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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자율화 실시
본교는 1999학년도 3월부터 학생들의 두발 형태를 자율화하였다.
작년까지 짧은 단발머리로 규정되어 있던 것을 학생들의 개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두발형태를 하도록 하였다. 단, 긴머리일 때는 단정히 묶고 귀가 드러나는 짧은 커트는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묶은 긴머리, 단정한 커트, 단발머리… 개성 있는 여학생의 모습을 본교에서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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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려고 보니 부산의 동백 중학교학생이 올린 글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지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중락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제 : 두발의 자율화
30739 ·전은실
이번 학급토론회는 그 어느 학급 토론회보다도 인상깊었다. (중략)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두발의 자율화에 찬성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반대하는 애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의견들이 수록되었었는데 그 의견들이 하나같이 틀린 말들이 없었다.
찬반이 엇갈리면서 벌어지는 이번 학급토론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두발의 자율화를 찬성하는 첫 번째 이유로 시대에 걸맞은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 해쳐나가야 할 이번 IMF사태를 맞이하면서 굳이 돈을 내어 두발을 규정에 막게 한다는 것은 잘못되었었다는 지적을 하였다. 한번 머리를 자르는데 드는 비용이 5,000원 이상이고 조금 고급스러운곳은 10,000원을 넘긴다고 한다. 또한 여학생은 귀밑 3㎝를 넘겨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미용실을 자주 가지 않게 머리를 짧게 자르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우리가 귀를 드러내는 머리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학생의 경우에도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앞머리를 3㎝이상 기를 수 없고 그렇다고 돈을 절약하기 위한 삭발은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3㎝는 그리 긴 길이가 아니기 때문에 약 보름만 지나면 다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부담을 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은커녕 오히려 불편하다. 게다가 찬성하는 두 번째 이유인 개개인의 개성을 무시한다는 발언을 통해서도 두발의 자율화를 금지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중 하나가 개개인의 독창성과 개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 개성을 드러내기 좋은 것이 바로 두발이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빈부의 격차를 없애기 위해 교복은 입는다지만 헤어스타일로 그 사람이 잘 사는 지 못사는 지를 전혀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두발의 자율화를 금지하는 것일까? 솔직히 우리가 추구하는 개성이라고 하는 것은 고작 연예인들의 멋진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들이 전부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단정한 학생이길 바라기 때문에 두발의 자율화를 금지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 16살이라는 나이와 더불어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판단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두발의 자율화를 찬성한다.
한편 이같은 적극적인 찬성에 대항하는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두발을 규정대로 하면 학생들이 단정해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은 지금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생소한 말이였다. 그렇지만 언젠가 국어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사람이 아릅답게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 그리고 그 사람의 말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처음에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호기심이 가고 또한 부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닌 인격과 품위와 말씨에서 드러난 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발을 단정하게 하여 학교에서 규정한대로 따르는 것에 물의가 빚어지리라고는 딱 잘라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두발을 자율화 하면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내 또래의 여학생들은 나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학생들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내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때면 공동체의식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을 위한 모임이나 공간은 학교 이외에 아무곳도 없다는 것이다. 덧붙인다면 성인용 오락실이나 노래방, 당구장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데 왜 그 많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때로는 내 또래의 학생들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 없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