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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만남- 궁을선인 한풀①] "지리산 130만평에 '도사 자판기' 만드는 중"하동=김재동 기자 / 입력 : 2015.05.02 08:53 / 조회 : 6500
섬진강은 그랬다.
뜰에는 금모래가 반짝이고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그래서 김소월이 엄마와 누나에게 가서 살자했던 그 강변 같았다.
아동문학가 남대우(南大祐)는 “하동포구 팔십리의 굽도리배야, 하동포구 팔십리에 봄을 실어라”라고 노래했지만 지난달 26일의 섬진강은 굽도리배도 필요없이 반짝반짝 물비늘 가득 봄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동의 그 강변 어느 소박한 전통혼례식장에서 그를 만났다. 궁을선인 한풀을. 속명은 강민주고 호는 선암, 자가 한풀이라서 한풀선사로도 잘 알려진 그는 집안 손자뻘인 신랑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춤 한자락을 선사했다.
퉁소와 가야금이 어우러진 음률속을 백모시 도포자락 휘날리며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풀쩍 뛰었다 내려앉는 몸짓들로 노니는 양이 꽃을 희롱하는 나비처럼 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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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손자뻘 신랑의 결혼식에서 축하 춤을 추는 궁을선인. |
한바탕 춤사위를 마치고 난 후 이어진 축사. 궁을선인은 “대광은 무명이요, 대음은 무성이라, 큰 빛은 밝지 않고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그 은혜가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스스로 그러하게 나투어 나타나진 것인데 서로를 분별하고 구분짓는 것은 우매한 짓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근원적인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껴안고 사랑해야 되겠습니다”며 “이 결혼식을 시작으로 함께 하는 두사람은 대광과 대음처럼 자애롭게 서로를 껴안고 사랑하길 바랍니다”고 당부했다.
축사까지를 마친 궁을선인은 혼례식이 이어지는 와중에 슬그머니 몸을 뺀다. 먼 발치서 사진을 찍다말고 허둥지둥 뒤를 쫓아보지만 종적이 묘연해 아연해 하는 중에 방금전 백모시 도포는 어쨌는지 색바랜 저고리에 흙묻은 단화, 벙거지를 둘러쓴채 나타난 그가 묻는다. “밥은?” 도사의 질문도 밥부터 시작되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차로 40여분을 이동해 청학동 삼성궁에 닿았다. 5월 4일 삼신제를 앞두고 마고성을 둘러보기로 사전약속이 돼 있었다. 차로 지리산을 오르는 내 막 피어난 어린 잎이 연두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에 감탄사를 쏟아내니 궁을선인은 그렇게 어린 잎에서 피어나는 연두빛을 ‘이내빛’이라 한다고 일러준다.(사전에서 확인할 순 없었지만 시어로는 쏠쏠한 표현으로 이해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초입엔 거대한 청학이 막 땅에 내려서는 형국의 건물이 보인다. 선국(仙國)이라 현판걸린 문을 지나니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신시공연장, 청학동장터가 보인다. 신시란 신들의 저자거리, 시장이다. 궁을선인이 찾은 곳은 기념품점 옆 식당. “배가 딱 고파서.. 뭘 좀 먹고 움직입시다”한다. 방금 혼례식장 귀빈(혼주의 아저씨뻘인 집안 어른이면서 축하공연과 축사까지 해 준)으로 다녀와 놓고, 객지 손님 끼니까지 살뜰하게 챙겨줘 놓곤 본인은 정작 빈속이란다. 부조도 안 할 처지에 예식장 밥 축내기 싫어 쌈밥정식으로 배를 채운 객을 앞에 두고 된장에 서둘러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그제서야 시작된 마고성과 삼성궁을 돌아보는 산행길. 검달길(‘검’은 ‘신성하다’의 의미고 ‘달’은 ‘땅’을 의미한다고)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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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성 가는길. 주차장-선국문-마고성의 웅장한 성곽-천마가 노니는 연못-마고 모신 삼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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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성(麻姑城)의 주인공은 당연히 마고다. 마고는 마고할미, 마고선녀, 마고할망등으로도 불리는, 모든 것을 낳고 기르며 우주의 질서를 세우는 창조의 여신이다. 마고릉이 있는 마고성은 그런 마고시대의 신선세상을 묘사해 놓았다고 한다. 삼성궁은 민족의 조상인 한배임(환인), 한배웅(환웅), 한배검(단군)을 비롯하여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재현된 성역 소도(蘇塗)다.
