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범아, 괜찮다.”
글 김덕호
“현재의 상태와 향후 치료과정에 대하여 보호자에게 더 자세히 설명 드릴까요?”
“알려서는 안돼요. 걱정해요. 혹시 연락이 오더라도 괜찮다고 해주세요.
박사님이 잘 고친다고해서 소개받고 찾아왔으니까 입원이라도 해서 빨리 낫도록 해주세요.
자식들이 멀리 있고 바빠서 부담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런저런 검사 끝에 와사풍(말초성 안면신경마비)으로 진단 내려진
60대 여성 환자와 그녀의 남편이 필자의 제의에 정색하며 부탁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범아, 난 괜찮다.” 이 말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주하시는 표현입니다.
부모곁을 멀리 떠나 출향한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전화걸 때 자주 듣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 사랑하는 말의 극치인 듯합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요즈음 세대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정감있고 멋진 반어법입니까?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앵무새처럼 겉발림으로 하는
명사형의 말이 난무한 세상에서 동사형의 삶을 사신 우리 어머니들의 표현방법입니다.
직설적이고 독설적인 표현이 깔려있는 이 시대에 얼마나 여유있고 은유적인 경청이고 배려인가요?
자식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셨던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국내외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속에서도 억척같은 엄마지만
자식에겐 차마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모성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 신경숙씨는 효와 가족애를 주제로 쓰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에 대한 무관심이 저지르는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줍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3CE04A502897B808)
지난 7월 19일, 보도에 의하면 혼자 사시는 80대 어르신 3분이 폭염 속에 열사병과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평소 몸이 약하고 숨겨온 질병이 있었으나 괜찮다고 홀로 버티시던 어르신의 현실입니다.
생활시설이 필요한데도 그 중에는 본인의 고집으로 버티시다가 당한 일이라 더 안타깝습니다.
병원이나 시설에서는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걸 알고 계시면서도.
사실 자식이 걱정할까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아픈데가 있음에도
태연하게 애써 괜찮은 것처럼 표현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어있는 멍은 또 얼마일까요?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부모가 또 얼마인가요?
우리의 부모님은 너무 많은 고생을 하신 분들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보리고개를 거치면서 피와 땀을 그 얼마나 흘려야 하셨을까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병원 가서 변변한 진료 한번 받아보시지 못하고
또 스스로 병원을 찾아 가시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돈도 아깝고 오래 살아봐야 뭐하나 싶은 마음도 있으시겠지요?
어려운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데도 자식들을 많이 가르치시지도 못하고
도와주시지도 못한 게 늘 죄밑이 되어 지금 “괜찮다”는 마음도 있으시겠지요?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고난의 일생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와 지식과 정보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는 지금의 발전된 한국이 있기까지 적어도 내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이런 희생들이 쌓여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살림에 시어른에게 당하기만하고 그나마 기대려했던 자식들에게서는
무관심과 무시까지 당하는데서 오는 마음병도 또 얼마이겠습니까?
죽어라 일했지만 변변한 수입이 없어 굶는 가족들을 보기 민망하여 홀로 강술을 기울이면서
아픈 곳을 감추려는 아버지의 책임 무게는 그 얼마입니까?
자식이 뭔지 내리사랑은 끝이 없다잖아요?
어쩌다가 필요한 게 있어 오랜만에 전화 드렸더니 아프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시면서
“아범아, 어멈아, 나 괜찮다. 너들이나 몸조심하고...”는 끊으십니다.
만성병 때문에쑤시고 아파서 고생하시더라는 동네 옛친구가 전하는 소식을 듣고는
자녀를 위한 부모님의 배려가 얼마나 큰지 다시한번 깨닫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바로 우리의 부모님 모습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짐, 혼자서 껴안고 갈지언정 속내를 애써 보이려 하시지는 않지만
음성이나 얼굴, 몸동작을 자세히 관찰하면 숨겨진 사항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 사항 중에서 질병에 대한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65~74세 어르신은 평균 5개, 75세 이상은 평균 6개의 복합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괜찮다고 하시지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증 위험 질환이 있습니다.
중풍(뇌졸증), 심장병(심근경색증 등), 중증폐질환, 일사병, 열사병,
저혈당쇼크, 과음으로 인한 질환I(간경변, 동사 등), 자살, 낙상 등은
불과 몇시간 전에 대화가 있었더라도 갑자기 발병하여 사망으로 갈 수 있습니다.
치매 파킨슨병, 암, 신부전증, 퇴행성관절질환, 우울증, 홧병,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우울증, 홧병 등 여 러 질환으로 장기간 치료받아 오시다가도
어쩌다 약 복용이나 관리 소홀로 금방 악화 될 수 있습니다.
고령으로 사지무력감과 어지럼 증상으로 보행시
특히 계단 보행시 넘어져서 생기는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며 빈발합니다.
식물인간이 되거나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단적인 행동도 취하실 수도 있습니다.
무슨 약을 드시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픈 곳이 많기에 약 종류와 양이 많습니다.
거기에다 귀가 얇아 주위에 좋다는 건강식품까지 마음대로 드십니다.
기능이 약하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약과 보조제들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검진을 통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어르신은 작은 증상도 큰 단서가 됩니다.
작은 증상을 보이다가 큰 병으로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은 증상에도 가볍게 생각 말고 즉시 병원을 찾아야합니다.
그런 후에 치료제, 보양제, 기능성 보조식품 등의 처방이 내려질 때 안전합니다.
마음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치료받으시려는 의지가 있으신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는지, 우울이나 자학상태가 없으신지 등.
대인관계도 알아봐야 합니다. 외롭게 지내시거나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있으신지?
강요하는 방문판매에 속아 넘어가 고민하고 계시는지?
고가의 노인용 건강 기구 불법판매유혹에 넘어가 있으신지? 등 확인할 사항이 많습니다.
일상생활 기능은 어떠신지를 살펴야 합니다. 식사, 대소변, 잠, 목욕, 의복 챙기기 등의
기능과 동작능력, 올바른 사고능력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이 유지되고 있는지? 등 입니다.
대화가 많을수록 숨겨진 질병도 찾아내고 말동무 효과도 있습니다.
전화, 문자, 인편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밤새 안녕입니다. 갑작스러운 응급상황 발생이 자주 문안드려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홀로 두시면 위험합니다. 불가피하다면 이웃과의 연락망이라도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미리 감지할 수 있는 전조증상이 있기 때문에 자주 대화만하면 숨기는 질환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병원과 시설을 선택하는데도 유리합니다.
그만큼 자녀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부모님의 목소리와 얼굴 빛 가지고도 큰 단서가 됩니다.
아픈 곳 많으셔도 숨기시는 고향 부모님에게 이젠 더 이상 모른 척하면 안됩니다.
명절이 다가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면 건강을 챙겨드려야지요.
굵은 주름살이 나날이 늘어나고 피부와 뼈가 맞붙을 정도로 말라 수척하신데다
느릿하여지신 부모님은 오히려 자식을 위로하십니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이젠 귀도 먹고 눈도 침침하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지는구나.
큰 병은 없으니 내 걱정은 마라.”
부모님의 가없으신 은혜와 사랑이 가슴 깊이 사무쳐 옵니다.
부모님이 떠나가신 자리에서 입원ㆍ입소 어르신을
저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못다한 효를 실천하고자 다시한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