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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결의 성공창업 3장
1. 목숨을 걸었다
(포인트) 개폼 잡으면 망한다
(포인트) 성공의 커다란 비결?
- 모든 결정은 과감히 밀고 나가라
(포인트) 인테리어 컨셉과 비용
- 너무 많이 생각하면 용기가 없어진다
(포인트) 창업비용이 모자랄 때
(포인트) 고깃집 창업비용
- 장사 마인드와 체질부터 파악하라
(포인트) 음식점 창업 ABC
- 힘들 땐 종업원들한테 호소했다
(포인트) 위기는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2.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
- 맛의 컨셉은 확실히 쥐고 있어라
(포인트) 독특하되, 대중적인 맛
- 믿고 맡길 수 있는 주방인력을 확보하라
- 함께 다니면서 메뉴를 개발하라
(포인트) 유명 음식점들을 순례하라
- 심성 좋은 주방장을 만나야 한다
(포인트) 인간성이 먼저, 요리기술은 그 다음
(포인트) ‘초짜’ 사장, 주방장 ‘곤조’
- 모든 걸 주방장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
(포인트) 전체가 같이 일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
3. 손님한테는 무조건 친절하게
(포인트) 친절 서비스의 비결
- 손님은 항상 옳다
- 주인이 건방지면 손님은 오지 않는다
(포인트) 겸손한 척이라도 하라
- 모든 걸 손님 기준으로: 박리다매
(포인트) 손님상에는 먹을 만큼만 내가자?
(포인트) 잔칫집 분위기여야 한다
- 베푸는 게 남는 거다
(포인트) 아까워하는 사람은 장사 못한다
4. 종업원과 함께 간다
- 종업원 손발 맞추기
(포인트) 사장이 원칙이 있어야 종업원이 따른다
- 종업원들이 돈 벌어준다
(포인트) 종업원 관리 노하우
(포인트) 종업원을 대하는 기본 태도와 자세
- 종업원 대우가 좋아지면 사장한테 이익이다
-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건 도(道) 닦는 길
(포인트) 화는 전략적으로 내라
5. 어차피 혼자 가는 길, 홀로 서라
(포인트) 장사는 외로운 길이다
- 동업? 가능한 하지 말라
(포인트) 동업의 이점이 있긴 하지만...
(포인트) 굳이 동업을 하겠다면...
- 프랜차이즈? No!
(포인트)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
(포인트) 우리 집에라도 와서 배워라
- 배워 가면서 하면 된다!
(포인트) 쉬운 길을 찾지 말라
- 얼굴 알려진 덕 크게 봤다
(포인트) 이벤트나 광고로 손님을 끌어라
(포인트) 돈 들여서라도 가게를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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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주신정 성공 비결 &
김종결의 음식점 창업 어드바이스
1. 목숨을 걸었다
2억을 딱 받아놓고는 포기가 빨랐다고 해야 하나, 그때부턴 앞으로 먹고 살 생각만 했다. 방송으로 먹고 살 순 없는 거고, 먹고사는 게 막막하니까 돈 날린 좌절감에 계속 빠져 있을 순 없었다.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도 가족이지만, ‘큰일났다’는 감정이 앞서서 뭘 해서든 돈을 벌어들여야만 했다. 그나마 2억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건데, 장사해서 빨리 회복하자, 빨리 회복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뭐든 물불 가리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라곤 고기집밖에 없었다. ‘신정’도 장사가 안 된 건 아니었고 만두집이니 뭐니 이것저것 해봤지만, 그래도 고깃집이 제일 나을 거란 판단이 섰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도 좀 있었다.
독산동 컨셉으로 하면 여의도 생리를 아니까 좀 될 거다, 음식점은 최소 7,80평은 되야 하니까 그만한 자리만 찾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곤 곧바로 지금 주신정 지배인인 길영이하고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우린 여의도에서 큰 가게만 찾았다. 전에 고깃집 신정도 여의도 먹자 빌딩(종합상가)에서 했고 또 20년 넘게 여의도에서 살았으니까 여의도에 대해선 내가 잘 알았다. 여기 저기 큰 건물 내의 상가들을 찾아 다녀봤는데, 대영빌딩 지하에 나온 커피집(호프집)이 규모 면에서는 그래도 제일 컸다. 평수는 90평이었고, 바로 옆이 MBC 방송국이고 주변에 증권 사무실들이 많아서 몫은 좋은 편이었다. 보증금 3,4천에 권리금으로 1억 조금 넘게 해서 계약을 했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6천을 잡고그때부턴 어떡하면 가게를 예쁘게 꾸밀까 하는 생각만 했다. 기존의 커피집을 때려부수고 시설을 시작하는데 6천 갖고는 턱도 없었다. 거기다 광고비니 개업 준비금은 생각도 못했었다. 시설비를 줄이고 줄여도 이런저런 돈이 늘어나면서 2억 갖고는 부족해서 그때부터는 돈 꾸러 다니느라 또 바빴다.
불 난 사람한테 쉽게 돈을 꿔주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이모한테 좀 빌리고, 신정에서 일하던 주방장이 2천만 원을 꿔줘서 급한 데는 막았지만, 계속 돈이 들어가서 밤업소에서도 돈을 당겼다. 총 들어간 돈이 2억 6,7천이니 6,7천은 빚인 셈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를 한 달만에 끝내고 나선 음식은 뭐로 할까, 주방장은 누구로 해서 데리고 다닐까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가게 터 찾기부터 시작해서 2,3달만에 드디어 생고기 전문점 주신정을 개업했다. 93년 9월 8일이었다. 내 나이 오십.
---------- 포인트 / 개폼 잡으면 망한다
체면 생각한답시고 가게를 크게 벌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개폼’을 잡으면 망하게 돼 있으니까. 그건 내 경험을 통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장사하는 걸 오랫동안 봐오면서 알게된 사실이다. 자기 능력 이상으로 가게를 크게 열고 인테리어에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들이는 사람. ‘내가 여기 사장인데!’ 하면서 손님 앞에서 개폼 잡는 사람, ‘내가 하니까 무조건 잘 될 거’라는 생각에 뛰어드는 사람은 결국은 다 망했다. -------------
고깃집으로 다시 인생의 승부를 걸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다. 돈벌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가게에 얼마가 들어갔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서 얼마 벌어야겠다는 계산 같은 것은 하지도 못했다. 가진 건 이거밖에 없다! 실패를 겪고 마지막이란 생각에 매달렸고, 맨발로 뛰면서 기를 쓰니까 손님은 계속 늘어났다.
오전 11시 반이면 가게에 나와서 점심 시간에 꼬박 자리를 지켰다. 일주일에 며칠은 녹화하느라 가게에서 짬짬이 방송 대본을 외우면서도 저녁 시간에는 다시 가게에 나와서 손님들을 일일이 챙겼다.
밤무대에서 당겨쓴 돈을 갚아야 했으므로 밤무대도 계속 뛰어다녔다. 나이 오십에 몸을 너무 혹사했는지, 장사 시작하고 나서 3개월쯤 있다가 급기야 쓰려졌다. 강북삼성병원(고려병원)엘 가니까 폐에 ‘빵구’가 났다며 폐기흉이라고 했다.
장사 창업 준비했지, 돈 끌어 모으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한달 내내 밤업소 5개씩 뛰지, 일일연속극 <서른살의 반란>도 하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몸이 이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10일 가량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해서도 전화로 가게 일을 체크했다. 모든 걸 내가 다 꿰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인지라 맘놓고 있을 순 없었다. 병실은 가게 일 시키기도 쉽고 편해서 종업원들한테 지키게 했다. 제주도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들애가 서울에 올라왔다. 병실에 누워서도 온갖 신경을 다 쓰면서 고민하는 아버지를 보니까 마음이 아팠는지 밤샘을 할 종업원한테 “아저씨, 아저씨는 가세요. 여기선 제가 잘게요.” 하면서 제법 기특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퇴원하고 나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밤업소를 뛰고 ‘주신정’으로 출퇴근하고 방송 촬영을 다녔다. 그야말로 악으로 버텼다. 밤업소는 차츰 정리했지만, 그때, 정신력이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원래 끈기라면 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내가 그 정도까지 독한 줄은 나도 몰랐다.
---------- 포인트 / 성공의 커다란 비결?
흔히들 사람들이 성공의 커다란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이것밖에 없다.
“여기서 끝나면 마지막이란 생각 때문에 죽기살기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초기부터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장사에 매달렸는지, 그런 내 모습이 남들 눈엔 불쌍해 보이기도 했었나 보다. 퇴원해서 얼마 안 돼서 주방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어느 스포츠 신문 기자가 처량한 모습으로 내 사진을 찍고 불쌍한 논조로 기사를 내 보낸 적이 있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었다. 살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동정 받을 일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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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결정은 과감히 밀고 나가라
‘주신정’을 오픈할 때 큰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망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냐? 그래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는 판단에, 또한 장사를 빨리 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밀어붙였다. 아마도 내가 생각을 많이, 깊이, 그리고 오래 했다면 용기가 없어서 시작을 못했을 것이다. 이것 마저 날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그땐 물불 안 가리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어디 가야 장사가 잘될 거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생각만 했다.
가게 고를 때 다른 동네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여의도에서 큰 빌딩만 찾아다녔는데, 새로 짓는 건물보다는 기존 상가를 찾아다녔다. 새로 짓는 건물에 들어가면 권리금이 없으니 투자비가 크게 줄긴 해도 위험부담이 높았다.
커피숍 자리를 세 얻어서 다 뚜드려 부스고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인테리어는 대단한 업자한테 맡긴 건 아니었다. 인테리어 하는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순순히 따라서 해줬는데, 이런 걸 직영으로 한다고 한다.
--------- 포인트 / 인테리어 컨셉과 비용
인테리어를 직영으로 할 때는 사장이 인테리어 컨셉이 확실해야 한다. 인테리어 전문가한테 맡기더라고 주방은 어떻게 하고 등등은 주인이 컨셉을 쥐고 있어야 한다. 그냥 맡기면 편하고 좋겠지만, 돈도 많이 들 뿐더러 실용적인 공간을 못 만든다.
주인이 직접 인테리어 공사를 지휘할 때 난점은 돈 생각을 자꾸 하니까 고급으로 팍팍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 80평 매장을 공사하면 인테리어 비용이 평당 1백만 원씩 기본으로 8천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거기다 집기, 주방기구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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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돈이 없어서 인테리어를 6천 잡고 시작했다. 훨씬 더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로 하자니 많이 아껴 썼다. 아껴서 한 이유는 돈도 없었지만, 인테리어에 대한 내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심플한 게 좋다는 것이어서이다. 네모난 공간에 테이블 만 놓고 장사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전에 신정 인테리어를 했을 땐 많이 꾸미려고 노력했었다. 명색이 탤런트가 하는 데니까 예쁘게 꾸밀 생각에서 의자도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걸로 맞췄었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까 공간이 굉장히 비좁게 보였다. 들어와서 보면 ‘고급 집이다’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까 음식점에는 굳이 필요 없는 인테리어였다.
그래서 주신정 인테리어는 내 생각대로 했다. 음식점을 오래 하다 보니까 난 꾸미는 것보단 실용적인 쪽으로 자꾸 찾게 된다. 나무 탁자는 조경 하는 집에 맡겼다. 당시에는 이런 시멘트 탁자를 실내에 들여놓는 음식점이 없었다. 우리 가게의 의자와 테이블은 10년 됐는데도 그렇게 낡은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처음부터 실용적인 걸로, 즉 ‘만년 묵기’ 쪽으로 선택했으니까.
벽 마감재나 바닥은 주로 스테인리스 자재와 타일로 했다. 벽 밑은 나무로 돌릴 걸 스테인리스로 돌렸는데, 나무로 하면 보기 좋고 예쁘긴 한데 물걸레질을 하면 자꾸 더러워진다. 내가 금기시하는 부분이 나무를 많이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나무를 많이 쓰면 그 안에 바퀴벌레도 많이 꼬이기 때문에 나무는 최소한으로 쓰고, 유리나 타일을 썼다.
내 생각대로 실용 위주로 인테리어를 해놓으니까 와서 보고는 정말 형편없는 인테리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화라던가 그런 게 없다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음식점을 찾는 건 기본적으로 음식 맛과 친절한 서비스 때문이지, 멋진 인테리어 때문은 아니다. 단, 분위기 때문에 그 집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면 안 된다는 것, 그게 인테리어에 대한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실내는 밝고 깨끗하게 했다. 우리 집 불(전구)은 엄청 환한 거 켜놨는데, 이 점도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하고 나의 차이다.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은 보통 조명을 음침하게 한다. 무드 때문인데, 직접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실용성보다는 분위기를 먼저 찾는 듯하다.
