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정의를 향한 험난한 길
1월/2월 2008년 By 레슬리 후크(Leslie Hook)
캄보디아 내전 10년 후, 대학살을 자행한 크메르 루주 정권이 야기한 고통과 상처를 시간이 치유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연간 GDP 성장률이 현재 10%를 넘을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외국 원조가 흘러 들어오고 있으며, 매년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책정된 돈이 5억 달러를 상회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조의 핵심에 있는, 유엔 지원 하의 크메르 루주 전범 재판소(Khmer Rouge war-crimes tribunal)은 여전히 출발대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 상태이다.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에 대해 인륜에 반하는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간단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훈 센(Hun Sen) 총리 자신이 한때 마오이스트(Maoist) 정당의 지역 리더였으며, 그의 이전의 동지들을 자신의 정부 인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들과 수 많은 타협을 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라. 2003년에 UN와 훈 센 정부 사이에 맺어진 구불구불한 협정이 혼합형 법정(hybrid court) 시스템의 기초를 놓기는 하였지만, 캄보디아 측은 외국 판사들의 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고집했다.
많은 것이 이 재판에 달려 있다. 캄보디아의 악명 높은 부패한 사법 제도를 위한 모범 사례;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고통 받았던 이들에 대한 한줄기 희망의 빛; 심지어 정부 지도자들도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구세주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편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20개가 넘는 국가들이 기부한 5천만 달러가 재판소의 재원으로 쏟아 부어 졌고, 훨씬 더 많은 돈이 곧 들어올 예정이다.
물론 이 재판소는 캄보디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이 실현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작년 가을, 다섯 명의 고위급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작년 11월에 법정 심리가 열리기 시작하자, 전에 이 재판소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설득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투옥 만으로는 성공적인 재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재판소가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명백해 보였던 구조적인 결함들이 이 법정의 진정한 유용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자금의 부적절한 관리, 부패에 대한 혐의, 다소 지나치게 믿으려고만 하는 기부자들이 결합되어, 만일 상황이 통제를 벗어날 경우, 이 재판소는 여전히 하나의 익살극으로 끝나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이 법정의 탄생을 돕기 위해 이뤄진 타협들 자체가 그것의 진전을 가로막아 왔다. 법정의 책임은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양쪽에 분할되어 있는데, 이것은 의사소통장애와 지연의 문제를 야기할만한 충분한 상황을 제공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사전재판 심리(별도의 방에서 이뤄짐)는 11월 20일에 시작되었음에도, 공식 법정은 여전히 심리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3개국어(크메르어, 영어,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법정의 통역팀은 판사들이 훑어보아야만 하는 300,000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들에 매몰돼, 이미 몇 달째 업무가 밀려 있다. 어쩌다가 초기에 법정의 예산 배정에서 빠져버린 증인보호팀은 스탭 인원도 빈약하고 여전히 책임자도 없는 상황이다.
