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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 3 장 : 진리의 가르침에 대하여
1. 소멸해 버리는 상징과 언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우리 인간의 생각과 감각은 우리를 속이기 일쑤이며, 분별력 또한 거의 없다.
애매모호한 문제를 놓고 크게 논란을 벌여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전 3:9)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비록 그러한 문제에 관해 모른다고 해서, 심판의 날에 책망을 받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유용하고 필요한 것을 무시하고서, 호기심에 끌려서 해로운 것에만 정신을 쏟는 짓은 아주 어리석다. 우리 인간은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시 115:5)
2. 유개념과 종개념 따위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영원한 진리의 말씀”(the Eternal Word)을 따르는 자만이 불필요한 개념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진다.
만물은 바로 그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며, 또, 만물이 그 말씀을 대변한다. 따라서, 그 말씀이 곧 시작이며,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 주는 것이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람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판단하지 못한다. 이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는 만물이 하나이다. 또한, 그러한 자는 만물을 하나로 귀착시키며 만물을 하나로 본다. 이렇게 될 때만이 비로소 정신의 안정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게 거한다.
“오, 진리이신 하나님, 영원한 사랑으로 저를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 온갖 것을 읽고 듣는 것은 자주 싫증이 납니다. 제가 갖고 싶어하고 갈망하는 바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학식 높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잠잠케 하도록 해 주시고 만물도 당신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도록 해 주소서.”
3. 사람이 자기 자신과 화합되면 될수록, 그리고 내적으로 단순하게 되면 될수록, 힘들이지 않고도 사물을 보다 폭넓고 수준 높게 이해하게 된다. 그 까닭은 그가 하늘에서 이해의 빛을 받기 때문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순수하고 진실되고 안정된 정신의 소유자는 아무리 많은 일에 시달려도 흔들림이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수행하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으므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무절제한, 욕정보다 더 그대의 앞 길을 가로막고, 그대에게 지장을 주는 것이 과연 또 있을까?
선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은 어떤 일에 실제로 착수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한다. 또 어떠한 것도 그 사람을 사악한 욕망에 빠지게 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 사람은 올바른 이성의 방향에 따라 그러한 것들을 처리한다.
자기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싸움을 벌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하여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정신력을 더욱 강하게 하고 날마다 거룩한 삶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현세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에도 뭔가 불완전한 것이 깃들어 있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식에도 뭔가 애매모호한 점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을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다. 이는 학문 그 자체를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학문적 지식을 무조건 혐오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학문 그 자체는 선해야 하고, 하나님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나 양심과 고결한 삶이 학문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지식을 갖추기에 더욱더 급급하다 보니, 기만당하기 일쑤고,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하거나 보잘 것 없는 이익밖에 거두지 못한다.
5. 오, 통탄할지어다. 사람들이 학문상의 의문을 열나게 제기하듯이, 악덕을 발본색원하고, 미덕을 심는 데에 좀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토록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게 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 그토록 나쁜 소문도 퍼질 리 없으며, 수도원에서도 그토록 많은 방종이 저질러지지도 않을 것이다.
진실로 심판의 날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읽었는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는가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될 것이며(마 25장), 얼마나 말을 잘했는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고 깨끗하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나에게 대답해 보라. 생존시에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던 모든 학자들과 박사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그대는 알고 있는가?
이제 그러한 학자와 박사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후배들이, 아마 그분들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즉 그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꽤 명망이 있는 듯했으나 이제 그들은 화제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6. 아, 이 세상의 영화가 얼마나 빨리 사라져 버리는가!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아, 과연 그들의 생애가 그러한 학문과 일치되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연구와 독서가 선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에는 소홀히 하면서 세상의 헛된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딛 1:10)
그리고 그들은 겸손한 사람이 되기보다, 오히려 존귀한 사람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생각은 허무한 망상이 되고 만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힘쓰는 사람이 진실로 위대하다.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이 세상의 모든 영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진실로 위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은 진실로 현명하니, 그는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그리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이 진실로 학식이 있는 사람이다.