- 너무 많이 생각하면 용기가 없어진다
일하는 데 너무 망설이면 아무 것도 못한다. 내 경우는 ‘깡’이 좋았다. 인테리어 할 때도 돈을 아무리 아껴도 자꾸 더 초과하게 돼서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이 돈을 갚을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빚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무리 아껴도 돈이 모자란 게 현실이었고, 모자란 돈은 어디서라도 꿔와야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벌어서 갚자고 용기를 냈고, 즉시 돈을 꿔왔다.
이처럼, 그것이 어떠한 문제이건, 무언가를 결정할 때 너무 많이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내 경험을 비추어 말하자면, 장사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 모든 결정을 물불 안 가리고 팍팍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고려하고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까지 모두 세고 있다 보면 용기가 없어져서 일을 안 벌리게 된다는 것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추가 비용만 해도 그렇다.
--------- 포인트 / 창업비용이 모자랄 때
그렇다면 일단 돈을 빌리는 문제는? 장사해서 갚을 자신이 있다면 꿔서 해도 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헌데, 총 투자비를 몽땅 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본인이 한 3분의 2는 가지고 있고, 준비 과정에서 아껴서 하다가 오버되는 부분은 좀 꿔서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지만 처음부터 꿔서 한다는 전제로 시작하면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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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한 5천만 원이면 작은 규모로 철판 볶음집은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을 벌이는 경우를 보자. 처음부터 모든 비용을 철저하게 알아보고 계산하고 나서 시작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보통은 큰 비용만 생각하게 된다. 그 비용이 5천만 원이라면 그 돈은 내 수중에 갖고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일을 벌이게 되면, 문 열기까지 인테리어하고 그릇 사들이고 간판 달고 광고지 돌리고 하는 과정에서 돈이 한 2,3천만 원은 더 들어가게 된다.
그 모자라는 부분은 꿔서 해도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처음부터 5천만 원을 전부 꿔서 시작한다면 나중에 모자란 액수까지 꿔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빚이 너무 크게 늘어난다. 그러면 부담감 때문에 남들한테 베푸는 마음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포인트 / 고깃집 창업비용
고깃집은 가게 평수가 최소 80평은 되야 한다. 가게 얻는 데 들어가는 돈, 인테리어 비용 8천만 원을 포함해 투자비가 3억은 있어야 한다. 투자비가 조금은 넉넉해야 여유로움 속에서 시작할 수 있고 그래야 손님들한테도, 종업원들한테도 베풀 수 있다. 돈에 너무 쪼들리면서 시작하면 곤란할 거 같다. ---------
- 장사 마인드와 체질부터 파악하라
“음식점 하나 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막막하다. 가령, 누가 “커피집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커피집은 내가 해봤으니까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가 있다. 물론 내 경험 한도에서이긴 하지만. 커피집을 하면 규모는 어느 정도 돼야 하고, 얼마를 팔면 얼마가 남는다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업종도 정하지 않고 막연히 “음식점 하나 해볼 생각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하고 나오면 해줄 말이 없다. 그래서 난 일단 이렇게 묻는다.
“장사해서 성공하겠다, 장사로 먹고살아야겠다는 마인드가 확실합니까?”
그러면 대개는 이런 대답이 나온다.
“물론입니다. 아니면 제가 왜 찾아왔겠습니까?”
상대 눈빛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말만 그렇지, 경험 삼아서 장사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한테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 그저,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식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장사란 게 원래 그렇지만, 특히 음식점 장사는 자질구레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얼마나 많고 또 힘든 일인데요!”
장사해서 돈을 벌겠다는 마인드가 확실하게 서 있는 사람이라도 체질적으로 장사로는 성공하기 힘든 사람도 있다. 장사 체질은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 것도, 부족한 부분은 노력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장사 체질이 아닌 사람한테는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한다.
“자신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과연 내가 장사 체질이 있는 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마인드도 확실하고 장사 체질도 보이는 사람한테는 성의 있게, 용기를 북돋는 방향으로 얘기를 해준다.
“그럼 업종을 선택하고 가게부터 얻으세요. 그런 다음에 오면, 종업원은 어떻게 구하라 등등 구체적으로 어드바이스를 해줄 수 있습니다. 업종과 장소 선택만 끝났다면 그 다음부턴 모든 결정은 과감히 밀고 나가세요.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 포인트 / 음식점 창업 ABC
장사를 하려면 일단 품목(업종)을 결정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품목을 정해야 한다. 가령 한식집을 하고 싶다 하면 한식집에 대해 연구하면 된다. 한식집은 투자비가 얼마 들어가고 또 이익은 얼마 나오고 식으로 물론 계산은 해야겠지만, 투자비부터 생각해서 거기에 맞는 업종을 정하면 안 된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야 신이 나서 할 수 있고 힘들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발휘할 수 있는 건 상식 아닐까?
업종 선택에 있어서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쉬운 길만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려운 걸 선택해서 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예를 들면 커피숍을 하는 것보단 해장국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투자하고 고생도 좀 하면서 본인이 노력해야만 땀의 대가를 바로 볼 수 있으니까. 쉽게 돈 벌려는 생각으로 업종을 선택하면, 물론 생각처럼 된다면 우선은 좋은 일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손해다.
업종을 정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장소를 잡는 것이다. 장사는 웬만하면 외떨어진 데서 혼자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백화점이니 상가니 하는 데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기존 상권이 형성된 곳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업소들하고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종업원 확보다. 심성 좋고 기술 좋은 주방 인력, 믿을 만한 카운터, 홀 인원까지 다 구해지면 다음은 재료를 사와서 팔고 하면 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사실 좋은 인원 구하는 것부터가 힘든데,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얘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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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 땐 종업원들한테 호소했다
문을 연 이후 주신정은 계속 승승장구 하다가 1년 후쯤 매출이 고정이 되면서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우리 집이 잘되니까 주변에 큰 음식점들이 생겼고 한 업소에선 우리 집 주방장을 빼갔다. 음식점을 하는 데 있어서 애로점의 하나인데, 한 군데가 잘 된다 하면 옆에 비슷한 데가 들어선다. 가게문을 못 열게 할 순 없지만, 사람까지 빼 가면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주방장은 우리 집 단골 손님이 빼갔는데, 아마도 우리 집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는 우리 집하고 비슷하게 음식점을 차리면서 주방장한테 눈독을 들인 것 같다. 주방장한테 월급 더 주고 자동차까지 내주고 데려갔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서 월급을 파격적으로 주면서 오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리로 따라간다. 오로지 정 때문에 한 곳에 있는 사람은 없다.
어쨌거나, 갑자기 주방장 자리가 비었으니 큰일이었다. 급하다고 아무나 데려다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방장이 바뀌면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실력이 더 좋은 사람을 데려다 놓아도 손님들 입맛이 기존의 맛에 익숙한지라 음식 맛이 예전하고 다르다느니 하면서 손님이 떨어져나가기 십상이다.
고민 끝에 새로 사람을 뽑지 않고 주방장 세컨드(second) 둘을 퍼스트(first) 자리로 올렸다. 주방장 한 명이 있으면 그 밑에 세컨드가 두 명 딸려 있는데, 그들을 퍼스트로 올린 것이다. 세컨드 둘은 퍼스트 주방장이 하던 걸 봐왔을 터이니 새 사람을 데려와서 다시 손발을 맞추고 입맛까지 맞추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듯 싶었다.
세컨드를 보던 주방 인력들은 퍼스트의 능력은 안 되니까 한동안은 일을 척척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난 주방장들이 손이 빠르질 못해서 주방이 바쁘면 홀에서 뛰는 인원들을 주방으로 들어가게 해서 돕게 했다. 내가 솔선수범으로 주방에 들어가 이리저리 뛰었다. 종업원들한테 솔직히 부탁하면서 호소도 했다.
“요즘 우리 집 힘들다. 나 좀 살려줘라, 우리가 좀더 단결하자...”
처음엔 종업원들도 일이 벅차니까 힘들어했다. 홀에서 뛰는 사람한테 주방 일까지 하라니 ‘저게 내 일인가? 난 이 일만 잘하면 되는데..’ 하는 심사였는지, 시키니까 들어준다는 식으로 겨우 움직여줬다. 그래서 종업원들이 안 되는 부분은 내가 솔선 수범했다. 홀에서 손님들 맞다가 주방을 체크해서 빨아야 할 행주가 밀려 있으면 주방에 들어가서 행주를 빨았다. 좀 일부러 씩씩거리면서 행주를 빨았다. 그래야 홀에서 뛰는 종업원들이 ‘사장이 화났구나’ 생각하고 내 눈치를 보면서라도 주방으로 가서 손에 물을 묻히니까.
그렇게 내 식대로 1,2년 힘들게 끌어갔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종업원들도 똘똘 뭉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또 손님이 좀 줄어서 매상이 떨어지면 적극적으로 나서줬다. 초기엔 보쌈김치에 들어갈 야채를 다듬는 게 귀찮은 일이어서 다듬어진 야채를 사다가 했었다. 그렇게 하니까 남는 게 없었는데, “야채는 우리가 직접 다듬어서 하자”, “누릉밥은 귀찮지만 해봐요...” 하면서 단가를 줄이는 아이디어들을 내놓았다.
97년 가을의 O-157 파동, 소위 소고기 파동이 났을 때도 좀 힘들었다. 대부분의 고깃집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꾸고 난리였는데, 우리 집도 몇 달 고전했지만 우린 계속 소고기 생고기를 팔았다. 손님이 줄어드니까 종업원들도 불안해했지만 “우리 집은 괜찮다” 면서 용기를 북돋아줬다. 사장인 내가 풀이 죽어 있으면 종업원들도 일할 기분이 안 나고, 종업원들 표정이 우울하면 손님들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니까. 종업원들은 인상을 밝게 하고 생고기를 자신 있게 서빙했다. 그러니까 손님들도 ‘이 집 고기는 안심할 수 있는 거’라고 믿을 수 있었는지 한동안 발길이 뜸해진 손님들도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요즘은 주변에 큰 음식점이 생기거나 해서 우리 집이 장사가 좀 안되면, 종업원들은 “사장님이 아이디어 내세요” 한다. 그런데 이젠 난 아이디어가 ‘빵구’가 난 듯하다. 20년 장사하면서 많은 것을 해봤지만 이젠 귀찮아서 못하는 것도 있다. 물론 지금 주신정이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마음을 푹 놓을 순 없다. 위기란 게 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닥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불안하지 않은 건, 위기가 닥쳐도 날 믿고 따라주는 종업원들하고 똘똘 뭉쳐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게 있어서다.
---------포인트/ 위기는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장사를 해보니까 소위 ‘힘든’ 시기가 오는 건 피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난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더욱더 노력했고 종업원들한테는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고맙게도 종업원들은 결코 내 호소를 외면하지 않았다. 종업원들 덕분에 여러 번의 위기를 조금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고. 뒤돌아보면,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은 우리 집이 승리를 했다. 주위 집들은 잘 안 되는 데 우리 집은 손님이 늘 넘친다. -----------
2. 맛으로 승부를 걸었다
우리 집은 각종 매체에서 ‘맛집’으로 소개되었고, LG그룹-KBS-대우증권 직원들이 각각 설문조사로 뽑은 '베스트5' 음식점에도 뽑혔다. 조선일보에서 선정한 ‘샐러리맨들이 줄서는 집 20선’에도 꼽히는 등, 매스컴을 여러 번 탔다. ‘주신정’이 성공한 음식점으로 자리를 잡은 제 1의 비결은 뭐니뭐니 해도 음식 맛이 좋아서다. 음식값이 아무리 싸다 해도, 종업원이 친절하다 해도 맛이 없는 집에 손님이 몰릴 리는 없는 법이다.
가게 내면서 컨셉으로 잡은 것이 독산동 뒤쪽에 있는 가게들 분위기를 내자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직접 생고기를 잘라서 주면 분위기가 색다르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식점을 하는 친한 이들을 만나서 얘길 해보니까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자고 생각을 굳혔지만, 사실, 생고기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매니아가 많다는 것은 가게 오픈을 하고 나서야 나도 새삼 알았다.
생고기를 취급하니까 익힌 고기도 당연히 따라 올 터인데, 우선은 맛있는 고기를 조달해오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고기 대주는 사람부터 찾기 시작했다. 당시 영동에 유명한 음식점이 있었는데, 무조건 거길 찾아가서 부탁했다.
“고기 대주는 사람 좀 알려주십시오.”
