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겉모습에 비해 알알이 붉은 옥을 간직한 석류와 같은 나라, 대만. 바람과 세월에 긁히고 찢어진 그 투박한 살속에 빛나고 달콤한 열매를 숨긴 곳. 짧았지만 긴 여행 속에서 맛보았던 새콤달콤함을 여기 가득히 쏟아 놓으니, 그 빛나는 붉은 열매를 보라.
첫째날... 작은 동요들
5시. 이른 기상이다. 이른 기상시간으로 인해 좀 피곤한 감은 있었으나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시공으로의 이동과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는 지도교사의 책임만으로도 잠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인천공항 대합실에 도착하여 짐을 비행기에 미리 부치고 환전과 출국심사까지 마쳤는데도 여전히 내 나라를 떠난다는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드디어 출발이다.
대만은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조그만 나라이지만 북회귀선이 통과해 열대와 아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어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나라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한국말보다는 영어와 중국어로 안내가 되고 있어 이제 정말 대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이제부터는 모든 것은 대만법에 따라 이루어 질 것이다. 시간 역시 대만시간이 적용되어 난 시계를 한시간 전으로 되돌렸다. 나는 오늘 한시간을 더 살게 된다.
중정공항에서 타이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요금은 NT$(New Taiwan Dollar) 250.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00정도이다. 버스의 정원은 22명이고 우리나라의 우등고속(?) 정도의 수준이랄까? 하지만 버스 안에는 화장실과 비디오 시설까지 구비 되어있다.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 이동한 곳이 자연과학 박물관. 내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쯤이어서 많은 곳을 관람하지는 못했다.(대만은 5시면 거의 모든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인체의 신비부터 지구 생명체의 변화과정, 인간의 발달모습과 생활방식, 그리고 인간의 표현능력과 색채, 소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실제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되어 있다.(예를 들면 악기 연주를 직접하게 함으로써 소리를 들어보게 하는 거나, 화산폭발 시 땅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게 한 것 등)
자연과학박물관을 거쳐 우리는 야시장으로 들어섰다. 시장이란 어느 곳이나 다 이렇게 사람많고 시끌벅적 복잡한 곳인가 보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무수히 많은 오토바이 행렬과 자동차, 행인들(내가 보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못해 혼란해서 사고가 자주 발생할 거 같은데) 모두가 사고 없이 자신들의 길로 잘도 돌아다닌다.(이건 대만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느낀 의문점이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곳 대만은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직진 신호를 보행신호로 확인하고 길을 건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 시장에서 각자의 식성에 따라 음식을 골라 먹었다. 기본적인 밥값은 10원, 그 외 는 30원 정도부터 다양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무료로 제공되는 물도 여기서는 사먹어야 한다. 대신 차는 서비스란다. 대만은 현재 서비스업이 급성장하여 민간부문투자의 54.8%를 차지하고 있으며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여성취업률이 높아 실업률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맞벌이가 많은 이곳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식사를 거리에서 사서 먹는다. 또 사먹는 것이 집에서 해먹는 것보다 싸고 맛있다고 한다.
어느덧 하루의 해가 지는구나.
타이중에서의 두 번째 날....카오스
오늘 가야 할 곳은 루강. 호텔에서 루강으로 가는 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했다. 정류장에서 내려서 약 10분을 걸어서야 루강으로 가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은 버스 회사마다 그리고 노선마다 터미널이 다르게 되어 있어 낯선 사람들은 버스 타기가 어렵다.
우린 어렵게 천후궁으로 갔다. 1683년 중국의 복건성에서 직접 마조상을 맞아들였다는 유서깊은 사당이어서 인지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곳에서는 신을 숭배하는 의식의 하나로 사람들은 향을 피우는데, 얼마나 많은 향을 피웠는지 향 연기가 건물을 시커멓게 변하게 할 정도다.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금옥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천상의 향내음을 맡았다. 천후궁에서 맡았던 그 질식할 냄새가 아니라 여기 이곳의 냄새는 그 향기로움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았다. 이곳 향이 하도 냄새가 좋아 누강향이라는 이름이 나올 정도라 하니, 좋은 것은 과연 모두가 인정한다.
