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카페 게시글
반야심경 스크랩 반야심경 7-2 전도몽상 구경열반 ...
명심 추천 0 조회 61 14.04.24 14: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반야심경7-2-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 전도몽상에 대한 설명을 더하고자 한다.
중생이 이 육신
(업신)의 내가 살아 가는 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이, 진성(우주법계를 구족한 자성)
의 깨끗하고 참됨에 의해 하고싶은 대로 바르게 행하고 뜻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뒤바뀐 꿈같은 삶인지도 모르고 업보에 따라 신기루처럼 허상인 형상에 끄달려 살고 있으니 꿈을 깰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참나의 자유로움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이것이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인 것이다.
이를테면 TV속의 드라마가 마치 실상인 것처럼 끄달려 안타까워하고 잠시 즐거워하거나 슬퍼하나, 그것은 거짓 나인 업신
(극작가)의 그리는 꾸밈(업)에 따라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 활동은 참나가 아니어서 영원하지 못하고, 드라마(업의 그림자)가 끝나면 잠시 있었던 것은 실상이 아니었으므로 화면의 그림자는(이 생) 사라지고 그 배우(업신)도 또한 그려지는 다른 드라마{업의 과보로 받은 내생(중생심)의 세계)}에 출연하여 극작가(업)의 그림에 따라 끄달리므로 그 틀을 벗어나 피안(불세계)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차안(此岸)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과 같아, 꿈도 그러하고 나아가 중생 삶인 이 생도 그러하여 업신에 매여서는 영원히 그 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나, 이 허상의 꿈을 깨게 되면(대오견성) 실상으로 보았던 것이 잘못 알았던 환이었음을 깨닫고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걸림없이 자유로워 윤회의 苦를 벗어나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여 행동하거나 고요한 삼매 가운데이거나 차차별 없이 같아 항상 고루하게 되는 것)하게 되는 것이다]

        泥牛潛泳入龍宮    니우잠영입용궁 이요
        金獅隱藏虛空中    금사은장허공중 이니
        已離分別離禪定    이리분별리선정 하여
        似是虛空無思量    사시허공무사량 이니라

        진흙소는 용궁에 헤엄쳐 들어갔고
        황금사자는 허공 속에 숨어버리니
        이미 분별 떠났고 선의 고요함도 떠나
        허공 같아도 허공이라는 헤아림도 없나니라

         

究 竟 涅 槃
구 경 열 반
필경 해탈을 하게 되는 것이니라.

구경은 무극 또는 필경이며 완전한 이란 뜻이며, 열반(해탈)은 집착이 끊어지고 고요적적함인 것이므로 분별심과 간택함이 없는 것이지 열반이라고 해서 멸하여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생 불멸의 참나(절대본원)를 깨닫게 되면 육신을 갖고 있으되(有餘涅槃)(업신)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적인 혁명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인으로서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적멸위락(寂滅爲樂: 생사를 뛰어넘어 열반의 고요한 즐거움)을 누리고 상락아정(常樂我淨: 상은 생멸 변화가 없는 덕. 낙은 생사고통을 여의고 안락한 덕. 아는 나에 집착함을 여의고 자재한 참나의 덕. 정은 청정한 덕을 두루 갖춰 누리게 되는 것)하게 되는 것이다]

        惟願諸君莫尋佛    유원제군막심불 하라
        行住坐臥與君俱    행주좌와여군구 하도다
        唯在目前不見面    유재목전불견면 이나
        知不見者是佛也    지불견자시불야 니라

        오직 바라노니 그대들이여 달리 부처를 찾지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대와 함께 하도다
        오직 눈앞에 두고도 그 얼굴 못 보나
        못 볼 줄 아는 그가 다만 이 부처니라

 

 

三 世 諸 佛
삼 세 제 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삼세제불은 이전(과거)이나 지금(현재)이나 앞으로(미래)나 부처를 이루었고 이룰 모두를 들어 설명하고자 함을 살펴야 한다.

[삼세라 하나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 불멸하는 부처(근본당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공을 초월한다 하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차별상으로 시공이라 하는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지어 만든 가변적인 것일 뿐, 이를테면 과거는 지나간 현재요, 현재는 현재라 할 때 과거요, 미래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현재인 것이다.

근본 본질로 살펴보면 현재라는 기준조차 없고 공간 또한 막힘 없이 그러하여 시공을 초월하게 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본성이 공하여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니 곧 중생은 부처인 중생인 까닭이며, 부처라 할 때 중생이니 부처라 할 때 중생이 된 부처이기 때문인 것이다]

        月照千江月千個    월조천강월천개 이나
        千個更在一個中    천개경재일개중 하고
        一建一切一生多    일건일체일생다 이니
        一切物物皆含一    일체물물개함일 이네

        달 하나 천강 위에 비춰 천개의 달이나
        그 모두를 하나가 거두고 잡고 있어
        하나가 모두를 건립하고 일체는 하나에서 생기니
        물건마다 모두가 하나를 머금고 있네.

 

 

依般若波羅密多
의반야바라밀다
이 밝은 지혜에 의지하여 깨닫게 된 것이니

[반야바라밀다는 재설명이므로 생략한다]

        子卽是母母是子    자즉시모모시자 이니
        當知方物不塞圓    당지방물불색원 하고
        方圓各有所有理    방원각유소유리 이니
        月照萬像無自影    월조만상무자영 이니라

        아들은 곧 어머니요 어머니는 아들이니
        당연히 모난 것으로 둥근 구멍을 막지 못하고
        모난 것은 모남으로 둥근 것은 둥글어야 맞으니
        달이 우주를 비춰도 제 그림자 없음이니라.

 

故得 阿뇩多羅三막三菩提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러므로 위없이 높고 바른 진리를 얻게 된 것이니라

대략 설명하자면 득은 성취(成就)요 아는 없음(無)이며, 뇩다라는 위(上)라는 뜻이며 삼먁은 바르다(正)는 뜻이며 삼보리는 진리(즉 眞=正知見<바른앎>=지혜)라는 뜻으로 곧 위없는 바른 진리를 깨우쳐 얻은 것이니 다시 말해서 결국 무상(아뇩다라) 정등(샴막) 정각(삼보리)을 성취(득)한다는 설명이다.
성취라 했으나 얻음이 아닌 것으로 본래 있음을 미(迷)하여 깨닫지 못했을 뿐인 것을 증오해서 증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잊고, 잃은 것을 다시 찾은 것과 같다.

[얻었다고 하나 공적하여 본래 얻을 것이 없고 시공을 초월하여 동시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즉 범어Auttara -samyaksambodhi의 음역으로 무상 정등정각(위없는 깨달음)인 것으로 줄여서 = 곧 정각 = 곧 보리 = 곧 불법 = 곧 진리 = 곧 견성  = 곧 열반 = 곧 해탈 = 곧 성불인 것이다.

삼세 제불이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요,
어리석은 중생이 자기와 자기 것을 두고 모르고 있다가 스스로 확인
(체인)한 것이라. 얻어도 얻은 것이 아닌 얻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證悟, 證得한다고 하는 것이다]

        眞知諸佛出此經    진지제불출차경 하면
        市中雜話皆法輪    시중잡화개법륜 하고
        逐句執言沒迷惑    축구집언몰미혹 하면
        龍宮藏經都夢예  용궁장경도몽예 이리라

        삼세제불이 이 경에서 나왔음을 참으로 안다면
        시중잡담이 법륜의 굴림인 줄 알 것이고
        문자에 좇고 말에 끄달려 어리석으면
        용궁장경 일지라도 모두가 잠꼬대이리라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