음식점 사장은 머뭇거렸지만 내가 거듭 부탁을 하자 야박하게 굴진 않았다.
“흠, 우리한테 대주는 사람은 알려주기가 그렇고... 고기가 부족할 때 거래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고맙게도 그 사람 이름하고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사람하고 거래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직접 다니면서 좋은 고기를 수거해서 우리 집에 대주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단 신선한 고기를 산지에서 직접 가져와 제공할 수 있게 되니까, 그 다음으로 시급한 게 주방장 구하는 것이었다.
- 맛의 컨셉은 확실히 쥐고 있어라
주인이 직접 요리를 더 만들어내는 것도 아닌 이상, 음식 맛은 주방 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맛의 컨셉은 기본적으로 주인이 꿰고 있어야 한다.
집에서 살림하는 아주머니들의 경우, 반찬 기술이 좋다고 식당일에 뛰어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잘 생각해보고 달려들 일인 듯 하다. 맛의 컨셉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데, 자기 집 반찬이 맛있다고 해서 그 맛대로 나가는 경우 실패하기 쉽다. 자기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반찬일 뿐이지, 손님상에 내놔서 대중적으로 다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포인트) 독특하되, 대중적인 맛
이런 경우가 있었다. 우리 가게 뒤에 미원을 안 쓰는 칼국수 집이 있었는데, 주인은 교사 출신의 여자였다. 아마도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미원이 안 들어간 칼국수를 만들어서 내놓으면 다들 좋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식당을 냈는데 손님이 별로 없었다. 보통 사람들 입맛은 미원 맛에 배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맛도 좋긴 하지만 대중적인 맛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음식 맛이 좋으려면 주인은 어떤 음식은 어떻게 나가야 되겠다는 기본 컨셉은 확실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가령, 동치미는 얼음을 어떻게 띄우고, 또한 무는 비싼 데 미역이 싸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원가 생각해서 무 대신 미역으로 바꾸고 등등.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주방 인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주방장과 찬모가 사장의 말을 잘 알아들어서 사장의 컨셉에 맞춰서 맛있게 만들어주면 되는데, 그렇게 하려면 주방장과 찬모의 노력과 공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일단은 성실하고 또한 실력이 있는 주방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도 난 그런 주방장과 찬모가 확보된 상태였다.
- 믿고 맡길 수 있는 주방인력을 확보하라
전에 실력 있는 주방장을 구해보니까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 전에 위너스 뒤편을 늘려서 고향 식당을 했을 때 냉면을 해볼까 해서 오장동 냉면집 할머니한테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다. “우리도 냉면을 하려고 하는데 냉면 맛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오장동 냉면집에는 그동안 자주 가서 먹었기에 집 주인 할머니랑 잘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할머니는 할머니 가게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는 조카를 열흘 정도 우리 가게에 보내주셨다.
처음 냉면을 시도하는 것이어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나도 열심히 준비를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제때제때 내보내려고 반죽을 미리 다 해놓고 이것저것 챙겨놓았다. 손님들이 12시에 들어오니까 그 전에 다 차려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린 바쁘기만 했다. 그런데 주방장은 한쪽에 서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아이, 빨리 하지!”
조급한 마음에 난 주방장을 은근히 몰아세웠다.
“자신 있어요.”
주방장은 태연하게 얘기하더니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난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며칠 우리 집에 특별히 모셔온 주방장인데 그런 티를 내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조바심을 누르면서 ‘어디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기다렸다.
12시가 되면서 손님들이 밀어닥쳤다. 그동안 가만히 서 있던 주방장은 그때서야 후딱후딱 일을 해치웠다. 손놀림도 빨랐지만 정확한 물 온도에서 냉면발을 삶아냈다. 그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면서 난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주방장은 가만히 서서 놀고 있던 게 아니라 냉면의 물 온도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정도 되는 주방장을 만나면 운이 아주 좋은 거다. 유명한 음식점은 이렇듯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실력이 좋은 주방장이 있다는 것이다.
주신정을 열면서 난 그런 주방장을 데리고 와야 했다. 전에 신정에서 데리고 있던 주방장은 실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말을 잘 따라줬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 친구를 써야 했는데, 그 즈음 그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당장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를 구하나 하고 난 난감했는데, 그 친구가 선배 주방장을 소개해줬다. “자기보다 성질은 열 배쯤 좋고 기술은 두 배쯤 높다” 면서.
찬모 역시 사장을 철저히 믿고 따라주면 정말 고마운데 난 운이 좋았다. 찬모도 함께 오래 일한 사람인데, 어디 유명한 음식점에 데려가서 먹여주면 그 맛대로 잘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 함께 다니면서 메뉴를 개발하라
소개받은 주방장이랑 찬모, 그리고 난 여기저기 음식점들을 다니면서 유명한 음식은 거의 다 맛보면서 정성스럽게 메뉴를 짰다. 파무침은 이렇게 하자, 상은 이렇게 보자, 생고기 올릴 때 도마 위에 올려 나가면 신선해 보일 것이다, 된장도 지져서 내면 향수를 일으킬 거다, 누릉밥도 하긴 귀찮아도 별미가 될 거다, 오이소박이는 양념 잘 밴 통 오이 두 개를 숭숭 썰어서 내자,.....
조금이라도 독특한 메뉴를 정하려고 주방장하고 난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오색약수로 밥을 지어서 밥에 푸른 기가 도는 ‘파란밥’도 메뉴에 들어갔다. ‘파란밥’은 전에 음식점하면서부터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였는데 이번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메뉴였다. 불에 지져서 따스하고 구스름한 맛의 쌈장, 집에서 만든 간장 계장도 우리 집 별미다.
그 전에는 머릿속에만 넣어두고 있었던 아이디어들이었다. 맛있고 독특하긴 해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우면, 혹은 어디 가서 알아보고 하는 게 귀찮아서도 실천은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온갖 아이디어를 다 꺼내서 하나라도 더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가령, 전에 수원의 어느 음식점에서 맛있게 먹었던 파김치가 떠올라서 직접 그 집에 가서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
메뉴뿐만이 아니라 테이블 세팅하는 데도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고기 메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지만, 우린 점심 메뉴는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손님들의 반응을 보면서 바꾸고 있다. 처음엔 토란국이 엄청 히트했다. 아마도 우리 집엔 오고 싶은데 고기 먹기는 부담스럽고 해서 토란국을 선호했던 듯하다. 지금은 점심 메뉴로는 갈비전골, 김치찌개가 많이 나간다.
메뉴가 일반적이고 다양하니까 손님 연령층은 3,40대 직장인, 계모임 아주머니들, 노인분들 등 다양하다. 저녁 땐 회식이 많고, 고기 손님은 점심 손님이 더 많다. 물론 우리 집엔 고기 먹으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
------ 포인트 / 유명 음식점들을 순례하라
음식점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음식점에 가서 먹더라도 예사롭게 먹지 않게 된다.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그게 다 재산이다. 물론 음식점을 열기 전에는 특히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 어느 집에 가면 뭐가 맛있고 어떤 건 어떻게 하는 게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고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입력된 게 많아야 한다. 또한 주방장의 요리 실력을 파악하려면 주인이 맛에 정통해야 한다. 맛에 정통하려면 같은 업종의 유명한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능한 많이 먹어봐야 한다. ----------
- 심성 좋은 주방장을 만나야 한다
음식점 장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혼자서 80여 평 규모의 고깃집을 한다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기 대주는 집, 야채 대주는 집을 잡을 때도 초보자는 주방장한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헌데 과연 믿을 수 있는 주방장을 어떻게 만나느냐, 그게 음식점 초보 창업자의 애로점이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났건, 유명한 음식점에서 돈을 더 주고 데려왔건, 어쨌거나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주방장을 쓸 것이냐 문제를 놓고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 포인트 / 인간성이 먼저, 요리 기술은 그 다음
내 경우는, 주방장을 구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건 인간성이다. 요리 기술은 그 다음이다. 주방장이 기술 있답시고 어느 날 느닷없이 ‘강짜’를 부리고 나가버리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니 일단은 심성이 좋은 주방장을 만나야 한다. ------------
초보 사장들은 잘 되는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집 주방장한테 심성 좋고 기술 좋은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방법이 가장 빠를 듯 싶다. 웬만큼 사람을 겪어봤다면, 소개받은 사람이 심성이 좋은지 정도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으면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건 두 세 가지 기본 요리의 컨셉을 말해주고 해보라고 하면 알 것이다.
그런데 심성 좋은 주방장을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는 사장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야 된다. 헌데 사장이 경험이 없으면? 그럼 문제가 커진다. 사장 말이 주방장한테 ‘말발’이 안 서니까 밀어붙일 수가 없다.
-------포인트/ ‘초짜’ 사장, 주방장 ‘곤조’
주방장들이 ‘곤조’가 있다는 건 일반 상식처럼 돼 있는데, 내가 겪어보니까 주인이 뭘 모르면 ‘곤조’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초짜’ 사장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면 주방장은 그대로 따라주질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 하냐?’는 마음에서 사장을 깔보는 거다. 그러면 사장은 자기의 컨셉대로 나갈 수가 없다. ----------
그렇다고 아예 주방장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주방장 ‘곤조’가 심해져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업원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 더 심각한 건, 주방장이 음식점 맛의 컨셉을 좌지우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가버리면 가게 전체가 올 스톱(all-stop)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음식점 초보 창업자들의 경우에는 심성 좋은 주방장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장사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된다.
난 장사 경험이 20년이니까 내 ‘말발’이 꽤 먹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방장이 무조건 내 말을 따라준다는 건 아니다. 내가 겪어본 주방장들은 내 말을 따라주지 않는 데 대해 나름대로 이유가 엄청 많았다.
주방장이 바뀌면서 물김치가 좀 시어진 것 같아서 내가 한 마디 했었다.
“야, 나도 음식점은 오래 했는데 내 말대로 좀 해라. 물김치는 좀 시게 해.”
“그럼 너무 시어서 못 먹어요.”
주방장 대답은 단호했다.
다른 주방장하고는 이런 일이 있었다.
“반찬 하나 더 내자. 어디 가니까 파김치에다 뭘 무쳐서 주는데 맛있더라. 우리도 그거 해보자.”
“그러지요.”
내가 부탁조로 얘길 해서 그런지 주방장은 의외로 순순히 나왔다. 헌데, 일단 내 말을 따라주긴 했지만 해보니까 일이 힘든지, 아님 귀찮은지 슬슬 하기 싫은 눈치였다. 그러더니 결국은 이런 이유를 대면서 나왔다.
“그거 그냥 빼지요. 손님들이 싫어하던데요.“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 정도에서 물러설 만큼 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난 밀어붙였다.
“내가 먹어보니까 맛만 있더라. 계속하자구!”
- 모든 걸 주방장한테 의지하면 안 된다
좋은 주방장이 확보되고 또 모든 준비가 끝나서 가게가 돌아가면 한 가지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주방장이 빠지면 주방이 안 돌아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걸 주방장한테 의지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장사 시작하고 나서 한 1년쯤 됐나? 우리 집이 장사가 잘되니까 다른 집에서 우리 집 주방장을 빼갔다. 난 퍼스트 주방장 밑에 있던 세컨드 두 명을 퍼스트 자리로 올려서 일하게 했다. 처음엔 그들이 능력이 부치니까 굉장히 힘들어했다. 상황이 다급해서 난 홀 인원까지 주방에 들어가서 돕게 했다. 그러면서 차츰 주방장들도 손이 빨라졌고 일이 손에 익어서 자기 역할을 잘하겠다 싶어 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방장이 다른 집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가겠다는 사람을 붙잡을 순 없었다. 묘한 배신감 때문인지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보내고 지난번처럼 세컨드를 퍼스트로 올려 보냈다. 지난번처럼 또 나도, 홀에서 뛰는 사람들도 주방을 들락거리면서 힘들어졌고. 겨우 다시 편해질 즈음, 이번 주방장도 또 다른 데로 가겠다고 했다.
다시 이런 일을 겪으니까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주방장이 빠지니까 일시적이긴 하지만 가게 전체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방식을 강구했다. 주방장이 없어도 주방이 제대로 원활하게 돌아가게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주방장들 중에는 간혹 이런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음식 만드는 걸 못 봐주는 사람, 자기가 음식 만드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막 가리고 덮어버리면서 가리는 사람. 아마도 자기 기술이 대단한 기술인줄 알고 있나 본데, 어쨌거나 그런 사람을 주방장으로 ‘모시고’ 있으면 불안하다. 갑자기 나가버리면 상황이 크게 힘들어지니까.
