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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분석의 담론
-김동인의 소설을 중심으로
정 신 재
1. 서론
김동인은 이광수의 소설이 ‘설교조’라고 보고 ‘인생 문제 제시’를 창작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선이나 미 등 어느 한 쪽 면만을 강조한 소설 양상을 비판하면서, 선과 악, 미와 추 등을 객관적으로 그리는 데 치중한다. 그래서 그는 작중 인물에 대한 성격 창조에서 인간 심리를 리얼리즘적으로 그리는 데 철저하였다. 그가 인간 심리를 잘 그리게 된 데에는 그의 천부적 재질, 환경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는 1926년 관개수리사업에 실패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하였고, 이재(理財)에 밝았던 형 김동원, 문명을 날렸던 이광수․주요한 등에게서 카인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또한 川端畵學校에서 낭만주의자 후지지마다케지로부터 미학 이론을 배우고 괴퍅한 성격의 소유자인 아끼꼬와 교제한 경험은 그림자 현상을 인지하게 하였고(1918), 이러한 경험은 [약한 자의 슬픔]․[광염 소나타]․[광화사]․[아라삿버들]․[해는 지평선에] 등에서 광기 있는 인물을 통해 표현된다. 말하자면 인간 심리를 표현하는 천부적 재질과 환경적 요인의 결정체인 그의 소설은 오늘날 정신분석학이나 분석 심리학으로 분석해 볼 때에 매우 뛰어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 보자.
2.. 김동인의 천재성과 그림자 현상
융 심리학에서는 인격 전체를 정신이라고 부른다.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있다. 콤플렉스는 개인 무의식에 속하며, 페르소나(The Persona)․그림자․아니마와 아니무스․자기( The Self) 등은 집단 무의식에 속한다.
페르소나는 본래 극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하였다. 융은 이것을 심리학에 응용하였다.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란 개인이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가면 또는 외관이며,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1) 곧 페르소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면적 인격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그림자란 무의식적인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 ‘나’의 어두운 면이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되면 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지게 마련이다. 선한 나를 주장하면 할수록 악한 것이 그 뒤에서 짙게 도사리게 되며 선한 의지를 뚫고 나올 때 나는 느닷없이 악한 충동의 제물이 됨으로써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낮에는 점잖은 의사이나 밤마다 포악한 괴물로 변하는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의식적 인격과 무의식적 인격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좋은 예다. 하이드는 의사 지킬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는 의식의 바로 뒷면에 있어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림자는 그것이 외계의 대상으로 투사되거나 자아가 그것의 처음을 의식할 때는 미숙하고 열등하고 부도덕하다는 등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들이어서 좀처럼 자아가 자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 머려져 있어 분화될 기회를 잃었을 뿐이며, 그것이 의식되어 햇볕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들이다. 예술가의 창작 열정 등은 후자에 속한다.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1919)에는 ‘기름자’라는 말이 8번이나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그림자’의 의미에는 무의식적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 외에, 환상이나 반동 형성2)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남작의 집에서 아이들 가정 교사를 하는 엘리자베트는 이환을 마음 속으로 좋아한다. 그러나 이환은 학교 가는 길목에서 지나쳐도 말을 건네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 혜숙에게 이환을 좋게 생각한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혜숙의 집에 가 보니 혜숙이 S와 함께 맞으면서, S가 이환의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한다. 엘리자베트는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다. S에게서 이환의 소식을 듣고 싶었고 이환이 자신을 사랑한다더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녀의 페르소나는 그것을 강력히 억제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는 기하 숙제를 하자는 속마음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친구들이 그 숙제는 이미 하지 않았냐고 하자, 그녀는 당황하여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왜 S에게 이환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면서 심란해 한다. 그 일로 엘리자베트는 마음이 싱숭생숭하였다. 그래서 남작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밤 두 시에나 돌아오겠다 하기에 자리를 펴고 전나체가 되어 드러누웠다. 그런데 한참 잠을 자가 보니 남작이 자신을 깨운다. 남작이 그녀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부인이 아시면?” 그러면서 그녀는 속으로는 고함을 치지만 행동은 ‘별한 웃음- 애걸하는 웃음- 거러지의 웃음을 웃으면서 돌아눕는다. 그리고 남작이 불을 끄자 정신이 아득하여지고 만다.
이러한 행동이 나오는 것은 엘리자베트가 평소에 페르소나에만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고, 교회의 유년주일학교에서는 교사였다. 이렇게 순진한 엘리자베트는 남작에 의해서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하여 남작이 찾아오지 않으면 질투심이 일어나고, 자신이 사교계의 꽃이 되어 차를 타고 가는데 이환이 거지꼴로 차에 치이는 공상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작의 아이를 임신한 후 남작의 집에서 나와 오촌모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오촌모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한 후 재판하겠다는 말을 꺼낸다. 그리고 오촌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작에게 소송을 건다. 하지만 재판에서 증거가 없어 허황하다는 판결을 받아 패소하고 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여러 가지 환상을 본다. 김동인은 이 환상을 ‘기름자’(그림자)로 표현해 놓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그림자는 엘리자베트가 강자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반성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1) 이후 사람을 경계할 만한 내 사적! 곧 ‘표본’! 표본 생활 이십 년…. 아…!
그러니 이것도 내가 표본이 되려서 되었나? 되기 싫어서도 되었지. 헛데로 돌아간 이십 년, 쓸데없는 이십 년, ‘나’를 모르고 산- 이십 년, 남에게 깔리어 산- 이십 년. 그동안에 번 것은? 표본! 그동안에 한 일은? 표본!’
