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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 12. 省 心 篇 (上) (성심편 상)
삶 - 동양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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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景行錄에 云 寶貨는 用之有盡이요 忠孝는 享之無窮이니라.
경행록에 운 보화는 용지유진이요 충효는 향지무궁이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금은보화는 쓰면 다 없어지지만 충효는 이를 누려도 다함이 없다.
[해설]
매년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이날의 유래를 한번 알아보자. 미국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안나 자비스라는 효성스런 여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죽자 그녀는 슬픔과 회한으로 괴로워하다가 일 년에 단 하루라도 어머니를 기리고자 마음먹었다. 파티에 참석할 때면 늘 흰 카네이션을 달고서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날’을 만들자고 설득했다. 장장 7년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14년 5월 둘째 일요일, 첫 ‘어머니의 날’이 선포되었다. 우리도 이 전통을 이어 ‘어머니의 날’을 제정하였다가 1974년에 ‘어버이의 날’로 바꾸었다. 효(孝)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효자 아닌 충신은 없는 법이라고도 했다. 어버이날에 잠깐 되새기고 말 것이 아니라 늘 가슴속에 지녀야 할 덕목이다.
2. 家和면 貧也好어니와 不義富如何오 但存一子孝면 何用子孫多리오.
가화면 빈야호어니와 불의부여하오 단존일자효면 하용자손다리오.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지만 의롭지 않으면 부자인들 무엇하랴. 단 효하는 자식이 하나라도 있다면 많은 자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해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면 마음도 편하고 든든하여 모든 일이 잘 풀린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자기 가정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자는 국가의 일에 대해서도 가치 있는 인물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가정의 화목은 이루기도 지키기도 힘들다. "왕국을 통치하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가정의 화목은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위한 작은 희생일 것이다. 양보와 희생이 모여 가정의 평화를 이루어 내는 법이다.
3. 父不憂心은 因子孝요 夫無煩는 惱是妻賢이라
부불우심은 인자효요 부무번뇌 시처현이라
言多語失은 皆因酒요 義斷親疎는 只爲錢이라.
언다어실은 개인주요 의단친소는 지위전이라
아버지가 근심이 없는 것은 자식의 효도 때문이고 남편이 번뇌가 없음은 아내가 현명하기 때문이다. 말이 많아서 말로 실수하는 것은 다 술 때문이며 의가 끊어지고 친한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오직 돈 때문이다.
[해설]
어느 지혜로운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슬람의 성인 마호메트는 처음 신의 계시를 받고 두려움과 의심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아내 하디자는 그것이 신의 계시임을 확신하고 알라의 첫 번째 신자가 되었다. 당시는 부족마다 섬기는 우상이 있었기 때문에 무서운 박해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마호메트는 이슬람교로 아랍세계를 통일했다. 이것은 아내 하디자의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 때문이었다. 아내의 현명한 내조는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남편과 자식의 운명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요즘은 현모양처를 봉건적 잔재로만 받아들이는 듯하다. 자식과 남편을 사랑하고 위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을까?
4. 旣取非常樂이어든 須防不測憂니라.
기취비상락이어든 수방불측우니라
이미 보통이 아닌 즐거움을 가졌거든 모름지기 예측할 수 없는 근심을 막아야 한다.
[해설]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 각지에서 모인 영웅들이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하여 십년 동안의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왕과 신하, 백성이 똘똘 뭉쳐 싸우는 트로이를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리스 군은 마지막 계략으로 병사를 숨긴 거대한 목마를 선물하고 물러났다. 똑같이 지쳐 있던 트로이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에 그간의 경계심을 풀고 말았다. 확인도 안한 채 목마를 성문 안에 들여놓고 밤새도록 승전을 자축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행운의 전리품은 죽음의 사자로 변하고 말았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성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갑작스런 행운이 있으면 갑작스런 불행이나 근심도 있는 법이다. 늘 조심스런 마음가짐을 잃지 말아야겠다.
5. 得寵思辱하고 居安廬危니라.
득총사욕하고 거안여위니라
사랑을 받을 때 욕된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편안하게 살 때에는 위험이 닥쳐오지 않을까 생각하라.