그런데 이젠 주방장이 나간다고 해도 큰 타격을 안 보고 “어? 그래, 그만 둬” 하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주방장 3명이 모두 안 나와도 홀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서 주방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주방 인력뿐 아니라 다른 누가 빠져도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는 체계가 잡혔기 때문이다.
------ 포인트/ 전체가 같이 일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
난 우리 가게에선 아무나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도 하고 할 수 있게 해놨다. 그러기 위해서 전 종업원들한테 이런 인식을 심어놓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집 일은 전체가 같이 한다. 내가 주인이 돼서 모든 일을 체크하고 처리하는 식으로.’
지금은 우리 집 종업원들은 주방이든, 홀이든 그쪽 인원이 부족하다 싶으면 자기 역할이야 어떻든 그리로 뛰어들어가서 그쪽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3. 손님한테는 무조건 친절하게
음식 맛이 아무리 좋아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나와도, 사장을 비롯해서 종업원들이 서비스가 엉망이라면 손님은 떨어진다. 아니 다소 맛이 떨어지더라도, 주인하고 종업원들이 너무 친절하면 그게 미안해서라도 한두 번 더 가주는 게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손님한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고객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것은 장사의 기본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은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처음엔 누구나 그런 마인드로 시작하지만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좀 해이해 지는 것인지?
처음 90평에서 가게를 열었을 때, 매장 안 한쪽 벽에 크게 써 붙여놓은 게 있다.
‘손님은 항상 옳습니다, 노력하는 주신정.’
‘고기가 나쁘다고 생각되시면 즉시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광고 전단에도 이렇게 썼다.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절박한 마음에 시작한 장사라 그런지,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 한 분 한 분이 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손님들 덕분에 내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 포인트/ 친절 서비스의 비결
‘친절강연’을 다니면서 내가 강조한 말은 “손님한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이 많이 나오는데, 비결은 따로 없다. 손님을 진정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면 친절은 절로 우러나온다. 손님들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집에 가면 친절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
가게 오픈하고 1년쯤 지나서 뒤쪽으로 50평을 더 늘렸다. 그랬는데도 손님이 계속 늘어나서 3년 후쯤에는 옆으로 또 늘려서 ‘주신정 2’ 간판을 달면서 전체 평수가 2백 평이 됐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중무휴로 가게를 돌리는데, 우리 집이 이렇게 성공하게 된 것은 맛으로 승부한다는 원칙에 플러스해서 손님을 무조건 친절하게 모신 것 때문이다.
- 손님은 항상 옳다
사실, 장사를 하다 보면 별 손님이 다 있다. 늘 최고의 육질을 엄선해서 가져오는데도 손님 입맛은 제각각인지, 우리 고기 맛은 늘 그대로인데 맛이 없어졌다고 트집 잡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난 일단은 손님 말은 무조건 옳다고 해준다. 주인인 내가 변명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다. 어쨌거나 손님의 기분도 풀어줘야 하고, 또 고기 맛이 없어진 건 아니니까 가만히 있으면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그래서 난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소가 다 같진 않으니까 바꿔 달래서 드세요! 맛없어 보이는 고기는 갈아 가지고 불고기로 나갑니다. 손님은 맛있는 것만 드세요!”
서비스가 느리다고 종업원을 욕하거나 “지배인 불러와!” 하면서 목청 돋구는 손님들도 그 앞에서는 손님 편에 서서 손님 말을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서 손님 안 보이는 데 가서는 안 좋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상한 종업원을 위로해줘야 하고. 가끔 생각한다. 장사는 도(道) 닦는 길이라고.
나도 사람이니까 손님이 좀 과하다 싶으면 솔직히 짜증스러워질 때도 있었다. 처음엔 그런 내 속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도 썼다. 그런데 워낙 많은 사람을 겪다보니까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됐다. 기본적으로는 모든 손님이 고맙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새겨져있어서 그게 가능했을 것이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돈 안내고 간 여자 손님도 있었다. 내가 가게에 없었을 때여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가게로 전화가 왔다.
“당신 위해서 해주는 말이에요. 머리카락도 그렇고, 당신 없을 때 가니까 종업원들이 지저분하게 하던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꽤나 깐깐했다. 우리 집 헐뜯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것도 머리카락이 나왔다니? 하지만 불평을 하는 손님이라도 일단은 네, 네 하면서 들어준다.
“네,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네.”
전화를 끊고 지배인한테 확인을 해봤다. 지배인은 평소 어투로 머리카락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트집을 잡으면서 돈을 안 내고 간 손님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배인 말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손님한테 안 좋은 얘기를 들은 직후여서 내 목소리 톤은 어쩔 수 없이 좀 날카로워졌다.
“그건 그렇고, 지저분하다는 얘기는 왜 나오는 거야?”
“점심 시간 끝나고 종업원들이 쉬는 시간에 좀 풀어진 모습을 보고 그러는 가 봐요.”
지배인은 좀 억울하다는 말투였다. 괜히 손님 말 때문에 지배인을 몰아붙인 것 같아서 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톤을 낮춰서 얘길 했다.
“그래, 알았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난 고객의 불만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어쨌거나 우리 집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이니까.
- 주인이 건방지면 손님은 오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건방진 마음이 있었다면 손님들의 불만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 좀 과하다 싶은 손님 앞에서 저자세로 나가는 것도 무진장 노력해야 했을 것이고.
난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장에만 들어오면 건방진 마음이 없었다. 거만해지려는 마음을 죽이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손님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겸손함이 우러나왔다. 아마 이런 점도 내가 장사 체질인 듯 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의 겸손한 자세가 손님들한테 전달되는지 간혹 불평하는 손님이 있어도 손님 대부분은 내 편인 것 같다.
부업으로 처음 도자기 가게를 하면서 정한 장사 원칙 하나가 있었다. 얼굴이 팔렸다고 손님 앞에서 거만을 떤다 거나 잘난 척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얼굴 팔릴수록 겸손해라,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겸손한 척이라도 해라!”
그래야 손님들이 내 편이 된다는 걸 알았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도 아니다. 손님이 한두 번 나를 관찰하러 왔다가 주인인 내가 거드름 피우는 걸 보면 그건 곧 적이 되는 것이다. 주인이 겸손하면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어디 단체에서 대표를 뽑을 때도 후보의 인간성을 보지, 그 사람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않는다. 탤런트가 장사하면 사람들이 한 번씩은 와보지만 계속 오게 하려면 주인이 겸손하고 폼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겸손해야 한다. 주인이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해서 여기 나와 있는 거지, 너보다 못나서 나와 있는 줄 아냐?!’
주인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마음은 그대로 손님한테 전달된다. 겉으론 웃고 사근사근하게 행동해도 속마음을 감출 순 없다. 그러니까 건방 떠는 사람은 장사는 안 하는 게 좋다.
------ 포인트/ 겸손한 척이라도 하라
손님한테 감사하단 마음이 우러나오면 자연히 겸손해진다. 그런 사람은 장사 체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장사 체질이 아니어도, 겸손해지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겸손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척 하더라도 진심인 것처럼 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장사는 안 하는 게 좋을 듯하다. ----------
- 모든 걸 손님 기준으로: 박리다매
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난 무조건 손님 입장에서 생각을 했다. 결국은 손님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날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손님들 입장을 우선해서 생각해야 했다.
손님 입장이란 게 무엇인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비싸서 쉽게 먹지 못한다면 손님한테는 그 음식이 그림의 떡이 아닌가? 손님 입장에서 보면 ‘박리다매’ 쪽으로 가야할 듯 했다. 손님 주머니에서 한꺼번에 돈을 왕창 뺏어 먹을 것이냐, 아니면 길게 보고 조금씩 저축할 것이냐, 난 그걸 결정해야 했는데 후자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화재로 모든 걸 날린 후였으니까 빨리 복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조바심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작은 돈에 고마워하면 큰돈이 된다. 천만 원 들여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백만 원도 안 나왔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몇 십만 원이라도 고마워하면서 조금씩 키워 가면 된다.‘
박리다매에 의거해서 맛있는 음식을 비싸지 않게, 거기다 모든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나가는 것, 그게 우리 집 원칙이다. 재료를 정직하게 쓰는 것도.
음식값은 1년에 한 번 올리거나 안 올릴 때도 있는데, 원재료비가 상승하면 어쩔 수 없이 올리는 경우가 있다. 재료비가 올랐는데 원가를 줄일 요량으로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쓸 수는 없어서다. 그렇다고 음식 값을 한꺼번에 많이 올릴 수는 없어서 술값만 5백 원씩 올리기도 한다. 술은 우리 집 가격 기준에서는 조금 비싸게 받는다. 좀 덜 마시자는 생각에서다.
현재, 얼리지 않은 갖가지 생고기 1만 5천~1만7천 원, 당면을 많이 넣은 생불고기 7천 원, 곱창전골 8천 원, 김치전골 5천 원, 두툼한 돌판에 소박하게 구워 먹는 돌판구이 정식1만 원, 푸짐한 고기 건더기와 진한 국물 맛이 별미인 왕창갈비탕 5천 원이 점심 시간에는 최고의 인기 메뉴이다. 디저트로 커피와 누룽밥이 제공되니까, 맛도 맛이지만 저렴하고 푸짐해서인 인기가 높은 듯하다. 짜지도 쓰지도 않고 약간 싸아하고 시원한 맛의 '1년 묵은 김치'가 서비스로 나간다.
손님들한테 푸짐한 식사를 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가령, 소 내장의 맨 위 부분인 양고기는 얼음과 함께 나가는 일년 누른 김치로 싸서 먹을 수 있다. 된장찌개는 설악산 한계령에 있는 필레마을에서 수송한 약수로 지어 밥에 푸른 기운이 도는 공기밥하고 같이 나가는데, 밥은 열무김치를 넣고 비벼서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다. 디저트로 나가는 누룽밥까지 합하면 식사 양이 적은 사람은 다 먹지 못할 만큼 푸짐하다.
--------- 포인트/ 손님상에는 먹을 만큼만 내가자?
쓰레기 처리 문제도 있고 해서 음식점의 식탁은 이론은 ‘먹을 만큼만 내가고 간단히 하자’ 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잘 안 된다. 우리 정서가 그렇질 못하다. 만일 우리 집에서 음식을 인색하게 내가면, 좋아하는 사람은 백 명중 세 명이나 될까? 한국인의 정서는 아직까지는 뭔가 푸짐한 거, 펑퍼지게 차려놓고 많이 먹는 것이다. 딱 먹을 만큼만 내놓으면 한식집 하지말고 일식집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먹을 만큼만 내놓자’는 인식은 많이들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푸짐히’ 라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거 같다. ----------
푸짐하게 차릴 경우 물론 쓰레기 처리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 가게는 농장하고 연결돼서 돈을 주고 사료하는 사람한테 쓰레기를 처리한다. 사료하는 사람들하고는 연계가 많이 돼 있는데, 음식 쓰레기를 포함해서 쓰레기 봉투 값만 한 달에 1백 2,3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손님이 하도 많아서 자원을 아낀다든지, 쓰레기를 줄인다든지 하는 건 솔직히 아직은 못하고 있다.
--------- 포인트/ 잔칫집 분위기여야 한다
손님 입장에서 내가 노력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분위기다. 손님이 있건 없건 음식점은 늘 잔칫집 분위기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썰렁한 데서 먹는 게 맛이 있을까? 그래서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또한 잔칫집에서 인색하면 되겠는가? 그러면 안 되겠기에 식탁을 푸짐하게 차려내는 것이다. ----------
- 베푸는 게 남는 거다
손님이 서비스 반찬을 더 달라는데 종업원이 머뭇거릴 때가 가끔 있다. 주방에 한번 더 갔다 오기가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자기 생각엔, 손님이 돈 내고 먹는 음식보다 서비스로 달라는 게 더 많아서 그러는 것이다. 즉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생각해서. 자기 가게로 생각하고 사장 이익을 생각해주는 것이니 나로선 싫진 않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래서 난 그 종업원한테 눈짓으로 말을 한다. ‘더 갖다 줘라’고. 내 신호를 받으면 종업원은 반찬을 챙겨서 손님 테이블에 갖다 주고 오면서도 그 손님이 얄미운지 귀엣말로 나한테 한 마디 한다.
“저 손님 벌써 다섯 번째예요. 남는 것도 없는데...”
난 피식 웃으면서 달래듯 대꾸해 준다.
“내 방침 몰라? 내 식대로 해, 알았지?”
