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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불 님의 미소!
답사기를 참 오랜만에 써 본다. 답사기를 잘 안 쓰려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쁘기 때문이
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고의든 아니든 도식화 된 헌 내기들의 글은 재미가 없고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동에는 세련되고 매끈한 글들도 보이지만, 나는 어딘가
부족하고 용어 선택이 어수룩한 새내기의 글을 더 좋아한다.
느낌이 솔직하고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이런 새내기들의 글을 유도하려는 욕심도
답사기를 제대로 안 쓴 이유중의 하나다.
이번 답사기의 제목을 꽃불님의 미소로 첫머리에 언급하는 것은, 이번 답사의 진행상황을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캐릭터로서 꽃불님의 미소가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답사 진행 중에 간간이 등장하는 꽃불님의 어수룩한 미소는 꾸밈이 없고 정감이 가는
서산마애불의 미소를 연상케 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쑥스러워서 할말을 잊는다고
실토하면서, 왼쪽 오른쪽 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다가는 명언을 한마디 던지고,
사람들이 웃으면 이번에는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보낼 때의 모습이
때묻지 않은 총각을 대변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대경의 미남 꽃불님과 돌방님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다면 선산 골짝골짝 마다 펼쳐진
그 많은 답사지를 어떻게 편하게 다닐 것인가? 모내기 하다 온 사람같이 울퉁불퉁
근육질을 드러낸 체 바지를 둥둥 걷고 아가씨들의 손을 잡아 개울을 건네주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노라면 얼동의 장래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일년 중 가을 답사를 가장 좋아한다. 가을의 초입에는 황금벌판을 달리는 기분이 상큼하고,
깊어 가는 가을에는 온천지가 단풍으로 물들고, 그 물결을 헤치고 다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풍성한 과일과 김밥이 어우러진 도시락을 먹는 식사시간 또한 유쾌하다.
하지만 이번 답사의 의미를 아들과 함께 한 기차 여행에서 찾고싶다.
지금까지 기차를 한번도 못 탄 아들놈과 열차여행 하는 것으로부터 답사를 시작한다.
업고 안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빠와 장난까지 치니 세월의 빠름도 느껴지지만,
한편 건강하게 자라 준데 대한 고마움으로 마음이 뿌듯하여 한번 안아본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어 보지 못한 탓일까. 둘만의 시간 속에서 느끼는 정이 새롭다.
나는 얘들과 어울려 놀 줄 모른다. 가끔가다 잔소리 하는 것 외엔 아빠의 역할이 별로 없다.
나의 정체성을 이을 자식이란 점은 한없는 흐뭇함을 주지만, 품안의 자식이라 이놈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가능한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할 땐
섭스레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황금들판의 시원함과 편안함을 맛보면서 열차로 달리는 선산, 구미는 태풍의 흔적은 찾을길
없고 따사로운 햇살만 온 누리에 가득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7시경 숙소에
도착했다. 제법 규모가 큰 청소년 수련관은 철지난 탓으로 설렁하지만 잠시후면 시끌벅적
하겠지 생각하며 짐을 풀었다.
30여분이 지나 꽃불님과 돌방님이 도착하고 한참후 달이님과 진짜거지님,퀴나스님,마지막으로
김해 스투파님이 도착했다.비온후 갑자기 쌀쌀해진 탓으로 숙소를 가든으로 변경했다.
우리가 묵은 가든은 보천사지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절 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분위기
하면 꺼벅 넘어가는 월유.달이가 불고기 화로를 중심으로 마주 앉았고,그 옆으로 딱 버틴
퀴나스님과, 뭔가를 시작하려는 듯한 표정의 거지님,이쪽저쪽 모서리에 앉아 빙그레 웃음만
보내고 있는 꽃불과, 그 웃음의 의미를 안다는 듯한 표정의 돌방님,히얀한 사람들이 펼치는
이 밤의 향연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스투파님의 모습이 앞풀이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이런 술자리가 그립고, 이런 자리에서의 담소가 그리워 나는 전야제를 잘 찾는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오고가는 문화와 예술의 담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울분 속에 마시는 술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지 즐거움 속에
마시는 술은 인생의 묘미를 더할 것이다. 이 즐거움 속에서 주고받는 선산약주의 맛은 정말
꿀맛이다. 보통 쌀로 빚은 곡주는 뒷맛이 상큼하지 못한 게 약점이다.
이 점 때문에 젊은 층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선산약주는 끝맛이 약간 달콤한
듯 달짝지근한 듯 맛이 그저 그만이다.
색깔도 옅은 금색이니 취기가 오른 달이님의 홍조와 어울리고, 약주에 두손들고 김삿갓처럼
도망 갈까봐 창밖엔 장대비가 쏟아졌다.
게다가 나의 후계자가 되려는지 술맛을 돋우려고 꽃불님이 백자잔 까지 준비해 왔고,
나는 술맛이 좋다고 연신 감탄사를 남발하고, 이 술맛을 아는 듯 1분이 멀다하고 서울의
소주님이 전화까지 해댄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찌 술맛이 나지 않겠는가! 나는 요런 기회가 오면 양산도라도 한 곡조
하려고 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민요를 부를 수 있는 곳은 우리얼 밖에 없는데 말이다.
