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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정치
저자: 막스 베버 지음
역자: 전성우 옮김
출판사 : 나남 | 2007.01.25
형태 : 판형 B6 | 페이지수 142 기타정보
절반의 인민주권
저자: E.E. 샤츠슈나이더 지음
역자: 현재호, 박수형 옮김
출판사 : 후마니타스 | 2008.11.03
형태 : 판형 A5 | 페이지수 243
정가 : 15,000원
민주주의에서도 일반 대중의 주권은 왜 무력할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리 민주주의 정치체제라 할지라도 정당 정치가 사회 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인민 주권’(popular sovereignty)은 사실상 그 절반밖에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갈등’은 없애야 하고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정당은 정치계급들의 특권 조직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회 갈등이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정당이 사회 갈등의 조직자이든 통합자로 정의되는 것 자체가 다소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이란, 지역,종교,소득,직업,성,고용형태 등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회적 차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며, 한미 FTA 찬성이냐 반대냐 국가 개입과 시장 자유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등등의 사안마다 사회구성원을 이런 저런 형식으로 분기시키는 요인을 말한다. 요컨대 사회 갈등 없이 그 누구도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고 또 갈등 때문에 존재한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의 구조와 정치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갈등의 구조가 큰 격차를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특정 인종이 사회적으로 큰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동원되거나 조직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용조건이나 임금에서 큰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다퉈지고 있지 않다면, 시민으로서 그들의 주권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민 주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갈등의 사회화’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곧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를개별 사업장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구조나 경제체제의 내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혹은 미국의 오바마처럼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문제를 어느 한 편에서 접근하기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인종문제로 고통 받는 미국 시민이 해결해야 할 사회개혁의 중심 과제로 접근함으로써 더 넓게 갈등을 조직하는 것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상층계급은 갈등의 사사화(privatization) 즉, 기업이든 시장이든 자신이 관장하는 사적 영역으로 국지화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이 영역에서는 자신들이 강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범위가 기업과 시장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약자들이다. 그들은 갈등의 문제에 더 많은 사람들과 집단이 관여하게 됨으로써 사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약한 지위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서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다. 그리고 정치의 핵심 기구는 정당이다. 그러나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층계급은 이를 막으려 하고, 그래서 공적 영역과 정치, 정당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동원하는 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정치,정치인,정당을 공격하고 비당파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갈등의 규모를 통제하려는' 이들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다수의 사회 약자들의 주권을 강화하려면, 정치가 왜 중요한지 나아가 정치가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인민 주권의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있어 좋은 정책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 6장의 마지막 문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공공정책이다'로 끝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왜 좋은 정당을 필요로 하는가
이 책이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소박하다.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을 다른 어떤 통치체제보다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이 책의 대답은 ‘정당’이다. 평소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해 온 저자는 정당이야말로 '다수의 동원에 적합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위계화하여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정당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머무를 뿐 대안을 조직하고 정치가 무엇을 둘러싼 것인가를 결정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시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니라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이들은 정치를 버리고 기권을 선택함으로써 주권자임을 포기한다. 기권은 바로 이들이 원하는 선택지와 정당 대안이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 그로 인해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두고 그 '책임을 인민의 무지,무관심,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 더 부유한 계층이 보여 주는 매우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던 논리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이 기능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인민 주권은 억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 경우 시민으로서의 제 역할은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샤츠슈나이더는 '내가 나의 학문 분야에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그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열심히 더 일관되게 더 열정적으로 정당에 대해 말해 왔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최장집,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이 책의 주제는 현대 한국 정치사 50년을 관류하는 어떤 특징적인 요소, 다시 말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어떤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해방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에 어떤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의 대표 체제, 즉 정당 체제의 저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랜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강력하게 성장한 국가와 대조되는 일종의 비대칭적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이익과 요구를 조직하고 대변하는 대표 체제의 저발전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중간 층위, 즉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부터 분리 내지는 괴리된 자율적인 영역으로 만들었다. 정치사회가 시민사회에 대해 어떤 자율성을 가지고 존립해 왔다는 것은, 이 층위의 행위자들이 시민 대중의 이익을 대표하고 사회에 대해 책임성을 갖기보다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정치 계급화된 존재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우선한다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저자: 셰리 버먼 지음
