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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 - road[4-2] 재미있는 기차 안의 풍경?
2003년 8월 27일 [수] 기차 이동 = 타이안[泰安] - 쉬저우[徐州] - 카이펑[開封] - 쩡저우[鄭州] - 뤄양[洛陽] - 씨안[西安,長安] - 빠오지[寶鷄] - 티엔수웨이[天水].
"실크로드[Silk road:絲綢之路]" 여행
♣ 전원풍경
지난 해 늦겨울에 온 가족이 칭다오에서 기차로 베이징에 유람을 갈 때에 베이징에 닿을 무렵 해가 떠 올랐다.
열차 안에서 해가 뜨는 것을 처음으로 본 아내와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지만,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가을걷이 가 끝이 난 황량한 벌판의 해돋이는....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5시 반에 눈을 떴고, 이내 안개 속에서 빠알간 해가 살포시 떠 올라서 순식간에 온 세상을 물들이며 훤하게 비춰주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칭다오를 떠나서 12시간 여를 달려 닿은 카이펑[開封]인데, 비가 적당히 내려 웅덩이마다 물이 가득하고, 고랑마다 물이 흐른다.
7시가 넘자, 어제 저녁에 라면을 두 개나 먹은 서월[西越-씨위에]이 배가 고픈가 보다. 먹거리가 잔뜩 들어 있는 상자를 뒤져서 식빵을 꺼내기에 화성쟝[花生醬 - 땅콩Jam]이 있다고 일러주니, 잔뜩 발라서 누구에게 먹자는 소리도 없이 혼자 먹어 치운다.
이와 같이 현지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공산주의적(?)이지 않고 완전한 나 혼자만 배부르면 되는 혼자 주의자적 이다. 누구야 먹든 말든 나만 먹어서 배부르면 되지! 라는... 나도 여유부리지 말고 다 먹어 없애기 전에 하나라도 얻어(?) 먹으려면 빨리 일어나야겠다.
♣ 그들의 관념은?
어려서부터 보고 들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은 골수에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채로 현지에서 소(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아이를 보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그는 아침마다 등교를 할 때는 목에 공산혁명을 상징한다는 홍링진[紅領巾 - 빨간 Muffler]을 꼭 매고 간다. 빨간색에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우리세대는 그 매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를 한다.
하기는, 그의 1학년 때 교과서에는 "공산당을 열렬히 사랑하자"는 구호도 찍혀 있었고.... 5학년이 된 지금은 우리민족사의 비극인 6.25 전쟁을 캉메이위엔차오[抗美援朝 -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라는 이름으로 중공군이 참전한 것을 미화하여 가르치고 있으니.... 앞으로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걱정이 많은데....
나이 육십이 넘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자꾸 북한에 대하여 상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그 속에는 자기네는 이미 깨우치고 개혁개방을 하여 자기들이 조선(?)보다 잘산다는 우월감을 내 비추고 싶은 것도 있는 것 같다. 또한, 북한 땅을 자신들이 지켜 준 것이라는 오만함도 읽어 낼 수가 있어 만감이 교차를 한다.
이야기의 실이 없으며, 문제의 소지가 많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북한이 우리 땅이고 그 동포들이 우리와 한 핏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짧은 현지말로 그들의 잘못 된 지식을 일깨워주느라고 비지땀을 흘렸다.
♣ 노랑꽃과 노란꽃
오늘은 8월 27일 씽치싼[星期三-수요일] 현재 시간은 08시10분.
동서와 남북으로 사통팔달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중국의 배꼽. 쩡저우[鄭州]를 지났다. 이내 구릉이 시작되고, 국도와는 다르게 많은 굴[隧道 - Tunnel]이 나타난다.
2001년 봄에, 자전거 여행을 준비한다고 서안으로 갈 때에는 벌판 가득히 노랑색의 유채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는데, 가을이 익어 가는 지금의 들녘은 온통 노란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아름답게 꾸미어져 가을의 풍요로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 열차 안의 강의
자전거 타는 학습을 한다니까
섭 주임이 우리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를 꺼내서 걸라고 연출을 명(?)하였다. 그래서 양쪽 입구에 태극기와 함께 오성홍기를 내 걸었다. 이번에 올림픽 조직위(칭다오)에서 얻어온 베이징 올림픽 엠블렘이 찍힌 깃발도 함께 걸고 강의가 진행 되었다.