그렇다, 하나 더 준다고 뭐가 대수냐?, 그게 내 마음이다. 음식점 하는 사람이 음식 갖고 손님한테 야박하게 굴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장사 원칙이다. 원칙도 원칙이지만, 고마운 손님들한테 인색하게 굴고 싶진 않다.
경영하는 면에서 손님한테 더 주는 것이 고객확보 전략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은 더 주는 게 남는 거라는 걸 체질적으로 알아야 한다. 오랜 장사 경험을 통해서 난 내 생각이 옳다는 걸 검증했다.
--------- 포인트/ 아까워하는 사람은 장사 못한다
음식에 대한 투자는 절대 인색해선 안 된다. 무조건 아끼는 사람도 음식점 장사는 하면 안 된다. 본인 스스로는 자기가 인간성이 아주 좋고 대인관계가 좋다고 떠벌려도, 손님이나 종업원한테 베푸는 게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도 안 된다. 손님한테 하나라도 더 갖다주는 걸 아까워하는 사람 치고 장사 잘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 -------
또한 파김치 만드는 데 파가 7단 들어가는데 “6단만 쓰면 얼마 줄일 수 있지 않느냐?” 면서 종업원한테 재료를 아껴 쓰라고 재촉하는 사람, 전기 값 아끼겠다고 손님이 좀 뜸하다 싶으면 대뜸 전등 몇 개는 꺼버리는 사람, 손님한테 ‘딱’ 줄 만큼만 주고는 더 이상 베풀지 않는 사람, 종업원들한테 ‘짠’ 사람 치고 장사 잘 하는 사람은 못 봤다.
당장의 이익에만 너무 연연해하는 건 좋지 않다. 작은 이익에 연연하면 음식 장사는 망하기 마련이다. 베푸는 게 남는 거다. 베푸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이 돌아온다.
4. 종업원과 함께 간다
사장인 내가 아무리 친절해도 종업원들이 손님한테 친절하지 못하다면 말짱 허사다. 우리 집이 맛과 친절로 성공한 건 그러니 종업원들 덕이다.
내가 손님들에게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가 않다. 손님들 얼굴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손님들 기분 좋게, 적어도 우리 집에 와서 기분이 상하는 일은 없게 하려고 웃는 얼굴로 손님들께 인사 챙기고, 가게가 바빠지면 손님들께 조금이라도 불편 드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정도다.
직접 손님들께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아서 음식을 갖다드리고, 부족한 음식이 있으면 더 갖다드리는 등 손님들이 좀더 기분 좋고 편하게 식사를 하실 수 있게 해드리는 건 홀에서 뛰는 사람들이다. 홀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처리하고 주차장 관리도 이들 몫이다.
어디 그들뿐인가? 주방에서는 손님들께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려고 반찬 하나라도 더 맛있게 만들어내고, 또 청결함을 중시하는 손님들의 신뢰를 깨지 않으려고 열심히 그릇 닦고 불판 닦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단순히 음식값을 계산해 받는 게 아니라 손님들과 우리 집과의 인연을 다음으로 이어주는 카운터, 이 모든 걸 총괄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지배인..., 다양한 역할을 해주는 이들이 묵묵히, 또한 힘껏, 그리고 가급적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해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봉사하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고 ‘친절! 무조건 친절!’을 잔소리처럼 외쳐댄 사장인 나의 마음을 받아들여 준 것일 게고. 기본적으로는 물론 자기 일에 대한 성실함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 종업원 손발 맞추기
물론 처음부터 모두들 마음이 맞아서 손발이 착착 들어맞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1,2년은 직원들이 손발이 맞지 않아서 좀 힘들었다. 내가 힘들게 끌어온 부분도 있다.
처음엔 종업원이 20명에서 시작했다. 가게 열면서 난 직원들한테 호소했다.
“난 여기 목숨을 걸었다. 날 좀 도와달라. 우리 같이 시작하는 기분으로 손이 좀 힘들더라고 고생해달라. 우리가 고생하면 같이 잘되는 거다.”
지배인, 카운터, 찬모, 그리고 홀 인원 몇 명은 내가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춰온 이들인데 내 스타일을 잘 알아서 날 잘 따라줬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새로 온 사람들을 내 스타일대로 끌어올리자니 그렇게 수월하지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새로 온 사람들도 어느 정도 손발을 맞추고 일하게 되었는데 1년 만에 직원이 30명 넘게 늘어났다. 기존 인원들도 내 생각만큼은 따라와 주질 않은 상태에서 인원이 또 늘어난 것이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깐깐한 사장 밑에서 일하는 게 힘들었을 테지만, 나도 힘들었다. 절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가게여서 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가게에 매달렸다. 그런데다 내겐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내 스타일대로 밀어붙인 부분이 있다. 직원들 입장에선 다른 집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일이 힘에 부칠 정도로.
내가 밀어붙여서 서비스도 많이 늘어났다. 파쇼적으로 “이거 해보자”고 밀어붙이면서 서비스를 늘려나갔다. 서비스가 늘어나서 홀에서 서비스 하다가 막히면 주방에서 힘이 든다. 귀찮고 힘들고 하면 직원들은 슬슬 서비스를 줄이고 싶어하는 눈치들을 보였다. 그러면 난 “그 정도도 못하냐?”로 나갔다. 직원들도 사장 성질(?)을 아는 터라 썩 내키진 않더라도 일단은 따라와 줬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자발적으로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사장인 날 믿고, 딴 집에선 힘들고 잘 못하는 일들도 열심히 해줬다. ‘무조건 친절하게’ 라는 내 원칙도 잘 따라주었고.
------ 포인트/ 사장이 원칙이 있어야 종업원이 따른다
물론 내 원칙을 직원들이 완전히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보통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일해보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저게 탤런트가 손님 신발을 정리하지 않나, 손님이 찝쩍거리면서 더 달라고 한다고 더 주면 분명히 밑지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이 갔다 주라 하지 않나....’
이젠 직원들도 내 스타일을, 내 원칙을 잘 안다. ‘저 사람은 손님한텐 간이라도 빼줄 듯이 하는구나’를 안다는 것이다. ---------------
또 자기네가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열 받고 좀 씩씩거리면서 솔선수범(!)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물론 손님들은 모르게 하고. 우리 집은 저녁 10시 이후에 들어오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 전에 이런 일이 있어서다. 종업원들은 밤 9시경에 반찬을 싹 치워놓고 그 후에 손님이 오면 미적거리면서 잘 움직이질 않았다. 그걸 보고 홀에 앉아 있던 내가 가서 냉장고를 ‘확’ 열고 반찬을 꺼냈다. 종업원들은 ‘저게 또 지랄 났구나’를 알고 그때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후에는 아예 시간을 정해줬다. “반찬은 9시 50분에 치워놓고 10시까지 들어오는 손님은 받아야 한다”고.
그동안 물론 일이 힘들어서 나간 종업원들도 있다. 인원이 자꾸 빠지면 새 사람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보충해서 하니까 일이 많아져서 힘들어지니까. 하지만 내 스타일이 싫어서 나간다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도 느끼고 아는 것 같다. ‘아 저렇게 해서 손님이 많아지는구나...’
직원들이 지금까지 오기까지 엄청 힘들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를 말로가 아니라 직접 내가 해보이면서 직원들을 끌어왔는데 내 방식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집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직원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게 되었다. 만드는 게 힘드는 데 비해 잘 안 팔리는 메뉴는 빼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개발했다. 전골은 투구같이 생긴 냄비에다 내서 손님들이 직접 끓여먹을 수 있게 하고, 고기는 접시 대신 도마에다 올려서 내가고 등등.
지금은 직원이 40명이다. 주방 인원은 12명이다. 고기 담당하는 사람 2명, 반찬하고 냉면 만드는 사람 3명, 그릇 닦는 사람 3명, 불판 닦는 사람 1명, 밥하는 사람 1명 등이다. 홀 인원은 28명이다. 남자들은 주로 여자들을 보조해서 무거운 거 나르고 그릇 치워주고 쓰레기 치워주고 하는 일을 한다. 여자들은 카운터, 그리고 손님상에 서빙하는 이들이다. 홀 인원은 일은 남녀 구분 없이 하는데 남자들은 담당 테이블은 정해놓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데서 뛰고 있다. 김치 다듬는 거나 물수건 빠는 등의 잡다한 일들은 직원들이 자기네들이 순번을 정해서 알아서 하고 있다. 주방이 바쁘면 홀 인원들도 들어가서 하게 돼 있고.
- 종업원들이 돈 벌어준다
안면이 좀 있는 잡지사 기자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음식점 하는 데 있어서의 애로점이 뭐냐는 질문에 난 종업원 문제를 짚었다.
“사장이 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종업원이 내 일처럼 움직여주지 않으면 못하는 게 음식점이야. 다른 업종도 그렇겠지만. 더구나 우리 집처럼 종업원 수가 많으면 사장 혼자서 종업원 관리하는 것도 힘들어.”
음식점의 애로점을 시시콜콜 들자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겠지만, 그 중에서도 인적 구성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또 어려운 부분이다.
가령, 주인이 직접 주방을 맡으려면 카운터나 홀은 지휘하지 못한다. 주방장을 데려오려면 성질 좋고 기술도 좋은 사람을 구해야 하고, 나처럼 두 가지 일을 하거나 음식점 규모가 크면 내가 없을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지배인도 있어야 한다. 홀에서 뛰는 사람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또 여러 사람을 겪어보면서 사람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뽑은 사람이 일을 잘한다 싶어서 마음놓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간다고 하면 그 자리를 채우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급히 사람을 뽑으려 해도 적당한 사람이 제때 나타나 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자니 기존의 종업원들이 힘들어지니까.
처음 먹자빌딩에서 신정을 했을 때도 처음엔 7명으로 시작했는데, 물론 모두 새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사람 구한다는 광고 붙인 것을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내가 면접을 보고 썼다. 나중에 사람이 더 필요해졌을 땐 우리 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자기 친구들도 데리고 오고, 알음알음으로 해서 연결된 사람들이 와서 같이 일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 서로 뜻이 통하고 “저 놈 착하고 일 잘한다”고 신뢰할 수가 있어서 지배인도 시키고 했다. 새로 인원을 구하는 건 지배인한테 맡기는 식으로 해서, 다행히도 난 사람 구하는 어려움은 몰랐다. 주신정을 열 때도 인원 20명 선에서 시작했는데 기존에 형성됐던 멤버들이 있어서 부족한 인원도 좀 수월하게 보충했다.
음식점을 해보니까 과연 음식점은 종업원이 돈 벌어 준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다. 돈 벌어 주는 종업원들은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일 잘하고 사장 스타일을 잘 따라주는 건 아니니까, 돈 벌어 주는 종업원들이 되도록 사장이 가르치고 끌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소위 말하는 ‘종업원 관리’를 잘해야 한다.
부업으로 처음 도자기 가게를 했을 땐 종업원이 2~3명이어서 특별한 관리라는 게 없었다. 그냥 마음으로 잘해주고 믿어주고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편하게 해주는 정도였다. 도자기 가게 점원이 하는 일은 손님한테 물건 팔고 하는 거니까 점원을 밀어붙이면서까지 특별히 가르칠 것도 별로 없었다. 손님한테 좀 뚱하면 “좀 친절하게 해라”, 그 정도만 얘기하면 됐다.
------- 포인트/ 종업원 관리 노하우
하지만 음식점은 다르다. 종업원이 하는 일이 다양하고 각자 또 자기 역할이란 게 있어서 전체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면 사장은 여러 가지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사람이 많다보면 각기 다양한 성품과 기질을 일일이 헤아리면서 종업원들을 끌어갈 순 없지만, 기본적인 방침이라든가 하는 게 필요하다. 종업원을 다스리는 관리 노하우 같은 거, 그런 노하우를 빨리 터득하는 관리자의 체질 같은 것이 중요하다. ----------
그런데 내겐 종업원을 다스리는 체질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체질은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젊은애들은 어찌 되었거나 나보다는 처지나 상황이 못한 애들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정말 마음으로 불쌍하고 안됐고 하는 걸 많이 느낀다. 속마음으로부터 ‘저건 저러니까 저렇게밖에 못살지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또 같이 어디 다른 데 가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술도 먹고 하면 내가 흐뭇하기도 하다.
우리 집엔 아줌마들이 많다. 아줌마들은 가정을 이끌어 가는 분들인데 그들에겐 여기가 직장이다. 그걸 아니까 난 그들에게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 난 잘해주고 싶다.
전에 내가 모(某)방송국 아침 프로에 나갔을 때다. 내 밑에서 일했던 주방장의 인터뷰가 중간에 짤막하게 나갔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사장이 너무 잘해주니까 어린 직원들이 막 대한다.”