검달길을 오르며 궁을선인이 말한다. “원래 신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어요. 선사시대의 신들은 인간과 공존했고 고대시대의 신들은 인간을 굴복시키며 신성을 드러냈어요. 중세에 와선 신성이 인성을 노예로 삼아 폭압했고 근세에 와선 신과 인간 사이에 숙주가 나타나 인간을 통제했고요. 현대에 와선 숙주들 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인간사를 전쟁과 분열로 몰아넣게 됩니다. 마고복본, 원시반본을 하자는 거는 대립과 갈등을 넘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되겠다. 인간의 본성인 자연성을 회복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열어야겠다 해서 42년 걸려 (마고성과 삼성궁을)만들었어요” 한다.
검달길은 문과 문으로 연결된다. 문과 문 사이를 마당이라 부른다. 아직도 작업을 마치지 못했다는 궁을선인은 이 같은 마당을 81개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 마당들을 둘러보는 여정은 인간본성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며 81개의 마당을 마침내 다 둘러본 사람이면 모두가 도통하게 만들려 한단다. “지리산 130만평에 ‘도사자판기’ 하나 만드는 거지요. 보는 자, 보여주는 자가 따로 있지 않아요. 영성을 일깨우는 메카니즘인 81개의 연결고리를 타고 가다보면 마침내 제 스스로 ‘아!’ 터득 하는 거지” 한다. 궁을선인은 이를 일컬어 ‘영성인큐베이터 81마당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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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릉을 받치고 감싸고 있는 성벽에는 마고시대 신들의 조상을 모신 감실들이 즐비하다(위). 감실에 모셔진 신의 모습. 귀가없는 모습이 이채롭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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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에 일요일 막바지 관광객들이 궁을선인을 알아보고 따른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설명을 구수하게 풀어내는 궁을선인을 향해 누군가 묻는다. “올해 연세가 우째 되능교?” “구백열여섯이요” 촌각의 지체도 없는 답변. 생뚱맞다. 구백열여섯이라니.. 하지만 기대했던 ‘에이~’따위의 반응은 찾아볼 수 없다. 더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한다. “뭐지? 이런 반응은?.. 그렇게 수긍하고 넘어간다고?”
관광객들과 멀어지고 나서 묻는다. ‘916’이란 숫자가 어디서 나온 건지.. “지난 번에 나도 잊었던 생일이라고 제자들이 상을 차렸는데 떡 위에 초가 916개나 꽂혀있습디다. 그래서 그런 줄 알지” 한다. 예서 곧이 듣고 말 순 없단 생각에 제자들은 왜 916살이라던가 물어보니 “그 정도는 돼야 이일을 이만큼 할 만하고 내가 보내는 하루가 남들 열곱 스무곱이라 대충 계산해보니 그 정도 나온답디다” 한다. 본래 수도인의 나이는 묻는게 아닌법.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여본다.
탄성을 절로 부르는, 그가 쌓았다는 돌의 세상 마고성과 삼성궁을 둘러보면서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계속>
5월4일 '제 29회 삼신맞이 큰 굿' 열려
◆오는 5월4일 마고성과 삼성궁에선 봄천제인 ‘삼신제’를 올린다.
단군왕검은 개국 54년 음력 3월16일 친히 마니산 제천단인 참성단에서 삼신 하나님께 천제를 올렸고 그 후 역대 단군임금들도 제천하고 국선들에게 관을 씌워 온 겨레로 하여금 노래하고 놀이하며 큰 잔치를 벌이도록 하였다.
삼성궁은 매년 음력 춘삼월 열엿새를 기해 봄 천제를 지내왔다. 이번 '제 29회 삼신맞이 큰 굿'은 10시부터 천징, 영고의 열림소리로 1부를 시작해 천단춤-천례-일신-월신-헌화-헌다-고천-참알-독경-해원-아리랑검-참알-천례-닫힘소리로 제천의식을 마치고 도당 부정거리-불사,칠성,제석거리-도당산거리-대신거리-성제님, 별성장군, 신장 대감거리-살풀이-창부거리-뒷전거리등으로 꾸려진 2부를 통해 신명나는 잔치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