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09년 9월 7일자 방송통신대학보 이승환 기자의 <해외문화재 환수, 능사만이 아니다>라는 기사에 대한 반론성 글임을 밝혀 둔다.
약탈과 유출, 그 애매모호한 구분
위 기사에서 기자는 국외문화재 환수와 관련하여 약탈과 유출을 엄연히 구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 애매모호한 이분법적 구분이 얼마나 유효하고 적절할까? 의구심이 앞선다. 범위를 좁혀서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 중 약탈이 분명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총량의 몇 퍼센트나 될까? 그렇다면 나머지는 전부 합법적인 유출 문화재로 보아도 좋을까?
유출을 가장한 약탈 - 경매와 매매
애매모호한 약탈과 유출의 이분법을 주장하기에 앞서 논자들은 ‘유출을 가장한 약탈’과 같은 것은 고려해 보았는지 되묻고 싶다. 요즘도 고서점에서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문화재 경매도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도록들을 볼라치면 국내 박물관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귀중한 유산들이 무제한적으로 ‘합법적인 매매’를 가장하여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로지 간송 전형필 선생 같은 이만이 선견지명을 갖고 간악한 문화재 거간꾼과 일제의 농간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을 뿐이다. 그나마 그가 부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간송박물관은 꿈조차 못 꾸었을 일이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묻는다. 이러한 사례를 유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약탈로 볼 것인가?
은밀한 약탈 - 도굴과 도적질
1994년 SBS에서 ‘도깨비가 간다’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오래 되어서 희미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 도굴을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다룬 기억이 난다. 데라우치 컬렉션이나 약탈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보다도, ‘은밀한 약탈’이 그 규모가 더 크고 문제이다. 이른바 도굴을 통한 문화재 도둑질은 약탈 또는 유출된 것보다 그 질과 양적인 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날 뿐만 아니라 그 실체조차 확인하기 힘든 실정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세상천지에 어느 도둑놈이 “그 물건 내가 훔쳤소!”라고 자인할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일제는 간악하게도 도굴과 문화재 도둑질 과정에서 교묘한 공범관계를 만들어 냈다. 바로 조선인들을 도굴에 동원한 것이다. ‘도깨비가 간다’에도 명확히 그려졌다. 고분을 도굴하는 과정에서 석재로 된 고분통로가 성인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하자 어린아이를 고분에 들어가게 하여 유물을 꺼낸 후 그 아이는 고분에 그대로 둔 채 고분을 덮었다는 이야기... 일제도 일제지만 금전에 눈이 어두워 일본인과 유착하여 조상의 얼과 제 자식의 생명까지도 내버린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다시 질문한다. 도굴 문화재는 약탈인가 아니면 유출인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유출을 가장한 약탈’과 ‘은밀한 약탈’ 등 국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실체 파악이 선행되지 않은 채, 약탈이니 유출이니 가시적인 탁상공론만으로는 함부로 문화재 환수 운운하고 나설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일본 정부나 개인이 한국의 노력에 성의를 보이는척 하면서 아주 적은 문화재를 반환하며 생색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물에 잠겨 결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나머지 우리 문화재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약탈과 전리품 - 상반된 냉혹한 현실
일본뿐만이 아니다. 1866년 병인양요를 도발한 프랑스는 퇴각과정에서 외규장각의 문서와 보물들을 약탈한 후 방화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코에다 겁 없이 대포를 쏘아대던 나폴레옹의 후예다운 짓이다. 조선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당사자인 일본에 비해 프랑스에 대한 문화재 환수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으로 보이는 것은 역 오리엔탈리즘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반면 프랑스는 상당히 당당해 보인다. 이는 아마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하던 19세기 후반 국제질서를 역사적인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불평등한 문호개방이 아니면 무력을 통한 강제개방이 국제외교질서였던 당시, 프랑스 입장에서는 외규장각에서 탈취한 문화재를 약탈이 아닌 전리품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전리품의 원상회복에 관하여는 해당 국가를 다시 무력으로 진압하고 ‘전쟁배상청구’를 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고 프랑스를 침공할 것인가? 출처를 확인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프랑스는 주장하기를 조선은 이미 멸망하였고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체가 다르기 때문에 반환을 청구할 자격도 반환할 의무도 없다고 한다. 이것이 냉혹한 해외 문화재 소유권의 행방이다.