우리가 루강을 방문한 날 마침, 이곳에서 제 1회 아시아주 청소년 태권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경기가 열리고 있는 장화현의 체육관에 들렀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쯤 되는 소규모 도시인데도 넓고 푸른 잔디가 깔린 운동장과 넓은 실내체육관을 갖추고 있는 것이 참 부러웠다. 한국팀의 경기. 이국땅에서 보는 우리 한국팀의 경기는 국내에서 경기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는 열띤 응원을 했고, 선수들도 선전을 했다. 많은 한국 선수들이 승리를 했지만 내 감정을 자극한 건 동점의 상황에서 심판 판정에 의해 패배한 선수였다. 정말 열심히 했고 절대 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판정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상했다. 나는 이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클 솟아오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억울하고 분통터지면서도 자랑과 감격스러움의 모든 감정을 통틀어 그날 밤 내 머리속에 나라사랑과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가시질 않았다.
이런..지금까지 난 타이중의 변두리만 봐왔나 보다. 버스를 타고 숙소를 행해 돌아오는 이 길은 8차선에 길 양옆이 서울 변화가를 뺨치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봐온 길은 대부분 2차선의 도로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무질서하고 번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여기 8차선으로 뻥뚫린 도로를 보고 새삼 대만의 경제력에 놀란다. 우리나라의 1/3정도의 면적 정도의 작은 나라 임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GNP가 1만 2천불정도로 현재 외환보유고가 세계 2, 3위일 정도로 잘 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잘 사는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즉, 형식적인 외형보다는 실속을 차릴 줄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의 이동수단이 거의 오토바이이다. 물론 땅이 좁은 이유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습관인게 더 큰 이유인 듯 하다. 외관이 허술해 보이는 호텔의 모습도 그러하다. 외관의 허술함에 비해 실내의 냉난방시설과 부대시설 등은 이용객들의 편리를 위함에 부족함이 없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맵고 일부만 보고는 전체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 번째 날....안정, 그러나 그리움.
오늘은 타이페이로 이동한다. 헌데 공항에서 타이중까지는 자주 있던 버스가 타이페이까지는 많지가 않다. 또 버스 회사와 타는 곳도 각각 다를뿐더러 이곳 대만은 주 5일 근무이고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다들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기 때문에 버스가 더욱 없다. 덕분에 가이드는 혼자서 동분서주한다.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가이드뿐이다. 우린 눈뜬 봉사요, 입달린 벙어리 신세다.
드디어 버스에 탔다. 임시버스를 구해 타고서 타이페이로 이동했지만 다른 조와의 약속시간은 맞출 수가 없었다. 여행에서의 이탈, 일탈, 탈선자는 꼭 있다. 무슨 이유든간에 말이다. 근데 이번에는 내가 그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타이페이시의 첫인상은 역시 한나라의 수도답게 크고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도 오토바이의 물결이 여전하다.
우리 일행 역시 물결의 하나가 되어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고궁 박물관에 들어섰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중국 공산당에 밀려 본토로부터 대만으로 이주(도망)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빼놓지 않고 가져왔던 유물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난 다시 한번 중국인들의 역사관에 찬사를 보낸다) 이곳의 소장품은 은(殷)·주(周)나라로부터 청나라 때에 이르기까지의 유물 약 70만점이 소장되어 있고 전시된 것은 그 중 일부라 한다.