김동인, [약한 자의 슬픔]에서
2) 자기의 아직까지 한 일 가운데서 하나라도 자기게서 나온 것이 어디 있느냐? 반동 안 입고 한 일이 어디 있느냐? 남작 집에서 나온 것도 필경은 부인이 좀더 있으라는 반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 병원 안에 들어간 것도 필경은 집으로 돌아올 전차가 안 보임에 있지 않으냐? 병원으로 향한 것도 그렇다. 재판을 시작한 것은? 오촌모가 말리는 반동을 받았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이십세기 사람이 다- 그렇다!”
김동인, [약한 자의 슬픔]에서
1)의 예문은 엘리자베트가 그림자를 모르고 페르소나에만 익숙해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내용이고, 2)의 예문은 자신의 속마음과는 반대로 말한 반동 형성3)에 해당한다.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그림자 현상을 평소에 인지하고 있었더라면 남작으로부터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작 집이나 친구들 앞에서 페르소나(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가면적 인격)에만 익숙해 있어, 자신의 그림자에서 생긴 욕망을 다스리질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임신한 사실을 매우 수치스러워 하면서 옛날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했던 이환이 거지 꼴이 되어 자신이 타고 가는 자동차에 치이고 자신의 조선 사교계의 꽃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자베트가 마지막에 가서 강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 현상을 알아 강자가 되라는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오늘날의 심리학 용어로 따지면 페르소나, 그림자, 반동 형성에 해당하는 인간 심리를 그려냈다는 것이 놀랍다. 이는 그가 평소에 ‘인생 문제 제시’를 내세우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 놓고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창작 태도와 그의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유전적 요인과 체험이 인과율적으로 작용하여 된 결과인 듯하다.
김동인의 [포플라](1930.1, 원제 [아라삿버들])는 정신에 있는 페르소나(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면적 인격)와 그림자(의식의 뒷면에 있는 ‘나’의 어두운 면)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최서방은 마흔두 살의 김 장의네 집 머슴이다. 그는 부지런하고 솔직하였다. 그는 소와 같이 일하였고, 말없이 일하였다. 일이 없을 때는 뜰을 쓸었다. 그러고도 일이 없으면 뜰의 돌을 주웠다. 그래도 그냥 일이 없으면, 추녀 끝 토방 아래, 담장 모퉁이의 거미줄까지 없이 하였다. 잠시도 쉬는 때가 없었고 정 할 일이 없으면 그는 일부러 일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최서방이 들어온 뒤부터는 김 장의의 집은 깨끗하기 한이 없었다. 봄에 최 서방은 버드나무를 한 가지 얻어다가 자기 방 앞에 심었다. 그리고 매일 물을 주고 정성껏 돌보았다. 그러자 순 끝에서 노란 진이 돌며 벌려지기 시작하였다. 해가 바뀌자 새끼 버드나무까지 뻗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큰 나무 아래 새끼 버드나무가 너덧 개 둘러 있었다. 이를 본 김 장의가 “임자두 장가를 들어 저런 새끼들을 보아야 하지 않나.” 하고 입을 열었다. 거기다가 장가 가고 싶으면 주선해 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날 밤부터 최서방은 흥분되었다. 사십 년 동안을 숨어 있던 성욕이 한꺼번에 터져 올랐다. 그리하여 최 서방은 김 장의가 하던 말의 뒤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김 장의는 거기 대항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뒤 최서방은 여러 번 주인에게 “버드나무 새끼가 한 자나 됐지요.” 하고 채근하여 보았다. 그러나 김 장의는 그 말뜻을 알아 듣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는 낮과 밤이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낮에는 그는 천연하였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정돈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낮을 지배하는 신경과 밤을 지배하는 신경은 확실히 달랐다. 밤만 되면은 그의 마음은 흥분되며 온몸은 학질들린 사람같이 떨리고 하였다. 잠깐 새에 그의 성욕에 대한 지식은 놀랄 만치 많아졌다. 그는 별별 기괴한 환상을 마음속에 그려보고는 흥분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하였다.
김동인, [포플라]에서4)
최 서방은 밤만 되면 멱을 감는 계집애를 욕보이고 죽인다. 그러나 그는 낮이 되면 밤에 한 일을 모른다. 낮에는 부지런히 일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이 겁간을 당하는 일이 밤만 되면 계속 일어났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최서방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천치스런 최 서방이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하였다. 더구나 김 장의네 최 서방은 그 근방 일대에서는 정직함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어떤 날 그는 어떤 집 처녀의 방에 뛰어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붙들리었다. 세상 사람들은 최서방의 가면에 모두 입을 벌렸다. 그리하여 그는 마흔다섯 살의 나이로 사형대 위의 이슬로 사라졌다.
페르소나와 그림자 현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최서방이 낮에 한 일은 남에게 보이는 데 익숙한 가면적 인격이다. 그리고 밤에 한 일은 의식의 뒤에 가려 있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 하고 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최서방의 그림자는 부정적인 면에 해당한다.
1) 캘빈 S. 홀 외, 융 심리학 입문, 최현 역 (서울: 범우사, 1991), 55쪽.
2) S. 프로이트 외,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 설영환 역 (서울: 선영사, 1991), 300쪽.
잔인성을 숨기기 위해서 다정함을, 완고함을 누르기 위해서 순종함을, 불결을 나타내지 않기 위해서 청결을 강조하는 것과 같이 무의식에 숨어 있는 생각과는 반대로 드러내는 자기 방어의 메카니즘이다.
3) 프로이트 외, 전게서, 300쪽. 반동 형성은 전형적인 자기 방어의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증오와 같은 의식에 올려 놓으면 위험한 욕동 에너지를 억압해 두기 위해서 그 반대의 것, 즉 이 경우는 애정을 과도로 강조하여 자아를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메커니즘이다.
4) 김동인, 포플라, 김동인전집 2권 (서울: 조선일보사, 1988),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