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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0일 해외 여행의 꿈을 안고
오전 8시 10분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이촌동에서 남편과 함께 인천공항 버스를 탔다.
공항 버스 요금은 일인당 11000원 이었으므로 우리 부부는 22000원을 지불하고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아 생각을 해보니 아들이 걱정되었다. 아들은 잠을 자다가 급히 나와서 배웅을 했기 때문에 돈이나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내 열쇠로 아파트의 현관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왔으니 어떻게 집에 들어 가겠는가?
그때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촌동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아침부터 난감해 할것같다. 열쇠도 없고 돈도 없이 ....... 남편은 해외 여행을 포기하더라도 집에 다녀오겠다며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아마 여의도 쯤 이었던 것 같다. 부성애가 느껴져서 흐뭇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인천 국내선 공항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짐을 가지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가이드 최성옥씨와 일심회원들을 찾았다. 일행과 합류 한 후 태국 바트를 환전하기 위해 인천 국제 공항 지점에서 1바트에 29.15원하는 돈을 2000바트 환전했다. 남편은 다행히 늦지 않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남편이 집에 되돌아 가보니 아들은 경비아저씨께 동전을 빌려 열쇠 집에 전화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이었단다. 그 말을 들으니 아들이 대견 스러웠다. 남편은 열쇠집에 취소 전화하고 아들을 집에 들여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시 공항 버스에 올라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여 요금은 또 다시 내지 않아도 되었단다. 지루한 수속 절차가 끝나고 11시 30분쯤이 되어서야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다. 기내에는 한국 사람들로 가득 찼다. 왁자지껄하는 모습이 마치 난민들을 연상케 했다. 좌석도 편치 않았고 기내식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다소 위안이 된 것은 좌석이 창가 쪽이여서 밖을 내다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김포 공항에서 사천까지 가는 비행기를 탔었다.그때는 느낌이 참 좋았었다. 비행시간이 짧아 아쉬웠었다. 태국행 비행기보다 저공 비행이었는지 집도 나무도 선명하게 보였고 뭉게 구름이 마치 솜털 같아서 뛰어 내려 보고 싶을 정도로 포근해 보였었다. 그런데 태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는 좀 지루했고 구름은 빙하처럼 싸늘하게 느껴졌다. 5시간 10분이 경과하여 방콕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태국의 날씨를 무더운 열대 지방의 날씨로 생각하고 여름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의외로 쾌적한 날씨여서 기분이 좋았다. 공항 밖에 나오니 금호 관광 최 성옥 이라고 표시된 2층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짐을 일층에 싣고 우리 일심회원들은 2층에 탔다. 모두 자리에 앉으니 태국의 여행사의 한국 가이드가 태국인 운전 기사와 여자 가이드를 소개했다. 그리고 태국 날씨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태국에는 3계절이 있는데 2월 부터 6월 까지는 "하기" 이고 7 월부터 10 월 까지는 "우기" 10 월 부터 1 월 까지는 "건기" 여서 지금이 우리나라 사람이 적응하기가 제일 좋은 건기의 날씨라 했다. 태국은 관광 사업이 50 %의 경제를 차지하는 나라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국의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태국과 우리나라는 2 시간의 시차가 있단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냐고 아침 식사도 못하고 점심은 입맛에 맞지 않는 기내식으로 요기를 해서 모두들 허지진 모습이다. 그래서 방콕의 한식 식당에 가서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김치찌게와 제육 볶음, 김치와 깍두기 등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식당 안에도 거의 한국 사람 뿐이었다. 우리나라로 착각 할 정도였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 방을 배정 받고 카드키를 받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카드를 넣어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있었다. 방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호텔보이가 짐을 가지고 와서 넘겨 받으며 난생 처음 팁이란 것을 주었다. 1달러 짜리 지페 한장,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미국인 들이 우리나라의 호텔에서 팁을 줄 때도 이런 마음일까? 허리가 아파서 따끈한 물로 목욕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모여 고스톱을 하고 나는 침대에 엎드려 몇자 적어 보았다. 그리고 가이드가 가르쳐 준 태국 말을 잊어 버릴까봐 기록을 했다. 안녕하세요/싸와티 캅(남자) 안녕하세요/싸와티카(여자) 고맙습니다/코큰캅(남자) 고맙습니다/코큰카(여자) 사랑합니다/폼났군(남자) 사랑합니다/잘났군(여자) 화장실/흥남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코미디 같은 말이다. 