캄보다아 측의 완고한 주장을 받아들여, 법정 각 챔버(chamber)의 판사들은 다수가 캄보디아 사람들로 이뤄져 있긴 하지만, 최소 한 명의 외국인 판사가 동의하지 않는 한 어떤 결정도 통과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 자체와 더불어 캄보디아의 널리 알려진 부패한 사법 제도에 힘이 실리게 되면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이 재판소에 자금을 지원하기를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까지 열린 몇 번 안 되는 법정 심리에서는 사법 장애(judicial interference)의 기미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캄보디아 사법계의 과거 경력을 놓고 볼 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 법정의 신뢰성은 법정의 캄보디아 측이 자금을 감독하는 것과 관련해 제기된 의문들로 인해 이미 손상되었다. 유엔경제사회문제부서(UN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는 재판소의 캄보디아 측이 자금을 모을 수 있게 도왔는데, 이 자금은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UNDP)에 의해 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UNDP의 감독은 그다지 철저하지가 못하다. UNDP의 주도 하에 2006년 봄 유엔감사및성과평가사무소(UN Office of Audit and Performance Review)와 외부 감사가 함께 실시한 감사 결과, 법정의 캄보디아 측이 자격미달의 스탭을 고용하고, 부풀려진 급여를 지급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52명의 스탭 직위를 추가했음이 밝혀졌다. UNDP의 반응은 그러한 보고 자체를 숨겨 버리고 언론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오픈 소사이어티 저스티스 이니셔티브(Open Society Justice Initiative)의 2006년 10월 보고서에 의해 제기된 뇌물 혐의이다. 캄보디아에서는 공무원들이 정부 내의 직위를 돈을 주고 사는 전통적 관행이 있어 왔다고 한 서방 외교관이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현 정부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러한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시스템화 되었을 뿐이다. 다양한 출처에 따르면, 법정의 어떤 스탭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받는 급여의 20%에서 30%를 상관들에게 상납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떤 스탭도 공식적인 불만을 제기한 적이 없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이 재판소의 사명에 가장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혐의가 될 것이다. 이 재판소는 캄보디아의 정의를 위한 모범 사례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 사법 제도의 최악의 관습을 더욱 강화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국제 사회의 여러 멤버들은 현재 존재하는 부패가 제한된 범위의 것이고 사법 절차들에 장애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재판소의 목적에 대한 아주 협소한 관점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미국 대사인 조셉 무소메리(Joshep Mussomeli)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법 과정이 1년 전에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 물론 돌출된 어려움들도 있었지만, 이제 국제적 기준이 준수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국제 판사들이 그만 두고 나오든지, 둘 중 하나인 것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그는 그 정도의 안전장치가 이 재판소가 익살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장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부패와 관련한 혐의는 캄보디아 관리들이 관여하고 있는 탐지망에서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재판소를 감독하고 있고 부패를 척결할 책임을 지고 있는 (당신이 누구와 얘기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부패를 영구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는) 사람은 부총리인 석 안(Sok An)이다. 그는 훈 센의 오른팔이자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석 안은 이 재판소의 사실상 구상 단계부터 관여를 해 왔고, 1999년부터 2003년 사이의 길고 긴 유엔 과의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개인 차원에서, 석 안은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며 섬세한 사람이다. 그의 머리카락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고, 그의 안경과 이중턱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판소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캄보디아 재판소가 국제 재판소들 중에서 세 가지 기록을 세웠노라고 설명하면서 말을 시작했다. 즉, 내부 규칙이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승인됨 (단지 1년 미만이 걸림); 가장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 체포(지금까지 다섯 명); 그리고 가장 적은 예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캄보디아 재판소가 다른 법정들이 따를 만한 선도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는 그의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생기 넘쳐 보였다. 그는 흥분한 몸짓으로 “우리는 다른 모델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는 더 나은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새로운 모델인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
재판소의 중요성에 대한 그 자신의 믿음이 아마도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 가장 안심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부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의 말은 어딘지 설득력이 떨어졌다. “어느 나라에나 부패란 있기 마련이죠”라고 말문을 연 그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패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재판소가 캄보디아 전체 사법 제도를 위한 모범 사례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재판소 내의 부패와의 싸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석 안은 법정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재판소의 캄보디아 측에 관하여, “부패는 행정 사무소 내에서 진정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그는 부패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딱 잘라 부인한 적도 없다. 행정 사무소의 디렉터인 션 비소쓰(Sean Visoth)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법정에 대해서 “부패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폴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부패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션 비소쓰는 그의 사무소가 그러한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취한 단계들 – 노출을 추가로 막기 위해 눈에 잘 안 띠는 장소들에 건의함을 설치한 것과 뇌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행동규범 약정서에 스탭들이 서명하게 하는 것 – 에 대해 설명을 했다. 