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어깨동무가 걸어온 길
1. 품은 시기,
2. 틔운 시기,
3. 뿌리내린 시기,
4. 다진시기,
5. 줄기가 뻗는 시기,
6. 열매 맺는 시기.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어깨동무 초창기의 아이들
(3) 뿌리 내린 시기 - 2003년, 월곡동에 터전을 마련하다!
공동육아의 뜻을 본격적으로 펴나가기 시작합니다.
조합원 모집을 위한 대대적인 홍보를 거친 후, 조합원 모집 설명회를 갖고, 출자금 200만원씩을 모아 제대로 된 터전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여기 저기 집들을 보러 다니다가 확 끌어당기는 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에 툭 트인 공원이 있어 일상적인 나들이가 가능하고, 하숙을 위해 지었나 싶게 이상한 구조로 생긴 월곡동 593-6번지의 집입니다. 적립된 결혼자금과 출자금 등을 합쳐 1억 2천에 주저없이 이 주택을 구입합니다.
이때부터 광주 각지에 모여 살던 조합원들이 월곡동 터전을 중심으로 광산구에 모여 살게 됩니다. 육아에서 비롯되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습니다.
초대 조합장으로 장연주 조합장이 취임하였습니다. 조합장이 주방일은 물론 차량운행까지 겸한 탓에 정작 자기 아이들은 혼자 알아서 크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하고 맙니다.
당시에 세 반을 개설하였으며, 30만원에서 60만원의 교사월급이 지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소가 협소한 탓에 6, 7세 아이들은 다른 유치원을 다니다가 어깨동무로 데리고 와서 방과후 활동을 했었는데, 사무국장이던 비눗방울 이모는 본인의 사회활동은 물론 먼 곳까지 출장을 다녀왔다가도 원으로 돌아와 방과후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터를 잡아 숨도 돌리기 전에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들(6,7세)의 안정적인 육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월곡동을 팔고 장소를 옮기자는 의견과 터전을 새로 짓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뜻을 품은 시기부터 돈 많은 사람을 위한 공동육아를 경계해 왔던 바, 새 터전이 공동육아의 문턱을 높일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많았습니다. 격론 끝에 그들은 무모하면서도 위대한 결론에 합의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난한 처지를 무릎 쓰자! 새 터전을 짓자!
이로써, 공동육아 어깨동무의 역사는 쉽게 썼다 지울 수 있는 연필의 역사가 아니라, 후 세대들이 그 뜻을 계속 이어 써나가야만 하는 볼펜의 역사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토론, 노력, 비용으로 만들어진 햇살가득.
(4) 다진 시기 - 2006년, 본량에 새 터전을 짓다!
가장 큰 힘이 들어간 시기이자,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희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얽힌 일화도 유난히 많습니다.
치열한 경선 끝에 ‘몸으로 떼워서 조합의 토대를 다지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이승남님이 2대 조합장에 당선됩니다. 새터전을 짓기로 결의하며, 출자금을 400만원으로 올리게 됩니다. 다들 어렵게 사는 처지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격론 중 주고 받은 상처도 컸습니다.
‘새터전 준비위원회’를 꾸려 광산구 이곳 저곳 땅을 보러 다니고, 후보지를 분석했는데, 카페에도 아직 그 기록이 있습니다. 땅값을 1억 내외로 계획하고, 검토 끝에 본량 송치동 터를 결정합니다.
자연스럽게 생태 건축 쪽으로 마음이 모아져 생태 건축가 이윤하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됩니다.
(햇살가득어깨동무 어린이집은 대한민국 생태건축의 출발점으로서도 중대한 건축학적 의의를 갖게 됩니다.)
햇살가득 설계자인 노둣돌 대표 이윤하 소장
새 터전을 짓기로 결심했지만, 땅값이며 공사비며 경제적인 걱정거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축비를 감당하기 위해 출자금이 많아야 했고, 대대적인 조합원 모집과 조합원 상담도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조합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동육아조직이 됩니다.)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조합원들의 인감도장을 수거하여 보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광주은행 어딘가에 이들의 서류가 있습니다.
