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니케아신경의 재확인, 아폴리나리우스주의(반아리우스주의) 정죄, 성령의 신성 명시.]
1.신학적 배경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의 영향 아래에서 반 아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우스주의, 마케도니우스주의가 나타났다. 이들은 니케아 신경의 그리스도와 성부의 본성이 같음을 부정하였고, 성령의 신성 또한 부정한다.
먼저 반아리우스주의는 니케아 신경의 ‘동일본성’으로 쓰인 그리스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성부와 그리스도가 동일본성은 아니고 유사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아폴리나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인격의 통일성을 중요시하는데,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의 육체와 혼을 가지고, 이성에 대해서는 신의 로고스를 가진다고 하였다. 곧, 그리스도는 육체와 혼이 껍데기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아폴리나리우스주의라고도 한다. 육체와 혼은 아무런 동력을 가지지 못하고 오로지 신적 이성만이 있다는 이론이다. 결국, 이성을 강조한 아리우스주의에 반하여 신성만 강조하게 된 것이다.
마케도니우스주의자는 성부와 성자를 유사본성이라 보았고 성령의 신성을 반대하였다. 이들은 마케도니우스의 신학적 노선을 따르는 자들이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엘류시우스가 있다.
이러한 신학적 주장들로부터 교회는 여전히 분열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오도시우스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책을 펴게 된다.
2. 정치적 배경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파의 신학은 많이 전파되어 갔고, 또 반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마케도니우스주의는 성령의 신성마저 거부했다.
이는 황제들의 종교적 성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361년에 아리우스파의 옹호자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사망하자 362년에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회회의를 개최해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아리우스 사상을 배격한다. 그러나 이교를 신봉해 배교자라 불리는 율리아누스 황제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아타나시우스를 다시 귀양 보낸다. 이어 율리아누스 황제 사망 후 동로마제국은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는 발렌스, 서로마제국은 니케아 정통교리를 지지하는 발렌시아누스가 통치하는 형세가 된다.
동로마제국의 교회는 373년 아타나시우스가 죽자 정통교리의 옹호세력은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에 의해 계승된다. 반면 서로마제국의 교회는 니케아 신앙을 줄곧 지지해왔고 발렌스 항제 사망 후 발렌시우스 황제의 아들 그라시아누스가 전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된다. 그라시아누스는 다시 로마의 동부지역을 테오도시우스에게 맡겼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니케아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테오도시우스는 종교적 일치를 이루기 위해 니케아 정통신앙을 고집했다.
3. 회의 개최
테오도시우스의 종교정책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방에서 다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게 되자 381년 콘스탄티노플의 이레네 성당에서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를 의장으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는 150여명의 동방교회 주교들만이 참석한 공의회로서 반 아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우스주의, 성령배격론자들을 배격하였고 성령의 신성에 관하여 명시하고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여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확정했다.
4. 결과
니케아 신경의 내용을 재확인 하고 “또한 주님이시오 명생을 주시는 성부에게서 쫓아 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을 첨가 하였다. 성령의 ‘본질동등성’을 문자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성령께서는 성부로부터 나와서 성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신다는 내용을 통하여 성령의 신성을 고백했다. 1년 뒤에 그 곳에서 열린 다른 회의는 본질동등성을 성령께도 돌려 드렸다.
교회의 성부, 성자, 성령의 ‘본질동등성’은 삼위일체 교리에 핵심원리다. 이로써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성령에 대한 내용을 두고 학계에서는 왜 직접적으로 성부와 성자의 본질과 같다는 ‘본질동등성’을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 그 당시의 로마제국 상황을 고려하여 성령의
신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리우스주의는 로마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신학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언급은 더욱 더 분열을 초래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교회역사가들은 추측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본질동등성’의 원리는 성경이 언급하는 내용이므로 본질동등성이 훼손되지는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 아타나시우스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평생을 아리우스주의아 투쟁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받아들이는 교리에 따라서 그는 주교되었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만큼 로마제국의 황제들과 동방교회의 주교들 중에는 아리우스주의를 따르는 인물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아타나시우스는 공적이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아타나시우스 사후에는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체사레아의 바실리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닛시의 그레고리오)가 이를 발전 시켰으며, 어거스틴에 으르게 되었다.
아래는 아타나시우스 신앙고백의 일부분이다.(원문의 주 내용은 삼위일체에 관한 고백이다)
삼위의 한 하나님과 일체성 가운데 삼위 하나님을 경배하며, 위격들을 혼동하지 않고 본체를 분리하지 않는 고백을 언명한다. 성부의 위격과 성자의 위격, 그리고 성령의 위격이 각각 다르나 성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은 하나다. 영광과 위엄도 동일하며 영원하다. 삼위는 공히 피조되지 않았고, 공히 불가해하며, 공히 영원한데, 한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시나, 삼신들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시다. 각각 주님이시나, 세 주님들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주님만이 계신다. 성부는 출생되지 않았고, 성자는 피조되지 않고, 출생되었고, 성령은 피조되지도 출생되지도 않았으나 발출 하신다. 세 성부들이 아니라 한 성부만 계시고, 세 성자들이 아니라 한 성자가 계시고, 세 성령이 아니라 한 성령만이 계신다. 삼위 간에는 전과 후가 없으며, 크고 작음도 없다. 함께 영원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