내가 애들을 좋아해서 가족같이 흉허물없이 하기 때문에 나온 얘기 같다. 아마도 사장인 내가 권위를 좀 지켜야 한다는 얘기 같다.
철이 좀 없어서 그런지, 나랑 친해져서 그런지, 젊은애들은 날 사장님이라 생각하지 않고 농담도 잘한다. “사장님이 탤런트이긴 한데 인기가 없어서 우린 TV에서 사장님 안 봐요” 같은 농담을. 물론 내가 딸하고 놀 듯이 종업원들하고도 다 그렇게 놀아서다. “이 새끼야 저리 가~” 하면서.
그런 내 모습이 어떤 면으로 보면 사장으로 품위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난 생각하는데, 이 생각이 옳던 아니던, 이게 내가 종업원을 대하는 기본 태도이다.
난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밀고 나가는 건 다 내 생각대로 밀고 나간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 애들도 그렇고, 종업원 애들도 그렇고 허물없이 같이 놀고 한다. 우리 딸이 전에 나랑 같이 TV 프로에 나와서 그랬다. “아빠는 놀 땐 잘 놀아주는데 무서울 땐 무섭다”고.
------ 포인트/ 종업원을 대하는 기본 태도와 자세
여러 인원을 데리고 가게를 꾸려나가려면 종업원 관리 노하우는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건 장사를 하면서 차츰 터득해 가면 될 것이고, 전문가들의 어드바이스를 받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종업원들을 대하는 기본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
- 종업원 대우가 좋아지면 사장한테 이익이다
개업하고 3년 후쯤에 속이 쓰린 일을 당했었다. 우리 집이 장사가 잘 되고 너무 유명해지니까 헐뜯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세무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담당자는 “주위에서 당신을 씹어서 조사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는데, 난 그 어려운 시기에 모아놓은 돈 1억을 세금으로 물었다. 솔직히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동안 세금을 안 낸 것도 아닌데...
한동안은 속이 쓰렸지만 이럴 바에야 차라리 투명 경영으로 가는 게 마음이 편할 듯 싶었다. 손님들이 현금보다는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서 카드는 어차피 밖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세무사에서도 법인이 되면 경비 쓰는 부분도 편안해질 거라고 충고를 해줬다. 그래서 ‘그래, 모든 게 투명한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괜히 세금 좀 줄여보겠다고 마음 졸이면서 눈치보는 것도 싫었다. 또 40명으로 늘어난 직원들한테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 싶었다. 그래서 가게를 법인으로 등록했다. 세무조사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난 그 후 세금문제에서 편해졌는데, 종업원들한테도 이익이 되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법인으로 바뀌면서 월급에다 주일 수당, 산재보험, 고용보험, 의료보험, 연금보험, 퇴직금..., 종업원들한테 돌아가는 게 많아졌다. IMF 때도 매상은 좀 줄었지만 종업원 월급을 올려줬는데 그러니까 종업원들은 내게 고마움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해줬다. 그래서 그 험한 IMF 한파에도 우리 집은 그나마 위기를 거뜬히 넘길 수 있었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직원 대우가 많이 좋아지니까, 내가 간혹 좀 심하게 몰아붙여도 내 마음을 좀더 알아주는 것도 같았다.
‘하긴 저도 우리랑 같이 잘해보자고 하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거겠지...’
내 마음을 이해해주니까 종업원들은 내 말을 좀더 선뜻 따라주게 되었고, ‘한마음’까진 아니겠지만 나를 중심으로 좀더 뭉쳐주었다. 종업원들이 다른 데로 가거나 하는 일도 없어지니까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비스의 질도 좋아졌고 그만큼 손님들도 만족해했다.
종업원들은 이젠 나한테도, 또 같이 일하는 동료들하고도 익숙해졌고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 내 눈초리가 어디로 돌아가는 걸 보면 ‘저 사람이 뭘 원하는 구나’를 안다. 또 내가 싫어하는 점이 뭔지도 아니까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척척 돌아간다.
-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건 도(道) 닦는 길
난 40명 종업원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다. 이름을 자주 부르진 않으니까, 더구나 이름 부를 일이 거의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 솔직히 다 알진 못한다. 하지만 이름은 몰라도 특징이라도 알고 있다.
종업원들의 입장에서 사장인 내게 불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40명을 다 데리고 왔다 갔다 할 순 없다. 그렇지만 큰불만을 예기하면 들어준다.
종업원을 잘못 두면 교육시키다 끝난다. 쓸 만 하면 나가니까.
사람을 많이 써보니까 일 못하는 사람은 혼을 내도 안 고쳐졌다. 그렇다고, 일 못한다고 사람을 함부로 내보낼 순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홀에 배치하고 잘 하는 사람은 뒤에 배치하고 하는 식으로 했다. 그래야 전체 일이 좀더 원활하게 돌아가니까.
종업원들한테 화도 많이 났었다. 지금도 물론 화가 날 때가 있다. 지금도 난 장사하기 위한 원칙들이 마음에 정해져 있는데, 손님한테 불편을 주는 일은 전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이 그걸 어길 때는 화가 났다. 자기네끼리 싸우는 건 난 신경 안 쓴다. 하지만 난 종업원들이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된다는 걸 ‘1,2,3,4...’ 머리 속에 넣고 있는데 그걸 자꾸 어기면 화가 났다.
내 머리 속에 넣고 있는 ‘1,2,3,4...’는 이런 것들이다. 서비스를 더 갖다줘야 하는데 움직이려고 안 한다든지, 남들 생각해서 빨리빨리 치워야 하는데 저 혼자만을 생각해 팁 받는 데만 신경을 쓰는 것 등등. 지금은 종업원들이 자율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지만, 전에 보면 공동생활을 하면서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땐 솔직히 미웠다.
------- (포인트) 화는 전략적으로 내라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벌컥벌컥 화를 내진 않았다. 속으론 화가 나도 일단은 참았다. 자기네들끼리 누가 뭐 때문에 그런다는 식으로 안 좋은 소리가 들려도 마음속에만 두고 아는 체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혼을 냈다. 마음속에 모아놓았던 것들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바쁠 때 종업원들이 미적거려서 내가 돌로 된 불판을 던졌던 일도 그런 맥락에서다. 화도 났지만 종업원들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 성질을 한번 부려야 휘어잡겠구나’ 하는 계산이 나도 모르게 있었던 거 같다. ----------
처음엔 몇몇 종업원한테는 특히 성질을 심하게 부렸다. ‘좀 우리 집에서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런 사람은 안 나갔다. 그런데 또 묘한 것이, 20년 동안 내가 사람을 내친 적은 없었다. 그게 마음 속에 있어서 그런지, 지금 당장 내보내고 싶은 사람도 그냥 참고 적당히 눈치만 주게 되었다.
모두 내 마음에 드는 종업원을 둘 순 없다. 보통사람들 기준에서 봤을 때 그냥 충분하다 싶으면 사장으로선 다행인 거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돈이니까, 딴 집보다 덜 주려는 마음만 없으면, 그들이 우리 집에 와서 오래 있는 것이고.
20년 장사를 해오면서 종업원들한테는 접어 가는 마음이 난 많이 생겼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 여기서 접자. 여기서 내가 성질 내고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그냥 접고 갈 것이냐?....... 아유, 참자.’
역시 ‘장사는 도(道) 닦는 길’인 듯하다.
5. 어차피 혼자 가는 길, 홀로 서라
위너스 화재로 그동안 내가 번 돈을 몽땅 날리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 혼자란 생각이 절실했었다. 옆에 ‘새끼들’도 있는데 가정을 끌고 가야지, 그러려면 우선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그 전에도 쉽게 끌고 온 건 아니지만, 화재로 죄다 잃어버리니까 타격이 정말 컸다. 내 인생에선 가장 힘든 시기였다.
돈버는 것도, 돈 꾸는 것도 막막했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오로지 책임은 나 혼자 져야 한다. 그래서 혼자란 생각을 많이 했다.
처가가 제주도 부자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항상 마음으로는 도움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 돈 얻어 쓰는 것도 힘든데, 처갓집에서 얻어 쓰는 건 정말 힘든 거다. 그런데 돈을 꿔서 갚고 하는 건 처가말고는 내가 철저히 믿을 데가 없었다. 사업자금은 처갓집 외에는 달리 융통할 데가 없었다. 그동안은 처가에서 꿔주고 내가 갚고 이런 짓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주신정을 개업할 땐 처가에서 도와주질 않았다.
그땐 처가에 엄청 서운했다. 불나기 전에, 점포 늘리고 하면서 처가에 대한 부채가 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신용을 안 지킨 것도 아닌데... 아마도 그때의 서운함이 마음에 한으로 맺혀서 살았다면, 아내한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이혼하고도 남았을 거다. 그런 거 지금은 다 풀었으니까 괜찮지만, 당시엔 혼자라는 생각이 절절했었다.
혼자라는 생각을 한 건 옛날부터 그랬다. 왜, 무슨 일이 탁탁 닥칠 때마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가게에 세금 조사 나온다 했을 때도 난 철저하게 혼자였다. 외로웠다.
엄마 가게에 불났을 때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처음엔 크게 외롭다,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고, 딱 내가 가장이 되니까 실감을 했었지만. 힘들었을 때 미국에 있는 사촌 형이 조금씩 도와주긴 했는데도, ‘세상에 나 혼자 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엄청 했다. 나중에 탤런트로 ‘뜨고’ 결혼을 ‘잘’해서 이젠 혼자라는 생각은 안할 줄 알았다. 어, 그런데 웬걸? 가장이 되니까 더 실감하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물론 위너스가 불났을 때. 가족들이 다 몰려서 산다고 해도 내가 다 책임져야 했다. 나말고는 다들 경제적으론 무능력자였으니까.
다행히도 난 ‘혼자’ 일어섰다. 물론 ‘나 혼자’ 힘만으로는 결코 일어서지 못했다.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줬고 종업원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운도 따라주었다. 그럼에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난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좀 외롭긴 하지만,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버겁긴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다.
------- 포인트 / 장사는 외로운 길이다
살아가는 게 외롭다는 게 모든 결정을 혼자서 해야 돼서가 아닌지? 특히 장사하는 것도 그렇고, 가정 이끌어 가는 것도 그렇다. 되고 안되고 하는 걸 모두 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가정적인 것도 그렇지만, 주신정이 가는 길도 40명이 같이 가는 건데 선장 노릇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은 그래도 월급도 의지하고 회사에도 의지하면서 산다. 그렇지만 장사의 길이란 모든지 혼자 해서 승부도 혼자서 내야 한다. 세금 문제, 종업원 문제..., 다 내가 어른 입장에 서서 모든 걸 다독거리면서 끌고 나가야 한다는 건 외로운 거다. 그나마 잘 되면 덜 외로운 거고. ----------
- 동업? 가능한 하지 말라
주신정이 잘되니까 주변에서 같이 음식점을 하자는 동업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음식점뿐 아니라 다른 업종까지 같이 하자고. “와서 얼굴만이라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잇다. 그렇지만 ‘얼굴 내밀어 줄’ 시간이 없다. 방송 할 시간도 없는데. 그래서 난 그런 약속은 못한다.
예전 같으면, 누가 “이거 차리자”, “저거 하자”고 하면 돈 욕심에 돈이 생기는 것이면 열 개라도 벌려놓았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차니까 그렇게 갖고 싶은 것도 많지 않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거만 잘 지키면 되지 더 뭘...’ 하는 생각으로 거절을 한다.
이런 이유도 있다. 딴 걸 벌여놓으면 돈은 더 벌릴지 모르지만 내 몸이 너무 괴롭다, 또 이걸 못 지키면 다 놓친다는 생각도 있어서.
물론 실리도 따진다. 나 혼자 해도 잘 되는데, 굳이 같이 해서 신경 쓰면서 이익을 나누어 먹을 이유가 없다.
동업하자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나도 해봤으니까.
총각 시절, 탤런트 남성훈하고 임왕, 나 셋이서 탤런트 코너라고, 코스모스 3층 관광 아케이드에서 잡화점을 했었다. 지금으로 보면 팬시점 플러스 도자기점이었다.
난 그 전에 선배형네 도자기 가게에서 일일 점원으로 며칠 나간 경험이 있었다. 미국 갔다 온 임왕이가 선배형 도자기 가게가 잘되니까 우리 셋이 하자고 날 ‘꼬셨다’. 우린 꿈이 많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쉽게 뭉쳤다.
