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드러나지만 필립 K. 딕은 '정체성의 패러독스'에 관심이 많다.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예지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러나 어느 날 시스템이 자신을 살인자로 지목하자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시스템을 유지하자면 살인을 저질러야 하고 살인을 피하자면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딕이 1953년에 발표한 단편 <임포스터> 또한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지구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과학자가 외계인의 스파이로 몰린다. 필사의 추적, 쫓기던 과학자가 마침내 발견한 진실은 한번도 의심치 않았던 자신의 믿음을 뒤흔든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나 <토탈 리콜>의 원작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처럼 <임포스터>에서도 기억은 결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기억에 대한 불신'과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딕의 중심테마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단편 <임포스터>는 딕의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됐다.
그러나 영화로서 <임포스터>는 소설의 지위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임포스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개봉 전인 올해 초에 극장에 걸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간판을 내렸다. < LA타임스>의 케빈 토머스는 "<임포스터>는 SF팬들. 특히 딕의 숭배자들에게는 환대받을 것 같다. 이 영화는 < A.I.>처럼 엄청난 대작이 아니며 SF팬이 아닌 영화애호가들을 유혹하는 아트영화의 특징을 갖고 있지도 않다. 비록 그 가운데 놓인 길에 있지만 모호하게 열린 엔딩까지 도전할 가치는 있다"고 썼고,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도 "주인공의 체포와 꼬아놓은 엔딩 사이인 2막에서는 처친다. 그러나 흥미롭고 현명한 SF영화이며 미국이 9·11 이후 갖게 된 망상에 관한 영화를 들라면 이 영화를 꼽을 만하다"며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살롱닷컴>의 앤드루 오히어는 "<임포스터>의 문제는 영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사이보그 같다. 겉보기엔 인간 같지만 영혼은 없다"고 비판했다. 감독 게리 플레더는 <덴버> <키스 더 걸> <돈 세이 워드> 등 스릴러물에 장기를 보여준 인물이며 <포레스트 검프> <스네이크 아이즈>로 낯익은 게리 시니즈와 <라스트 모히칸>의 매들린 스토가 주연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