우리의 자리를 오래도록 이어 주려는 듯 밖에는 예쁜 달이 구름사이에서 고개를 내민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당으로 뛰쳐나가고 다시 술잔이 오고갔다. 달밤의 체조에 얽힌 옛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달의 여신 항아를 안주 삼아 깊은 밤을 지새우려는 듯 진짜님이 본격
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번 답사 땜마다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는 게 나의 취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진짜거지님이 대경의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임을 나는 예견했다.
대화명 부터가 소탈함과 철학적 사유를 즐기시는 분임을 알았고, 대학 강단에도 서시고
학문의 깊이도 엿보였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뽐내심 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 틀림없는
신인상 감이다.
문화와 예술을 안다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학문적 거만함이 베어있다.
따지자면 조금 더 배운 것과 얼동 발전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지식인의 속성이기도 하니
애교로 봐 줄 수는 있다. 우리들 앞에 설자는 문화와 예술을 갈망하고,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회원들에게 나침반 같은 역할이면 충분하다.
엉터리는 곤란하지만 정확한 학설과 세련된 강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울려 답사 다니면서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개인이 챙길 일이고, 일반 회원들에겐 약간의 가이드 역할만 있으면
된다.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속에 밤을 지새우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듯 꽃불님은 불쑥불쑥 나타나서
편안한 미소를 보내면서,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니 하는 말인즉
" 저..저~ 월유님~ 다른 게 아이고요~~ 내 입장에선... 내일이 문제인데요~~~ 그래 마치자
이 말이가? 그럼 퍼뜩 말하지 ...." 우리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일제히 잠자리에 들었으니
이야말로 꽃불님의 미소 탓이 아닐까?
밤사이에 그렇게 쏟아졌든 비는 씻은 듯 멈추고, 아침 햇살이 오늘의 답사가 멋질 것임을
예견한다. 이번 답사의 백미는 황금벌판을 달리는 기분이다. 소설가들이 툭하면 황금벌판
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진짜 그 벌판을 달려 봤는지 아니면 관념적으로 하는 소리인지를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난다. 너무 아름다운 탓일까?
눈앞에 펼쳐진 이 상큼한 가을 들판의 전경을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또 있을 것인가?
시원스레 쭉 뻗은 지방도와 농노 길을 달리면서 맛보는 농촌의 아늑함이라도 없다면
공업도시 구미는 얼마나 삭막한 도시가 될 것인가?
첫답사지 금오서원의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우린 잠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수 없는 시간동안 우리들과 함께한 역사가 남겨진 곳이다. 금오서원에서 일어난
일도 낙동강에서 일어난 일도 모두 알고 있다.
때로는 눈물을 씻어 주기도 기쁨을 실어 주기도 한 어머님의 품같은 낙동강이지만, 이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 땅의 모태인 금수강산은 인간의 무지함과 오만함을 용서할까.
금오서원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의 주인공 길재 선생을 모시는 사당이다.
선산은 길재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영남의 걸출한 인물이 배출된 명소다. 내욕심으로 다른곳은
몰라도 이런 유명 서원에서 5분 강의라도 한번 하고 싶지만, 남의 집에 와서 나서는 게 모양이
안 좋고 유학에 대해 한칼 하시는 팔공님이 계시기에 그만뒀다.
조선의 성리학에 대한 그 계보를 파악하면, 송에서 흘러온 주자학이 조선에서 성리학으로
꽃핀다. 고려말 안향(소수서원)으로 부터 - 길재 - 김숙자 - 김종직 -김일손 - 이언적 -
이황,조식으로 영남학파를 이룬다. 그 기반은 영남 사림의 뿌리를 이루고 사림으로서
기골은 의와,경의 철학으로 이어져 민주화운동의 선구가 되고, 실사구시의 사상적 토대는
우리 나라 대기업의 뿌리를 이룬다.(삼성구룹,롯데구룹,엘지구룹,한보구룹 등등)
길재 외에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다음 답사지 죽장동 오층석탑으로 가는 길은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우리 일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춤을 춘다. 가을임을 알려주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다. 하늘거림이 좋고 수수함이 좋다. 산들바람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꽃이다.
그런데 언젠가 개량종 외국 꽃이 색깔도 일률적으로 온천하의 도로를 점령한 체 탁 버티고
있는 모습이 꼭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같다.
죽장동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으로 높이가 10m로 국내 최대의 규모이다.
선산읍내에서 약 2km 떨어진 죽장사에 있다. 탑의 기단부분에는 잘 다듬은 돌을 지면 위에
쌓고, 그 위에 상하 2중의 기단을 마련하였다.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탑의 지붕돌 경사면이 층단을 이루는 형태는 벽돌 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형
석탑에서 나타나는 것은 드문 예이다.