선배형 가게에서 파는 옹기는 못 팔았지만, 그래서 다른 물건들을 가져와 팔았는데 장사는 잘 됐다. 그런데 남성훈도 결혼했고 난 결혼하기 전이어서, 내가 밤낮 가게에 남아 있었다. 팬들이 오면 애프터 서비스로 얹어주고 하면서. 장사는 잘돼도 셋이서 나눠먹는 장사라 그런지 돌아오는 이익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트러블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땐 모두들 돈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용돈 개념으로, ‘사이드’로 동업을 한 거여서.
그런데 내가 결혼하고 나서 화려한 생활에 잠시 젖어 살다가 다시 동업을 했을 땐 좀 사정이 달랐다. ‘이크, 이러다간 큰일난다, 부업해서 안정된 수입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동업에 뛰어들었으니까.
도자기 가게 하던 선배형의 제안으로 동업을 한 건데, 투자비는 미비했다. 아무래도 동업이니까 심리적인 부담도 크진 없었다. 장사는 그런 대로 잘 됐다. 그런데 ‘같이 돈 벌자’고 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돈에 민감해지는데, 서로 장사에 임하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틀렸다. ‘손님한테 더 얹어주고 다음에 또 한 번 오게 하자.’
내 생각은 그랬다. 형 생각은 달랐다.
‘이거 팔아 원가가 얼마 남는다고 다 집어주냐?’
서로 마인드가 틀리다보니, 장사가 잘 돼도 마음들은 점점 편치가 않았다. 그런데다 내가 일일 연속극을 하게 되면서 방송 일이 바빠지니까 자연 가게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형보다는 장사를 잘했는지, 아니면 ‘탤런트 아무개가 주인이다, 거기 가면 탤런트 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형은 생각했는지, 내가 자리를 못 지키면 형은 엄청 불안해했다.
가게를 많이 못 지키는 것도 미안한데다 형이 불안해하는 걸 보니까 난 ‘이러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1년 정도 하다가 선배형한테 가게를 넘겨드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혼자 나름대로 조그맣게 해봐야겠다.’
20년 전 신정도 사실 시작은 동업으로 했다. 내가 도자기 가게를 하던 코스모스 백화점 매장 위에서 레코드 가게를 하던 형하고 같이 했다. 각자 주(主)로 하던 일이 있어서 ‘사이드로’ 음식점을 차린 건데, 같이 한 6개월 했나?
그때만 해도 내가 또 일일 연속극을 하느라 자리를 못 지키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 형도 내가 가게에 없으면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난 미안한 마음이 강해졌다. 나도 방송하면서 장사하는 건데 기본적인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문 열고 3개월쯤 됐을 때부터 형한테서 “못하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가게 오픈하고 6~7개월 후쯤부터 형 돈 들어간 거 다 주고 혼자 하게 됐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혼자서 이걸 어떻게 꾸려 가나?’ 하는 걱정은 있었지만. 초기엔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내 방식대로 하면서 차츰 음식점 장사의 노하우란 것들도 터득해 갔다.
그 이후 동업은 하지 않았다. 주신정을 차리면서도 없는 돈으로 시작하면서도, 좀 더 크게 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어도, 부족한 돈을 여기저기서 융통해 오느라 힘들었어도, 동업 생각은 아예 하질 않았다. ‘모자란 돈은 차라리 꿔서라도 한다’는 생각으로.
------- 포인트/ 동업의 이점이 있긴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동업하는 것은 자본이 달려서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많아서일 것이다. 장사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경험 있는 사람하고 같이 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없으니까.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는 거, 사실 그게 동업의 가장 큰 이점이다. 5천 만 원을 투자할 경우 같이 반씩 투자하고 망하면 같이 망한다는 뜻이 아니라, 큰 일이 닥쳐도 마음의 의지가 된다는 것. -------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잘해보려고 서로 자기 의견을 내다보니까 트러블이 났다. 동업은 대부분 아는 사람끼리 하는데, 확실히 친구 관계랑 사업에 임했을 때 관계가 틀리다. 친하다고 덤볐다간 원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동업해 보면서 느낀 건데, 상대방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거 보면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구나’를 알아야 트러블이 안 난다. 마지못해서 져준다거나, 저 사람이 나보단 나으니까 내가 져주자 식으로 나오면 꼭 트러블이 난다. 솔직히, 상대방이 돈 속이지는 않을까 신경도 쓰이고, 자기가 시간을 적게 뛰면 미안하고 상대가 바둥거리면 더욱 미안하고.
그래서 동업을 하려면 최소한 경영하는 적성이, 장사에 임하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해야 한다. 손님한테 뭐 주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같은 사람끼리, 백만 원을 서비스로 써도 즐겁다는 사람끼리, 5백 원을 갖다줘도 아까워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끼리, 즉 마음 씀씀이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현실적으론 힘들다. 종업원한테 조금 더 베푸는 게 이익이냐, 원가도 정가대로 하는 게 이익이냐, 덤으로 얹어주는 게 이익이냐, 장사하는데 전깃불을 꺼야 이익이냐 아님 그 반대냐..., 장사하다 보면 오만가지 일에서 서로의 의견이 부딪친다. 의자는 어떤 걸로 어떻게 놓자..., 의자 하나 놓는 데도 의견이 달라진다. 똑같은 생각을 하면 좋은데, 기본적인 마인드는 같다 해도, 한가지 사물을 보는 눈이 어찌 똑같을 수 있겠는가?
------- 포인트/ 굳이 동업을 하겠다면....
그나마, ‘사람 생각이 똑같을 순 없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서로의 적성을 존중해서 경영하는 데 있어서 각 분야를 서로의 특성에 따라 좋은 점으로 분업화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 이건 쟤 생각이 맞는구나, 그럼 쟤 생각을 철저히 밀어줘야겠구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에서 서로의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계산은 네가 철저하니까 네가 맡아라, 가게 홍보는 내가 발이 넓으니까 내가 하겠다, 시장 보는 건 난 아침엔 도저히 못 일어나니까 네가 뛰어라, 대신 난 홀에서 더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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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맡은 사람, 실내장식 하는 사람, 시장 보는 사람..., 이렇게 분업이 철저히 이루어진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서로 마찰이 없으려면 남의 분야는 철저히 건드리지 말고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 그 부분만큼은 상대방한테 철저히 져준다는 자세로 불평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문제는 또 있다. 장사 잘하는 사람하고 못하는 사람하고 만나면?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혼자 다 하는데 괜히 이익만 나누는 것 같아 아까운 마음이 든다. 못하는 사람은 미안한 마음만 들고. 각자 부처님 같은 마음으로, 상대방이 이익을 다 가져가더라도 그쪽으로 몽땅 밀어줄 마음이 있으면 또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같이 일하는 게 편할 정도로 그런 자세를 가지면 동업을 해도 좋다.
하지만 누가 와서 동업에 대한 조언을 묻는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능한 하지 말라. 인생이라는 것도, 장사라는 것도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이다. 그러니까 고되더라고 혼자 걸어가라.”
- 프랜차이즈? No!
우리 집을 본 딴 음식점이 지방에 하나 있다. 사장은 대전에서 다방을 7~8개 하던 사람인데 우리 집에 계속 찾아왔었다.
“지금 하는 다 팔고 하나로 모아서 하고 싶어서... 내가 건물을 하나 세웠는데, 거기다 이 집하고 똑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단골의 부탁을 끝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흔쾌히 승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신정 분점으로 알고 오는 손님들도 있을 텐데, 잘못하다간 우리 집 ‘위신’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름대로 타협을 했다.
“그럼 이름만은 쓰지 마십시오.”
그쪽 종업원들이 한 달 반 정도 우리 집에 와서 일을 배워갔다. 홀에서 뛰는 사람들도 여자 남자 둘씩, 그리고 주방에도 세 명인가 왔었다. 그쪽 사장은 종업원들을 교육시켜서 우리 집하고 똑같이 했다. 메뉴에도 난 탤런트니까 내 사진을 넣었는데, 그 사장은 자기 사진을 넣었다. 우리 이름은 쓰지 못하게 하니까 이름은 약간만 틀리게 했는데, 언뜻 보면 우리 집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쪽에서 개업했다는 소식이 와서 난 거기로 내려갔다. 4~5년 전쯤 일이다. 직접 가서 보니까, 고기 질은 좋았다. 미흡한 점은 우리 집처럼 서비스가 빨리, 척척 돌아가질 않았다. 우리 집 초기처럼 우왕좌왕했다. 하긴, 종업원들끼리 ‘성깔’ 맞추는 것도 우리 집도 몇 년이 걸려서 된 건데, 그 집은 종업원도 훨씬 덜 쓰다보니 종업원들이 더욱 당황해했다. 음식 맛은 좋았다. 그런데 식탁에 나오는 음식이 1,2,3,4 순으로 ‘쫙!’ 하고 나와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거기서 느낀 게 있다.
‘우리 집 이름을 빌려주고 똑같이 해도, 종업원들이 손발을 몇 개월씩 맞추기 전에는 우리 집하고 똑같이 못하는구나. 우리 집이 종업원들이 지금은 잘하니까 몰랐는데, 이게 쉬운 게 아니구나...’
부산에도 우리 집 이름을 딴 음식점이 있다. 내가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도와준 사람이 하는데, 경찰직에서 퇴직하고 나서 부인하고 같이 우리 집에 올라와서 음식점을 하겠다고 했었다. 내가 좋아하던 후배고 부인도 음식 솜씨가 있어서 “그래라”고 했다.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하나를 부산으로 보내줬다. 그런데 그쪽은 또 자본이 달려서 깨끗하게 해놓질 못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특성이 있는지, 장사가 안 되는 건 아니고 제법 됐다. 거기도 증권가에 있어서 그런지, “여기가 서울에 있는 주신정이냐?” 면서 들어오는 손님이 많이 있다고 했다. 이름 덕도 좀 보고 또 사장하고 종업원들이 열심히 뛰어서겠지만 처음엔 장사가 잘됐다고 들었다. 중간에 좀 힘들어지면서 우리 집처럼 ‘막’ 잘되진 않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있어서 난 분점을 낸다거나 하는 생각은 별로 없다. 우리 집 분점을 차리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다.
“주신정을 체인으로, 프랜차이즈로 하시지요? 이름만 빌려주십시오...”
난 ‘No'다. 여기저기 주신정 분점이 생기면 내 손엔 큰돈이 왕창 들어오겠지만 자칫 화(禍)를 불어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 이름만 빌려주는 거지, 주신정 체인이 여기저기 생기면 내가 일일이 뛰어다니면서 체크해야지..., 분점을 잘못 냈다간 본점까지 손해다. 나중에 여력이 닿으면 외국에 하나 차려볼까 하는 마음은 있다. ‘코리아’를 알리는 데 작게라도 일조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 포인트 /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체인점이니 프랜차이즈점으로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면에서 부담이 없으니까 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깨끗하고 번듯해 보이지만 투자에 비해 이익이 적다. 자신의 노하우를 터득하고 개발할 여지도 별로 없다. 내 장사 원칙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장사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몸으로 체득한 자신의 노하우만이 성공을 앞당길 수 있다!” --- --------
- 현장경험이 중요하다
어쨌거나, 우리 집 분점을 차리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음식점 장사 경험이 없어서다. 분점으로 하면, 기본적인 일들은 본점에서 ‘교육’을 시켜주고 중간중간 체크도 해주고 미흡한 건 보완해주니까. 물론 이름 덕도 보고. 분점을 차리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생각은 없다. 편한 점도 많고 좋은 점도 많으니까.
하지만 분점으로 차려도 고깃집을 창업하려면 일단은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80여 평 규모로 독자적으로 일을 벌리려면 경험이 중요하다. 남의 집에서 일한 경험이라도 있어야 한다.
음식점을 하겠다는 분들 중에는 음식 센스가 있어서 해보겠다고 나서는 아줌마들이 많다. 가게 열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맛’을 제대로 배워가겠다고 하는 아줌마들도 꽤 있다. 그럼 난 “해보시라”고 하는데, 정말 음식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 찬모가 음식 만드는 걸 보기만 하고는 비슷한 맛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음식 솜씨는 좋은데, 그런데, 음식 장사는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 부분은 그냥 한두 부분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부분들을 대충이라도 알려면, 그래서,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 창업 준비를 위해 우리 집에 종업원으로 와서 경험을 쌓겠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현장 경험의 중요성은 많이들 아는 것 같다. 그런 경우, 우리도 어차피 사람이 딸리고 하니까 “그러시라”고 한다. 나랑 아주 절친한 사람들이 우리 집을 본 따서 하겠다는 경우에도 난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
“그럼 여기 와서 배워라!”