[해설]
옛날 한나라가 초나라를 꺾고 대륙을 통일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부하 중에서 가장 용맹하게 싸운 한신을 총애하여 초나라 왕으로 삼았다. 그런데 유방이 한신의 부하인 종리매를 잡아오라고 하자 처음에 그를 숨겨 주었던 한신은 고민 끝에 그를 체포하였다. 종리매는 한신의 옹졸함과 유방의 저의를 꾸짖고는 스스로 목을 베어 한신의 뜻에 따랐다. 한신은 총애를 잃지 않으려고 친구의 목을 바치기까지 했지만 유방은 그를 체포했다. 한신은 노기충천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를 잡으면 좋은 활도 사장되며, 적국이 무너지면 지혜 있는 신하도 망하게 마련이라 하던데 과연 그 말이 맞구나. 천하가 이미 평정됐으니 나 역시 사냥개처럼 삶아지는구나." 편안하고 즐거운 때일수록 위급할 때를 생각해야 한다.
6. 榮輕辱淺이오 利重害深이니라.
영경욕천이오 이중해심이니라
영화(滎華)가 가벼우면 욕됨이 얕고 이로움이 무거우면 해로움도 깊다.
[해설]
책임과 권한이 큰 자리일수록 명예와 영광이 따른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등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일거수일투족이 국민들의 관심을 모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처신에 조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명예와 영광이 큰 만큼 사람들의 비난과 실망도 크게 마련이다. 목전의 영화와 이익에 급급하여 나라와 자신을 욕되게 한 두 전직 대통령을 보라. 큰 영화와 이익은 험한 절벽 위에 핀 꽃과 같다. 그 꽃을 따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올라야만 한다. 하지만 높은 절벽일수록 떨어지기도 쉬운 법이다.
7. 甚愛必甚費요 甚譽必甚毁요 甚喜必甚憂요 甚贓必甚亡이라.
심애필심비요 심예필심훼요 심희필심우요 심장필심망이라
사랑이 지나치면 반드시 그 소모가 심할 것이고, 명예가 지나치면 반드시 그 비방이 심할 것이고 기쁨이 지나치면 반드시 그 근심이 심할 것이며, 뇌물을 탐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그 망함이 심할 것이다.
[해설]
중국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 황후 마씨와 정승 상우춘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주원장이 말했다.
"우리 셋은 이미 생의 최고 목적을 이루었소. 그래도 무슨 욕망이 더 있다면 솔직히 말들을 해보오. 만약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저기 뽕나무가 흔들릴 거요."
먼저 주원장이 자신은 푸짐한 뇌물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황후는 잘 생기고 건장한 사나이와 어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상우춘은 황제의 자리에 앉고 싶다고 말했다. 주원장의 말대로 세 번 모두 뽕나무가 우수수 흔들렸다. 이것은 '그 욕심에 뽕나무도 흔들겠다.'는 우리 속담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욕심은 여러 모습을 띠지만 종국에는 큰 화를 부른다. 기와 한 장 아끼려고 대들보를 썩히는 일은 말아야 한다.
8. 子曰 不觀高崖면 何以知顚墜之患이며 不臨深泉이면 何以知沒溺之患이며 不觀巨海면
자왈 불관고애면 하이지전추지환이며 불림심천이면 하이지몰닉지환이며 불관거해면
何以知風波之患이리오.
하이지풍파지환이리오
공자가 말하기를, 높은 낭떠러지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굴러 떨어지는 근심을 알 것이며, 깊은 연못에 와보지 않고서야 어찌 물에 빠져 죽는 근심을 알 것이며, 큰 바다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풍파의 근심을 알겠는가?
[해설]
세상일이란 몸소 경험해 보지 않고는 그 어려움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정보와 지식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대라고 하지만, 책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살이에는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정도를 실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우리들은 대부분 숱한 고난을 겪고서야 어른의 지혜를 깨닫는 법이다. 경험이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9. 慾知未來어든 先察已然이니라.
욕지미래어든 선찰이연이니라
앞날을 알고자 하거든 먼저 지난 일들을 살펴라.
10. 子曰 明鏡은 所以察形이오 往者는 所以知今이니라.
