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티엠알(TMR)
“티엠알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비빔밥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올바른 답이 아니다. 단순하게 사람이 먹는 음식과 가축에게 급여하는 사료라는 점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조리하고 제조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소(牛)는 초식동물(草食動物)로서 사람과는 오랜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온 주요가축으로 용도에 따라서 크게는 육용(肉用)과 유용(乳用) 그리고 역용(役用)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농업의 기계화가 발전하기 이전에는 역용으로서의 역할이 컷으나 운송수단을 비롯한 농업의 기계화에 따라 육용으로서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람의 기호성에 맞추어 육질이 좋은 고기를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개량하고 젖소의 경우에는 고품질의 우유를 보다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육종을 하게 되었다.
특히, 한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품종으로 우리민족과는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단순히 가축으로서의 정서를 넘어서 때에 따라서는 정신적인 면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어 식구(食口)와 같은 정도의 대접을 받으면서 ‘생구(生口)’로 불릴 정도로 친숙한 관계를 맺어온 동물이기도 하다.
국가경제의 성장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에 의하여 소 사육은 무거운 짐을 나르고 농사에 힘을 제공하는 지난날과는 달리 식탁에 올라 동물성단백질의 공급과 아울러 사람의 미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환금(換金)자원으로서의 역할이 증대함에 따라 다두사육체계를 갖추고 경제적으로 높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저비용(least cost)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성장과 생산단계에 따른 고기나 젖의 생산성에 적절한 영양요구량을 공급하기 위하여 급여하는 사료와 사육방식에 더하여 사육환경 등에 대한 투자와 함께 경제적인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지속하여왔다.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영양섭취의 기본지침이라 할 수 있는 ‘영양표준(營養標準 nutrition standard)’은 사람이 자신의 기호와 필요에 따라서 스스로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골라서 먹을 수가 있으므로 능동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면, 사육을 당하는 가축에 있어서는 사육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제적인 효과를 최대화 할 수 있도록 ‘사양표준(飼養標準 feeding standard)’을 정하여 사양관리를 하기 때문에 가축개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급여하는 대로 먹어야하기 때문에 메뉴의 선택에 있어서 피동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축산업의 경제적인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일정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축산관련 단체와 연구기관 등에서 부단한 연구와 노력을 함으로서 관련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비빔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대표적인 요리의 하나로 주식인 밥에 반찬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비벼서 먹는 요리로 제사에 제물로 올린 음식을 나누어 음복하는 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을 하는 견해가 있으며, 산신제(山神祭)나 동제(洞祭)와 같이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경우에 식기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물(祭物)은 사람과 신이 같이 먹어야(神人共食)한다는 생각으로 하나의 그릇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비벼서 먹었고, 실내에서 지내는 제사에서는 제물을 빠짐없이 음복(飮福)하기 위하여 밥에다 제찬(祭粲)을 고루 섞어 비벼서 먹었을 것으로 보는 관점도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일손이 바쁜 농촌에서 새참이나 들밥을 먹을 때에 나물 등의 반찬과 고추장 같은 양념을 큰 그릇에 넣고 두루 섞어 비벼서 먹는 등 밥과 반찬을 특별하게 구분하지 않고 간편하게 해서 먹는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후기인 1800년대 말엽에 편찬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干納)은 부쳐 썬다. 각종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넣고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빔밥은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류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대에 이들 주곡을 절약하고 주변에서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와 여러 가지 재료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지방에 따라서 특색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전주(全州)와 진주(晉州)의 비빔밥이 유명하다. ‘전주비빔밥’은 콩나물을 주된 재료로 하여 콩나물국과 곁들여 먹는다. ‘진주비빔밥’은 놋그릇에 흰밥과 다섯 가지 나물을 얹어 먹는데 콩나물 대신 숙주를 쓰고 육회(肉膾)를 얹어 먹는 것이 특징으로 선짓국을 곁들여 먹는다. 안동(安東)에서는 '헛제삿밥'이라고 하여 제사음식으로 올리는 나물 등 여러 재료를 넣어서 비벼먹는다. 바다에 접하여 멍게양식업이 발달한 통영과 거제에서는 ‘멍게비빔밥’이 멍게 고유의 향(香)에 더하여 색깔이 미식가의 구미를 유혹하고 있다.
티엠알(Total Mixed Ration)이란 되새김을 하는 초식가축인 소와 염소에 주로 이용되며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포함하여 가축이 잘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인 급여시스템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정의할 수 있는데, 어린가축이 성장과정을 거쳐서 성체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 개체의 상태와 젖소의 경우 우유생산량과 같은 생산성에 따라서 적절한 급여체계를 갖춤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일반 배합사료와 마찬가지로 티엠알은 과학적인 사육체계를 기반으로 가축의 소화와 생산능력, 사료의 영양에 관련한 지식과 생태적인 측면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개체에 관한 세심한 관찰과 기록을 통하여 이를 데이터베이스(database)화 함으로써 체계적인관리가 가능하다.
