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0.7.4(토) 09:00-17:30 집결장소 : 1차:신안면사무소앞(08:30)/2차:산청문화원앞(08:50) 기행장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 문학관 시간계획 - 1차집결:신안면사무소앞(08:30) - 2차집결:산청문화원앞(08:50) - 출발:산청문화원앞(09:00) - 휴게소 도착 및 휴식(10:30-10:50) - 신동엽문학관 도착 및 탐방(11:30-12:30) - 점심식사(12:30-13:30) - 정림사지 탐방(13:30-14:30) - 궁남지 탐방(14:30-15:30) - 산청출발(15:30) - 휴게소 도착 및 휴식(16:30-16:50) - 산청도착(17:30)
<공지사항> 문학기행에 함께 하실 분이 있으면 같이 가셔도 됩니다. 문학기행 참석 유무는 사무국장님께 6월 30일까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사항1 : 위 시간 계획은 당일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참고사항2 : 코로나19로인해 신동엽문학관 탐방은 문학관 관리자와 전화 통화로 사전(6.10) 예약 하였으며, 그날 문학관 안내를 할 수 있는 해설사 분이 없다고 해서 신동엽 시인에 대해서 설명해 줄 그 지역 시인의 안내 부탁하려고 연락 중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시인 신동엽 소개•••••••••••••••••• 신동엽 시인은 1930년 8월 18일에 태어나 1969년 4월 7일에 세상을 떠난 짧은 인생을 살았다 신동엽은 충청남도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사이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전주사범학교 재학중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부여 주변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하여 1953년 졸업하였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말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가 1951년 4월에 국민방위군이 해체되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귀가길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개울에서 게를 잡아 먹으면서 왔는데 그때 간 디스토마에 감염되어 결과적으로는 이때 얻은 병이 시인을 빠른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되었다.
신동엽 시인은 1953년에 단국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고 근처에 헌책방을 열었는데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씨를 만났습니다.
1957년 그녀와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얻은 병이었던 간디스토마가 원인이 되어 1958년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건강이 더욱 나빠졌지만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지내다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되어 문단에 발을 들였다.
이후 건강을 되찾아 서울로 다시 올라갔는데 4.19가 터졌고 ‘학생혁명시집’을 집필하며 4.19 혁명에 온몸으로 뛰어들어 많은 사람들이 신동엽을 가리켜 '4.19 시인'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그리고 훗날 4.19 혁명의 기억을 되살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발표하였고 1967년 한국문학사의 길이 빛날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발표하였는데 이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가 신동엽 시인을 대표하는 시가 되었다.
하지만 6.25전쟁 중 먹었던 게로 인해 얻은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1969년 4월, 40세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쳤다.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첫댓글 정리 감사합니다.
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