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승냥이들을 쳐다보는 간호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걱정이 되었다. 그 간호사는 승냥이 거짓종이에 농락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철기둥문짝에서 덜커덕거리며 두 조각이 났고 플라스틱의자에 앉은 승냥이들이 일어났다.
간호주임이 나왔고 그들과 나를 보며 5층 원장실로 가자고 했다.
은색철기둥에 황색불이 7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많이 기다려셨죠."
간호주임마저 그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안되는데 더 이상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다싶어 양쪽 귀를 가로막은채 그렇게 서 있었다.
승냥이의 입이 모양을 내며 뭐라 지껄였지만 듣기 싫었기에 그 내용을 알수없다.
문이 열렸고 간호주임이 왜 그러느냐며 날 말리는 것 같았다. 난 끝까지 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문이 닫힐것 같아 결국은 탔고 간호주임도 더 이상은 말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 내가 왜 이놈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지 , 저 승냥이 같은 아니 저 더러운 찰거머리놈들은 뭐 하는 놈들일까.'
5층에 황색불이 켜지며 덜커덕거리면서 은색철기둥의 입이 양 옆으로 벌어졌다.
복도에는 난이 탁자에 걸쳐진 채 잠이 들었다. 약간 어두워졌었나 불이 들어왔다. 밖에는 비가 쏟아질려는지 검은 구름들이 저승사자들을 반기는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복도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원장실인가 하는 펫말이 보였다.
연녹색에 페인트를 칠한 문에 은색문기둥이 보였다.
선글라스가 벗겨졌다.
강렬한 눈빛을 드러낸 저승사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손이 문을 쳤다.
"예"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 승냥이들의 두목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부드러우면서 거침없고 마음이 가라앉을 것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원장님 그 분들 모시고 왔는데요."
간호주임이 말했다.
"아 SS지방검찰청에서 오셨죠. 들어오시죠."
간호주임이 말하자마자 곧바로 원장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 목소리는 들을수록 친근해질 것 같았고 내가 그 목소리와 함께 있으면 저승사자들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의 의심도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연녹색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원장실은 난과 사무용책상과 블라인드 스페이스 히터 , 카운치 소파 , 도서목록상자가 구석에 들어차 있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그런 곳이었고 이곳에 대한 자료와 연혁 등등이 눈에 들어왔다.
"이원중씨가 저분입니까?"
투명글라스에 잔잔한 강물같은 눈 , 하얀가운에 경륜이 있어보이는 외모 , 오목한 콧날 , 깊게 패인 이마가 까다로운 말을 많이 해 온듯한 입술이 날 그렇게 불렀다.
그렇다 난 내 이름을 그렇게 들어왔고 지금까지 줄곧 그 세자에 내 인생이 그려졌다.
-(2)-
그 세자의 음성이 흘러간 뒤 스테인리스 유리문에 막 노을이 끼어있는 땅거미를 흐릿한 황색 빛깔의 네온사인이 화분에 심은 모종 같은 숲속의 적막을 일순간에 깨뜨린 채 알게 모르게 이놈의 눈망울은 넓은 호수에서 작은 세숫대의 겉표지처럼 코스모스 핀 산들판을 달리는 차창에 흔들렸다.
"야 임마 캐오라면 캐올 것이지 왜 그리 토를 달고 찌랄이야."
찢어진 눈썹 사이로 험상궂은 표정의 난도질쟁이는 관자놀이를 욱신거리며 그렇게 질러댔다.
솔잎냄새가 풍겨지는 가방에는 녹빛이 그을려진 채 바위에 수백번 갈아둔 것 처럼 보이는 도끼 같은 낫과 갈고리 같은 곡괭이가 덜거덕거렸다.
"아 아.. 알았어요. 예에.. 캐올테니 그어러지 마세요."