자왈 명경은 소이찰형이오 왕자는 소이지금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옛것을 잊지 않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고 했다. 공자가 말한 옛것은 주나라 때의 문물, 특히 예(禮)와 악(樂)을 말한다. 공자는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는 어지러운 시대에 이상적 시대로 여겨진 주나라 때의 문물과 제도 그리고 그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그는 옛 전통 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정치와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이 아무리 낡았다 해도 잘 닦기만 한다면 사물을 뚜렷하게 비춰 낼 것이다
11. 過去事는 如鏡朝이요 未來事는 暗似漆이니라.
과거사는 여경조이요 미래사는 암사칠이니라
지나간 일은 맑은 거울처럼 밝고 앞날의 일은 칠흑처럼 어둡다.
12. 景行錄에 云 明朝之事를 薄暮에 不可必이요 薄暮之事를 哺時에 不可必이니라.
경행록에 운 명조지사를 박모에 불가필이요 박모지사를 포시에 불가필이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내일 아침 일을 오늘 저녁 무렵에 꼭 알 수 없으며 오늘 저녁의 일을 오후 네 시에도 꼭 알 수가 없다.
[해설]
앞일을 알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점집의 문 앞이 분주해지고, 과학자들은 시간의 벽을 넘기 위해 헛된 노력을 되풀이한다. 미래란 분명히 다가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앞일을 미리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에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미래로 이어진 현재를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사실 시간이란 과거·현재·미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의 끊임없는 연속이라 보는 것이 옳다. 지금 여기의(now and here) 일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미래는 당연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13. 天有不測風雨하고 人有朝夕禍福이니라.
천유불측풍우하고 인유조석화복이니라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禍)와 복(福)이 있다.
[해설]
요즘은 일기예보가 큰 오차 없이 잘 들어맞는 듯하다. 예보 방법도 확률 식으로 바꾸어 오늘 비 올 확률은 80%라는 식의 예보를 한다. 그래도 100%일 경우는 전무하다. 사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의 인생을 예측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다.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는가 하면, 권력의 미움을 받던 이가 복권되어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인생의 길흉화복은 끝없이 부침을 계속한다. 그래도 우리는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듣는다. 그리고 인생을 계획하며 한발 한발을 미래로 내딛는다. 그 길에 도사린 영욕보다는 매순간의 걸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14. 未歸三尺土하고 難保百年身이요 已歸三尺土나 難保百年墳이라.
미귀삼척토하고 난보백년신이요 이귀삼척토나 난보백년분이라
아직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백 년의 몸을 지탱하기가 어렵고, 이미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가서는 백 년의 무덤을 보전키 어렵다.
[해설]
진(秦)나라의 왕이 된 정(政)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뒤 스스로를 시황제라 칭했다. 옛 전설의 삼황오제(三皇五帝)를 겸했으며 최초의 황제라는 뜻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이룬 무소불위의 권력을 영원히 지키고자 백방의 노력으로 불사의 영약을 찾았으나 오십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다. 인간에게 영원함이란 없다. 한번 나서 죽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15. 景行錄에 云 木有所養則根本固而枝葉茂하여 棟樑之材成하고
경행록에 운 목유소양즉근본고이지엽무하여 동량지재성하고
水有所養則泉源壯而流派長하여 灌漑之利博하고 人有所養則志氣大而識見明하여
수유소양즉천원장이류파장하여 관개지리박하고 인유소양즉지기대이식견명하여
忠義之士出이니 可不養哉아.
충의지사출이니 가불양재아
<경행록>에 이르기를, 나무를 잘 기르면 뿌리가 튼튼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서 마룻대와 대들보 감을 이루고, 물을 잘 다스리면 그 물의 근원이 크고 세고 물의 흐름이 길어 관개에 이로움이 크며, 사람을 잘 키우면 기상이 높고 식견이 밝아 충성스럽고 의로운 인물이 배출되니, 어찌 이와 같이 잘 기르지 않겠는가?
[해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존경받는 랍비가 어느 마을을 방문하여 그 마을의 대표자를 찾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경찰관이 랍비를 맞으러 나오자 랍비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사람을 만나고자 하오.”