** 열차 안에 걸린 태극기 - 큰 국기를 걸어 놓은 사진이 없어서.... **
이번의 기행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급조하여 구성된 관계로 자전거 타는 연습을 조금도하지 못하고 떠났기에, 한 번도 못한 실습을 메우기 위하여 학습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아침을 먹은 후에 오전 내내 자전거 타는 방법과 탈 때의 규칙에 대하여 강의와 토론을 하였다. 이번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법'과 '성공을 위한 체력의 안배'를 주안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 체력안배
체력의 안배를 더 풀어 보지면...... 언덕이 높고 많은 지역과 평지를 달릴 때의 체력 안배와 3~40km의 단거리를 탈 때와, 160km 이상의 장거리를 가야 할 경우의 체력 안배가 어떻게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 힘의 안배를 적절하게 해 가면서 지아오타[脚踏-Pedal]를 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재삼재사 강조하여 일러주었다.
또, 여럿이 자전거를 타면 당연히 속도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속도를 '얼마로 가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 힘을 별로 쓰지 않고 편안히 가는 속도가 있는가 하면, 뒷 기어를 작게 써서 빨리 가려면 많은 힘을 써야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배가 된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힘은 언제나 넘치는 것이 아니기에 적당량의 힘만을 이용하여 페달을 돌려야 하는데, 한 순간이라도 속도를 내려고 무리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 많은 힘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 피로는 누구에게 줄 수가 없는 것이니 고스란히 자신의 몸에 누적이 되어 가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도 '경제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거리를 갈 수 있는...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체력을 잘 분배하여 무리한 힘을 쏟지 않고 간다면 하루 종일 안장 위에 앉아있었다 하더라도 해가 넘어 가도 더 타고 싶을 것이라고... 자기 페이스를 잊어버리고 무리하게 달리다가는 4,5일 지나면 자전거를 쳐다보기도 싫어 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지난 세 번의 기행을 하면서 보니, 힘이 세어 체력이 좋다고 완주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니 절대로 불필요한 힘을 쓰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기초 체력이 중요하고, 체력의 안배는 더 중요하고, 인내력은 물론이요 의욕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결론은, 하나는 체력을 잘 안배하고, 둘은 몸에 무리하는 레이스를 벌이지 말고, 셋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라는 말씀이다.
♣ 페달링
칭다오를 출발하여 썅하이를 거치고 베이징까지의 나의 첫 기행은 평지에서 벌이는 누워 식은 죽 먹기의 수월한 기행이었다. 중국에서의 2차 때나 고국에서의 3차 기행을 해 보니 평지의 레이스는 무료 할 정도로 수월했다고 느끼어 진다. 기어를 바꿀 일이 없을 정도의 끝없는 평지는 당연히 무료하다고 하였다.
자전거 타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명언(?)이 있는데, "오르막은 길고 내리막은 짧다"는 것이다. 오르막에서는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일정하게 같은 회전으로 페달을 돌려야 무릎이나 허벅지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반대로 내리막에서 급 커브가 아니라면 멈추어 있지 말고, 천천히 페달링을 하여 올라오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 주어야 한다.
올라가는 언덕에서 절대로 엉덩이를 들어 무리한 힘을 쓰지 말고,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힘들게 페달을 돌려 덥기도 하고 꼭대기는 경치가 좋으니까 자전거를 세우고 쉬기도 하면서 경치를 보기도 하는데, 이보다는 내려가면서 바람에 열도 식히고 다리도 푸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해주었다.
언덕이 수 없이 많은 한국에서의 3차 기행 때에 53세의 할머니 위 지에[于姐]와 44살의 아줌마 뚀 지에[刁Diao姐]가 성공을 했는데, 19세의 해파와 해초. 그리고 24세의 건국이가 성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기어 바이스를 어떻게 썼느냐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는 주장하였다.
보충설명으로 오르막이 나오면 점차 큰 기어로 내리는데, 그래도 힘이 들면 "또, 내리고... 또, 내리고" 를 하다가 더 이상 내릴 것이 없으면 마지막으로 "자전거에서 몸을 내리라" 고 하였다. 그리고는 걸어서 오르라고.. 기행이 혼자라면 콧노래를 부르며 길가에 핀 야생화를 보면서 여유있게 걸으라고... 그렇게 내려서 걸으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라고 하였다. 페달링은 분당 70회 좌우가 적당하다고도 일렀다.