강한 섬광이 뇌리를 스쳤다. 심장도 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버스의 엔진소리도 그만큼 더 요란하게 들리는 것 같았고 고게다 주위 마저 조용해 그것이 또한 더 크게 울리게 하는 것 같았다. 흙먼지가 간흘적으로 보이고 희뿌연 먼지를 씌운 창이 덜거덕거리면서 그에게 맞아 찢어진 상처자국에 핏줄이 살려달라고 고함을 쳐댔다.
창밖은 깎아지른 괴암 절벽에다 그물망에 널판지로 쌓은 집을 흘려보내고 멀리는 논과 산자락이 펼쳐지고 사이사이 은행나무 몇 그루들이 줄을 지어서 또한 그렇게 조용히 외로움만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은 산에 약초를 캐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 첫 버스이기에 버스운전수 빼고는 어디서 언제 날 이리로 데리고 왔는지 모를 험상궂은 난도질쟁이 같은 이상한 아저씨( 아니 난 그를 평소 그가 부르라고 한대로 대장이라 하지만 속으로 난도질쟁이라 한다.)만 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야 글고 그놈을 갓다 시퍼런 걸로 구해와야 할 것이야."
난도질쟁이의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내 머리 위는 건지적거렸다. 억센데다 날카로운 눈빛이 날 감시하고 있을정도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 그였고 말한 내용이 실현가능한 행위인가에 대한 여지조차도 남기지 않은 말투였다.
"예..에 아..아 그래야죠."
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내 스스로의 몸뚱아리는 버스가 턴 하면서 옆으로 흔들렸다. 그가 위에서 날 쳐다보았고 그의 숨소리가 날 자극시키고 있었다. 그의 울타리속에서 갇힌채 나 자신의 의지라든가 용기 , 열정등은 사그라든채 그의 꽁무니 같은 신세로 이렇게 빨려들고 있는 것이다.
자극적인 피를 흘릴만큼 날카로운 진한 고무타이어틈의 자갈과 모래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 나의 그 작은 운동화 밑으로 이미 그 시퍼런 것을 주우러 가야 한다는 새까만 일개미들이 그들의 여왕개미를 위해 맡겨진 부서러기를 옮기는 모습이 눈에 보이듯이 , 내 마음의 한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나무와 상추밭이 근처에 어우러져 있고 상수리나무와 낙엽송 , 참나무 , 삼나무 등과 우거진 수풀이 집어삼킬듯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이 쌔끼 쪼가리 이 녀석 뭐하는거야, 빨랑 오지 못하겠어."
하늘을 날아가던 까마귀인지 , 제비인지 , 참새인지 모를 새들도 기가 죽을 엄청난 소리였고 천둥번개가 친 듯 주위는 멍했다.
뭔가 뻥 맞은 듯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난도질쟁이가 재촉했다.
어릴적 그에게 맞은 대짝 같은 나무등골이 날 소름끼치게 했다.
"자..잘..잘못했어요. 아..안 그어럴께요."
좁은 도자기터널 같으면서도 시궁창 같기도 하고 지하고문실 같은 엄산한 분위기에 솥구더기에서 나의 하얀 둔부가 짙은 어둠속에서 드러난채 벌겋게 달아올랐다.
밖의 공기는 서늘한 가운데 뱃가죽만 남아 파리지옥 같은 상황 속에 그것이 구멍이라도 없듯이 어리고 힘없는 나에겐 내 실수를 만회해 볼만한 가능성도 없이 그렇게 잘못이라는 어투만 흘러나왔다.
"그게 어떤긴데 네가 밟았단 말이야."
눈썹이 치켜올려지고 부아가 치미는지 벌겋게 달아오른채 헛된 욕망의 저주를 드러낸 어금니와 살핏줄 그리고 덧살이 실룩거리는 험상궂은 그의 모습이었고 손에는 내 발뚝보다 큰 장짝때기가 그의 욕구를 채울 고깃덩어리처럼 벌건 핏줄이 흘러나올 것 같은 내 몸뚱아리의 둔부를 집어삼킬듯이 비추어졌다.
"아..아악 억..어억. 아 음 으흑흑흑..앙."
