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조훈현 9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까운, 그야말로 통한의 한 판이 두어졌다. 반면에 상대인 박지은 7단으로서는 `용궁`에 갔다온 그런 바둑이었다. 바로 제1회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남자 45세 이상) 연승 대항전의 마지막 승부였다. 이 기전은 각각 12명씩의 정예를 뽑아 연승전 형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이다.
조 9단은 이 대회에 시니어 팀의 마지막 장수, 제1장으로 출전했다. 바로 앞에 제2장 서봉수 9단마저 단칼에 목이 달아나고, 1승이라도 거둔 장수는 이홍렬, 권갑룡, 장수영, 김수장 9단뿐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적장은 8명, 모든 것이 조 9단 혼자의 어깨에 걸린 처절하게 고독한 승부였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서봉수 9단을 목벤 김은선, 올해 정관장배에서 중국과 일본의 강호 5명을 꺾고 우리 나라의 우승을 가져온 이민진, `여자 이창호` 조혜연, 떠오르는 샛별 김혜민, 여류 바둑계의 강자 윤영민, 이영신 등 6명의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남자 신예 기사들도 두려워한다는 강펀치의 싸움꾼, 여류 팀 제2장 박지은 7단마저 그로기 상태로 몰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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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훈현 홈피 |
드디어 각 팀 마지막 장수인 조 9단 대 루이나이웨이(예내위) 9단의 단판 승부로 우승이 결정되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막판 조 9단이 대마 사활을 착각하며 15집 정도의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후 조 9단은 279수까지의 기나긴 끝내기로 추격에 추격을 거듭했으나, 결국 승리의 여신은 불과 반 집 차이로 동족인 박지은의 손을 잡아 주었고 조 9단은 분루를 삼켰다. 참으로 아까운, 통한의 한 판이었다!
바로 10년 전인 1997년, 한, 중, 일 3국에서 5명씩 출전한 역시 연승전인 제5기 진로배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서봉수 9단이 중국과 일본의 강호 9명을 목베고 혼자서 한국 팀의 우승을 결정지은 그때를 연상하게 하는 승부였다. 그때 제4장으로 나온 서봉수 9단은 혼자서 적장들을 다 처치해버리고, 동료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은 바둑 한 판도 두어보지 못하고 우승 상금만 나누어 받게 했던 것이다!
바둑 팬이 아니더라도 `바둑 천재`,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1953년생이니 올해 54살, 4살 코흘리개일 때 아버지가 두던 바둑을 보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건만, 바둑이 집 차지 게임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이후 바둑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불세출의 천재 기사!
9살에 입단하여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더니, 이후 국내 대회 `싹쓸이` 전관왕 3회, 모든 국제 기전 한번 이상 우승의 사이클링 히트, 약 150회 우승 타이틀 획득, 세계 최다승 기사 등등 조 9단이 세운 기록은 불멸의 금자탑이다!
세계 최고의 포석 감각, 휙휙 바람소리가 묻어나는 속력 행마, 꼼짝달싹 못하게 옥죄어오는 완력, 뼈를 분지르고 관절을 꺾는 파괴력, 어설픈 타협을 거부하는 단호함, 어느 누구보다도 빠른 형세 판단, 궁지에서 발휘되는 가공할 만한 흔들기로 `전신(戰神)`으로 불린다!
이창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바로 `원조(元祖) 바둑 황제`가 바로 조 9단이다. 1989년 4년마다 열리는 바둑 올림픽인 제1회 응창기배 세계 바둑 대회에서였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나라는 바둑계 변방의 소국으로 취급받아, 이웃 일본과 중국의 교류전에도 끼지 못하고 약자의 설움만 씹고 있을 때였다.
이 대회에 우리 나라는 조 9단만 `달랑` 홀로 초청 받고, 일본과 중국의 많은 기사 틈에 그야말로 필마단기로 출전했다. 세계 바둑 대회니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한국에서도 1명을 끼워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 9단은 이빨을 갈며 적장들 - 왕밍완 9단,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린하이펑 9단 -을 하나하나 꺾고, 결승전에서 중국의 `반달곰`, `철(鐵)의 수문장` 녜웨이핑(섭위평) 9단마저 3승 2패로 제압하며 초대 세계 바둑의 황제로 등극했다! 우승 상금만 해도 40만 달러(그 당시 우리 돈으로 약 5억원) 로 어마어마했다.
조 9단의 우승은 약소국 취급을 받던 한국 바둑의 위상을 일거에 전세계에 떨친 쾌거였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2~3점 하수 취급을 받던, 오만하던 그들의 콧대를 한방에 꺾어버린 한국 바둑 최고의 경사였던 것이다!
조훈현의 `위대함`은 바둑 승부보다도 후계자를 키우는 대범함과 관용에 있다고 본다. 바로 이창호를 키운 것이다! 조 9단이 활약하면서 우리 나라 바둑의 실력을 2~3점 업그레이드 했다면, 그 제자 이창호의 등장은 일본과 중국의 기사들이 우리 나라를 하수가 아닌, 동수도 아닌, 상수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조훈현은 1984년,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9살 꼬마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이후 7년간이나 데리고 있었다. 바로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이다! 이창호는 이 스승 밑에 있으면서 입단도 하고, 세계 최연소로 타이틀도 따고, 또 하나하나 스승이 가진 타이틀을 잠식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는 하나, 자기의 우승 상금과 명예를 가로채가는 제자를 여러분 같으면 데리고 있으면서 키울 수 있겠는가! 바로 내쫒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위대한 기사` 조훈현은 초인적 대범함과 관용으로 이창호가 하산할 때까지 담금질을 했다. 바로 이창호로 하여 우리 나라 바둑은 10여년이 넘도록 세계 바둑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조 9단도 `무관(無冠)의 황제`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간간이 국내 대회나 국제 대회의 본선 멤버로나 그 이름을 알릴 뿐이다. 그러나, 20세기와 21세기 양세기에 걸친 위대한 기사, 불멸의 기사 조훈현은 전세계 바둑 팬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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