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화
시작노트
2016년 올림픽 경기에서 거의 우승과 거리가 멀어져가는 상황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라를 외치며 패색이 짙은 경기를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건 펜싱 선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으면 잘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심양면으로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신 정춘근 선생님, 임민자 회장님, 현미숙 사무장님, 황기숙님, 원숙자님, 이수옥님, 김백란 언니 최은선님 그리고 모을동비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병상에서
김옥화
바위 같았던 당신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아들한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빠 입원 하셨어!
놀란 아들이 새벽바람을 안고 달려왔습니다
물수제비 뜬 호수처럼 당황한 아들을 보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염려하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주사바늘을 꽂은 채 나타난 환한 표정에서
무뚝뚝하던 당신도 영락없는 애비고 남편이었습니다.
혜화동에서
김옥화
초겨울 바람이 종아리를 매섭게 휘감는 날
약속 없이 보낸 문자 한통에
한달음에 달려 온 그녀
주문한 도토리 들깨 칼국수 한 그릇 앞에 놓고
이어지는 둘만의 수다
모처럼만에 만끽해보는 여유로움 속에
입안에 감기는 도토리 국수발의 매끄러움이
들깨 국물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녹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고 조금 늦은 만남이었지만
바라보는 방향이 같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
공유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이 아닐까?
꽁꽁 언 뺨을 스치는
고양이 발톱같이 날카로운 바람도
방송대 건너편 서점으로 향하는
우리의 느린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호강하는 날
김옥화
일 년에 한번
소여물 주고, 사과 따고, 콩 타작하던
오늘은 손들이 호강하는 날
무딘 손톱에 매니큐어를 정성 드려 바른 손가락
빙그르 돌아가는 회전초밥 살짝 집어
시장 꼬마 김밥 맛으로 먹었다
그이와 마신 아메리카노 커피는
까맣게 눌 은 숭늉 맛으로 마셨다
오늘은 영화 속에 히말라야 정상을
가볍게 올라선 기분이다
얼룩진 시간들
몇 번의 헹굼으로 엷게 퇴색되었다
매캐한 매연 냄새
소란스러운 움직임에 휩쓸려 보는 것도
답답한 속을 풀어 주는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일 년에 한번은
영화 속 주인공과 손잡고 걷고 싶다.
2016년 1월 10일
어머니와 앉은뱅이 의자
김옥화
앉은뱅이 의자가 내 엉덩이에 찰싹 붙어있다. 누런 흙이 묻은 둥근 앉은뱅이 의자, 봄부터 가을까지 몸치인 내대신 신나게 춤을 췄다. 방구냄새 풍기는 엉덩이가 뭐가 좋은지 걸을 때마다 들썩이며 엄마 품 떨어지기 싫은 아기 코알라처럼 꼭 매달려 있다.
봄이 되면 밭을 갈고 제일 먼저 심는 것은 감자다. 감자는 심기 전에 한 알에 작은 건 두 쪽, 큰 건 세 쪽으로 씨눈 따라 조각을 냈다. 많은 양이 아니라도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면 발이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 이때, 겨우내 구석에 박혀 있던 앉은뱅이 의자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고 깔고 앉으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친정엄마 말씀처럼 효자 중에 효자다.
친정어머니는 늘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무얼 하고 계셨다. 봄부터 가을까지가 아닌 일 년 내내 엄마 엉덩이에 앉은뱅이의자가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봄이면 따뜻한 양지쪽에 앉아서 밭에 뿌릴 씨앗을 고르시고, 냉이며 쑥을 캐서 다듬기도 하셨다. 여름에 콩밭 맬 때도, 고추 딸 때도 마찬가지다. 걸을 때는 엄마 걸음걸이에 맞춰 달랑거렸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이 되면 마당 한쪽에 벽돌을 쌓아 만든 아궁이 앞에는 실밥이 터져 납작해진 앉은뱅이의자가 한자리 차지하고 불을 쬐고 있었다. 오남매를 품었던 어머니 같이…….
춘분도 훨씬 지난 어느 날 평소 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순대를 사들고 친정에 갔다. 그 날도 어머니는 앉은뱅이의자에 앉아 무얼 하고 계셨다. 사온 순대를 접시에 담아 드렸더니 이가 부실하신데도 당신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순대가 불고기 보다 더 맛나다고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조금 남은 순대는 나중에 드시겠다며 한쪽으로 밀어 놓으시고 앉은뱅이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셨다. 나는 엄마와 마주 앉으며
“엄마, 앉은뱅이 의자가 그렇게 편해요?”
“그럼, 편하지 편 하구 말구”
“효자가 따로 없네요”
“효자가 따로 있냐? 아픈 허리도 받쳐주고 다리도 편하게 해주면 효자이지.”
괜히 머쓱해진 나는 퉁명스런 말투로
“앉은뱅이의자만도 못한 딸내미 갈게요” 하고 일어났다.
어머니는“ 삐졌냐?” 하시더니
‘너 오면 주려고 장날 앉은뱅이 의자 사다놓은 것 있으니 가져가라’고 하셨다. 앉아서 일해 보면 당신 말 이해가 될 거란다. 그런 거 필요 없다고 그냥 간다고 했더니 굳이 챙겨 주시기에 어쩔 수 없이 가져와 옥상 고무 통 속에 넣어 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변덕을 부리던 봄이 가고 매미소리 기승을 부리는 여름도 끝자락인 햇살이 따가운 어느 날 옥상에서 고추꼭지를 따는데 발이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발을 주무르고 허리를 이리 저리 돌리다가 문득, 고무통속에 넣어 두었던 앉은뱅이 의자가 생각이 났다. 고무 통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주신 그대로 검정비닐봉지 안에 있었다. 꺼내서 먼지를 툭툭 털고 앉으니. 푹신한 느낌이 아주 좋았다. 어릴 때 몽실몽실한 젊은 엄마 품 같았다. 거기에 앉아 어머니처럼 고추꼭지 따고 뽑아온 파도 다듬었다. 그 다음날부터 앉은뱅이의자는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밭에 갈 때는 잊지 않고 꼭 가져갔다. 풀을 맬 때도, 커피 한잔 마시며 쉴 때도 앉은뱅이의자에 앉아 싹이 돋는 것을, 잎이 나는 걸 살피고 벌레도 잡고 꽃이 피고 열매 맺힌 풍경을 보았다. 가끔은 자존심 때문에 남한테 말하지 못했던, 혼자만의 푸념을 풀어 놓기도 했다.
오늘도 어머니는 살아서 갈 수 없는 먼 곳에서 당신이 챙겨 주신 의자에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앉아 당신처럼 일하는 딸내미 모습을 보고 계시겠지.
“얘야 편하지? 내 말이 맞지?”
촉촉이 흐르는 땀이 눈을 따갑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