하지만, 이렇게 수차에 걸쳐 강조를 하여도, 누군가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작(높)은 기어를 써서 낙오를 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강조를 함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도 자전거 타면서 "씨아"[下 - 아래로] 아니면, 따더[大的 - 큰 것]라는 말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위에따위에하오[越大越好 - 클수록 좋다]라는 말과 함께....
♣ 먹고 마시기
"배가 고프기 전에 먹고 목이 마르기 전에 마시라"가 자전거 여행자의 규칙 제1조라고 강조 하였다. 배가 고프게 되면 쉽게 기운이 빠지고, 더 큰 문제는 식사 후에는 나른해져서 자전거를 탈 마음이 싹 가시게 된다고...
목마름도 같다.
자전거를 탐으로 해서 땀과 숨으로 빠져나간 수분을 바로 보충을 하여야 하는데, 참고 가다가 물을 만나서 많이 마시게 되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그러니 물통을 충분히 준비하고 수시로 마시면서 타야 한다고 하였다. 더구나, 이번 우리의 여정 중에 사막을 가로지르는 3천여리(1,500km. 현지의 화리[華里]는 500m이며, 5km를 십리로 계산함)정도는... 물통도 충분히 준비를 하여, 적당한 시간에 필요한 양의 물을 마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즉, "타면서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면서 타라"고 일렀다.
그래서 우리를 따라 올 보급차에는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 해 놓을 터이니 자신의 허리가방이나 옷의 주머니 그리고 자전거에 달린 주머니에도, 손이 닿는 곳에는 먹고 마실 것을 충분히 준비를 해 두라고 말했다. 혹시, 밥 한 끼를 못 먹게 되더라도 버틸 양의 간식거리를 비축해 두라고....
이번에도 칭다오에서 떠날 때에 간식거리로 오리온 쵸코파이를 한 상자 사서 실었는데.... 취향에 따라서는 에이스 같은 과자류나 연양갱도 좋고, 칼로리가 높은 쵸코렡이나 쏘세지는 더 좋다. 사탕 한 알이면 10리는 거뜬하다. 깨물어 먹지 말고 아끼어 빨아먹으면서 꾸준히 페달을 돌리면 10리 길은 사탕 한 알이 다 녹기 전에 닿을 수가 있다고 나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그러니 친구동료들의 눈치를 보거나 체면 차리지 말고, 요령껏... 뺏어서 라도 든든히 먹을 것을 준비하여 두라고 하였다. “기행을 성공적으로 하느냐? 못하느냐? 는 먹는 것의 영향이 많다.” 고 말했다.
♣ 휴식
서쪽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는 우리는 칭다오에서 부터 이동 거리가 씨닝까지는 6천여리(2.492킬로미터)이며, 그곳에서 우루무치까지가 5천여리(예상거리 1,927 km) 이므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아침 7시에 일어나서 7시 반에 식사를 하고, 8시에 떠나서 저녁 7시에서 8시까지 탈 것이다.
저녁에 거리계를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하루 종일의 시간(총 11시간정도) 중에서 휴식과 식사 시간을 빼고 보면, 자전거를 탄 시간은 6시간에서 7시간 정도가 될 것이며, 휴식은 50여분 달리고 한 번씩 하든가, 아니면 10내지 15km마다 한 번씩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참고로... 중국에서 1,2차 기행을 할 때는 평지가 많았는데, 페이스를 잘 끌고 간다면 한 번에 20km 이상씩 가도 별 문제는 없으며, 휴식은 상황에 따라서 시간을 조절하면서 하겠다고 하였다. 추가 말씀으로 중간휴식은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지치기 전에 쉬고, 몸이 쳐지기 전에 일어나서 타라"는 말씀이다. 자기 스스로 몸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단체로 할 때에는 개인 사정에 아랑 곳 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고 일러주었다.
하루에 6시간 이상을 탈 경우 정신이 혼미해지는 현상을 느낄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자면서 무의식 속에서도 페달링을 하게 된다. 1차 기행을 떠나서 지앙쑤[江蘇]성의 평원을 달릴 때, 한 참가자가 졸다가 아래의 물이 흐르는 고랑으로 빠질 뻔한 이야기도 있었다. 고 들려주었다.
그래서 휴식도 적절한 시간에 적당히 쉬어야 하는 것이라고... 긴장하지 말며 마음을 가볍게 가지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면서 즐기면서 타라고 일러주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오히려 안이한 상태에서의 정신적인 피로가 큰길에서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의를 시켰다.