그러자 마을의 수비대장이 찾아왔다. 랍비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경찰관도 수비대장도 아니요, 학교의 교사입니다. 경찰관이나 군인은 마을을 파괴하는 자이고 진정으로 마을을 지키는 자는 교사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인재를 기르는 것보다 더 좋은 투자는 없다.
16. 自信者는 人亦信之하나니 吳越이 皆兄弟요 自疑者는 人亦疑之하나니 身外皆敵國이니라
자신자는 인역신지하나니 오월이 개형제요 자의자는 인역의지하나니 신외개적국이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남들도 역시 믿어 주기 때문에 서로 적국(敵國)과 같은 사이라도 모두 형제처럼 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은 남들도 역시 자기를 의심하게 되니 자기 이외의 사람은 모두 적국처럼 될 것이다.
[해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 비추어 남을 판단한다. 가령 누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줍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주운 물건을 어떻게 할지 궁금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 사람이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는 돌려주리라 믿을 것이다. 믿지 못하는 이라면 대개는 자신도 그런 경우에 돌려주지 않은 경험이 있게 마련이며, 믿는 이라면 그럴 경우에 반드시 돌려준 사람이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잘 믿지 못하는 법이다. 독일의 소설가 아우엘 바하가 남긴 독설이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에게도 신용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17. 疑人莫用하고 用人勿疑니라.
의인막용하고 용인물의니라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사람을 쓰거든 의심하지 말지니라
[해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 구절의 교훈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의심이란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의심을 하게 되면 아닌 줄 알면서도 좀처럼 그 늪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의심은 당사자뿐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까지도 괴롭히는 법이다. 그래서 일단 의심이 가거나 못 미더운 사람이라면 아예 쓰지를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 믿은 사람이라면 웬만한 일이 있더라도 전폭적으로 그 사람을 후원하고 믿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꼭 지켜야 할 용인(用人)의 전략이다.
18. 諷諫에 云 水底魚天邊雁은 高可射兮低可釣니와 惟有人心咫尺間에 咫尺人心不可料니라
풍간에 운 수저어천변안은 고가사혜저가조니와 유유인심지척간에 지척인심불가료니라
<풍간>에 이르기를, 물 속 깊이 있는 물고기, 즉 낮은 데 있는 것은 낚시로 낚을 수 있고 하늘 높이 떠 있는 기러기, 즉 높은 데 있는 것은 활로 쏠 수 있지만 오직 사람의 마음은 바로 곁에 있어도 그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19. 畵虎畵皮難畵骨이요 知人知面不知心이니라.
화호화피난화골이요 지인지면부지심이니라
호랑이를 그림에 있어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를 그리기는 어렵듯이 사람을 앎에 있어서 그 얼굴은 알 수 있으나 그 마음은 알 수 없다.
[해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또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안다'는 말도 있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산 속의 버섯이 아름다운 빛깔일수록 독버섯이기 쉽듯이 사람도 겉모습과는 딴판인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외모가 추천장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신용장의 역할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추천장뿐이다. 사람을 새로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믿되 경솔한 대응을 늘 경계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속단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0. 對面共話하되 心隔千山이니라.
대면공화하되 심격천산이니라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를 하지만 마음은 여러 산이 막힌 듯 멀리 멀어져 있다.
[해설]
아주 다정한 사이인 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마음은 서로 딴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짐작할 수도 없을뿐더러 제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에도 마음의 중요함을 강조한 말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마음이 거기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昧)."
21. 海枯終見底나 人死不知心이니라.
해고종견저나 인사부지심이니라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속을 알 수 없다.
[해설]
과학이 발달하면서 바다 속이든 땅 속이든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려져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심리학이니 정신의학이니 여러 학문 분야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개개인의 마음에도 공통분모는 있게 마련이며, 그런 공통분모를 잘 살핌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다. 조금씩 열어 놓은 마음의 문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전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쉽게 남의 마음을 모른다고 한다.
22. 太公이 曰 凡人은 不可逆相이요 海水는 不可斗量이니라.
태공이 왈 범인은 불가역상이요 해수는 불가두량이니라
태공이 말하기를, 무릇 사람들은 그 앞날을 점칠 수 없고 바닷물은 말로 그 양을 측량할 수 없다.
