으로 내달리고
만만파파의 적막들이 숟가락을 빼앗긴 저녁의 꽃처럼 물방울의 팔에 매달려 엄마, 엄마, 가슴을 치고
시간의 녹슨 튀밥냄비 불멸의 옥수수 한 알 삼키지 않았다
천진한 바다엔 출렁거리는 푸른 심장과
심장들의 타오르는 밤이 오고
삶이란 무지막지 낡은 한 잎의 벽화였다
(모든 말들이 전생의 업보를 환기하여 고통스럽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 나는 우리 시대의 삶을 낡은 한 잎 벽화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화엄장엄의 사월,
지상의 계단마다 지하의 벼랑마다 고요히 등촉이 켜지는 축복의 계절,
누가 병속의 물을 쏟았을까
누가 그림속의 배를 밀었을까
누가 없는 탑의 불을 놓았을까
(석가탄신을 찬미하는 사월이었으나, 나는 회의를 거듭하였습니다. 누가, 이 부조리인 듯한, 인과로 해명되지 않는 진리현상을 지어내었을까 하고)
누가, 누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사이
낳지도 않은 아이 삼 년을 찾아 헤매는 석장승처럼 빈 수레만 돌고 도는 사이
해 지는 물가에 앉아 거북아 거북아 노래하는 사이……
(그렇게 홀로 오래도록 번뇌를 거듭하는 사이 …… 문득 나는 깨달았습니다.)
벽해상전의 수만 년 후쯤
옛날 옛날로 시작하는 꽃다운 동화 속에 감자를 캐고 콩을 심었으나
키가 자라지 않는 난쟁이처럼 여전히 낭자한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인간이 보기에 부조리한 진리현상들도 그대로 지속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월이었다
(다시 보니, 이 시절은 예와 같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未生), 사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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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원작시]와 [작품읽기]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작품읽기]는 원작시에 대하여 <독자의 입장에서 해득하고 수용한 바를 다시 서술한 것>입니다.
- 이에 따라 시행을 다르게 배열하였고, ( 청색 )을 덧붙여 앞 시구의 중심 내용을 요약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 또한 글자의 크기를 ‘작게’ 하거나, 또는 ‘짙게’ 한 것도 이 시의 중심 주제와 연관하여 의미의 비중을 다르게 이해하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미생(未生)
권규미 原作, 조기현 讀解
사월,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그 무렵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는 공허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모든 말들이 전생의 업보를 환기하여 고통스럽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 나는 우리 시대의 삶을 낡은 한 잎 벽화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석가탄신을 찬미하는 사월이었으나, 나는 회의를 거듭하였습니다. 누가, 이 부조리인 듯한, 인과로 해명되지 않는 진리현상을 지어내었을까 하고
그렇게 홀로 오래도록 번뇌를 거듭하는 사이 …… 문득 나는 깨달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인간이 보기에 부조리한 진리현상들도 그대로 지속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보니, 이 시절은 예와 같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未生), 사월이었습니다.
첫댓글 시 해석을 이렇게 해 놓으시니
제가 읽은 이 시의 느낌보다 더 깊고 넓게 다가옵니다. ^^
평론의 기초 작업으로 이런 방법을 써왔습니다. 시도 하나의 삶의 이야기요 소통의 맥락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난해하고도 독특한 표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작업이지요. 이러다 보면 시의 의미 맥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고, 또 표현이 잘되고 잘못된 것도 헤아려 볼 수 있게 됩니다.
샘, 꿈보다 해몽입니다.
시인의 시상을 온전히 되살려낼 수는 없는 일인 줄 알지만, 이렇게 읽어 보았습니다. 혹 아주 빗나간 오독이 있다면......일깨워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