역자: 김유진 옮김
출판사 : 후마니타스 | 2010.12.01
형태 : 판형 A5 | 페이지수 408 기타정보
원제 : (The)primacy of politics : social democracy and the making of europe's
정가 : 17,000원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근대 이데올로기 간의 투쟁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한 책은
많다. 최근에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헤겔적 테마를 불러 들여 이데올로기 사이의 투쟁은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국내에서도 뉴라이트 운동이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위세를 떨쳤다. 일각에서는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선진화 담론의 핵심으로
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역사 종언론’ 내지 ‘자유주의 승리론’을 네오콘의 대표적 이데올로기로 비난해 왔던
개혁 내지 진보 진영에서도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종의 대안
담론으로 내걸고자 하는 시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진보와 보수 모두 자유주의를 변용해 자신들의 대안으로 삼고자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결론은 매우 다르다. 저자는 근대 이데올로기의
투쟁사를 자유주의의 승리로 보는 것에 명백히 반대한다. 만약 이데올로기 투쟁의 승자를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사회민주주의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사회민주주의란,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내건 적극적 민주주의자들의
비전”이며 그것이 전후 복지국가체제를 이끌었다고 본다.“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사회 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서만 공동체의 통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저자 : 버락 오바마 지음
역자 : 이경식, 이경식 옮김 역자평점 1.0
출판사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07.05
형태 : 판형 A5 | 페이지수 713
원제 : Dreams from my father : a story of race and inheritance
정가 : 18,900원 13,230원
오바마가 빈민운동에 헌신하는 과정은 그의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자세히 나온다. 오바마가 시카고의 “흑인 형제 곁으로” 간 것은 1985년으로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 일을 했다. 그러나 긴 운동의 성과는 같은 시기 해롤드 워싱톤(Harold Washington, 1922년~ 1987년)이라는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이 한 일에 비해 너무 왜소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보면 오바마가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여성의 흑인 활동가들에게 몹시 화가 난 장면이 나온다. 한 행사장에서 그들은 해롤드 워싱톤을 만나게 되어 있었고, 시장을 만나서는 자신들이 준비한 다른 행사에도 참석해 줄 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시장을 만났을 때 활동가들은 시장의 부드러운 풍모와 매너에 반해 마치 스타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되어 버렸다. 당연히 그들은 시장을 초청하는 일을 잊고 말았다. 화를 참지 못한 자신을 곧 책망하긴 했지만, 오바마는 그 경험을 통해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해롤드 워싱턴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 임기 중에 사망했다. 그는 심장병 징후가 있었고 의사로부터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자신을 지지했던 보통의 흑인들이 먹는 값싼 정크 푸드를 먹으며 과로를 했고 시청 안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서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그의 죽음은 시카고 흑인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다. 긴 추모 행렬이 연일 계속되었다.
그 해 말, 오바마는 “가난이나 불평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기존의 나의 태도를 바꿔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가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박상훈 대표의 강의원고중 일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현실적 급진주의자를 위한 실천적 입문서
저자 : 사울D. 알린스키 지음
역자 : 박순성 옮김
출판사 : 아르케 | 2008.02.29
형태 : 판형 A5 | 페이지수 284 기타정보
원제 : Rules for radicals : a practical primer for readistic radicals
정가 : 15,000원
알린스키는 “의사소통은 청중의 경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사람들의 경험 세계 안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언어를 반복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저 사람은 운동권이라 그래”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알린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익숙한 경험이 주는 안전함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경험에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리를 필요로 한다.” 정치가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알린스키의 말 가운데 가장 멋진 말은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권력이라는 용어가 대중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 그 용어 대신 “협치”나 “거버넌스” 같은 비정치적 개념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처럼 순화된 동의어를 사용함에 따라 본래의 말에 결합되어 있는 비통함과 고뇌, 애증, 고통, 승리감이 사라진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무균질의 활기 없는, 삶의 모조품일 뿐이다....우리가 (권력이란 말처럼) 단순명료한 말을 쓰는 것은 .... 현실을 우회하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권력은 적절한 말이다. 그 말은 애초부터 정치 가운데에서 생겨났으며 정치의 일부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설적인 단어를 관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영합하여 순화된 말을 고집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권력에 가까이 갈수록 타락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에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부패는 권력 자체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다....... 권력은 삶의 진정한 본질이며 원동력이다. 그것은 몸에서 피를 순환시키고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의 힘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위로 솟아올라 단결된 힘을 제공하는 적극적 시민 참여의 힘이다......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성 이그나티우스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한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그럼 결국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권력을 알고 이해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권력을 건설적으로 이용하면서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권력 없는 삶은 죽음이다. 권력 없는 세상은 유령 같은 황무지, 죽은 땅이다.”
타협에 대한 그의 이해도 훌륭하다. 그가 말하듯 타협은 유약함, 우유부단함, 고매한 목적에 대한 배신, 도덕적 원칙의 포기와 같이 어두운 내용을 갖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조직가에게 타협은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타협은 실질적으로 활동할 때 언제나 그 안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인데,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고르기, 크지는 않지만 보통 정도의 승리를 의미하며, 결국 타협은 획득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헐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
(박상훈 대표의 강의원고 중에서 발췌...)