나는 가이드가 농담을 한 것이줄 알았는데 화장실을 찾을 때 흥남이라고 해 보았더니 태국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밤 11 시쯤 되었을까?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처음엔 잠이 안오더니 언제 잠이 들었는지 죽은 듯 깊이 잠이 들었었나 보다. 고스톱이 끝나고 남편이 방에 들어오려고 방에 콜을 해도 기척이 없고 방문을 노크해도 문을 열어 주지않아 몸이 아파서 못열어 주는지 알고 걱정들을 많이 했나보다. 몸이 안좋은 상태라는것을 일행들이 알고 있었기에.... 회원들 모두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했다. 다음날 아침 모닝콜을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서 뷰페식으로 식사하고 방을 체크아웃 했다 우리 일행은 왕궁으로 향하였다. <" 왕궁과 에멜라드 사원 "> 1782년 현 왕조인 방콕 왕조가 라마 1세에 의해 방콕에 건국되면서 세워진 왕궁과 사원이다
왕궁이라 해도 공식행사 때만 사용되고 있으며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본당은 1780년 라마1세 의해 세워졌으며 아유타야 시대의 왕궁을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세개의 문이 진주조개로 장식되어 있고 그것을
지키는 6마리의 청동사자가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녹색 반투명의 빛나는 벽옥(jasper)
만들어진 높이 75 폭45센치미터의 에메랄드 불상이 있다 라마다 불교사원의 이미지와는 달리 짙은 남빛과
오랜지 빛갈의 3층지붕 벽에 수놓아진 화려한 모자이크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불탑 등은 극락정토를 이 세상에 재현 시키는듯한 약동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원 내의 모든 벽에는 석가의 생애와 붉은 우주관을 표현 하는그림이 그려져 있고 복도 입구에는 불교의수호신 나크가 서있으며 내부 벽에는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라마야나의 타이어판인, 라마키엔의 세계가 그려져 있어 오랜세월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면서 서로의 종교세계에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 왔음을 알수 있다
이 왕궁과 에멜라드 사원을 입장할때는 관광객은 반바지차림과 소대나시를 입고 입장할수 없다 병사들이 입구에서 감시를 하고 있다 왕에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함이라 한다 왕궁에 들어 갈 때는 복장을 단정히 하여야 입장이 가능했다. 슬리퍼를 신는다든지 짧은 바지를 입으면 입장 할 수가 없다. 방콕을 수도로 하는 태국의 현 왕조의 역대 왕에게는 라마라는 호칭이 붙는다. 창립자인"차오프라야 차크이" 의 이름을 그대로 따라 "차크리 왕조" 라고도 하고 타이의 국사상 표현으로서 "라타나코신" 왕조하고도 하며, 방콕의 원래 이름인 "크릉텝"의 이름을 따서 "크릉텝 왕조" 라고도 한다. 아유타야 왕조가 외적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자 피야타크신이 아유타야 왕조를 개창하고 톤부리를 수도로 하는 "톤부리" 왕조(1767-1782)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포악한 정치로 말미암아 "피야타크신"은 처형당하고 1782년에 그의 뒤를 이은 "차크리"가 수도를 대안으로 옮겨 그곳의 이름을 "크롱텝"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지금의 방콕이며, "차크리"는 방콕 왕조의 창시자로 라마 1세"푸타요트파출락록" 이라 칭하고 1782년에서 1809년까지 재위 하였다. 그는 아유타야 왕조의 번영을 되살리기 위하여 국민의 정신적인 통합을 불교에서 구하고 [삼인법전]을 제정하여 국내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힘썼다. 차크리이후 1809년에서 1824년까지 재위한 2세 왕까지는 정책적인 면에서 매우 폐쇄적이었으나 3세왕(재위 1824-1851)에 이르러서는 영국 및 미국과의 화친 조약을 맺는 등 개방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4세왕인 "몽쿠트" (재위 1851-1868)에 이르러서는 영국과 "보링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처음으로 자유 뮤역을 허용하여 문호를 개방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타이는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즉, 타이는 쌀 생산이 크게 확대되었고, 사람이 살지 않았던 "차오프라야강" 대평원 일대를 개간하여 그 수요를 충족시켰다. 타이의 근대화는 5세왕 "출랑롱코른"(재위1868-1910)에 이르러 본격화 되었다.
유럽의 행정 제도를 도입하여 사법적 행정적으로의 개혁을 꾀하는 한편 노예제도를 폐지함으로써 국가의 권력이 특정 지배자에게 집중되었던 전제 왕정을 계몽하였다.
또 유학생들을 해외에 파견하는 등의 정책으로 근대화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영토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게 넘겨 주어야 하는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타이의 독립을 지켰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타이인들로 부터 숭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6세왕 바지라부드(재위 1910-1925)는 불평등 조약을 바로잡는 데 힘썼으나. 7세왕(재위 1925-1935)에 이르러 1932년 인민당이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타이국이 절대 왕정에서 입헌 군주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혁명 정권이 의회 정치의 권력을 장악하고, 왕권의 확장과 유지를 주장하는 왕당파가 힘을 잃게 되어 왕권이 쇠퇴하자 이에 실망한 왕은 영국으로 이주 하였다. 7세왕은 1935년에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퇴위하였고, 인민대표 회의에서는 5세왕 "출랑롱코른" 의 제2왕비에 의한 왕손인 "아난다마히돌"을 8세왕으로 뽑았다.