특이한 것은 석탑의 몸돌에 탱주나 우주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석탑은 벽돌 탑을 모방한
모전석탑으로 볼 수 있다. 스투파님의 설명과 멀리 정자에서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바라보는
석탑이 아름답고 장엄하다. 전성기 때의 대찰의 규모를 그려보면서 다음 답사지 도리사로 향했다.
도리사는 진입로의 아름다움이 일품이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숲길은 도시인들에게는
매력 만점의 코스다. 적당한 스릴을 주는 경사와 노송과 단풍이 만들어 내는 화음이 답사객에겐
더 없이 좋은 선물이다.
도리사는 신라최초의 사찰로서 눌지왕 초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 세존진신사리탑과
아도 화상 사적비 등이 있다.얼마전 조선시대 석종형 부도에서 육각형 사리탑이 나왔고,
그 속의 사리는 도리사 적멸보궁에 모셔지고 사리함은 직지사에 보관 중이다.
극락전과 아미타불상이 문화재이지만 안내가 없었던 탓에 그냥 지나친 게 아쉽다.
오늘의 점심은 사찰에서 하기로 되어있다. 사찰에서의 점심공양은 별미다. 할머니 보살님들
의 손맛이 깃든 비빔밥과 절 떡의 맛은 분명 특별한 맛이다.
여기저기 그늘에 앉아서 뜯어먹는 떡맛이 도시에서는 왜 맛이 없을까?
다음답사지 낙산동 삼층석탑은 동네를 지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탑의 생김새가
죽장동과 거의 동일하다. 갑자기 탑의 설명을 명하기에 내 나름대로 현장에서 보고 분석한
바를 설명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설명의 오류가 있었다.
죽장동 오층탑의 2층 기단에는 탱주가 없고 이 탑은 탱주가 있다고 했는데 내가 착각한 것
같다. 탱주가 없는 것은 기단이 아니고 몸돌이였다.
잘못된 설명은 왜곡된 지식을 전하는 것이므로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곳에 대사찰이 있었다는 것은 신라사회가 농경사회라는 점과
통일전후의 시기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선 어렵다.
노랗게 익은 감나무 숲으로 둘러 쌓인 모래정가는 가을답사의 묘미를 더해준다.
나무아래에 둘러앉아 가을이 익으가는 분위기에 흠뻑 젖어 홍시도 따먹고 음료수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지막 답사지 주륵사지로 향했다.
황토 흑으로 덮인 산길과 계곡물소리, 여기저기 한번 만져보고 가라는 듯 얼굴 내민 들꽃들과,
잘 익은 탐스런 감들이 향연을 펼치는 오솔길을 한참이나 오르니 경주남산의 폐사지 같은
주륵사지가 보였다.
이곳에 이렇게 큰 절터가 있음에 놀랐고, 너무나 아름다운 삼층석탑에 또 놀랐다.
이 탑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석가탑과 형상이 비슷하고 잘생긴 멋진 탑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페사지에 무너진 탑재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처음 봤다.
이 곳은 일성김씨 문중산으로서 이 절을 감싼 산세가 경주남산과 너무나 흡사하고 보살이
주석할만한 산이다.
무너진 탑재 여기저기에 앉아보고 만져도 보고 복원도 얘기했지만 아쉬움을 달랠 길 없다.
이리저리 몇 번을 둘러 본후 답사 마무리를 위해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이로서 황금벌판과 코스모스가 반기고 미소가 좋았든 구미.선산 답사를 마무리하고 답사 내내
기다렸든 선산약주 마시는 시간이다. 개울가에서 발담그고 한잔하자는 제의에 제일 좋아하는
이는 퀴나스님이다.술과 예술과 우정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우리얼에서 언어표현이 가장
명확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제법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 안주 삼아 , 여기저기 널린 돌덩이에 자리잡고 약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진짜님의 술 솜씨는 나의 연구 대상이다. 황금빛이 감도는 약주를 들고는,
한잔의 술이 들어가야 제대로 몸이 풀린다는 신인이시다.
팔공님의 일행으로 오신 점잖으신 분은 언뜻 보면 강우방 선생님과 비슷한 외모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좀더 많은 얘기를 하면서 주고받고 싶은 분이다.
뒤풀이에서 한번 더 뵙고 싶었지만 김해까지 가야하는 사정으로 인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약주 두병을 다 비웠지만 뭔가 아쉬운 듯한 퀴나스님을 보노라니 이런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달이님이 생각났다.점심후 자리를 비운 사이에 김천으로 갔다.
애라 ~~모르겠다 원주답사에 또 갈까?
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삼국시대 부터 있었다는 연지에서 모여 아쉬운 작별을 했다.
뭔가 흡족한 듯 어설프게 활짝 웃는 그 미소의 주인공 꽃불님과 돌방님! 답사가 끝나는데
이제사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친근하고 순박한 아름다운 미소를 뒤로 한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뒤풀이를 상상하면서
오늘의 답사를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시간은 아쉬움의 연속이었지만, 스투파님의 정돈된
인생철학을 들으면서, 행복한 가정의 한 단면을 보면서 유쾌한 답사를 마무리한다.
끝.
2002. 9. 29 월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