이곳은 중국 연표와 세계 연표를 비교해 놓아 중국 역사를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리고 2층, 3층 전시실에는 황제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이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한다는 각종 자기와 보석들을 볼 수 있다. 4대 120년에 걸쳐 만든 작품이라든지 상아에 자연을 표현한 것 등등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예술적 솜씨와 함께 한사람(황제)을 위한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국민당 정부가 국공 내전과 일본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희생한 넋을 기리기 휘해 만들어진 충렬사와 사당을 지키는 헌병들의 교대식을 보고 중정 기념당으로 향했다. 이 기념당은 장개석 총통이 죽은 뒤에 시내 중심지에 만들어진 기념관으로 땅은 국가에서, 비용은 전세계 화교와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건물의 웅장함이나 위치로 볼 때 한 인간이 신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또다시 하루가 마감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몽골리안 바비큐. 이곳은 자신이 먹을 고기를 선택한 후 그에 따른 양념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적당히 넣고 요리사에게 갖다주면 요리사는 익혀만 준다. 예를 들면 닭, 소, 돼지, 양, 노루 고기가 날 것으로 준비되어 있고 파, 양파, 숙주, 양배추 등등의 야채와 고추, 마늘, 간장, 술, 파인애플 등등의 양념이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난 일반적이고 평이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중국 맛보다는 한국 맛이 좋으니까
대만에 대해, 타이페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숙소로 들어간 사이 대전 센터 소속의 구근우 선생님과 타이페이의 중심가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중심가 답게 화려하고 젊음이 넘쳤다. 단 10분 거리에 화려한 중심가와 서민적인 뒷골목이 함께 공존하는 곳. 비싼 곳은 비싸지만 서민들을 위한 식음료는 한국보다 싸다는게 조금 부러웠다. 그러나 이곳 역시 서양문화에 많이 부분들이 잠식당해 있었다. 노랗게 물들은 머리 염색, 나시티, 롤러블레이드, 다국적 기업 등등.
넷째 날....적응. 좀 더 깊은 그리움.
기차를 타고 화련으로 향하고 있다. 대만 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는 화련으로 인구는 35만 정도이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도시다. 이곳은 생필품 공장보다는 대리석을 가공하는 공장이 많다. 이 대리석은 대만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서 횡단도로. 1956년부터 시작해서 약 19km구간(대리석 구간)을 공사하는데 걸린 기간은 4년. 공사 도중에 숨진 사람만도 212명이라고 하는 정말 가보니 이곳에 어떻게 길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할 정도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많다. 오후 시간들은 대리석과 옥 등을 구경하며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 본 산들은 대부분 2000∼3000m의 높은 산이고 나무들도 많다. 하지만 대리석과 화강암이 많아서 산으로서의 기능(홍수예방, 자연정화 등)을 거의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산 좋고 물 좋다 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역시 우리나라 자연이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섯째 날.....아쉬움.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동안 대만의 이곳 저곳을 많이도 다녔다. 물론 짧고 촉박한 일정에 쫒겨 주마간산격으로 봐서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대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조금은 알 듯도 하다. 복잡한 인종 구성과 역사, 그 속에서 발전한 대만 경제, 그리고 거대한 땅과 인구, 그 속에 숨은 경제적 저력을 가진 중국과 그 때문에 받는 세계적 설움들.. 아쉬운 점은 내가 이곳에 대해 사전에 미리 공부를 좀더 많이 하고 왔으면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거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호텔을 떠나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소인국으로 향했다. 좁은땅을 넓게 가져보고자 했던 것일까? 전세계의 유명한 건물을 1/250로 축소해서 옮겨놓은 이 소인국을 참으로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중국인들은 크게도, 작게도 만드는 놀라운(?)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린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대만 첫날에서 벌었던 한시간을 다시 과거로 돌려놔야 했다. 역시 처음부터 내것이 아니었음을.....아무튼 우리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내 나라로 돌아왔다.
여행이란 늘 그렇듯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또 떠나 있음으로 해서 과거의 장소를 아름답게 추억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법. 이번 여행 역시, 내나라, 내땅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하는데 더없이 좋은 여행이었다. 세상에 나를 있게 해준 내 나라보다 더 아름답고 볼거리 많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대만이라는 외국에 가서 받은 친절을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에게도 베풀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그전에는 알려주고 싶어도 말을 걸 용기가 없었는데)
이곳은 한국이다. 그러나......한국에 돌아온지 몇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말이 중국말로 들리고 있다. 미치겠다. 끝.
후기....
비록 기간이 조금 짧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즐겁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제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분들게 지면에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호중학교 교사 김동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