[해설]
사람의 앞날이란 봄에 솟아오르는 새싹에 견줄 수 있다. 두터운 땅을 뚫고 내미는 연두빛 새싹만 보고서는 어떤 꽃에서 열매가 맺힐지 알 수 없다. 사람도 이와 같이 어떤 이는 새싹 몇 장으로도 짐작이 되는 반면, 어떤 이는 꽃이 피고서야 알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열매를 맺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사람의 장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떡잎만 보고서 쉽게 판단하고 쉽게 결정한다.
23. 景行錄에 云 結怨於人은 謂之種禍요 捨善不爲는 謂之自賊이라.
경행록에 운 결원어인은 위지종화요 사선불위는 위지자적이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남과 원수를 맺는 것은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요, 참을 버리고 행하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해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말과 당나귀에게 짐을 운반하게 했다. 여행 도중에 힘에 부친 당나귀가 말에게 부탁했다.
"내 목숨을 구해 줄 생각이 있다면, 내 짐을 조금만 당신이 져 주세요." 말은 들은 척도 안했고, 당나귀는 결국 얼마 못 가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주인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에다가 당나귀의 시체까지 말에게 지게 했다. 말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정말 한심하게 되었구나.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이제 그 녀석의 짐 전부에다가 그 녀석의 시체까지 지게 되었구나."
화(禍)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까운 선(善)을 행하지 않는 데서 화가 비롯되는 법.
24. 若廳一面說이면 便見相離別이니라.
약청일면설이면 변견상이별이니라
만약 한쪽의 말만 듣게 되면 문득 서로 멀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해설]
절친한 사이에도 의견충돌이나 다툼이 일어난다. 이유야 무엇이건 그럴 때는 사이에 낀 제 삼자의 입장이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대개의 경우 양쪽 모두 한 보씩만 양보하면 될 일인데 시비를 다투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는 것이 잘잘못을 가리다보면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크고 중요한 일이라면 모를까 사소한 다툼이라면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양쪽에게 똑같이 ‘네 말이 옳다’고 한 황희 정승처럼.
25. 飽煖엔 思淫慾하고 飢寒엔 發道心이니라.
포난엔 사음욕하고 기한엔 발도심이니라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탕한 욕망이 생각나고 배고프고 추우면 도덕심이 생긴다
[해설]
강직했던 옛 선비들은 지나친 재물과 안락을 늘 경계해 마지않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처럼 가난한 가운데서도 여유와 즐거움을 찾았던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가난이 범죄의 동기가 되어 여러 불행한 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지나친 부가 타락을 가져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검소하고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26. 疎廣이 曰 賢人多才則損其志하고 愚人多才則益其過니라.
소광이 왈 현인다재즉손기지하고 우인다재즉익기과니라
소광이 말하기를, 어진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그 지조를 손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그 허물을 더한다.
[해설]
아무리 건전한 사람의 정신도 재물로 인해 흐려지는 예가 많다. 재물이 없을 때는 올바른 뜻을 가지고 살던 사람도 재물이 많아지면 그 뜻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부를 분뇨에 비유했다. 부란 쌓일수록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흙을 기름지게 한다고. 어진 사람이라면 부를 쌓아 두기 전에 거름으로 널리 사용할 것이다.
27. 人貧智短하고 福至心靈이니라.
인빈지단하고 복지심령이니라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지고 (부유해서)행복의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존귀해진다.
[해설]
지나친 부가 정신의 타락을 가져오는 것처럼 지나친 가난도 우환이 되기 쉽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상하게 하는 게 ‘빈 지갑이라고’유대인들은 말한다. 너무 궁핍하여 생활이 쪼들리면 지혜와 기상도 오그라들어 뜻을 마음껏 펼 수 없게 된다. 재물과 사람의 관계를 잘 읽어 낸 구절이다.
28. 不經一事면 不張一智니라.
불경일사면 부장일지니라
아무 일도 경험하지 않으면 아무 지혜도 자라지 않는다.