사정없이 내리치는 시베리아칼날 같은 바람처럼 어린시절 종아리와 실룩거리는 둔부는 남들처럼 갖지 못한 무언가를 당해야 한다는 서러움이 배어져 간채 하염없이 처량해보이고 싫은 내 자신의 분노가 맞은 둔부만큼 벌겋게 달아오른 눈가에서 흘러 떨어져 내렸다.
자갈과 회색빛 길바닥에 희뿌연 연기가 드러나며 자욱한 안개를 씌운 논과 멀리는 파우스티언맨적 사고의 지은지 얼마 안되는 댐이 트림을 해대며 어디서부터 언제 날 데리고 왔는지 모르는 그와 털이 덥수룩하고 눈은 벌겋게 충혈된 채 피칠갑의 살기가 돋아내릴 것 같은 그의 관자놀이에 주눅이 든 나는 그렇게 산자락의 근처를 거닐었고 앞으로 낯익은 누군가 오고 있었다.
"하 관식이 자네 쪼가린가 뭔가 하는 요 어린 녀석과 산에 또 그놈의 버섯을 캐러온건가."
머리 끝에서 이마는 넓어보이고 눈에 둥근 삼각형모양에 콧날은 쫏빗하고 둥근 보조개에 얄팍한 상술을 던져낼듯한 파릇파릇한 입술을 지닌 조돈상이라는 얍실이 같은 아저씨였다.
"헉헉 아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귀여운 녀석이지. 헉헉.."
요상스런 웃음을 짓는 그는 평소와 달리 주위 사람들을 보면 딴 사람처럼 날 쓰다듬으며 자신의 둘도 없는 자식이라고 하는 둥 알수없는 행동을 보이곤 하였다.
"아어아.. 아악.. 으어어 저어..저.."
얍실이는 이미 가버리고 그 시퍼런 것을 캐야한다는 산자락 경사면에 올라 상수리나무 틈 뿌리더미에 디딘채 좁쌀 같은 흙뭉치가루가 운동화 톱날바퀴 틈에서 떨어져 나오는 그 사이로 , 갈색물감보다 짙은 진흙과 풀밭이 파혜쳐지며 가죽지갑보다 짙은 나무의 등골보다 거친 섬유가 길쭉히 뻗은 말만 듣던 그 뱀이라는 놈이 넘어져 무릎만 숙인 다리 사이를 고개하듯이 지나갔다.
"이 쌔이끼 이것 에라이."
'척' 찰싹' 독수리가 먹이를 두면 낚아채야 성미가 풀리듯 볼짝대기를 때리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난 그에게 완벽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실패라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처럼 아니 실수란 어린시절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 지나친 파우스티언맨적 사고에 박혀있다고도 해야 될 만큼 낭떠러지 밑으로 보이지 않을만큼 작게 된 그 시퍼런 빛깔을 띄는 주위에서도 본 적이 없다는 영지버섯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흙이 묻은 채 갈라진 입술사이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부자연스런 나의 모습 같았다.
"우와 이것 봐라 '깔깔' 그 어디서 났니."
어느새 주위는 너무나 반듯한 모래운동장이었고 난 그기 우두커니 세워진 반쪽으로 갈라놓은 통나무에 둔부를 걸치고 내 또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야 내일 우리집 해령동물원 간다."
머리가 찌긋찌긋 쑤셨다. 불안한 뭔가가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무릎도리 근처 풀숲정원에서는 별 희한한 놈들이 부산히 별 찌랄을 다 떠는 것 같았다.
"이야 임마 대단한데."
그러다가 팔뼈가 찢어져 부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내가 졌다. 정말 너 세내."
뭐가 그리도 세다는 건지 알수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한 아이 그 아이만큼은 달랐다.
"강민수"
내가 산적같은 난도질쟁이인 그와 지내면서도 모래운동장에서는 민수라는 그 녀석만큼은 산자락어귀에서 조차도 아니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호감이 갔다.
