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말이면 마라톤에 입문한지 일년이 된다. 지나온 일년이 긴세월은 아니지만 나의 일생을 놓고 볼 때는 어느 일년보다 길고도 값있는 세월이었다고 생각된다. 집이 전주이면서 2000년 전군마라톤대회를 남의 일처럼 알지도 못하고 보내고 나중에서야 주변에 참가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나의 망가진 몸을 한탄했었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결국 해를 넘겨 2001년이 되어서야 절친한 형님의 구체적인 권유를 받고 시작하게 된다.
맨처음 펄펄 눈발이 날리던 아중리저수지주변도로 6km코스를 달리던 날 결국 중간을 조금 넘긴곳에서 어느덧 우아한 자세가 사라지고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달아오른 온몸, 그리고 구겨진 자존심만이 범벅이 되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을 넘어선 몸이 이토록 기능을 잃었을까 싶을정도로 40대의 펄펄 나는 형님앞에서 30대의 벌벌 기는 나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초라하기만 했었다. 그렇게 입문한 달리기생활이 매주마다 그 형님과 달리기 만남을 가지며 차츰 차츰 적응되기 시작했다.
4월 15일 전군대회가 첫 타켓이기는 했지만 그 대회 2주전 22Km의 연습구간을 완주하며 장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씼을 수가 있었다.
결국 전주군산간 벚꽃마라톤에서 1:48에 첫 완주를 시작으로 5월에 광주5,18기념대회, 8월 동계올림픽유치기원, 여주세종대왕, 9월 금산하프마라톤에 이르는 제법 많은 대회에 참가하며 대회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기록은 고만 고만 했고 체계적이고 분석적이지는 못한 그냥 얼치기마라토너 그 자체였다.
하지만 대회 숫자가 늘면서 자만심도 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10월 첫주에 열린 성남대회에서는 도심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주로상 어디선가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져 병원응급실에서 깨어나는 참사를 맞았다.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는 생각도 잠시 마라톤의 결과는 반드시 원인과 과정에 기인한다는 너무도 정직한 원리를 깨우치는데는 그리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고 클럽에 들어갔다. 전주종합경기장을 본거지로 두고 있는 경기장마라톤클럽인데 초보인 사람의 눈에는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습량이 많았다. 매일 아침 400트랙으로 20여Km이상을 달리는 사람도 풀코스를 두려워한다니 난 아무것도 갖춘것 없이 얼마나 오만했던가?
성남에서의 아픔을 정확히 2주뒤인 10월21일 광주김치마라톤에서 씼어버리고 28일경주동아오픈에서 페이스운영능력을 확인한 다음, 11월 순천대회에선 드디어 1:36분으로 30분대에 진입, 그 뒤 부산국제대회(11/25)에서와 여의도전마협(12/2)에서 계속해서 30분대의 기록을 안정되게 유지하며 한해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눈이 떠 짐을 알만할때 2002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의 신청을 단체로 무사히(?)마칠 수 있었고 그때부턴 하프코스만 뛴 반쪽짜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기 시작했다.
풀코스 그 미지의 세계는 갈수록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년말에 호미곳을 참가하려다가 부모님 집이 이사가는 문제가 겹쳐서 못하고 1월13일에 열리는 런너스코리아배 거제대회가 대회요강을 바꿔서 일반인 참가를 받는다고 하는 소식이 들렸다. 년말에 걸린 고약한 감기로 제법 오랬동안 고생을 하고 어렵게 몸을 추스려 대회에 나가려니 이번엔 부모님 칠순기념 집안모임이 겹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쉬운일이 이래서 없다는 것이구나! 완주를 해서 꼭 이불효를 씼겠다고 약속을 하고 형제들의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면서 대회 참가를 강행했다. 결과는 아주 좋아서 그 험한 코스를 힘들이지 않고 아주 편안하게 웃어가며 완주할 수 있었고 기록은 3:50이 나왔다. 힘의 80%정도만으로 가볍게 뛴다는 기분으로 임하니까 그 험한 코스도 고개를 숙이고 말았던 것 같았다. 지난 일년간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통해 초보마라토너가 딱지를 벗었다. 소속해 있는 전주경기장클럽에서는 홈페이지 관리와 홍보일을 하며 이러저런 마라톤 세계를 접하고 있고 무지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오직 정직이라는 마라톤의 그 우직함과 순수함을 온몸으로 깨우쳐가고 있다.
이제 50일 남은 동아마라톤! 광화문 네거리에서 세계제일의 마라토너와 우리나라마라톤계의 고수들이 집결한 그 대로에서 나의 길을 달려보고 싶다. 오직 노력한 대로 결과를 보여주는 마라톤의 그 정직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싶다. 3:30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남은 기간동안 원없이 땀흘리며 설레이고 싶다.
강기상, 016-611-8715,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961 동아한일아파트118동 504호 메일 : mountins@dreamx.net 홈: www.jstadium.da.st 전주경기장마라톤클럽
첫댓글 저도 첫 풀고스 대회여서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대회 이후에는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수십회나 달리면서 후회하고 있으니.......