사람과는 다르게 동물은 필요로 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실질적인 실험이나 필요로 하는 시험을 수행하기가 쉬우므로 사료와 사양에 관련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추가축(反芻家畜)인 소는 조사료(粗飼料)위주의 섬유질이 많은 풀사료를 섭취하게 되면 위내에서 미생물이 이를 소화분해하고 이들 미생물을 주요 영양원으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때 부족한 영양소는 곡물이나 미량무기물 등으로부터 보충하게 된다. 따라서 소에게 조사료와 곡류사료를 구분하여 급여하는 체계에서 이들을 통합하여 급여하는 사료가 티엠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단순하게 본다면 주식인 밥에다 반찬인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섞어 배합을 한다는 것으로만 본다면 비빔밥과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나 비빔밥과 티엠알은 기본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비빔밥은 우선 밥에다 영양표준이라는 개념은 크게 고려되지 않고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기본원료로 조리하여 섞는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사상적인 개념이 함께 섞여 비벼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생활이나 회화(繪畵)에서 오방색이 많이 응용되었는데 우주와 인간 질서를 상징하는 색동저고리, 오방색 장신구, 오방색 비빔밥, 한옥에서도 청색은 봄, 적색은 여름, 백색은 가을, 흑색은 겨울, 황색은 광명을 상징하고 있으며, 음식에서 흰색식품은 기관지와 장(腸) 건강에, 붉은색은 피와 심장건강, 청색은 간과 눈의 건강, 검은색은 신장과 생리작용, 노란색은 비장과 위장, 소화기능에 좋은 것으로 보았는가 하면, 젖어서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짠맛(鹹味), 타거나 뜨거워지는 것은 쓴맛(苦味), 곡면(曲面)이나 곧은 것은 신맛(酸味), 단단해지는 것은 매운맛(辛味), 키우고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은 단맛(甘味)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여러 색깔이나 성질의 음식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서 자연에 순응하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색상과 식재료에 대한 개념이 따르고 음식자체에 음양사상을 도입함으로써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단순한 먹꺼리를 넘어서 질병을 치유하고 체력을 보강하는 약리효과까지도 고려하여 음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이러한 사상적 바탕에 근거하여 비빔밥은 계란 노른자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청, 백, 적, 흑색의 나물들로 이루어진 ‘컬러 푸드(color food)’의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식재료를 이용하여 조리를 한다고 하여도 조리를 하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서 맛에는 차이가 난다. 따라서 비빔밥은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계산되어진 영양학적인 개념보다는 사상적인 관념과 조리를 하는 요리사의 정성과 손맛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티엠알은 철저하게 분석되고 계산된 과학적인 바탕에 근거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원료가 되는 단미사료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영양성분을 알기 위하여 각 원료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실험실에서 성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렇게 분석된 자료를 기초로 가축이 필요로 하는 영양요구량에 적합하도록 가장 경제적인 원가를 계산하여 배합표(formula)가 설계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지나치다보면 축사주변이나 논바닥과 논두렁에 하얗거나 까만 비닐포장뭉치들로 장식을 하고 있어서 축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것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오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베일사일리지(bale silage)라고 하는 것으로 재배한 목초나 사료작물, 볏짚 등을 비닐로 싸서 밀봉함으로서 호기성의 유해미생물을 억제하는 한편으로 산소가 존재하지 않는 혐기성조건에서 유익한 미생물발효를 유도하여 볏짚의 소화율향상과 보관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소는 목초(牧草)가 주된 사료이기는 하지만 국토면적이 좁은데다 국토면적의 70%정도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목초의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서 수입목초에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국내에서 경제적인 가격으로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조사료자원으로 농산부산물인 볏짚의 의존도가 높지만 볏짚은 단백질함량이 낮은데다 셀룰로스(cellulose)와 리그닌(lignin) 같은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소화율이 낮고 기호성도 일반 목초와 비교하여 좋지가 않으므로 볏짚의 세포벽을 파괴하여 미생물이 볏짚을 분해하기 쉽게 함으로서 소화율을 향상시키는 한편으로 단백질합성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비단백태질소화합물(nonprotein nitrogen)인 암모니아처리과정을 거쳐서 사료이용성을 높이고 있다.
이렇게 확보된 볏짚이나 목초 등의 조사료를 이용하여 소의 사육에 필요로 하는 인건비절감과 관리의 효율성 등을 제고하기 위하여 조사료와 농후사료를 구분하여 급여하지 않고 동시에 급여를 함으로서 작업의 단순화를 통한 인건비절감과 사양관리의 용이성을 기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티엠알(TMR)'로 ‘완전혼합사료’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