[해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지혜를 경험의 딸이라고 했다. 경험은 그것이 혹독하면 할수록 더 깊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때론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지혜란 이러한 힘든 역경을 통과하며 조금씩 뭉쳐지는 것이다. 지혜가 값진 것은 이 때문이다.
29. 是非終日有라도 不聽自然無니라.
시비종일유라도 불청자연무니라
하루 종일 시비가 있을지라도 이를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해설]
말은 사람을 하나로 묶는 구실을 한다. 한자의 믿을 신(信) 자를 해자(垓字)하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 된다. 말이란 그 자체가 믿음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는 의미가 깃들여 있는 것이다. 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오만해진 사람들이 신에게 이르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신의 분노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전설이 나온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말을 가려서 하고 가려서 듣는다. 의심이 가는 말이라면 그 자체로 말의 값어치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30. 來說是非者는 便是是非人이니라.
내설시비자는 변시시비인이니라
찾아와서 시비를 따지는 사람이 곧 시비하는 사람이다.
[해설]
옛날에 닭과 꿩이 이웃하며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이를 시기한 여우가 하루는 꾀를 내었다. 여우는 닭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얘, 꿩이 그러는데 너는 알만 잘 낳지 날지도 못한다면서. 정말이니?”
닭은 꿩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여우는 닭과 헤어진 뒤 꿩에게 가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얘, 닭이 글쎄 넌 바스락 소리만 나도 머리를 박고 숨는다고 하더라. 그 말이 믿기지는 않지만 혹시 정말이야?”
여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꿩은 닭에게 달려가 서로의 멱살을 잡았고, 그토록 친하던 닭과 꿩은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근거 없는 말을 진실인 양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그 사람부터 경계하자.
31. 擊壤詩에 云 平生에 不作皺眉事하면 世上에 應無切齒人니
격양시에 운 평생에 부작추미사하면 세상에 응무절치인니
大名을 豈有鐫頑石가 路上行人이 口勝碑니라.
대명을 개유전완석가 노상행인이 구승비니라
<격양시>에 이르기를, 일생 동안 눈살 찌푸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응당 이(齒)를 갈 사람이 없다. 크게 떨친 이름을 어찌 보잘 것 없는 돌에다 새기겠는가? 길가는 행인들이 입으로 말하는 것이 비석보다 더 났다.
[해설]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선한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원한을 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원수를 만나기도 한다. 악인은 이미 지은 죄로 인해 무수한 공덕비를 세워도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왜냐하면 사소한 선악일지언정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32. 有麝自然香이니 何必當風立고.
유사자연향이니 하필당풍립고
사향이 있으면 향기가 저절로 풍기는데 어찌하여 꼭 바람을 맞아야만 하는가?
[해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그러나 아무리 고운 꽃의 향기도 피기 전에는 맡을 수 없다. 사람 역시 무르익지 않은 인격은 향기가 날 리 없다. 한 떨기 꽃이 향기를 내기 위해 모진 비바람과 폭염을 견뎌 내듯이 훌륭한 인격은 오랜 수양과 실천을 통해서만 자라난다. 자신의 인격을 닦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면 향기가 나지 않을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33. 福莫享盡하라 福盡身貧窮이요 有勢莫使盡하라 勢盡寃相逢니라
복막향진하라 복진신빈궁이요 유세막사진하라 세진원상봉니라
福兮常自惜하고 勢兮常自恭하라 人生驕與侈는 有始多無終이니라.
복혜상자석하고 세혜상자공하라 인생교여치는 유시다무종이니라
복이 있어도 다 누리지 말라,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해진다. 권세가 있다고 다(함부로) 부리지 말라, 권세가 다하면 원수를 만나게 된다. 복이 있거든 늘 스스로 아끼고 권세가 있거든 항상 스스로 삼가도록 하라. 인생에 있어서 교만과 사치는 시작은 있으되 흔히 나중(결과)은 없다.
[해설]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는 일시적인 것이 있고 영원한 것이 있다. 권세와 재물, 명예는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즐거운 것일지라도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반면에 겸허와 성실, 검소함과 같은 가치는 사람에게 단지 소박한 행복을 줄뿐이나 평생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가치이다. 어떤 영화와 부귀가 찾아오더라도 이런 가치들을 잃지 말아 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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