때론 그와 나의 엄청난 차이에 부러운 그였지만 그를 닮고 싶은 욕구도 조금씩 생기는 그였다.
-(3)-
모래운동장에 난 바깥 공기를 느끼며 그럴 수 밖에 없는 피딱지 같은 낙엽들로 어지럽혀진 통나무를 비스듬이 자른것으로 보이는 벤치에 기대어 앉아 나이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놈의 옆구리를 나무작대기로 마음 속에 쌓인 피딱지들을 벗겨내었다.
"야 쌔꺄.. 씨끄러워."
벗겨진 핏똥들이 튀어 상판때기에 묻었는지 누군가가 쌍소리를 해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어지러움들은 긁적거리는 소리에 몹시 흔들리고 있었고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난도질쟁이가 되어 눈자위를 괴롭혔고 자갈만한 돌이 되어 어깨팍을 내리쳤다.
"어억 아 .. 아니에요."
시야에는 꾀름칙한 미소를 머금은 난도질쟁이의 몽둥이질에 피딱지를 벗겨낸 것을 들키고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눈자위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그에게 덜미를 붙잡힌 채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것이 아니라고 질러댔다.
"저 쌔끼 저거 어찌된 것 아냐. 어에헤헤 아아하하 우우와 아하하.."
그의 그림자는 저들이 하는 소리도 막아버린채 벤치 밑바닥에 몸뚱이를 긁어가며 옷더미가 헝클어진채 어깨팍의 맨살을 간흘적으로 드러낸 그 모습을 키키덕거리는 사내 두놈들의 비위를 자극시켰다. 왼쪽 눈언저리가 어디서 얻어맞았는지 상처자국이 보이고 입술이 반듯하면서 콧날이 뭉툭한 녀석이 한심스럽다며 쳐다보며 웃어댔다.
"중원아 .."
어렴풋이 날 듯 말듯한 두자를 부르며 멀리서 민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리가 펼쳐진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날 민수는 팔을 들어서 자신의 어깨에 걸친채 일으켜 세운후 맞은 어깨팍을 살피고 여기저기 붙은 먼지와 흙을 털어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었지.."
그러면서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민수가 왜 여기 달려와서 이렇게 일으켜 세워 주는지 갓 깨어난 몸뚱아리의 어깨팍이 조금 따끔거림을 느낄뿐이었다.
"그기 아프지 않아. 어디 좀 보자. 이런 멍이 들었네.. 이 저녀석들을.."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푸른색에 붉은 줄무늬 티셔츠의 어깨부분을 엄지로 낀채 들추어 보고는 돌이 날아온 것을 살폈다.
"누군가가 내 어깨팍에 돌을 던진 모양이구나.. 으음..그래 괜찮아.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야. 그 애들 잘 모르고 그런거야.. 아.아니 내가 잘못한거지."
따가운 햇살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그제서야 난도질쟁이의 악몽에서 벗어났음을 알았다.
돌을 던지고 키키덕거린던 그들의 모습은 이미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다. 외로운 구석을 달래기 위해서 이 혼란스런 나 자신을 추스러기 위해서 모르게 한 행동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준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착잡했다.
뻥뚤린 모래운동장에 아이들은 이미 다 들어가고 난 뒤였다. 문쪽만 비워두고 나머지 구석을 먹어치운 건물이 들어서 있고 나이테옷을 입은 벤치들이 건물 나머지 공간의 외벽 주위로 돌아가며 나열되 있었다.
고게다 산들이 사각에 가깝게 가로막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무언가가 그들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탁 트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기야 이곳에서는 깨뜨려놓은 병들이 쉽사리 발견되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런것들을 생겨나게 하는 것 같다는 뜻에서 내뱉었다.
바람에 희뿌연 먼지가 휘날리며 나와 그렇게 두사람의 운동화자국을 드러내었다.
"그래도 같은 애들끼리 그러면 안되지 내가 나중에 그애들 버르장머릴 고쳐 나야지."
