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20~30대 직장인 567명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현황을 조사한 결과, 1순위로 영어회화를 꼽았을 만큼 영어학습에 대한 열의는 학생 때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끊임없이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또 영어시험 점수도 제법 높은 사람들도 실제 외국인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건 왜일까. 어떻게 하면 영어 수다쟁이가 될 수 있을지 현직 영어강사 심진섭 씨로부터 그 노하우를 들어 본다.
기술 회의를 할 때는 본인의 전문 분야라 어찌어찌 해보겠는데, 그 외의 자리에서는 “Haha, yes, yes”, “Maybe”, “Umm, I don't know”, “Sorry, sorry”, “Thank you, hahaha” 정도로 끝을 맺는다 했습니다. 거기다 외국인들이 던지는 예기치 못한 대화 소재나 질문에는 동공확장ㆍ혈압상승ㆍ등골오싹을 동반한 질병 증상이 엄습, 그들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운 후에야 비로소 떠오른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와 그 부장님은 일명 '영어 수다쟁이로의 환생 트레이닝'을 시작, 매일 밤 두 시간 정도의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눈에 쌍라이트를 켜고 덤비는 그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저의 카리스마 넘치는 스파르타 방불형 훈련 때문이었는지, 한 달쯤 지나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 하산시켰습니다. "요즘 영어 대화가 많이 편해. 껄껄껄" 하며 술 한잔 거하게 사 주시던 그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여러분께 '30분 동안 외국인과 대화하기'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을 소개합니다.
외국인이 던지는 질문에 그저 대답하는 식의 대화에 휩쓸리다 보면 단답형 내지는 말대꾸 수준의 짤막한 영어 문장들만이 슬프게 나옵니다. 오랜만에 만난 외국인과 어색하게 서 있다가 겨우 꺼낸 한마디 "Fine. Thank you"만이 메아리치는 대화를 하고 있진 않으신지요? 시뮬레이션 첫 단계, 우선 과감해져야 합니다. '이 대화의 칼자루를 내가 잡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질문하고 너는 답하라!'식의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합니다. 그런 후에야 영어가 모국어인 상대방보다 내가 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쩔쩔매며 간단한 답만 하다가 비싼 식사를 하고도 소화불량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학원에서 앞자리를 꿰차며 손짓 발짓을 아끼지 않는 수강생들처럼 떠들고 연기해야 '입 영어'가 트이는 법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우선 유용할 대화 소재를 정합니다. 가족, 음식, 영어, 기후, 경제, 여행, 스포츠, 그 무엇이든 좋습니다. '상대가 관심 없어 하면 어쩌나' 우려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어떤 소재이건 대답을 잘해 낼 수 있는 영어의 달인들입니다. 소재를 정했으면 나를 대화의 주인공으로 이끌어 줄 실탄이 될 문장들을 제조합니다. 내 입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줄줄 나오는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감도 생길 것입니다. 마치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노래방에서 필살기로 꺼내는 노래 번호처럼, 영어에도 나만의 무기가 필요합니다.
주제 하나를 정해 언제든 내 입에서 술술 나올 수 있는 문장들을 만들어 두자.
그동안 문법 위주의 영어공부를 했던 탓에 이렇게 실탄을 제조하고도 외국인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우리는 머리 속으로 해석하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는 영문학 박사가 되기 위해 깊게 분석하고 파고들어 가야 하는 학문이 아니라, 그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인생의 조그마한 도구일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절한 대화 소재를 정했다면 이제 각 소재당 질문 두 문장과 내 이야기 네 문장 정도를 준비합니다. 이 정도면 영어로 30분 수다 떨기가 가능합니다. '가족'을 주제로 실탄이 될 만한 문장들을 예로 들면 “Are you married?”, “How many kids do you have?”, “You must be missing your family”, “We've been married for 12 years”, “I have two children, 10 and 8”, “They are who I am living for” 등이 있습니다. 쉽죠? 어려운 문장이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선택한 소재로 상대를 끌어들이고, 부가적인 질문을 하면서 그들의 수다를 듣고 있는 가상 대화를 시작합니다. 상대는 백이면 백, 자신의 수다가 끝나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겁니다. 적당한 몸짓과 표정을 곁들여 생동감 있게 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야 영어가 달라 붙습니다. 내 노래 18번처럼 가사를 안 보고도 줄줄 흐르도록 입에 달아 놓읍시다. "I'm working for a big company called Samsung. Work keeps me busy but it is good busy. I like what I do"가 5초 안에 마무리되도록 합니다. 한 스무 번 연습하면 됩니다. 영어라 생각지 말고 노래 가락처럼 나오게 합시다.
가사를 안 보고도 할 수 있게 노래를 외우듯이,
이런 탄환 제조를 각 소재마다 알차게 해 놓은 후, 입에다 영광굴비 엮듯 줄줄 달아 놓습니다. ‘웬 무식한 암기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1시간 영어공부하고 23시간 한국어로 사는 우리에겐 문장 암기와 실전 시뮬레이션만큼 효과적인 스피킹 연마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술술 흐르는 소재가 10개 이상이 되는 날, 소화불량 없이 외국인과 영어로 수다 떠는 꿈이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P할 것은 피하고 R릴 것은 알리는 것이 PR의 의미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등장한 지도 자그마치 이십 년은 족히 흐른 것 같습니다. 정글을 연상시키는 경쟁사회에 사는 우리 자신이 그저 그런 존재로 묻혀 살다 죽는 것을 방지하려면 남들보다 말이 많은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합니다. 많은 말수가 나를 알리는 데 유용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어로 나를 알리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가정에서 무게 잡는 철수 아버지보다 수다 잘 떠는 영희 아버지가 인기 있는 세상입니다. 문법 하나 하나 신경 쓰다 내 차례 마구 잃어버리는 영어 대화를 경험하고 계시다면, 내가 필요한 탄환 장전 굳건히 하여 이제는 온 세계가 공식 인정하는 영어 수다쟁이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심진섭 / 강남이익훈어학원 강사, <웃지만 말고 영어로 말해 봐> 저자 ) |
출처: jclub 원문보기 글쓴이: jj
첫댓글 심진섭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인데,, 교수님께서도 친분있는 사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