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2급 배선숙씨(48)가 4륜자동차에 앉아 마이크를 잡았다. 주현미의 '첫정'을 열창하는 그를 바라보는 새신랑 얼굴이 금세 함박꽃처럼 환해진다. 진주목걸이와 꽃무늬 블라우스로 '화려하게' 치장까지 한 배씨가 박자를 놓치자, 신랑은 어김없이 "노래방에서 부를 땐 늘상 100점인데, 아이고…. 반주가 너무 빨러"라며 무릎을 친다.
이곳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 산격주공아파트 내에 설치된 (사)열린장애인문화복지진흥회(이하 열린회) 사무실. 슬레이트 지붕의 가건물로 지어진 4평(13㎡) 남짓한 공간이 이날은 장애인가요제 예선장으로 바뀌었다.
여느 가요제 행사와는 달리 이날 장애인가요제 예선장에는 50여명의 장애인들이 참가번호를 부착하고 순서를 기다릴만큼 열기를 더했다. 현장의 열기를 말해주듯 초가을 날씨에도 선풍기가 동원됐다.
명색이 가요제 예선장인데 긴장감은커녕 무슨 잔치마당같다. 한 사람이 호명돼 노래방 기기 앞으로 나갈 때마다 환호소리에 사무실이 들썩인다.
"와~ 우리 영자, 파이팅!" 심사위원 박미화씨(가수)가 "15번, 박영자씨"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용기를 북돋우는 외침이 마치 '코러스'처럼 튀어나오는 것. 노래를 부르는 영자씨 옆에 찰싹 붙어서 연방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이들도 적잖다. 급기야 영자씨는 마지막 소절 '사랑을 속삭여줘요'를 부르며 웃음보가 터졌다.
이 시간, 이 자리서 만큼은 '장애'도 저만치 달아나는듯 보였다. 시각장애인 김상윤씨(59)가 심사위원을 마주한 채 눈을 감고 '나그네 설움'을 부르자, 심사위원이 추임새를 넣는다. "야, 김상윤씨는 자막을 안보고도 노래를 무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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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아가씨'를 부른 지체 장애인 이은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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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란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배선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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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시네." 그러자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한 사람이 "뭐가 보여야 보지!"라고 되받아친다. 한바탕 웃음이 또 한번 지나갔다.
마지막 참가자는 예선이 끝나고도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리를 뜨는 대신 "기다리는 동안 한 곡조 더 부르자"고 제안했고, 심사위원도 "전부 한 곡씩 부르려면 1절만 불러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지나가던 동네사람들도 그칠 줄 모르는 뽕짝 메들리를 듣겠다며 사무실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3시30분. 마지막 참가자 최재효씨(뇌성마비)가 성서 공장에서 휴대폰 상자를 수작업하다 말고 이곳으로 뛰어왔다. 한때 전국체전 수영 동메달리스트였던 그는 '있을 때 잘해'를 다른 참가자들과 춤까지 추며 열창했다.
예선 말미엔 짧지만 의미심장한 대화도 오갔다. 심사위원이 뜬금없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한 글자"를 참가자에게 질문한 것.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장애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참을 인(忍)!" 일순간 예선장이 조용해졌지만, 심사위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한 글자는 바로 '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지지, 나보다 예쁜 게 어디 있어요. 안그래요?" 어떤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나게 박수를 쳐 이 정답에 답했다.
예선은 오늘로 끝났지만, 노래방 시설은 가요제 전까지 개방하기로 했다. 열린회 회장 차방부씨는 예선장을 떠나는 이들에게 "내일도 오후 5시부터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들렀다 가시라"고 외쳤다.
올해로 2회째 열리는 장애인가요제는 오는 27일 오후 5시 북구 산격동 종합유통단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