♣ 안전을 위한 단체복장
복장도 안전과 무관할 수가 없으니,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반듯이 안전모는 써야하고, 복장은 눈에 잘 띄는 색으로 된 옷이라야 한다. 그 다음이 땀의 흡수가 잘 되어야하고... 통풍도 잘 되어야 하고, 디자인도 예뻐야 하고...등등을 따져야 할 것이다. 고 했고...
원색계열의 복장이 자동차운전자의 눈에 바로 띄므로 우리들의 안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는 내가 자전거를 온통 빨간색으로 맞추는 것과도 많은 관계가 있다. 고로 단체복은 원색으로 눈에 잘 띄어 안전한 것이 최선이다.
또, 모두 같은 옷을 입음으로 해서 통일되어 보기가 좋고, 소속감도 생기고, 우리 활동의 홍보 효과도 더 많을 것이며, 우리 스폰서의 광고효과도 더욱 더 좋을 것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탈 때는 반듯이 정해진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복은 1차 기행에는 힌색 티-셔츠로, 2차 때에는 주황색 티-셔츠로, 3차 때에는 정열의 빨강색으로, 그리고 이번의 4차 기행은 사막을 달리므로 파랑색 티-셔츠로 하였다.
이밖에도 내리막에서 브레이크 사용법을 말했고, 여럿이서 같이 탈 때에 주의 할 점도 강조를 하였으며, 시내구역에서는 신호를 지켜서 안전운행을 하자는 말도 했고.... 또... 그리고, 또... 서투른 현지말로 침을 튀겨 가면서 잔소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 자전거 유람
우리의 자전거 기행은 하루나 이틀을 달리는 단거리가 아니고, 몇 백만 불이 걸려 죽기 살기로 달려야 하는 시합도 아니다. 다만, 정해진 날짜에 목적지에는 닿아야 한다. 자전거도 타고, 유람도 하는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되면 더 좋을 것이다. 경치가 좋으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인심이 좋으면 하루 더 묶기도 하고, 힘이 들면 더 쉴 수도 있고.... 그러한 여행을 하자고 하면서 나의 "열강"을 마쳤다.
♣ 반동분자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과 중국에서 "반동분자"라는 말 한마디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오는 단어일 것이다. 이번에도 누군가는 빠져나가서 개인행동을 할 것이다. 참가자가 세 명이 넘어가면 꼭 그런 반동분자(?)가 생겨나는 것을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오전에 자전거 타는 공부를 한다고 모이라고 하니, 옆 칸에 따로 떨어진 서월이 오지를 않는다. 거기까지 말이 들린다 고 하면서.... 억지로 끌려 나와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하더니 끝이 나자마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홍루몽을 꺼내서 읽고 있다. 저렇게 딴청을 부리는 "반동분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도 나의 몫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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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지난 봄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씨닝까지 가 본 조 영감님은 바로 그곳에서 출발을 하여 서쪽으로 우루무치까지 간다고 하니 다른 참가자들에 비하여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해 본 사람답게 짐이 매우 간단하였다.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나 공구는 모두 가져왔을 것이다.
수박을 먹자니 이내 칼을 꺼내서 잘랐고, 재봉질이 시원치 않은 중국제 가방이 자꾸 터지니 실과 바늘을 준비하였다. 아마 그는 기행 중에 자전거가 고장이 나도 고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는 남다르게 군용인 듯한 물통으로 두 개를 준비하였는데, 나는 처음에는 사막으로 가니 두 개의 물통을 준비하였구나? 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하나는 술통이었다. 한 통에는 52도짜리 백주[白酒]인 고정공[古井貢]주를 가득히 담아 왔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가 기행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경험만을 맹신하여 독불장군 같이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번에 걸쳐 본 그는 기분파이기도 하지만, 고집이 있어 보이는데....