아무리 그렇게 서로를 모를지라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머리 속으로 되뇌이는 것 같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갈무리되어갈 무렵이었기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발걸음을 때면서 살며시 정문을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이날 아침에 보였던 풍경이 들어왔다. 길바닥은 아스팔트에 뿌연먼지로 잔잔한 자갈모래들이 흩어졌고 갈색빛이 돋아났다. 삼나무와 잣나무가 옥수수 심은듯 가지런히 놓인 산자락을 덤프터럭이 갈색먼지를 흩날리며 달렸다.
학교로 가는 길은 나무들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원래 흙으로 뒤덮인 곳이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지면서 그 사이를 파우스티언맨적사고로 덧칠을 해두었다.
눈언저리 앞으로는 가지각색의 가방들이 들어왔다.
그러한 가방들 중에서 유난히 달라보이는 것이 있었다. 풀짚으로 이리저리 털가죽가방의 찢어진 부위를 엮어 책들이 떨어지지 않게 대충대충 난도질쟁이의 엉성한 손내가 들어간 형편없는 기운이 들어간 떨어지면 다시 묶을 그놈이 내 양어깨에 매어져있고 첨단기술로 짜아낸 섬유로 만든 그기에 멋진 아이디어를 자아낸 손길이 돋보이는 가방이 바로 강민수의 가방이다.
난 조금씩 아스팔트와 지렁이가 사는 잘 섞은 흙을 바꿔밟으며 알게 모르게 첨단섬유가방의 뒤꿈치를 밟았다.
"야 어제 네 저기 뒷산에서 이걸 캐려고 했던 것 아냐."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눈동자를 밑으로 향한채 내가 뒤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라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조용히 그의 입술이 열리면서 '그의 눈치가 정말 빠르구나 내가 쉽게 생각했구나 , 숨을 죽여가며 밟았는데..' 그렇게 내심의 말이 오가는 사이 또 한번 놀랍게도 그 시퍼런 영지버섯을 바짓가랑이에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약간 둥글넓적한 얼굴에 매끄러운 이마를 어우러는 그 사이 밑으로 부드러운 솜사탕구름 같은 눈썹에 호수같이 빨려들것 같으면서도 포근함에 빠지는동안 날카로운 칼날이 떨어질 것 같은 눈에 반듯함과 부드러움에 파격적이면서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듯한 콧날을 아래로 자신감이 배어져 있으면서 예측을 불허할 정도의 언변이 흘러넘칠 것 같아도 신중함이 숨은 입술이 그렇게 내뱉었다.
"어 ... 어 아 ..아 그 이..이것이 그래 내가 그때 흘렸던건데 실수로말야. 네가 어떻게.."
너무 뜻밖에 그의 날카로운 말투에 할 말은 해야겠고 그런데 그 구하기 힘들다는 시퍼런 영지버섯을 그러면 나와 그 난도질쟁이의 뒤를 밟기라도 한 것인지 내가 약초를 캐러 다닌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아는지 , 아니면 약초를 캐는 그 산을 잘 아는지 , 그러나 그런 모든 예측 중 어느 하나가 일치해도 그 흘린 자리는 보통사람들이 지나다니기 힘들정도의 낭떠러지이면서 절벽인데 발 한 뼘만 디디기도 힘들 정도의 공간이 남아있을까 말까한 그 사이에 시퍼런 것이 놓여져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해 가 안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나 자신이 미스테리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헤헤 내가 구름을 신을 삼아서 그놈을 건졌지."
알수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무슨 전설에 나올 것 같은 말을 해대는 그를 보며 장난을 치자는건지 , 좀처럼 그의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않는건지 , 아니면 그 말을 믿어라는건지 어리둥절하게 만들면서 그렇게 묘한 웃음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에 설마 맨몸으로 그런 걸 해낸다는건 쉽지 않았을텐데 궁금하다. 어떻게 그럴수있는 건데."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생각이 있는 그라면 어떤 구체적인 원인이 그 속에는 내재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니면 그에게 신비한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 참 음.. 그리도 알고 싶어."
