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백지로 된 가짜 돈을 냈다. 주인은 백지를 받은 뒤 아무런 의심 없이 450만 원짜리 반지를 남자에게 건네었다. 반지를 받은 남자는 유유히 가게를 떠났다. 이는 실제로 한 실험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된 걸까? 우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람이나 위 실험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기에 당한 사람들을 보고 왜 저렇게 쉽게 속는지 의아해한다. “나라면 절대 속지 않았을 텐데.”라며 말이다. 반면 사기에 당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고.
사기꾼들은 교묘한 심리기법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행동을 조종한다. 심리를 이용했기에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사기꾼에게 소중한 것을 넘겨주고 만다.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심리 기법은 무엇이고,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위 실험에서 쓰인 심리기법을 알아보자.
남자는 반지를 사기 직전 주인에게 쓸데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진다. 지하철 위치와 방향을 묻는다든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교묘하게 돈을 받아도 괜찮다고 얘기한다.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신 많은 내용을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많은 정보가 갑자기 밀려들어오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귀금속 매장 주인은 남자가 얘기하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자신이 받은 돈이 제대로 된 돈인지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야바위하는 사람이 컵을 돌릴 때 계속 입을 놀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 순간, 혹은 어떤 물건을 사려는 순간, 상대방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면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판매자가 생수를 팔 때, 단순히 “500원입니다.”라면서 팔 수도 있지만, “두 개에 천 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에 500원이죠. 싸게 드리는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심리학자 바버라 데이비스가 설계한 비슷한 실험에서 사람들이 전자에 경우 25%, 후자의 경우 70%가 물건을 샀다.
왜일까?
우리에게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에 500원이라고 하면 바로 그 의미가 파악되게 된다. 하지만 많은 문장을 한 번에 말하면 상대방은 평가할 시간을 잃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들은 싸게 드린다는 말을 기억하게 된다.
만약 어떤 판매자가 제품 가격을 알려 준 뒤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1개월 이상 사용하면 얼마가 할인되고 사은품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끊임없이 말한다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조용히 판단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구상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며 모기와 함께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로 알려진 곤충계의 좀비는 바퀴벌레인데, 인간 세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세상 모든 직업이 사라져도 꿋꿋하게 건재할 마지막 직업이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청와대·국정원 직원 사칭 대출 사기 등 각종 사기 범죄 뉴스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기 범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한 해에 보이스 피싱 피해액만 2천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이 사기 범죄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대검찰청 자료에서 전체 범죄 중 사기 범죄 비율이 가장 높고, 지난 10년 간 전체 범죄는 20%가량 감소했지만 사기 범죄는 12%가 증가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범죄입니다.
사기범죄율이 높은 이유는 낮은 처벌 형량을 그 이유로 들고 있지만, 피해자가 ‘당할 만하니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풍토와 사기범죄에 대한 관대한 의식이 한 몫을 차지합니다.
사기는 ‘욕심 많고 멍청한 사람’만 당한다는 생각에 ‘속은 사람이 바보’라며 피해자를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많지만 수년간 사기꾼을 연구한 사람들은 “사기 당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처한 상황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누구나 사기에 걸려들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기꾼의 전형적인 특징으로는 첫째,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이 부족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사람이 일부러 남을 기망할리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소시오패스라고 봐도 무방하며,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적으로만 보고 늘 말도 자주 바꾸는 등 거짓말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타인과 정서적 유대감이 부족해 뻔뻔함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둘째, 사기꾼은 실체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다보니 허세가 심해 명품을 즐기고 고급차를 타며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맥 자랑과 거창한 얘기를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두루뭉술하여 검증할 수 없는 말만 계속하지만 평상시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쓰기 때문에 실체가 없어도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셋째, 사기꾼은 항상 바쁘고 급합니다. 자신의 일이 제일 중요하고 항상 바쁜 사람이므로 재촉하는 것이 습관이며, 돈을 빌리든 투자를 권유하든 당장 결정해야 할 것처럼 종용하는데, 사실 당장 결정해야 할 일은 많지 않고 무엇이든 재촉하는 것에는 반드시 덫이 있습니다.
사기꾼은 때로는 압박하고, 위로하거나, 방심하도록 만드는 등 심리학을 이용해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는데 능하므로, 한비자는 “인간의 허영심, 그 자체가 사기꾼이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