주방장들은 보통 우리 집에서 일 주일만 있으면 우리 집 스타일을 안다. 홀 서비스하는 사람들도 한 달만 서비스 해보면 알게 된다. ‘아, 이 메뉴는 뭐가 같이 나가고...’ 내가 일일이 “이거 내가라, 저거 내가라” 하면 그들 입장에선 귀찮긴 해도 차츰 알게 된다. ‘김종결이가 저렇게 하니까 장사가 되는구나...’ 사장도 마찬가지다. ‘이 집 종업원들이 사장을 좋아하는 게 사장이 저렇게 하니까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된다.
--------- 포인트 / 우리 집에라도 와서 배워라
그렇게 직접 보고 이해가 돼야 나의 스타일을 따라오지,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건 도저히 못 따라온다. 물론 내 스타일이 싫으면 그만이다. 다른 집에 가서 배우면 된다. 장사도 잘 되고 사장 스타일도 마음에 드는 데서. 중요한 것은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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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을 열기까지는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일일이 신경 쓰려면 한이 없다. 장사 초보자라면 야채 거래처 하나 잡는데도 골치가 아플 게다.
야채는 어디서 가져오나? 그 집이 비싸지는 않나? 값은 적당하지만 질이 좀 떨어지진 않나? 믿을 수는 있는 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생각이 복잡해질 것이다.
헌데 경험이 좀 있으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음식점에 야채를 대주는 건 한 사람(가게)이 다 한다. 그 사람(가게)하고 연락이 닿으려면 주위에서 건실하게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 “야채는 어디서 가져옵니까?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직접 찾아와서 물으면 음식점들은 그 정도는 다 알려준다. 연락처를 받으면 야채 집에 연락하면 된다. “우리 집에도 좀 갖다 주십시오” 하고. 미원이나 설탕 등 자질구레한 품목들도 주변 음식점들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 “미원은 어디 식품 게 좋다. 설탕은 어디 게 좋다더라”고 하면 는 그 집에 가서 “우리도 대달라”고 하면 되고.
난 운이 좋았던 게 주신정을 하면서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쉽게 넘어갈 수가 있었다. 10년 넘게 장사한 경험이 있어서다.
- 배워 가면서 하면 된다!
그 전에 처음 고깃집을 열었을 때는 물론 나도 쉽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문제에 우왕좌왕했다. ‘음식점 여는 게 이렇게 골치 아픈 줄 알았다면 아예 시작도 안 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도자기 가게 경험만 갖고 부딪치기에는 음식점이란 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헌데, 내 경험을 봐도, 역시 어떤 일이건 닥치면 다 하게 돼 있다. 일단 일을 벌여놓은 이상 난 그런 마음으로 계속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많이 잡아먹어서 그렇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땜빵’ 식으로라도 넘어갈 수 있었다. 엉성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나중에, 너무 늦지 않게, 보완하고 바로잡으면 됐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음식점에 대해 잘 몰랐기에 겁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음식점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다면, 음식점을 열기까지 또 계속 해나가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하는 자잘한 일들을 일일이 헤아렸다면 책 한 권은 족히 썼을 것이다. 그러면 겁을 집어먹고 아예 시작할 염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땐 내가 젊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안하고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다. 돈이 필요해서 사이드 잡(side job)을 가져야 하긴 했지만 장사에 목을 매진 않았었다.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려서 골치가 아플 때도 좀 느긋할 수 있었다. ‘배워가면서 하지, 뭐’ 하면서 배짱도 부릴 수 있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결정은 미적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내렸고 그 결정대로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음식점 장사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터득해갔다. 노하우가 쌓이면서 '음식장사 맛'도 새록새록 알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많이 배운 것 같다.
이 얘기를 하는 건, 현장 경험은 물론 중요하지만, 경험이 없다고 해서 겁먹고 움추려들지 는 말라는 의도에서다. 쉬운 길은 없다. 죽기살기로 하면 안 되는 게 없다! 하지만 경험을 좀 쌓으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조금은 수월하게 할 수 있다.
-------- 포인트/ 쉬운 길을 찾지 말라
쉬운 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업종을 구할 때도 ‘쉬운 길을 보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가령, 요즘 한참 뜨는 업종이다. --------
나도 오락실을 해봐서 하는 얘기다. 아는 형이 밀어줘서 오락 프로그램도 새로운 걸 사다가 제법 근사하게 꾸며놓고 시작했었다. 초창기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게 바로 주의할 점이었다. 오락실 인기가 ‘확’ 퍼지면서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밀려오니까 조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업종은 초창기에 하고 빠져야 하는데, 빠지려니 기계 값이니 인테리어니 투자를 엄청 했으니 빠지기도 힘들다. 보통 사람들도 다 알겠지만, 한꺼번에 반짝하는 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한때 스낵코너가 얼마나 유행했었나? 스탠드바도 그렇고. 근래엔 찜닭이 한창인데 글쎄... 장사는 ‘스테디(steady)’한 것이되, 즉 ‘일정하게’ 되는 것이되,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걸로 차별화시켜서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너무 많은 업종도 좀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 얼굴 알려진 덕 크게 봤다
불나고 나서 내가 힘들게 주신정을 시작하니까 동료 탤런트들이 알아서 많이들 와줬다. 방송국 손님들이 오면 난 값을 깎아도 주고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거리가 가까운 MBC의 직원들이 아주 많이 왔다. PD, 연기자들도 누구 한 명이 우리 집에 오고 싶으면 주르르 같이들 몰려 왔다.
요즘도 방송국 회식이니 쫑파티를 우리 집에서 하는데, 가령 <여인천하> 팀들이 모임을 하면 손님들은 다들 신기하게 생각하신다. 방송국 사람들이 우리 집을 계속해서 찾아주는 걸 보면 내가 인심을 안 잃어서인 듯도 하지만 난 그저 고맙다.
초기에는 “연예인이 하는 가게다, 그 집 가면 다른 연예인들 많이 본다”는 소리가 퍼지면서 많은 홍보가 됐다. 또 여의도라는 게 사람들 생리가 음식점을 돌아다녀서, 한번 와봐서 좋으면 금방 입소문이 퍼졌다.
유명세 내세워서 장사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연예인이어서 광고 덕을 많이 본 건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고. 내가 가게에 ‘붙어’ 있는 이유도 날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데, 그 분들을 보면서 내 얼굴이 알려진 덕분임을 실감한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가게 홍보에는 신경을 썼다. 가게 안에 내 사진을 걸어놓은 것도, 가게 바깥쪽 유리에 기사를 붙여놓은 것도 그래서이다.
내 사진을 가게에 걸어놓고 무슨 홍보를 한다는 것이 처음엔 나부터도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전에 신정을 할 땐 그냥 쪼그만 사진만 하나 붙여놓았었다. 탤런트가 하는 집인 이상 사진 하나 안 걸기도 뭐해서. 그런데 장사하면서 보니까 내 사진이 어떻든 도움이 되는 거 같았다.
가게에 내가 없을 때는 내 사진이 날 대신해 준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손님들이 우리 집에 내 사진이 있는 걸 보면서 “아, 저 사람이 하는 데구나!” 하고, 또 손님이 누굴 데려와서 “이 집이 탤런트네 집이다” 했을 때 내 사진을 보면서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하면 아무래도 관심이 좀더 생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주신정을 하면서는 가게에다 내 사진을 여기저기 걸어놓았다. 음식점에다 무슨 좋은 그림을 건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또 벽면도 많지 않고 해서. 실내 꾸미기 겸 일종의 광고 이벤트 차원이랄까?
가게 외벽 유리에 붙여놓은 기사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된 것들이다. ‘탤런트 김종결’ 기사는 없다. 전부 주신정하고 관련한 기사들인데, 역시 홍보 효과가 된다.
그 기사들은 “어디 날 좀 내달라”고 내가 부탁한 적은 없다. 탤런트가 한다니까, 혹은 우리 집이 입소문이 나니까 기자분들도 많이 오면서 자꾸 매스컴을 타게 됐다. 또 내가 강연한다고 해서, IMF 때는 불황에도 끄떡없는 집이라고 해서 방송에도 나오고 했다. 그렇게 방송이나 기사가 나가면 손님들이 몰렸다. 알뜰하게 저축해서 대통령상을 탄다고 또 기사가 나가면 역시 손님이 또 몰렸다. 그 기사들이 인터넷에도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난 광고비도 들지 않고 가게 홍보를 하게 된 셈이다. 홍보에 있어서는 난 참 운이 좋았다. 그렇다고 가게 홍보를 운에만 맡긴 건 아니다.
적금 통장이 지금 15개가 넘어 한 스무 개 된다. 이것도 홍보의 일환에서다. 가게가 금융가에 있으니까 은행 손님을 끌기 위해서. 한 은행에, 한 통장에 돈을 넣어두면 훨씬 편하다. 그런데 여기서 저기서 도와달라고 하면 한 개씩 들어주다 보니까 그렇게 늘어났다. 통장 관리 다 하려면 좀 불편해도 그 은행 직원들이 우리 집 손님이 되는 거니까 득이 더 많다. 하다 못해 강연하는 것도 가급적 가게 근방에서만 한 것도 그래서다.
또 방송에서 우리 가게 와서 찍어 간다고 하면 사실 귀찮은 면도 있다. 편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찍은 시간에 비해 TV에는 잠깐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집을 찍겠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는다. 또 신문이나 잡지도 내가 모르는 데서 와서 인터뷰하자고 해도 ‘오케이’다. ‘연예인 부업’ 기사가 나간다면 날 꼭 인터뷰하는데, 그럼 우리 가게 얘기는 서너 줄 정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화와 인터뷰가 같은 날에 잡혀도 녹화가 끝나면 빨리 가게로 와서 인터뷰를 한다. 물론 가게 홍보가 돼서다.
나도 광고 전단지는 뿌렸다. 그런데 단순히 그걸 보고 “새로운 집에 한번 가보자” 하고 오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전단지에 내 얼굴을 넣어서 만드니까, 탤런트가 하는 집이라니 호기심에 와보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일반인이 단순히 신장개업을 알리는 전단지로는 손님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 포인트 / 이벤트나 광고로 손님을 끌어라
일단 가게를 알려야 한다. 그러려면 이벤트 같은 게 필요하다. 고객 명단을 만들어서 보너스도 드리고, 요새는 잘 보내지 않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님 명함을 모아놓았다가 챙겨서 보낸다든지, 개업 주년마다 기념품 떡을 해서 돌린다든지, 끊임없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곡밥 하는 날이면 오곡밥하고, 복날이면 복 음식 하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게다. 손님들에게 여기가 자기네 집처럼 생각되게끔 말이다.
그런 이벤트를 할 때는 미리 플래카드를 걸다거나 해서 손님에게 알려야 한다. 광고는 일종의 손님 끌기 작전이다. 광고는 틀림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판이나 플래카드 거는 돈이 그냥 들어간다고 생각돼도 그게 손님을 끈다. ---------
더 좋은 건, 홍보 효과가 큰 건, TV를 타거나 지면에 실리는 것이다. 가게가 소개되지 않으면 인물 소개라도 실리는 거다. 그걸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일요일 같은 경우는 전에 TV에서 본 걸 머리에 입력해 놓았다가 오기도 한다. 외국에서 누가 오면 우리 집이 독특하다고 데리고 오기도 한다. 데리고 온 사람도 우리 집에 처음 온 경우는 우리 집이 방송을 탔기 때문이다.
나도 몰랐는데, 일본 가이드북에 우리 집이 실렸다. 가이드북을 보고 일본에서 찾아왔다는 사람이 있어서 알았다. 일본 가이드북에 우리 집을 실은 건 자기네들이 알아서 한 거다. 우리 집이 방송도 타고 유명하니까 선정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난 또 돈 한푼 안 쓰고 광고를 하게 된 건데, 그거 봐도 광고는 틀림없이 중요하다.
--------- 포인트 / 돈 들여서라도 가게를 알려라
맛이 아주 특이하거나, 인테리어가 기가 막히거나 하지 않으면 일반인 가게가 매스컴을 타기는 쉽지 않다. 유명세 덕보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인맥을 동원해서 어디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도록 해야 된다. 돈을 좀 써서라도 가게를 홍보하라고 하고 싶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게를 알려야 한다. -----------
인터넷도 한 방법일 게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특이한 음식이나 맛집들을 찾아서 간다고 하니까. 언제 한번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까 우리 집 얘기도 올라와 있었다. 내 기사를 실은 신문이나 잡지에, 또 몇몇 팬들이 만든 사이트에도. 난 아직 우리 가게 사이트까진 못 만들었지만, 가게를 알려야 하는 사람은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장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