그는 더 이상 숨긴다해도 소용이 없겠다는 건지 조용히 물러설 것 같아 보이면서도 일부러 그러는건지 , 그 속내를 알수없지만 조금 아쉬운 빛이 흘렀고 난 그렇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좋아 그 대신 오늘 있었던 이 사실은 우리 둘만이 알아야 해."
왜 나와 그만 알아야 하는건지 도통 알수없는 그였다. '만일 밝히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 아니 그러지는말아야 한다. 믿을 수 없는 그와의 비밀이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러한 생각들이 지나가면서 그의 눈가에서 강한 무언가가 날 자극했다.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해서는 곤란하지 조금이라도 말하게되면 그는 너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몰래 미궁을 할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밝혀진다면 물론 그래선 안되겠지만 그 조돈상이라는 사람이 약초장사에 있어서 중개상인데 그 중개상은 말이지 수업시간에 봤게지만 도매상과 소매상의 중간에 위치해있지 그만큼 그 약초거래내부에 대해서는 그가 참 밝단 말이지 또한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고 그러고보면 최관식이라는 사람과도 자주 만나고 그리고 겉모습만 정상적인 거래인냥 눈속임이지 모두 조돈상의 말단 하부상들이지 여기 부근의 모든 거래처는 조돈상의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그 뒷받침은 최관식이고 그러니 조돈상은 최관식을 통해 우리를 그들의 상술에 끌어들일수 있다는거지. 조돈상은 그 상을 보니 조그만 것 하나 놓치지 않을만큼 치밀한 눈이었거든."
너무 많은 말과 반복되는 말들과 그 내용이 어려웠기에 이해하기 힘들었고 고게다 이 어린 나이에 그의 뛰어난 어투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조돈상과 난도질쟁이가 그 정도였다니..' 그럴 것 같다고 짐작은 했지만 얼마전 난도질쟁이 근처로 덩치가 큰 장정 세놈이 왔다가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읽어내는 그가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는사이 약초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잊은채 무언가에 홀린듯 그의 어투에 입만 벌린채 시간만 흘러갔다.
"너는 지금 최관식이라는 사람 밑에서 약초 캐는 일을 도맡고 있지 음.. 최관식은 원래 이 지역 폭력조직의 중요행동대원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여 그러나 그 조직은 두목이 구속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고 소수 몇명은 먹고 살려고 이 약초장에 손을 넣어면서 조돈상과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음.. 그렇게 된 거지."
그의 관자돌이가 조금 씰룩거리고 볼때기가 흔들리면서도 눈빛에는 한치의 변화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손을 바짓저고리에 넣은채 입놀림이 계속되면서 어린 나에겐 그가 이럴때마다 신동이거나 아니면 어떠한 신기한 기운이 그에게 실린 빙의 같기도 한 이런 저런 잡념들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그런 속내를 숨기려는 것 같았다.
"너는 그런 걸 어디서 듣냐."
그가 어디서 주워듣고 하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입밖에서 그런 걸 내뱉기가 조금은 두려운 듯 약간 두근거리기도 하였다.
"네가 어떻게 그와 있는지 알고 싶은거지."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자연스러웠던 그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뭔가가 지나갔고 관자돌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뭔가 생각하는 빛이 역력했고 놀랍게도 나의 속내를 읽어버렸고 귀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그..그어...그래 .. 알고 싶다."
잠시 모든 것이 멈춰버린듯이 입이 열리지 않았으나 곧 열었고 놀란 뭔가가 목구멍에 걸렸는지 꿀꺽거려야 했다. 그는 빨랐다. 그렇기에 그 긴장감은 더했고 손끝이 사르르 떨림을 지울수 없었다.
"그런 것까지 알아낼순 없고 네가 갓난애기때나 기억을 할수없는 그런 시절에 최관식의 손에 들어갔다는 그.. 쯤."
