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사랑이 춤추는 곳이다. 평소에는 포근한 바다지만 태풍이 불어오면 무섭다. 바다를 볼 때마다 지난날의 향수가 느껴진다. 특히 송도 바다는 젊은 시절 내게 사랑과 그리움을 만들어 준 곳이다
70년대의 송도는 거북섬과 케이블카, 해수욕장이 유명했다. 바다 위에 거북이가 떠 있는 형상의 바위섬이 있다. 수세기 동안 지나오면서 든든히 바다를 지켜냈다. 옛날에는 출렁다리를 타고 거북섬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흔들어도 출렁거려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비명 소리를 지르면서 건넜다. 품에 안긴 아이들도 겁을 먹고 움츠렸다.
거북섬에 우뚝 솟은 거북바위는 무거운 등짐을 지고 살았다. 등 위에 화려한 횟집과 전망 좋은 커피 집을 올려놓아 어수선하면서도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그 등에서 출렁대는 파도를 보면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을 더하면 세상이 전부 내 것으로 보였다. 야간에는 거북섬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들이 아름다워 청춘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기 좋은 장소였다.
옛날의 케이블카는 송도 윗길을 올라가야 탈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송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해안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를 마음껏 즐겼다. 총각 시절에는 송도 연안에서 보트의 노를 저어 멀리까지 나갈 수 있었다. 한번은 친구와 보트로 거북섬을 돌다가 파도에 밀려 지나가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거센 파도를 겨우 빠져나왔지만 젊음의 스릴은 있었다. 또 한 해 여름에는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거북섬까지 고무보트를 타고 수영하다가 다리에 쥐가 내려 생고생을 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과거 송도는 ‘아나고회’가 유명했다. 우리말은 ‘붕장어’인데 ‘아나고’라는 일본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보통 단체로 가서 회를 킬로그램 단위로 시켰다. 졸깃졸깃한 붕장어회 한 점의 달콤한 맛이 생각나 금년 추석명절에 가족나들이를 했다. 과거의 거북등에 지고 있었던 무거웠던 횟집들과 장식은 벗었다. 본래의 모습을 찾아 바다에 덩그렇게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등위를 걸어 다니면서 바닷속 물고기를 탐색하기도 했다. 등 위에서 소주 한잔을 찾던 시절은 멀리 떠났다. 이제 출렁다리는 사라지고 어디 있었는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 해수욕장의 바닷물과 모래는 그대로였다.
송도에는 해상케이블카도 새로 만들었다. 옛날에는 거리가 짧아 종착지인 거북섬에 금방 도착했으나 지금은 송도 바다 위를 가로질러 암남공원까지 먼 거리를 날아갔다. 상쾌한 바다와 멋진 해안 풍광을 바라보면서 공원전망대에 도착했다. 추석명절이라 ‘할아버지, 할머니’ 하는 어린아이들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공룡이 있었다. 살아있는 공룡 다섯 마리의 모습을 재현했다. 공룡이 고개를 들고 각각 다른 목소리로 한 마리씩 돌아가면서 울었다. 공룡이 내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손자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귀여웠다. 전망대에서 남항 쪽의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흐려 대마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마도는 맑은 날이면 태종대, 다대포, 이기대 등 어느 해변에 가도 바다위에 가로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볼 때마다 왜 저 섬이 우리의 땅으로 만들지 못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송도의 해변에 치유의 숲길이 있다. 해안을 따라 숲속 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울창한 소나무의 진한 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걸었다. 솔잎 너머로 안개 낀 바다가 희미하게 보였다. 이곳은 혈청소로 2차대전 당시 옛날 일본군의 전초기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마음이 무겁다.
오는 길에 거북섬 옆에 작은 보트장을 보았다. 보트가 몇 대 밖에 없어 초래했다. 여름 나절에 해안을 즐기며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던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는 올 여름에 사고가 났던 다이빙대와 거북섬이 덩그렇게 해안을 지키고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송도는 새로워졌다. 무엇보다도 거북바위가 거대한 등짐을 벗고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바다위의 구름다리도 해상케이블카도 해변에 있는 치유의 숲길도 달라졌다. 해안 주변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빌딩과 아파트가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는 허름한 주막집과 산기슭에 쓰러져 가던 주택들은 없어지고 새로운 송도로 거듭 태어났다. 토요일 밤의 횟집거리는 찬란하고 빛났다. 한참동안 먹거리 골목으로 이름을 날린 곳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니 지난날의 멋이 새롭게 살아난다.
송도바다는 젊음을 불태우고 한때의 사랑이 꽃피던 곳이다.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해수욕을 즐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세월이 훌쩍 지났다. 지금도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찾아주던 송도가 그립다. 내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