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된 시 - 박인환(朴寅煥) 「세월이 가면」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이란 이름의 술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자신의 노래는 이곳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다며 사양했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얼미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테너 임만섭, 소설가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들어 그 노래를 들었다. (소설가 이봉구가 자리의 증인이 되어 자신의 소설에 이 장면을 그려넣었다.)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이 즉흥시를 남기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박인환은 30세의 한창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친구 김훈에게서 자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 술에 취한 채, 전당포에 잡힌 봄 코트도 찾아오지 못해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채였다고 한다. (EBS 문화사 시리즈 <명동백작> 중.. 등등에서 발췌..)
박인희(朴麟姬, 1945년 ~ ) 가수, 작사가, 작곡가, 방송인. 1970년대 대표적 통기타 가수 중 하나로 방송인으로 재능을 떨쳤다. 대표곡으로 〈목마와 숙녀〉, 〈모닥불〉 등이 있다.
1971년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 재학 중에 혼성 포크 듀엣 ‘뚜아에모아’(너와 나)의 멤버로 〈약속〉을 발표, 가수로 데뷔 하였다. 그해 9월에 그룹을 해체하고 DBS 《3시의 다이얼》의 진행을 맡았으며 이후 '81년까지 방송인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숙명여대 3학년 재학 중 지은 〈얼굴〉이 회자되어 《한국의 명시집》에 수록되기도 하였으며, 1989년에는 풍문여자중학교 동창인 이해인과 함께 수필집을 냈다.
나애심(羅愛心, 본명: 전봉선, 1930~2017) 1950~60년대를 풍미한 가수 겸 배우이며, 1990년대 인기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이다.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인 고인은 이국적인 외모와 허스키한 음색으로 주목받으며 1950~60년대 가요계와 영화계를 아울러 획을 그은 스타이자 당시 문인 등 예술인 들의 집합지였던 '명동 시대'의 주역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해 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막냇동생 전봉옥 등과 함께 '아리랑 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쇼에도 출연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한 것은 1953년 친오빠 전오승(본명 전봉수)이 작곡한 '밤의 탱고'를
발표하면서다. 당시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란 뜻의 나애심(羅愛心)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로서는, '정든 님', '언제까지나', '세월이 가면',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 '백치 아다다', '맘보는 난 싫어' 등 300여 곡을 발표했다. 나애심이 남긴 영화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여군](1954), 극영화 '구원의 애정'('55)에서
첫 주연을 맡았으며, [미망인 (과부의 눈물)]('55), 계용묵의 단편소설을 영화화 한 [백치 아다다]('56. 주연), [종말 없는 비극]('58), [돌아오지 않는 해병]('63), [쌀]('64), [감자]('68),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81) 등이 있으며, 80년대 초까지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구원의 애정'의 주제가 '물새 우는 강 언덕'과 '백치 아다다' 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