8세왕은 1935년에서 1946년까지 왕의 자리를 지켰으며, 그의 동생 푸미볼 아둘랴데스가 그의 뒤를 이어 라마 9세왕으로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미니시암(Mini Siam)
세상속의 또 다른 세상, 미니시암... 태국은 수세기 동안 사이암(Siam) 으로 세기의 사람들에게 불리워졌다.
Sukhothai, Ayutthaya와 Rattanakosin 왕조를 거치는 700년의 역사를 거스르며 형성된 각종 예술, 문화가 동서남북 각 지역으로 흩어져 풍부한 고대 예술품 및 문화 유산이 이곳 미니시암을 통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다.
태국 최초의 소인국 미니시암에서 에메랄드 사원, 새벽사원, 왕국 등의 조각,
건축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유명 문화 유산과 역사가 1:25로 축소된 소형 모델로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다.
미니시암을 모두 둘러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총 2-3시간 정도이며 입구에 들어서면서 부터 100여 가지가 넘는 세계의 유명지역(프랑스의 에펠탑, 영국의 타워 브릿지, 러시아의 바실성당,이탈리아의 바티칸 왕국, 우리나라의 김포공항 등 명소 60여곳) 부터 시작하여 각각 특색있는 문명과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된다. 또한 이것을 만든 숙련된 장인들의 정교한 솜씨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개장은 오전 7시에 시작하여 오후 10시까지 관람 할 수 있다. 미니시암은 여러나라의 건축물을 작게 축소 시켜 놓은 조형물로서 우리 나라의 남대문이 그 곳에 있어서 색다른 감동이 있었다. 에펠탑도 있었고 찬란한 불빛도 야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산호섬에서 낙하산을 탔는데 등뼈가 쭉 뻗는 느낌이 아주 시원했고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네를 타는 것 보다도 안정감이 있었다. 바나나 보트를 탈 때 아슬 아슬 했는데 두 번이나 물에 빠져서 바닷물을 먹었다. 맑고 고운 색이 우리나라 바닷물 과는 색이 다르다. 우리나라 바다물은 남성적인 푸른색이라 한다면 태국의 바닷물은 여성적인 푸른색이랄까? 표현력이 모자른 나의 능력의 한계가 원망스럽다. 석회석이 많다는 모래는 아주 고와서 미세한 분말이다. 발에 닿는 감촉이 너무너무 좋았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두시간 동안이나 물놀이를 했더니 허리에 있던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 바닷물의 온도가 우리의 체온과 맞춰 놓은 것처럼 만족한 감촉이었다. 그리고 바닷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엄동설한인데 이렇게 여름의 날씨를 즐기다니!! 야릇한 감동에 행복감을 느꼈다. 수상시장에 갔을 때는 배 주위에 큰 물고기 떼가 몰려와서 사람들이 주는 빵을 받아 먹었다. 물고기 팔자가 상 팔자다. 불교의 나라에서 사는 물고기의 특혜!! 행복한 태국의 물고기들이다. 태국사람들은 불교를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으면 개로 환생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개를 죽이지도 않고 학대하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땅에 누워 있는 개들이 자주 눈에 띈다. 태국에 가서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체험했다. 코끼리도 타보고 코브라도 만져보았다. 코브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감촉이 너무 좋았다. 고사리 같은 아기의 손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이 너무 좋았다. 차갑고 징그럽게만 생각 했었는데 의외였다. 비단 구렁이도 목에 걸어 보았는데 너무 커서 좀 무겁고 역시 비단의 느낌처럼 부드러웠다. 코브라와 다른점은 촉촉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악어 농장에서 구렁이를 목에 감고 사진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비단구렁이와는 다른 감촉이었다.
비늘이 만져지고 갑옷이 연상되는 감촉이었다. 시원한 감촉의 악어를 두 팔과 머리에 올려 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두서가 없이 나열을 하면서 이다음에 여행을 하게 되면 꼼꼼이 메모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하여간 동물 쑈도 재미있었고 안마 덕분에 요통도 치료가 되었다. 태국의 안마 기술은 대단한것 같다. 훌륭한 기술이다. 다음에 또 안마를 받아보고 싶을 정도로.... 알카이 쇼에서 여체의 아름다움과 프로 정신의 당당한 자부심을 보았다.
신비한 예술성으로 인정하고 싶다. 게이 쇼도 보았는데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가무가 황홀해서 내가 신선이 되어 천상계에서 천사들을 보는 듯 하였다. 신기한 과일도 많이 먹었고 아들 딸 시계선물도 사고 양귀비 꿀이라는 것도 사고 진주 크림도 사고 .... 해외 여행의 매력에 취해 일년에 한번 씩 세계 각국을 돌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월 17일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차창을 내다보니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국의 쭉쭉 뻗은 나무와 비교가 되었다.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몸매를 하고 있는 태국 사람들은 아마도 잎이 없는 우리나라의 겨울 나무들을 보면 죽어 있는 나무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에왔다. |
첫댓글 이와 같은 기행문을 많이 붙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