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전 4:6-7)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우리에게,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교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밝혀 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우리에게서 보고,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의 예를 들어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가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준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과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보고, 배우도록 한 그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키는 것이며, 특별히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넓게는 바울이 전한 말씀인 신약까지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말씀은 “성경을 넘어가지 말고, 성경에 일치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라.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 겸손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왜, 이 말을 하였을까요?
여러분!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죄와 사망으로부터,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므로, 이제 모든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구약의 율법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쾌락과 방종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을 따라 살기 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5:1-2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도들이 그 일에 대하여,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통탄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 행하는 자를 교회 안에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통탄”이란, 몹시 안타깝고 한스러운 마음으로 슬퍼하며 탄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들은 통탄하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큰 죄악을 보고서도, 왜 슬퍼하며 탄식하지 않았을까요? 그 일 행하는 자를 과감하게 교회 안에서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을 넘어서서, 방종의 길을 가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서 가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우리들의 삶의 경계입니다. 울타리입니다. 넘어가면 안됩니다.
말씀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울타리를 넘어가면 안됩니다.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 등 네 분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분열되어,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들을 치켜세우면서, 다른 지도자들을 낮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들을 내세우면서, 결국, 자신들이 잘났음을 은근히 과시하고, 자랑했습니다. 바로,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지도자를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삼는다거나, 자신의 신앙의 수준으로 삼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8:1절을 보면,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대체로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만했습니다.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은혜가 없었습니다. 긍휼이 없었습니다.
지식은 있지만, 사랑은 없어서,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식을 가지고, 그들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교만하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자신을 자랑하는 도구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겸손하게, 우리가 가진 지식을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말과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말을 연관시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이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과 아볼로, 두 사람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행 18:24)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아볼로는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겸손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갔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아볼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살았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교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똑똑함을 주장하고, 자신이 잘났음을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만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붙들려 사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을 주장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겸손이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개혁 교회는 이 사실을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것만큼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데서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이요, 그것이 겸손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을 보면,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효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배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되는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유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아멘.
바울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보다도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누가 너를 유별나게 하였느냐? 누가 너를 남보다 더 돋보이게 하였느냐? 누가 너에게 우월감을 갖도록 하였느냐?”
이 질문은,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잘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우월하게 구별하여,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교만한 마음을 당장 부수어 버려야 합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마음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소중하고 존귀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처럼, 자기 스스로 그것을 가진 것처럼, 그렇게 자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교만하게 되고, 자기 자랑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자기 자랑이 있다면, 단호하게 부수어 버려야 합니다.
미련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떨쳐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교만하거나, 자기 자랑에 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