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2010년 06월 08일 (화)
로마제국의 기틀이 된 포에니 전쟁이 패전의 위기에 몰리자 로마의 귀족들은 앞 다투어 전쟁비용을 헌납했고, 전 로마인이 하나로 뭉쳐 전쟁을 오히려 승리로 이끈 것이나, 영국의 황태자가 대 아르헨티나 전에 참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사회 지도층이 애국의 선봉에 서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처럼 서양은 구국의 중심이 귀족이었다면 우리는 민족공동체정신이 강해 신분이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이 구국에 앞장서 왔다. 5천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온 이 정신은 오랑캐의 침입 시에는 호국불교와 민족항쟁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의열 투쟁과 독립정신으로, 6·25전쟁 시에는 구국일념과 자유수호 정신으로, 그리고 경제부흥과 외환위기 시에는 도전과 근검·절약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 왔다.
우리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레지스탕스는 잘 모르는 것 같다. 6·25전쟁 때 백령도, 강화도기지사령부 산하의 신천, 구월산, 안악, 빅토, 타이거유격대, 그리고 독자적인 태극단, 수산리결사대, 개마고원 등지에서 북괴의 점령지에 남아 있던 청년들은 유격대를 조직하여 자유수호를 위해 공산군과 싸운 코리언레지스탕스이다.
또한 6·25전쟁으로 영토의 획정이 불안정한 1952년 2월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로 주장하면서 독도 근해의 우리어선들이 위험에 노출되자 33명의 울릉도 출신 제대군인들은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정부의 아무런 지원 없이 스스로 의용수비대를 결성하여 3년 8개월 동안 갖은 역경을 겪으며 우리의 독도를 끝까지 지켜냈다.
해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거리에 보훈의 달 현수막이 내걸리고 관공서나 학교에 표어나 포스터를 부착하는 것을 보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이다. 지금도 전상용사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은 우리주위에 깊은 골로 남아있지만 주위의 관심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잊혀 가고 있다.
보훈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이것을 생활 속에 함께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현충일을 제정하여 추념식을 거행하는 것도 단순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호국정신을 되살려 보훈 속에 하나로 결속시키는 데 그 뜻이 있다 하겠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굴절된 가치관으로 인해 나타난 도덕적 해이는 공동체 정신이 결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메말라 가는 정신적 가치를 되찾는 것으로 ‘제 몫 챙기기’보다는 ‘제 몫 다하기’가 일상화된 시민의식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극단적 이기주의를 비롯한 우리사회의 모든 병폐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금년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지만 얼마 전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이다. 다시 또 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호국영령들이 지켜낸 우리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뇌어 보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한다.
장영규/수원보훈지청 보훈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