♣ 바로와 잠깐
현지인들이 많이 쓰는 말로 "차이가 없다"는 뜻의 차뿌둬[差不多]와 "괜찮다"는 뜻의 메이꽌시[沒關係]가 있고, "바로"라는 뜻의 마샹[馬上]과 "잠깐"이라는 뜻의 "덩이샤"[等一下]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으로 조급하기로 소문나서 국제적으로 "빨리 빨리"라는 단어를 널리 보급한 한국인과 만만디[慢慢的]로 대표되는 현지인들의 시간개념은 양국이 지리적으로 근접함과는 다르게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혹자는 그 것을 대륙적 기질이라고 치켜 세우기도 하고, 혹자는 중국에는 3가지 자원이 많다고 독설을 퍼 붓기도 한다. 그 하나는 땅이 넓은 것이요, 하나는 엄청난 인구이고, 하나는 누구나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
윗 침대에 있는 총의에게 내려와서 밥을 먹자고 하니 "덩이샤"란다. 나는 짓궂게 너의 덩이샤는 몇 분이냐고 재차 물으니 "마샹"이라고 대답을 한다. 마샹[馬上]이란? 뜻 그대로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일을 본다는 뜻으로 곧 움직인다는 뜻이고, 덩이샤[等一下]는 잠깐의 시간으로 굳이 시간적으로 계산을 한다면 5분 이내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지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보니, 두 가지 말이 별로 차이가 없이 쓰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고국에서 건너와 사업을 하는 "빠른 한국인“들이 "느린 현지인”들과 부딪히면서 정해지지 않고 그들 편의대로 재단이 되어 언제 될지 혹은 안 될지도 모르는 "마샹"과 "덩이샤"를 기다리면서 입이 마르고 속이 타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그 말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며 현지인들을 이해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혼자 씁쓸하게 웃어본다.
현재시각 12시34분. 허난의 싼먼쌰[三門峽]시 이고, 닝쌰[寧夏]회족 자치구에서 썅하이로 가는 열차가 왼쪽으로 비켜서 지나간다.
** 총의의 편안한 기차 여행 - 보기는 조금 민망해도 편하면 그만이다. 현지인들은 이와 같이 자기만(가) 편안한 것이 최고이다. **
♣ 현지인들의 기차여행
기차여행은 오랜 시간을 이용하는 여행이다. 혹자는 현지인들이 기차 안에서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닌다고 흉을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 목격을 했을 때는 뭐 이런 종자(!)들이 있는가? 고 눈을 깔며 흘겨보았다. 하지만, 그들을 조금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만약에 이해를 하지 못하면 자신의 장거리 기차 여행도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지겨운 고행이 될 것이니 적응하는 편이 수월 할 것이다.
즉, 하나는 우리가 탄 이 열차도 칭다오에서 종점인 씨닝까지 40여 시간을 달려야 한다. 그러니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바른 자세로 가기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두 밤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하니 안방에 있는 것 같이, 편안하게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지루한 장거리 여행의 지혜일 것이다.
또, 하나는 현지인들의 실용주의이다.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편안하면 되는 것이다.
또, 이러한 편리함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열차에서 내리면 이 너른 중국 땅 어디에서 또 만나겠는가? 하는....
그래도...
열차 내에서 슬리퍼를 신고 잠옷을 꺼내 입는 것은 "하오[好-좋다]"지만, 낯모르는 남녀가 동승을 하고, 더구나 개방 이후에는 외국인도 많이 이용을 하는데,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오가는 것은, 몇 년 후에 올림픽을 치를 나라에서.... 문화대국임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너무 지나쳐서 "뿌하오[不好 - 좋지 않다]"하다 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 기록의 중요성
조선시대 북방의 오랑캐를 피하여 강화도에 중요한 문서기록들을 보관하여 오다가 19세기 말. 남의 문화유산을 탐하여 도적질을 일삼던 무지한 서양 오랑캐 프랑스 놈들이 쳐들어 와서는, 가져가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불바다를 만들어 놓고 도망을 쳤고, 도적질로 모아 놓은 남의 보물들을 박물관이라 이름 지어 잔뜩 쌓아 놓고, 지금까지도 돌려주지 않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작성된 많은 사료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남겨져 있어 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일찍이 자전거 여행을 할 때마다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고국에서의 3차 기행 때에는 우세군[于世君] 여사만이 매일 밤마다 열심히 기록을 하였었다.
다른 이들은 내가 만들어 놓은 많은 기록들을 보고, 더구나 "자전거 탄 풍경"이라는 책까지 출판이 되자 감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기록을 소홀히 함은 자전거를 타면서, 몹시 힘이 드는 가운데 기록을 남기는 것도, 돌아 온 후에 기행문을 쓰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누구나 자전거로 여행을 할 수는 있지만, 모두가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아무나 다 성공을 이루지 못 하듯이 누구나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고 큰 소리를 쳤었다.