‘위대한 유산 74434’ 그리고 막연한 애국주의, 부끄러운 줄 알아야
기자는 2006년 MBC의 ‘위대한 유산 74434’를 소개하면서 국내 반응이 뜨거웠다고 언급하였다. 시쳇말로 생쑈에 멍청한 국민들이 놀아난 꼴에 다름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작 연예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시청률 상승을 목표로 연출한 기발한(?) 아이디어에 불과한 쇼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얼마나 시민적 관심과 각성을 환기하였는지 의문이다.실현 가능성도 없는 일을 벌려 놓고 싸구려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해외 문화재를 찾아 올 것처럼 시청자의 관심을 호도한 이벤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뜨겁던 열기는 식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주변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우리 문화유산과 문화의식의 고양을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방기한 언론과 쇼에 놀아난 국민 모두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영등포에 정착하였다. 대대로 농사만 짓던 분이 삶의 터전이 없어진 타향에서 생계를 위해 맨 몸으로 시작한 일이 고물상이었다. 초기에는 가방 하나 들고 머리카락과 고물시계를 취급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금씩 번창하여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양평동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공병空甁상회를 운영하였다. 난데없이 가족력을 들먹이며 고물상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무지하였는지 증언하기 위해서이다. 고물상만큼 적나라한데도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은 큰 아버지는 약 33년 전까지 서대문 영천 즉, 서울구치소 밑에서 커다란 고물상을 운영하였다. 할아버지와는 달리 금속류를 전문적으로 취급한 큰 아버지의 고물상에 가보면 지금은 상당한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골동품들이 분야별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도 놋대야, 등잔, 화로, 비녀, 곰방대 등 쇠로 만들어 진 것치고 없는 게 없었다. 이런 것 어떻게 다 처분하느냐는 까까머리 조카의 우문에 “쓸만한 것은 업자들을 통해 일본 사람들이 사가고 나머지는 주물공장에서 가져간다”고 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골이 띵하다. 이른바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전통적인 가치를 마땅히 버려야할 것으로 여기고 불도저로 밀던 시절, 1960~70년대의 우리는 문화유산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치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고물상에 내버렸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황학동 시장에도 이와 비슷한 고물상이 많았다. 잔뜩 쌓여있는 골동품에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고 외제 중고전자제품이나 카메라에 침 흘리고 있을 때,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일본사람들이 들끓었고 한국의 쇼핑명소를 소개하기 위한 일본 언론의 취재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전통의 가치를 깨닫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한국인의 손에 주어진 것은 짝퉁이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해외 문화재 반환을 논의하고 요구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성숙되었고 지속적인지를 반문해 본다. 비록 남의 나라 사람이지만 계층을 막론하고 얄미울 정도로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전통에 대해 골몰하는 일본인의 문화의식에서 배울 것은 없을까? 문화재 반환이라는 학술적이고 실무적인 일에 앞서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적 각성과 의식의 고양이 선행과제인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주 쓰는 표현으로 죽은 놈 불알 잡고 살아나라고 용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돌아오지도 않을 이미 떠난 버스 뒤통수에 대고 손 흔드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재벌들의 한심한 귀족놀이
1998년 분식회계 등 각종 기업비리로 그룹자체를 정리 당한 모 그룹 회장의 고향이 지금 내가 사는 동네이다. 따져보면 회사가 망하기 몇 년 전부터 수천 평도 넘어 보이는 그의 저택에 ‘소전미술관’이라는 명패가 걸렸다. 도자기류를 주로 수집한 모양인데 상당히 고가의 유물도 즐비하다는 후문이다. 기업은 망해도 재벌은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비영리 문화사업을 표방한 재벌들의 귀족놀이가 사실은 그들의 최후의 안전한 금고라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재벌가 마님들이 관장이니 이사장이니 하며 미술관, 박물관 등을 유행처럼 짓고 탐욕스럽게 그 뱃속을 채우고 있다. 마치 근대 유럽 부르주아지들이 봉건 귀족들의 컬렉션 취향을 흉내 내어 그들의 저택을 ‘묻지마 구매’로 장식하던 것을 연상케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그들이 제 아무리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해외에서 반입해 오고 세계적인 예술품을 구매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들의 사유품에 불과하며 재벌들의 또 다른 교활한 재산증식수단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다. 원본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한 내부자의 고발로 밝혀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도 결국 회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모 재벌의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재벌들의 축재행위를 겸한 귀족놀이를 문화재 환수와 연관짓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일제시대의 문화재 거간꾼들내지는 도굴꾼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면 지나친 독설일까? 합법을 가장한 차이 빼고는...
Johann Zoffany, 우피치의 보고
"오늘날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미술품은 극소수 부자들에 의해 향유된다."
- 김정락, <미술의 불복종>, 서해문집, 2009, p.194 -
문화재의 세계화와 자발적, 인도적 반환
이제까지 문화재 환수에 관해 가당치 않은 독설만 내뱉었으니 어리석은 대안 몇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호형호제의 딜레마를 고민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재를 내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해외 반출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홍길동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문화연대 황평우 씨의 논의는 매우 가치 있고 주목할 부분이다. 환수에 집착하기보다는 국외 문화재를 관리하고 연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절대 동감한다. 막말로 내 자식이 남의 나라가서 산다고 내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잘 살도록 보살피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다. 문화재 환수는 소유를 고집하는 방식에서 공유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적인 전환을 하면 어떨까? 공교롭게도 가르치는 4학년 초등학생들 2학기 사회과목에 문화재와 박물관 등 역사관련 항목이 있어 공부를 도와주고 있는데, 얘 네들도 교과에서 교환전시니 임대전시니 영구전시니 하는 것들을 학습하는 수준이다. 국가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노마드 시대에 약탈이니 유출이니 따지기 보다는 좀 더 전향적인 발상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재의 환수에 대하여는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다는 의견에 대부분 일치한다. 앞서도 언급하였거니와 물리적인 행사 외에는 법적 책임을 따지거나 정치적, 금전적 수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비록 역사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그래서 잊어서는 안 될 사유로 문화재들이 반출되었지만, 현재에 이르러 나름대로 잘 관리되고 보존되고 있다면 그러한 현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사국 간에 문화적인 교류 확대와 공감대 형성, 신뢰 구축을 통한 자발적이고 인도적인 반환을 유도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물론 단기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해 보이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수준을 뛰어 넘을 문화의식의 각성과 고양이 ‘약탈과 유출’의 이분법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것이 본 글의 논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