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오락가락 하고 하늘은 궂었지만 바다는 호수만큼이나 잔잔해 안산지역 역사를 정리하시는 정진각, 홍영의 선생등과 함께 풍도를 찾았다. 약 40여분 물길을 가르자 짙은 바다 안개에 싸인 풍도가 마침내 드러나고. 그 모습은 마치 ‘큰 접시’를 업어놓은 듯, ‘신대륙 신비’를 접하는 것처럼 빨려 들여갈 만한 광경이었다.
풍도는 뱃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육도’와 ‘난지도’등과 함께 서해 도서의 희기한 동식물 생태계 보고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풍도는 서해를 오가는 해상 뱃길과 남쪽 연안항로가 만나는 곳으로 경기만, 한양 직항로였다.
1894년, 풍도 ‘본섬’ 앞바다에서 청나라 어선을 기습 격침했던 일본군의 기념비적 ‘풍도해전’은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시발이었다. 우리 한산도 대첩처럼 일본은 이 ‘풍도해전’을 그들 군국주의 역사의 서막을 장식하고 늘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일본 풍도대첩 그림판에 예의 우리 ‘풍도’가 떠있다는 것이 ‘독도’를 넘보는 요즘 같은 그들 행태에 섬뜩하기만 하다.
꿈틀거렸던 3국 침략의 역사현장을 깊은 심연으로 묻어둔 채, 바다는 평화롭고 풍도는 그저 아름답다.. 풍도선창에 내려 해안 탐방로가 이어진 동쪽해안을 따라나섰다. 단풍나무숲이 해안을 따라 즐비하다. 해풍을 견디어 이파리들이 검푸르고 아주 강했다. 원래 풍도는 단풍나무 ‘풍’(楓)자 였다. 바다에서 그 단풍나무를 보고 찾아왔을 정도라 했다. 지금은 풍요로울 ‘풍’(豊)자를 쓰지만, 부자를 갈망하는 민원도 있었겠지만, 풍도해전 애길 들어선지 왠지 왜색(?) 분위기도 나고, ‘단풍나무’라는 그 섬의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기우가 흉물스럽게 파괴된 육도와 풍도 해안개발 현장을 접하면서 우려와 탄식으로 변하였다. 일찍이 풍도의 전략적 위치를 간파하고 바다를 전장화함으로서 대륙침략의 발판을 만들었던 일본군국주의 망령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육도는 풍도와 마주한 점점이 길게 늘어선 열도식 여섯 개 섬이다. 풍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육도는 바다에 울타리를 쳐놓은 듯한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그 섬들 중 하나가 토취장이 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직접 접안하여 올라가 보니 그 광경은 실로 참혹할 정도다. ‘돌’을 캔다고 했다는데 아예 섬을 도려낼 작정인가. 이미 안산시장도 이곳을 둘러봤다고 하는데... 그 주변은 천혜의 전복어장이고 엄청난 토사붕괴로 사실상 폐업되었다. 공사를 중지하고 복구하는 것 이외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 안산 시는 무슨 얘기를 할지 기가 막힌다.
아무리 무인도라 하더라도 육도군도로 이어진 연결 섬인지라 이렇다면 육도가 사라질 것은 뻔하다. 빼어난 자연해안과 어장을 유지해온 풍도 동쪽해안 토취장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아예 바지선을 대놓고 골재를 퍼 나르고 있었다. 이미 무너져 내린 도로와 해안방벽들은 이러한 토취장 개발이 얼마나 무자비 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방제시설과 어장피해 방지 등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듣자니 15년째 광물매장을 빙자로 자원개발과 광업허가를 내 섬과 바다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귀한 광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구 훼손한 흙덩이와 바위덩이를 내륙방조제 공사나 도로 등의 잡석으로 반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토록 섬들을 마치 ‘폭파해야 되는 돌 무대기’로 취급하는 것은 생태적 무지와 파렴치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개발 파쇼들이다.
샛노란 산나리, 짙은 보라색 도라지꽃이 별빛같이 빛나던 풀숲을 넘어 동쪽해안 끝으로 가자 풍도해안의 절경을 맞았다. 서해 고도 ‘붉은 바위’ 절벽해안이었다. 검고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붉은 바위절벽은 풍도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이런 많은 해안절벽들이 으래 까 뭉겨졌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지만....그럴수록 이를 지키고 보전해야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경작할 땅과 갯벌이 적은 풍도는 동절기면 주민들이 인근 도리도로 집단 이주해 갯일을 하는 유랑생활로 유명하다. 그래서 풍도 가옥들은 언제든지 집을 비울 수 있도록 아주 실용적이고 또한 미니어처처럼 소박하고 단단해 보였다. 거친 해풍 속에서 세월 때가 고스란히 묻어난 그 살림살이를 돌아보자니, 문득 바다 나간 주민들이 곧 돌아올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마을 산 중턱 성황림인 은행나무 밑에서 본 풍도, 뭇 사람은 나가고 빈집은 많아도 수백 년 무성한 은행나무처럼 그 마을과 바다는 통째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느 듯 풍도는 관광지가 되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세상도 인심도 변해 이젠 민박으로 육지 사람들을 받아 살아야 할 형편이지만, 척박했던 자연적 삶의 흔적과 마을 형태는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독특했던 생활문화와 자연적인 섬 부락과 주민들 손때 묻은 민가들, 그 공간자체가 살아남은 섬 생활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도회지에선 도저히 접할 수 없는 그 옛 섬 마을을 이 서해 고도에서 거닐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
근데, 풍도, 안산의 땅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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