묘하게도, 이 행동규범 약정서에는 뇌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 그는 누군가가 뇌물과 관련된 문제제기를 해 온다면,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반부패 조치들이 약간 실망스러운 것이긴 하나, 정부 관료들이 이에 대해 그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국제 언론이 재판소에 대한 갖는 인식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의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CPP)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크메르 루주 정권에 반대한 것을 중심으로 쌓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구분은 겉보기처럼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이전의 크메르 루주 정권 지도자들은 현 정부에 깊게 연루되어 있다. 작년에 있었던 강력했던 렁 사리(leng Sary)의 체포는 전범 재판소에서는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시험이 앞에 놓여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왕은 크메르 루주 통치 당시 정권 지도자들과 함께 일했고, 재판 과정에서 증언을 하도록 소환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국제적인 기부자들이 이 재판소를 살아있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맡아야 한다. 법정의 온전함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판사들의 도덕적 잣대나 무기명의 불만 건의함이 아니라, 기부자들의 압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유엔은 대대적인 기금 마련 캠페인을 계획 중인데, 여기에는 재판소에 기금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을 재고 중인 미국이 새로운 타겟으로 포함된다. 유엔은 꽤나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인데, 6천 3백만 달러로 예상한 초기의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부자들이 이 기회를 새롭고 더 나은 관행들을 강제 – 예를 들어, 행정 사무소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뇌물 관련 혐의에 대한 온전한 조사 - 하기 위한 기회로 삼으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성공의 척도는 재판소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종결되었다는 느낌을 어느 정도 줄 수 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재판소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1995년에 [기록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사람들로 하여금 크메르 루주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캄보디아기록센터(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의 디렉터인 요우크 츠향(Youk Chhang)은 말한다. 또한, 그는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그에 관해 매우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이죠”라고 말한다.
캄보디아기록센터와 같은 단체들은 피해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이 센터는 폴 포트(Pol Pot) 대학살의 피해자 5,000명을 인터뷰 하여 그들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전범 재판에 시민 측으로 참여할 의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냈다. 매달 이 센터는 캄보디아의 외딴 지역으로부터 500명 정도의 사람들을 버스로 실어 와서, 재판소를 방문하고 폴 포트 정권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종종 크메르 정권 당시의 사건들에 대해 거의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며 자기 나라의 동족이 그러한 대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그러한 역사는 너무도 민감한 것이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의 교육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며, 현재 살아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 중 대부분은 – 캄보디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21세 이하이다 – 그러한 잔학행위를 목격했을 만큼 나이가 들지도 않았다.
크메르 루주가 남긴 역사는 단지 심리적 영향뿐 아니라 경제적 영향이라는 면에서도 캄보디아에서 여전히 감지될 수 있다. 캄보디아의 경제가 현재 번창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십 년 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가의 기반시설은 무용지물로 남아 있다. 연간 1인당 GDP(구매력 평가 조정 시)는 단지 2,800 달러에 불과하다.
어그러진 의미로, 이러한 파괴적인 유산이 현 정부의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해주었다. 훈 센 총리는 폴 포트 정권의 타도를 도운 후에 권력을 잡았으며 그의 캄보디아인민당은 여전히 크메르 정권에 반대했던 과거로부터 상당부분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캄보디아 재판소는 이러한 논리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며, 훈 센과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을 대학살을 일으킨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과 차별화 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작업이 일단락이 지어지면, 캄보디아인민당은 투표 지지자들을 동원하기 위한 다른 이슈들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크메르 루주 당시의 지도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되고, 점점 더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크메르 루주 시절을 기억할 수 있게 되면서, CPP가 크메르 루주에 반대했던 기록은 부패를 뿌리 뽑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능력에 비해서 덜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캄보디아의 나이 어린 민주주의는 여전히 깨질 듯 불안하고, CPP가 정부의 모든 부면을 장악하고 있어서 자유롭고 공정한 재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캄보디아 재판소 시대가 막을 내렸을 때, 아마도 그것이 유권자들이 행동을 취하기 시작할 문제일 것이다.
몇 몇의 나이든 살인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뿐 아니라, 폴 포트 정권 시절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여정에서 캄보디아가 한 걸음 더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 바로 이것이 이 재판소가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 이것이 실현될 것인지의 여부는 이 재판이 진정한 정당성을 획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후크 양(Ms. Hook)은 월스트리트저널아시아(The Wall Street Journal Asia)의 사설 지면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