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이 미디어를 통한 심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미영 연합군이 25, 26일 이라크 국영TV 등 방송 시설을 집중 공격했다.
미국 CBS방송은 26일 “미 공군이 전자장비를 마비시키는 e폭탄으로 이라크 방송사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e폭탄은 폭발시 20억W에 이르는 엄청난 극초단파(마이크로웨이브)를 발사해 투하지점 반경 400∼500m 안의 컴퓨터 등 모든 전자제품을 파괴해 인명 피해 없이 주요 기반시설을 무력화하는 비살상용 무기다.
AP, AFP통신 등도 “25일 밤 연합군의 공습으로 국영 TV방송이 45분간 중단됐고 26일에는 이라크 공보부와 국영TV 건물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이라크 해외 방송을 담당하는 위성TV도 중단됐고 전파 송신기도 파괴돼 영국에서 이라크의 24시간 위성TV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당초 연합군은 이라크 국민에게 연합군측의 ‘압도적인’ 전황을 알리기 위해 방송 시설은 폭격 대상에서 제외했다. 연합군이 승승장구하는 장면을 그대로 방송할 경우 이라크 국민이 심리적으로 흔들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판단 때문.
그러나 현재까지 미디어를 통한 심리전에서 연합군측이 이라크측에 크게 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집중 공격에 나선 것. 오히려 전황에 대한 보도를 방치하자 이라크 정권과 이라크 국민간의 연결고리가 더 강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라크 국영TV 등은 자체 화면 또는 알 자지라TV 화면을 통해 연합군의 오폭에 따른 민간인 피해 상황과 화염에 휩싸인 바그다드의 모습 등을 집중적으로 방송해왔다. 이는 이라크 국민에게 이번 전쟁은 연합군이 의도한 ‘이라크 해방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 아니라 ‘침략 작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 자지라처럼 이라크 방송이 미군 시체와 포로 등을 화면에 내보낼 경우 미국 내 반전 여론에 불을 지펴 앞으로 미 행정부의 전비(戰費) 확충에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알 자지라 TV는 이날 “20일 개전 이후 시청자가 10% 이상 늘어 현재 전세계적으로 4400만 가구가 시청하고 있다”며 “특히 유럽 시청자는 개전 이전보다 2배 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브라이언 위트먼 미 국방부 공보국장은 폭격 사실에 대해 확인을 거부했으나 미 중부군 사령부측은 “이라크의 방송통신 시설은 우리의 주요 공격 목표”라고 말했다.
이라크전 방송편성 어떤가
날 짜 2003년 3월 27일 목요일 글번호 10725
■ 이라크전 방송편성 어떤가
전황 보도 중심, 본질 분석 프로 편성 미흡
지난 20일 이라크전이 발발한 뒤 각 방송사는 뉴스 특보체제로 전환하고 종일방송을 실시하는 등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 편성이 대부분 전쟁의 상황만을 전하는 내용 중심으로 치우치면서 전쟁의 본질과 의미를 진단해 보는 프로그램 편성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KBS 1TV, MBC, SBS는 일제히 <뉴스특보>를 방송했다.
각 사는 전쟁이 단·장기로 갈 경우에 대비해 특별 편성 계획을 각각 수립하고 21일에서 23일까지 24시간 종일 방송에 들어갔다. 또한 <뉴스 특보>가 나가지 않을 때에도 전황 속보를 담은 스크롤 자막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등 전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까지는 KBS <북한 리포트>와 <사랑의 카네이션 가족>, MBC <생방송 화제집중>과 <인어아가씨>, SBS는 <진실게임> 등 정규 프로들이 잇따라 취소됐다.
또한 지난 21일 방송 예정이었던 MBC 생방송 <365일 따뜻한 세상>도 26일로, 같은 날 SBS 연중기획 <물은 생명이다>도 그보다 3일 뒤로 연기됐었다.
당초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분석과 달리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KBS 1TV을 제외하고 다른 방송사들은 종일방송을 중단하고 정규방송을 중심으로 긴급 속보가 있을 때 뉴스특보를 방송거나 정규 뉴스시간을 연장 방송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현재 각 방송사의 특별 편성은 전황 전달만 있지 전쟁의 이면이나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반전 여론 등을 담은 프로그램 편성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전쟁이 발발하고 MBC <100분 토론>이나 KBS <심야토론> 등의 정규 토론 프로그램에서 전쟁의 다각적인 면을 분석했었다. 또한 MBC <아주 특별한 아침>, <시사매거진 2580> 등에서도 이라크전의 상황과 여러 의미들을 짚어봤다.
그러나 <뉴스특보>를 제외한 특별 편성 프로그램은 KBS 1TV의 <보도제작특집-이라크 전쟁과 한반도>(방송 20일 밤 10시)와 EBS <사담 후세인 이후, 이라크의 선택은?>(방송 27일 밤 9시 50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기 힘들다.
다만 MBC는 21일 <365일 따뜻한 세상>이 연기되면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국의 검은 방패 미사일 디펜스’와 <미국> ‘제3부-전쟁과 평화 그리고 진실’ 등을 재방송해 이라크 전쟁의 본질을 간접적으로 점검해보긴 했지만 특별 편성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이런 편성에 대해 정형석 민언련 방송모니터 팀장은 “<9시 뉴스> 외신보도의 늘리기 방송에 불과한 현재의 <뉴스특보>는 CNN에 의존한 편파적인 시각 중심으로 보도되고 있다”며 “전쟁의 현장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목소리와 특히 현안이 되고 있는 국내의 이라크 파병 논란 등을 담은 특별 프로그램이 제작 편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사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이 있다. 전쟁의 소식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의미 분석, 반전의 목소리 등 다양한 시각을 시청자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