고국에서의 3차 기행과 이번의 4차 실크로드(Silk road:絲綢之路) 기행이 두 번째 책으로 엮여 나올 리가 없겠지만, 그 말 때문에 이번에도 사진을 정리하여 A4 160장 이상 되는 기록책을 만들어 놓을 것이요. 비록 앞뒤가 맞지 않고, 문법에도 많은 문제가 있는 여행기일지라도 열심히 쓸 것이다.
나는 지난 번의 기행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기에 자유롭지 못하고, 꼼짝없이 기록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할 것이다. 앉으나 서나... 밥을 먹기 전에도... 쉴 때도.... 필을 잡고 끙끙대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불현듯 가련하다는 느낌이 든다.
허난[河南]성이지만 산서[山西], 섬서[陝西]성과 근접해 있는 삼문협 역에서 쉴 때에 신문을 산 섭 주임은 열심히 읽고 있고, 그의 아내가 될 계약을 맺은 민 기자는 우리가 갈 지방에 대한 안내 책자를 준비하여 왔는데 어제부터 열심히 읽고 있다.
서월은 홍루몽을 읽고 있고, 윤 여사는 자기는 낮에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하더니 저쪽 칸으로 이동을 하여 잠을 자고 있다. 나는 기록을 한답시고 끄적이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도 기차는 큰 역에서만 쉬면서 힘차게 달리고 있다.
♣ 많이 오가는 기차
무료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기차가 많기에 뚱관[潼關]을 지나서 화[華- 5악 중의 서악인 화산]산까지 가면서 우리를 지나쳐 동쪽으로 가는 기차를 체크해 보았다.
16시 16분 화물차.
16시 24분 분홍색 객차.
16시 29분 화물차.
16시 32분 파란색 객차
16시 36분 파랑색 객차.
16시 39분 녹색 객차.
16시 43분 화물 열차.
이 기록은 여행기를 끄적이며 지나치는 기차를 적어 본 것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는 모르고, 무슨 화물을 싣고 가는지도 모르지만, 바로 앞에 지나 간 기차를 쫓아가서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기차가 지나간다.
♣ 흙벽 60미터
세상에는 불가사의 한 일이 무척 많다. 인류가 만들어 놓은 불가사의가 있는가 하면, 몇 백만 년 전부터 천지의 조화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불가사의가 있다.
전자로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병마용, 페루의 원주민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쫓겨 안데스 산 속에 건설한 마추피추 등과 후자로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풍경이 있다.
내가 발견(?)한 것으로는 중국 중서부 지방에 가보니 온 세상이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비가 언제 왔는지 길가의 초목들은 하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물기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황토구릉, 연중 비는 과연 얼마나 내릴까? 그 곳에서 본 높다란 흙벽은 내가 본 불가사의(?) 중에 하나였다.
거의 직벽에 가깝게 곧추 깎아 낸 절벽. 20층 아파트 높이를 능가 할 황토 흙벽, 한국과 같이 태풍이 오면 하루에 200mm라는 엄청난 비가 내리는 지방이라면 단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돌로 쌓았거나 시멘트 콘크리트 벽이 아닌 맨 흙을 깎아 낸 그대로의 흙벽이 그렇게 높으니.... 불가사의가 아니고는.... 이러한 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그러자니 이번에는 또 어떤 풍경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기다려진다.
내가 아는 최고의 백두산보다 훨씬 높다는 치렌산.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산을 넘어 갈 때는 어떨까?
과연? 이 더운 여름에도 산꼭대기에는 하얀 만년설이 쌓여 있을까?
높이 올라가면 고산증으로 코피는 터지지 않을까?
산소가 희박 할 터인데 숨쉬기는 괜찮을까?
사막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로 끝없이 자갈이 깔렸을까?
사막의 오아시스는 어디서 물이 나오는 걸까? 등의 기대를 가지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철로와 기차의 쇠 바퀴가 만들어 내는 멜로디(?) 때문에 잠을 몇 단원으로 나누어 자야 할 것이다. 어둠을 가르며 밤을 새며 열차는 서쪽으로 달릴 것이고 날이 밝으면 나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눈을 감는다.
정리 : 2003년 10월 27일 칭다오에서. 2004년 3월 19일 네이버로 옮김. 2004/07/04.육(?)정리 04/08/16 마무리. 2006. 2. 9 고침. 2006.2.24. 고침. 13년 7월 25일 정리하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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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동감이 전해져 오네요 잘 보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기행일기인데.... 꼭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감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