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크면 깃 각도 넓게… 소매 길이는 수트보다 1~2㎝ 길게
오래도록 우리는 드레스셔츠를 와이셔츠라고 불러왔다. 화이트셔츠가 와전되어 굳어진 일본식 발음이 와이셔츠이다. 남자의 옷이 쇼핑보다 교양의 문제라면 각각의 아이템을 옳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수트나 재킷 안에서 브이존을 완성하는 이 제품은 드레스셔츠 혹은 셔츠라고 지칭하는 게 옳다.
둘 다 면(Cotton)으로 만들지만 티셔츠가 아닌 셔츠를 입는다는 건 일단 복장에 예의를 부여하는 의미를 가진다. 수트 차림이라면 셔츠는 그 안에서 타이와 어우러져 정장을 완성하는 도구인 동시에 겉옷과 인체를 연결하는 속옷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셔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수트나 재킷과 함께 함으로써 공동의 의미를 향해 기능하게 된다. 또한 수트나 재킷 같은 테일러링 제품들과 같이 입기 때문에 셔츠의 패턴도 수트의 구조와 매우 유사해진다. 즉 인체의 곡선을 반영해서 움직임을 편안하게 도우면서도 가슴과 허리 혹은 목 부분의 핸디캡을 효율적으로 커버해주는 것이 셔츠의 역할인 것이다. 티셔츠란 입는 순간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위에 재킷을 입어도 큰 변화가 없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좋은 셔츠는 수트 아래에서 방해가 되지 않는 셔츠, 착용자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배려하는 셔츠, 궁극적으로는 수트와 함께 움직이는 셔츠이다.
올바른 셔츠를 구하기 위해서는 깃의 모양, 사이즈, 그리고 소재 이 세 가지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
목 주위를 둘러싼 셔츠 깃의 각도나 사이즈는 무엇보다도 착용자의 얼굴과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이루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얼굴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에게 지나치게 각도가 좁은 셔츠는 부자연스럽다. 반대로 좀 작은 얼굴을 가졌는데 120도가 넘는 각도에 깃의 길이도 몹시 긴 스타일인 와이드스프레드 셔츠는 몸의 비율을 부정적으로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운동 등에 의해 체중이 늘어나거나 줄어들더라도 뼈의 구조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셔츠의 깃은 유행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맞춰 선택해야 한다. 이탈리아 남성들은 셔츠가 몸에 꼭 맞는지를 까다롭게 따지지만 아직 우리나라 남성은 목 둘레나 몸통은 넉넉하게, 소매는 짧게, 깃의 각도는 좁게 입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신에게 잘 맞는 사이즈의 셔츠를 고르려면 다음 두 가지 지침을 기억해 두면 편리하다. 세탁 후에 면 소재가 5~7% 정도 수축된다는 것을 감안해서 목둘레에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가는 사이즈, 그리고 수트의 소매 끝에서 항상 셔츠가 1~2㎝ 정도 드러나 보이는 정도의 길이.
셔츠의 마지막 선택 기준은 소재다. 셔츠의 옷감은 착용자의 피부에 직접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편안하면서 건강에도 좋은 셔츠의 소재는 언제나 100% 면이었다. 순면으로 만든 드레스셔츠는 거친 면이나 다른 소재로 만든 셔츠보다 고상해 보일 뿐 아니라 땀을 흡수해주므로 쾌적하다. 따라서 면의 종류, 퀄리티, 가격은 분명 다양하겠지만 한여름의 리넨을 제외하고서는 언제나 면 소재를 기본으로 생각해야 하며 쉬운 다림질의 유혹에 빠져 혼방 소재의 셔츠를 생각하지는 않는 게 좋다.
셔츠를 바르게 입는 Tip
■ 수트 차림에서 기본이 되는 셔츠 색상은 화이트와 블루 두 가지다. 다만 재킷 차림이라면 다양한 색상의 셔츠를 자유자재로 입는 것이 좋다.
■ 유럽에서 셔츠는 속옷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상의를 잘 벗지 않으며, 그 안에 다시 속옷을 입지 않는다. 미국에서 셔츠는 캐주얼바지와 함께 입는 겉옷이다. 셔츠 안에 다시 속옷을 입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 항상 수트 소매 끝에 셔츠가 보여야 함을 기억하라. 1㎝든 1.5㎝ 든 그것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언제나 셔츠는 조금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트 안에 반팔 셔츠를 입지 않는 것이다.
■ 최초의 셔츠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조끼가 점점 없어지면서 그 대용으로 만든 것이 셔츠의 주머니다. 그래서 주머니 없는 드레스셔츠가 사실은 오리지널이다.
■ 양쪽 깃에 버튼이 달린 버튼다운 칼라의 셔츠는 원칙적으로는 수트와 함께 입지 않는다. 골프 셔츠에서 유래한 버튼다운 셔츠는 캐주얼용이다.
■ 남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셔츠는 결국 맞춤셔츠다. 하지만 좋은 테일러가 있는 곳에서 당신의 몸을 세심하게 측정한 후 제작되는 맞춤셔츠만 그렇다. 혹시 그 셔츠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고 싶다면, 그 위치는 소매나 뒷목이 아니라, 왼쪽 갈비뼈 끝 부분이다. 그래야 상의 단추를 잠그고 나면 이니셜이 보이지 않으니까. 남자는 이름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