긴장감을 일으켰던 모습에서 일순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조금씩 나를 쳐다보면서 어려운듯 미간을 찌푸리면서 평범하게 누구나 알수있는 정도의 내 출생에 대한 비밀이지만 분명히 그는 그 이상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는 더 이상 알고싶지는 않았다.
"하 참 내가 별 것을 다 물어보네. .. 그래 어쨌던 고맙다."
그의 어투에 휩쓸려 흘린 말이었지만 날 그 정도로 생각해주고 가까이 있어준다는 것 자체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목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그러는동안 시퍼런 것의 출처를 까맣게 잊은채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뭔가를 억누르고 있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그는 조금 썽낸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미소를 드러낸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다.
"그냥.. 남들은 내한테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데. .. 너만이 유일하게 ..이..이렇게 .. 가까이 있어주니까."
진심으로 내뱉었지만 떨리고 있었다. 여태껏 지내오면서 난도질쟁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처음 알았지만 그래도 그의 냉혹함에 짓밟힌 것에 비하면 짧지만 그는 소중한 뭔가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흘러나오는 이 속내가 감성에 젖어 떨리는 어투와 눈가에 충혈된 핏줄이 떨리면서 잣나무 밑으로 쌓여진 낙옆으로 뿌옇게 물을 먹인 것 같았다.
"아 분위기 이상해지네 , 뭐 ..음 어하하.. 참 그리고보니 많이 아팠던 모양이네 , 나도 이런 걸 느껴보면 좋겠는데.. 그리고 너무 감성에 치우치지마..야. 이런게 다 삶이라는거지."
그는 은근히 미소를 띄우면서 조금의 흐트림이 없이 입을 열면서도 나의 축축히 젖은 눈가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모양인것 같다. 얼마 안 살았지만 다른 것을 경험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처음 이 모습을 보이는 나로써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털어낼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와 그는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그는 이성적인 면에선 파우스티언맨적 사고였지만 감성적인 부분은 나에 비하면 그 반대였다. 그렇게 다른 무언가를 겪으면서도 날 마음속 깊이 시련과 고통을 그의 울타리 속으로 묻어주며 토닥거렸다.
"그래 하 그리고보면 너와 나는 비슷한 모습을 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터놓고 얘기할수있게 하는 뭐 그런 사이인가 생각이 든단 말야."
그의 스웨터에 떨어진 시련과 고통을 받아주면서도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있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다. 정말 그랬다. 내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식은 모습만이 달랐지. 살아온 밑그림이 그와 같았다면 그와 나는 하나의 일치된 모습이었다. 그런것이 날 더더욱 그와 닮게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나는 이 나뭇길에서 처음 알았고 다른 모습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으로 그가 처음 전학왔을무렵 주위 사람들은 그가 나인줄 착각이 들었는지 손가락질을 받거나 난도질쟁이에게 봉변을 당할뻔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러려다 다들 기겁을 하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만 보면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그에 대한 좋은 소리로 끊이질 않고 난도질쟁이조차 그가 신동이며 예의바르다.라는 소리가 흘러나올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와 친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그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를 보면 신이 긷들어 있다며 존경의 눈빛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그는 이곳에 왕이었고 난 거지신세였다. 삶의 옷만 바꿔입는다면 인생자체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날 항상 신기한 것들로 가득채웠고 내가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두려운 존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 하고 싶은 뭔가는 분명히 있었다. 서로 다른 삶과 닮은 모습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와 살아온 삶이 다르다는 것은 그와 나의 생각의 차이를 만들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려는 것은 지금 가까이 다가오는 저 교문처럼 발전하려는 것이었고 내가 생각하려는 것은 떠내려가는 삼나무와 잣나무의 모습처럼 뒤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와 나의 사이를 인간의 본능처럼 이간질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미친듯이 추종하고 , 그로 인해 나 지금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싶은 강한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그도 앞서만가는 자신을 경계하며 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채 그렇게 송사리나무 터널을 지나 대리석기둥을 사이에 두고 감옥소 철창처럼 생긴 기둥으로 보이는 모래운동장과 붉은 벽돌이 칠해진 그림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