공동육아와 관련된 교육도 함께 진행되었다. 초기 조합원들의 모습.
조합원 수를 대거 늘리고, 출자금을 올리고, 은행에 빚을 얻었지만, 공사비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생기는 강박증과 안타까움은 실무자가 더 강하게 느꼈겠지요. 이와 관련해서는 ‘유산사건’이 유명합니다. 새터전 준비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송석정 사무국장은 돈은 없지, 공사는 해야되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급기야 시어머니께 나중에 물려 줄 유산을 미리 줄 수 없냐는 도발적인 요구를 합니다. 결국 유산을 미리 받아내고야 말았지만, 시어머니가 한 달 넘게 홧병을 앓았음은 물론, 며느리에 대한 신인도가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합니다.
새터전 준비위원회
이승남님(맨 왼쪽), 유산사건의 주인공, 송석정 사무국장(맨 오른쪽)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건설비를 대고, 정작 자신은 은행 이자를 갚는 바보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우리 조합이 아직도 갚지 못한 개인 빚과 은행 빚은 모두 이 때 생긴 것이며, 이 짐을 나중에라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 조합은 2008년 총회에서 ‘특별 발전 기금’ 조성을 결의하게 됩니다.
여느 조합원들의 각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건축과 관련된 전문 인력을 쓰되, 몸으로 하는 일은 최대한 조합원이 제공함으로써, 공사비를 절감하고자 했습니다. 흙벽돌을 찍기로 했기 때문에, 흙벽돌 찍는 연습을 하기도 했지요. 조합원들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는 일화입니다.
특히, 조합장 이승남님은 건설현장에서 모진 일을 모두 감당하며,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공사비 절감을 위해 건축설계 책임자가 조합장 댁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광산구청장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이승남님의 집은 선거참모들의 숙소로도 활용되어 가족들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어깨동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나와 어깨동무의 구분이 없었던 2대 조합장 이승남 님
눈이 많이 내리면, 새벽같이 달려와 터전 주변을 쓸기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새터전 준비위는 매일같이 밤을 새워가며 건축 진행과 관련된 수많은 현안들을 결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터전을 짓는 일 이외에도 또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모들이 햇살가득까지 아이들을 직접 데려다 줄 수 없기 때문에 대형버스를 구입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애초에 유아전용 버스로 주문 설계된 고양이버스를 구입합니다. (보통 이미 만들어진 버스를 어린이용으로 개조하는데, 유아 전용으로 설계, 제작, 출고된 것은 광주에서 처음입니다. 아직까지 유일할 듯) 그런데, 그 버스를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비용 부담이 훨씬 늘어나지요. 그래서, 기사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당시 조합장 이승남님은 사무국장과 함께 1종 대형면허를 따서 고양이버스 운행을 책임지게 됩니다.
당시 고양이버스 구입을 다룬 기사
몇 년 전 이야기인데도 참, 꿈같은 이야기들이지요.
본량에 터전이 생기면서 현재와 같이 ‘어깨동무+햇살가득’의 양원 체계가 자리 잡게 됩니다.
새 터전이 완성된 이후에 이를 가꾸고 다듬기 위해 들어간 부모들의 노력도 소중했습니다.
첫댓글 저는 너무 편한생활 하는거 같네요...
햇살가득의 걸어온 발자취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제가 오늘 다녀온 곳이 공동육아의 장을 여는 곳이라는 것에 숙연해지네요.
팔에 소름이 돋았어요 인감에 보증에.. 이곳 햇살이 개인의 것도 아니고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았겠다 싶었지만 이정도일줄이야.. 부모들이 출자금 내고 원비도 잘 내는데 햇살은 왜 돈이 부족하다고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적이 있어요 근데 이때에 비하면.. 이분들 지금 어디계시는지 이분들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는지.. 집보러온 사람인냥 이건뭐죠 저건뭐죠 했던 저한테 넘 화가 납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