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05년 6월 15일 통권 / 제27호)
9번 유형의 하루
-유영진 베드로 / 인천교구 부개동성당-
아침에 부스스한 눈으로 잠을 깬다. 아직 시간이 이른 것 같은데...... 비몽사몽 중에 주변을 더듬어 본다. 손에 잡히는 건 핸드폰,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6시 반이다.
음. 아직 이른 시간이다...... 출근시간이 8시 반이라 7시 반에 버스를 타면 지각을 하지 않는다. 7시에 일어나 씻고 나가면 딱 막는 시간. 다시 눈을 감는다.
알람이 울린다. 10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림. 단 일분이라도 소중한 시간이다.
6시 40분... 6시 50분... 7시 ...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바로 욕실로 들어가 씻고 옷을 챙겨 입는다.
어제 저녁에 들어와 주머니에서 꺼내놓은 지갑, 동전, 열쇠들을 다시 주머니에 하나씩 넣는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온다. 아직 잠이 다 깨진 않았지만 걸어야 한다. 버스 타는 곳까지 10여분이 걸리는데 더 이상 지체하면 지각이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안경을 쓰고 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조금 흐리게 보였나? 지금 다시 집으로 들어가 안경을 찾아 쓰면 늦을 시간이다. ‘하루쯤 안경 없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출근을 한다.
저녁에 후배가 만나자고 한다.
9시 인하대,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다.
회사에서 퇴근 시간이 6시니까 집에 들어가면 7시, 집에서 약속장소까지 30분 정도... 어떻게 할까 하다 집으로 갔다. 약속시간까지 아직도 2시간이 남아있었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옷도 안 갈아입고 잠시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8시 반이 조금 넘어 눈을 떴다. 바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늦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기도 했지만 아직 5분전, 약속장소에 후배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다행히 9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 오래 전부터 약속 시간을 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 약속은 제대로 지키자’ 라는 생각, 밥을 못 먹고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가는 일이 있어도 시간만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 간혹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마냥 기다렸던 적이 있다.
약속 시간 20분전에 도착을 했는데 만나기로 한사람이 20분을 늦었다.
20분을 기다리면서 곧 오겠지 하는 마음에 마냥 기다리게 된 것 같다.
요즘도 가끔 너무 일찍 도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기다리는 것이 일상적으로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9번 유형의 사람들은......
자주 지각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대로 하루가 이어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갈등의 소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일상적인 일들을 할 때 꼭 게으른 것만은 아닙니다. 9번 유형의 사람들 역시 직장에 다니고 집안 일을 하느라 아주 바쁩니다. 이들의 게으름은 내면의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에 깊이 영향받고 싶어하지 않으며, 스스로 나서서 활동적으로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에 대해서도 무심합니다. 그 결과 세상살이는 훨씬 편안해 보이지만, 이들은 생동감과 활력을 빼앗기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는 거짓 평화만을 얻게 됩니다. 9번 유형의 사람들은 진짜 바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활동인지, 또 무기력인지 참된 평화인지 늘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위의 일기에서처럼 자신의 느낌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도 역시 자신에 대해 무심하다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