(자료 출처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조항래, 예찬사, 1988년 11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새롭게 쓰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 3 장 : 진리의 가르침에 대하여
“진리 그 자체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다 보면, 우리는 자주 마음이 멈춰 서게 된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우리의 영혼을 깊이 찌른다. 그는 지식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지식, 순종 없는 신학, 회개 없는 경건을 두려워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간다. 클릭 몇 번이면, 수천 권의 책과 수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가”이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시 94:12)
시편 기자는 단순히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교훈받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한다.
청교도들은 늘 “머리의 빛(head knowledge)이 가슴의 불(heart religion)이 되지 않으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머리의 지식(head knowledge)”과 “가슴의 체험(heart religion)”을 구별하며, 참된 신앙은 마음의 변화와 거룩한 정서(holy affections)로 나타난다고 강조했고, 존 웨슬리는 형식적 교리 지식보다 “heart religion(심령의 신앙)”을 강조했고, J. C. 라일은 참된 신앙은 단순한 교리 이해가 아니라 “heart-religion”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머리의 지식(head knowledge)과 가슴의 신앙(heart religion)은 다르다. 지식만 있고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교만해진다. 지식이 은혜와 결합되지 않으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지식만 있고 경건이 없으면 영혼을 차갑게 만든다.
거룩함 없는 학문은 차가운 달빛과 같다. 학문은 거룩함과 결합될 때 참된 빛이 된다. 단순한 이성의 빛은 영혼을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자신을 과신하기 쉽다. 신학적 개념과 논쟁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교만과 탐욕과 시기심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유용하고 필요한 것을 무시하고 호기심에 끌려 해로운 것에만 정신을 쏟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슷하다.
누군가는 교회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지만, 자신의 기도 생활은 메말라 있다.
누군가는 교리 논쟁에는 열심이지만, 가족에게는 차갑다.
누군가는 성경 지식을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따로 있다. 어린아이처럼 배우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지성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 배우려는 심령, 가난한 영혼을 기뻐하신다는 뜻이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대한 철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회심 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밖에서 진리를 찾았으나, 진리는 내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또 마틴 루터는 시편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기도가 모든 박사학위보다 사람을 더 지혜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참된 영적 통찰은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순종하는 삶 속에서 온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진리를 이용하게 되고, 순종하는 사람은 진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자기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싸움을 벌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진짜 전쟁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게으름과 교만, 인정 욕구와 비교 의식, 정욕과 분노, 자기 연민과 자기의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건다.
존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려 한다. 그래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현대인은 너무 복잡하게 살아간다. 생각도 많고, 말도 많고, 정보도 넘친다. 그러나 영혼은 점점 단순함을 잃어간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내적으로 단순한 사람”을 말한다. 이 단순함은 무지함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삶이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삶이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려는 삶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그렇다. 하나님이 커질수록 우리는 조용해지고, 그리스도가 높아질수록 자기 자랑은 사라진다. 세상의 명성은 오래가지 않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학자들과 유명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드린 작은 순종과 눈물의 기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찰스 스펄전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결국 가장 크게 쓰임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 이전에 더 깊은 회개이며, 더 날카로운 분석 이전에 더 뜨거운 사랑이다.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많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걷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지식을 기억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순종을 기억하신다.
세상은 성공을 높이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겸손을 귀히 여기신다.
결국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사람이다.
오늘도 우리 영혼이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께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지식을 넘어 생명으로, 논쟁을 넘어 순종으로, 교만을 넘어 겸손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말씀을 읽는가? 아니면, 단지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가?
2. 최근 내 안에서 가장 강하게 싸우고 있는 욕망과 교만은 무엇인가?
3.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배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4. 오늘 내가 순종해야 할 가장 작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많이 알고도 순종하지 못했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입술로는 진리를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세상을 사랑했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헛된 지식으로 교만해지지 않게 하시고, 참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늘 겸손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많은 것을 아는 사람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분주한 세상 속에서도 영혼의 단순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복잡한 생각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교만과 욕망을 다스려 주시고, 날마다 자신을 이기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세상의 모든 영광은 지나가지만, 주님 안에서 행한 사랑과 순종은 영원함을 믿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말씀으로 저희를 가르쳐 주시고,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혀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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