위에서 나온 모든 책을 한번에 읽고 싶다면 아래의 책을 읽으면 됩니다.
정치의 발견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저자 : 박상훈 지음
출판사 : 폴리테이아 | 2011.01.24
형태 : 판형 A5 | 페이지수 216
정가 : 11,000원
정치의 발견 서문
이 책은 “작은 강의”의 산물이다.
정치가 심상정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정치바로]에서 조직한 강의였는데, 2010년 11월 13일부터 12월 11일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 2시간 반씩 5회에 걸쳐 강의를 했다. 수강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파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정치를 해야 할 상황에 다가 서 있는데도 “정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정치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데도 “나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기를 쑥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수강자들은, 정치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결심은 섰지만, “나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소명의식을 좀 더 분명히 정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앞에서 강의하는 일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에게 큰 재미와 보람을 갖게 했다. 정치학이 갖는 “현실 구속성”이라는 운명은 강사의 입장을 늘 위태롭게 했는데, 이론과 원리를 말하는 내게 그들은 늘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학”과 “정치”가 부딪히면서 만들어지게 된 그 위태로움이 나에게는 묘한 자극이 되었다. 강의를 마칠 때마나 나는 늘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었다. 정치나 정치학 모두 영어로는 동일한 단어인 politics로 표기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강의 내용을 준비하고 제기되는 질문마다 좀 더 나은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젊은 시절 한동안 나를 압도했던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내가 많이 자유로워졌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거대 이념에 의해 인도되고 그런 이념을 위한 정치학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현실의 정치를 대상으로 정치학을 말할 수 있다는 경험이 나를 흥분시켰다.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정치학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정치학에서 배웠고 현실의 정치를 경험하면서 더 깊이 이해한 것 가운데 적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정치학에서 배웠고 현실의 정치를 경험하면서 더 깊이 이해한 것 가운데 적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강의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필자는, 정치를 하게 되어 있고 또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정치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분명 우리사회의 상식에 반하는 권고가 아닐 수 없다.
상식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은 “정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믿을 수 없는 직업”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정치가가 하는 말을 믿어?”라는 대사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흥미로운 것은 그것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모두 그렇다고 수긍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수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마력에 이끌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 상황에서 누군가 나서서 “난 믿어.”라고 대답하거나 그 질문 자체가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파격이 될지 모른다. 이러니 누가 정치하겠다고 말하고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음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정치학이란 상식에 반하는 학문이다!”
대학원에서 내가 정치학을 배웠던 최장집 교수가 자주 한 말이다. 학생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지극히 평범한 주장을 할 때마다 그 말을 힘주어 강조하곤 했다. 그 말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어 나도 가끔 남들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나의 선생이 한 말 가운데 가장 멋진 말은 다음이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정치, 정당, 정치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정치가라면 이러한 반(反) 정치주의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답을 갖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는 대답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언제든 “왜 하필 정치냐?”라는 상식화된 질문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해 그 대답의 단초를 계속 제공하고자 노력하겠지만, 우선은 버락 오바마의 사례가 좋은 참고가 될 듯해 먼저 소개한다.
그의 책 [담대한 희망]은 정치에 나선 오바마에게 많은 사람들이 “왜 정치판처럼 더럽고 추잡한 곳에 뛰어들려고 하는가?”를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바마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 회의적 시각을 갖는 건 이해하지만, 정치에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 그것은 아주 간단한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서로서로에 대해 관심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힘이 분열시키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상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우선순위를 약간만 조정해도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오바마는 자신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참여할 방법을 묻는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내가 무엇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다시 깨닫는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뛰고 있다는 느낌이 갖게 된다.”
여러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가? 그 순간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꼭 그 순간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강의가 그랬듯이 이 책에서도 “진보파들과의 대화”를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반드시 진보파에게만 해당된다고 보진 않는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좋은 정치”의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보수파들과 “정치의 문제”에 대해 깊이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없어서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할 뿐이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길 바란다.
아무튼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노는 게 편하고 즐거운 법이다. 내게 있어 그런 사람들은 주로 진보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인간관계의 편협함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진보파들의 주장과 행태 가운데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의 삶을 지지해준 벗이자 선배, 후배들이다. 난 그들과 어울리는 게 여전히 편하고 좋다.
나는 우리사회를 좀 더 인간이 살만한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보수파보다 진보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직 젊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도 본다. 그들에게 정치의 길이 새로운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진보와 보수가 좋은 경쟁 관계를 갖게 되고, 또 그것을 통해 한국 정치가 지금까지와 같이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격렬하기만 한 오랜 “불모의 흥분 상태”를 끝내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가치를 담아내는 풍부한 대화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 바람은 진보에서 좋은 정치가가 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런 바람으로, 이제 강의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