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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하나가 되라(빌 4:1-3)
바울은 정말로 교회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고난 중에도, 마음 속에는 온통 복음과 교회 생각으로 가득 찼으며, 각 교회의 사정과 형편에 맞게, 자신의 안부와 편지를 전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위로하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바로 서고,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며, 믿음의 진보를 나타낼 것인지를, 항상 염려하고, 걱정했으며, 그 해답 또한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며, 바울 자신이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으로 세웠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 2:1-2)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 말함으로써, 하나됨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바울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바울을 위해 늘 기도했으며,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에 있었지만, 교회와 사역자들을 더 먼저 생각하며, 자신들의 물질까지도, 주님 앞에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고, 더욱 더 하나가 되는 것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 지체된 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교회들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될까요?
아직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하나가 되는 방법을 몰라서 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러했고,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본을 보이셨기에,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라는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잘 할 수 있다고 노력해 보지만, 우리의 힘과 노력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주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아멘.
빌립보서 3장까지만 해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4장에 들어와서는, 그들을 향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해, 따뜻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권면할 때는 강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향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냉철함과 온유함을 동시에 지닌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현재 그에게 주어진 보람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그에게 주어질 영광과 상급의 근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만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이와 같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앞서 했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의 제일가는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상업, 무역, 종교적으로 활발했던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로마인, 헬라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이방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비중은 다소 약했기에, 회당은 없었고, 빌립보 교회는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빌립보 교회는 넉넉한 형편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게도냐의 중심이었던 빌립보 교회는 많은 환난과 시련, 가난 속에서도, 예루살렘의 기근을 위하여, 넘치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를 했습니다.(고후 8장)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전해주었던 진리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열매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바울도 그들의 믿음과 열매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와 같은 일들을 또 다시 강조하면서,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하는 부분의 다른 번역본들을 보면, “굳건히, 든든하게, 굳게”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굳게”라는 말은 원래 전쟁 용어로서, 병사가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초소에 굳게 계속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쓰이던 말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유대주의자, 율법주의자 등 거짓 교사들로부터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살펴보면, 말씀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 온갖 잡스러운 것들의 혼합신앙이 들어와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말씀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교회도 많고, 말씀은 넘쳐나는데,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너무 모르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우리 한마음교회는 진실로 말씀으로 굳게 서 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성도의 본분은 거룩함과 완전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외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일에 힘씀과 동시에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아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교회 안에서 다툼을 일으켰고,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 여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같은 마음”이란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 점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서, 하나가 되라고 말할 때에는, 언제나 “주 안에서”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에, 서로의 부족함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주며, 세워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권하다”라는 말 속에는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야말로, 성도들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주의 종들과 멍에를 같이해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아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 외에 다른 주의 종들과 더불어, 고통과 슬픔도 함께 하며,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의 멍에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멍에를 같이 했다”는 것은 동역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멍에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바울을 괴롭히며, 그의 사역을 훼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멍에를 메고, 복음에 힘쓰는 동역자들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디모데와 실라, 에바브로디도, 누가가 있었으며, 빌립보 교회의 감독들, 첫 열매였던 루디아를 비롯한 여인들, 그리고 글레멘드 등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물론, “기쁨”이라는 단어가 16번이나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복음으로 인하여, 또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로 인하여, 기뻐함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주의 종인 바울을 위하여, 늘 걱정하고, 염려하며, 기도했으며, 많든지, 적든지, 물질로도, 후원하며, 바울에게 감동을 주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바울과 함께, 멍에를 메고, 십자가 복음에 앞장을 섰기에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빌립보 교회는 참으로 형제들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섬기며,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제자들을 향해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너희도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주의 종과 멍에를 같이 한다는 말은 바로 복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고난과 아픔도 함께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과 멍에를 같이 하게 되면,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주의 종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귀는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한 마음을 품고, 하나가 되면, 사탄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안에서 한 마음을 품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주의 종들과 멍에를 같이 하며,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주 안에서”만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주 안에서” 모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